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207)
부웅! 부우웅!
오식이가 모닝스타를 머리 위로 빙빙 돌리며 놈을 향해 다가갔다.
놈은 복싱 선수를 연상케 하는 포즈로 다가오는 오식이를 주시했다.
“크르르르!”
왕울이가 놈의 시선을 뺏기 위해 거칠게 으르렁거렸다.
좋은 시도였고, 살짝이지만 먹혀들었다.
힐끔….
놈의 시선이 왼쪽으로 잠시 돌아갔다.
때를 놓치지 않고, 오식이가 속도를 높여 놈과의 거리를 좁혔다.
동시에 모닝스타를 크게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요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소리에도 놀랐지만, 혹시라도 굉음에 주변에 있을지도 모를 다른 골렘들이 깨어날까 흠칫했다.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도 별다른 징후는 없었다.
투둑….
모닝스타를 막아낸 놈의 팔뚝에서 소량의 잔해가 떨어져 내렸다.
굉음으로 보나, 충격파로 보나, 상당한 피해가 예상됐건만, 역시 단단함과 방어력이 대단한 모양이었다.
“그르릉….”
“크르르륵!”
놈과 오식이가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더없는 살벌함이 전해졌다.
오식이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놈의 압도적임도 상당히 볼만했다.
처억!
서로의 숨결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바짝 붙어 있던 두 거한이 일말의 거리를 벌렸다.
정확히는 오식이가 뒷걸음질로 두 발짝쯤 물러났다.
두려움 같은 것으로 물러나거나 피한 것은 아니었다.
스윽….
꾸우욱….
오식이와 놈이 동시에 오른쪽 팔을 들어 올렸다.
단순한 동작에서 앞으로 벌어질 거대한 부딪침이 예상됐다.
한껏 뒤로 당긴 어깨와 두툼한 팔뚝에 돋아난 힘줄에 이르기까지… 서로 가지고 있는 힘을 모두 자신의 주먹에 쏟고 있음이 절로 느껴졌다.
“크륵!”
“그르릉!”
이를 악문 으르렁거림에 이어 두 거한의 육중한 펀치가 바람을 갈랐다.
부우우웅!
부우우웅!
평생을 두고도 다시 못 볼 것 같은 명장면을 놓치지 않으려 두 눈을 부릅떴다.
약속이라도 한 듯 정확히 중간에서 맞붙은 펀치의 교환과 작렬!
실로 고막을 터트릴 것만 같은 크나큰 굉음이 폭발하듯 터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굉음만 폭발한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부딪침의 순간에 불꽃 같은 번쩍임도 있었다.
더불어 강렬한 힘과 힘의 맞대결에 걸맞은 거센 후폭풍의 파장도 주변을 휩쓸었다.
“크읏!”
순간적으로 날아드는 날카로운 바람과 충격파에 급히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는 한껏 자세를 낮췄다.
핏! 피잇! 핏!
모래인지 돌멩인지 모를 자그마한 것들이 날려, 미처 다 가리지 못한 얼굴과 팔뚝을 스치며 가녀린 생채기를 남겼다.
좀처럼 끝나지 않는 후폭풍의 여파에 머리카락이 미친 듯이 흩날렸고, 눈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슈우우우….
몇 초쯤이 흘러서야 주변이 잠잠해졌다.
그제야 눈을 살짝 뜨고는 상황을 살폈다.
“헛!”
당장에 시선을 잡아끈 것은 한 번 더 엄청난 격돌을 준비하는 오식이와 놈의 모습이었다.
꾸우우우우욱!
그그그그그극!
직전보다 훨씬 더 강하게 뒤로 당긴 어깨와 한껏 틀어 돌린 허리는 물론, 있는 힘껏 움켜쥔 주먹에도 더욱더 힘을 모으는 모양새가 이어졌다.
“크아아아아앙!”
“그르르르르릉!”
준비를 마쳤다는 신호인지 오식이와 놈이 크게 포효했다.
이어, 다시금 강렬한 펀치의 대결이 작렬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굉음에 이어 거센 후폭풍까지 앞선 상황과 엇비슷한 과정이 이어졌다.
“크으읏!”
이번에는 미리미리 얼굴을 감싸고 날아들 것들에 대비했지만, 그리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이후 상황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는 데, 오식이의 괴로워하는 신음이 들려왔다.
“크르르르….”
억지로 눈을 뜨며 상황을 살폈다.
아직 잦아들지 않은 바람 때문에 다소 정신없는 분위기 속에서 제 주먹과 손목을 움켜쥔 채 괴로워하는 오식이를 볼 수 있었다.
‘헛….’
녀석의 상태는 심각해 보였다.
소가죽보다 단단한 녀석의 손가락 피부가 터져 만신창이가 되었고, 얼핏 피도 맺힌 듯했다.
다른 손으로 움켜쥔 탓에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는 몰라도 튼튼하고 두꺼운 손목마저 꺾인 듯 보였다.
반면, 두 차례나 맞짱을 뜬 골렘 놈의 손은 너무나 멀쩡했다.
‘져, 졌다. 오식이가 졌어….’
힘에서는 둘째가라면 서운해할 녀석이 힘과 힘의 격돌에서 패배했다.
뭐 몸을 이루고 있는 재질(?) 자체가 다르고 격차가 있기는 했지만, 일단은 너무나 큰 충격에 빠져 버렸다.
나도 그런데, 녀석이야 지금 심경이 오죽할까 싶기도 했다.
“그르르릉….”
놈도 제가 이겼다는 걸 아는 듯했다.
웃음처럼 들리는 으르렁거림과 함께 맞대결에서 승리를 따낸 주먹을 다시금 뒤로 당기며 추가타를 날릴 태세를 갖췄다.
“오식아!”
다급하게 오식이의 이름을 불렀다.
괴로워하던 녀석이 그제야 놈을 쳐다봤다.
“크르르르르!”
이를 드러내며 분함을 표출했고, 이내 움켜쥐고 있던 손목을 풀고는 주먹을 꽉 쥐었다.
“헉!”
깜짝 놀랐다.
아무리 봐도 녀석이 놈과의 펀치 대결을 다시 하려는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 안 돼!’
미련한 짓이었다.
멀쩡한 상태에서도 패배했다.
크게 상처를 입은 지금, 다시 맞붙는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결과를 초래할 뿐이었다.
무조건 말려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내가 무엇도 하기 전에 이미 준비를 마친 놈이 먼저 펀치를 날렸다.
부우우웅!
그에, 다소 늦은 감이 있었지만, 오식이가 반사적으로 반응하며 움직였다.
뻔하고도 처참할 결과에 미간이 한껏 찌그러졌고, 눈도 절로 질끈 감겼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이 이어졌다.
곧장 들려올 오식이의 비명에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크으으으….”
하지만, 이내 들려온 것은 오식이의 것이 아니라 놈의 비명이었다.
“그르르르르르르르르릉!”
예상과 다른 전개에 머릿속에 물음표가 그려졌다.
아직은 거칠게 날아드는 후폭풍의 영향에 눈을 뜰 수 없어 궁금증과 갸웃함이 쌓여만 갔다.
잠시 후.
폭발할 것처럼 쌓여 버린 의문과 궁금증에 서서히 잠잠해지는 후폭풍의 영향을 애써 무시하고서는 감았던 눈을 떴다.
스으윽….
시야에 들어온 광경에 놀라 이내 바람 빠지는 소리를 토해 내야만 했다.
“헛!”
직전과는 정반대의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아니, 그보다 훨씬 심한 상태였다.
소가죽보다 단단한 피부가 죄다 터진 채 아픈 손의 손목을 움켜쥐고 괴로워하던 오식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하게… 약간은 거만하게 서 있었다.
반면, 승리의 웃음을 흘리면서 으스대던 골렘 놈은 육중한 몸을 바들바들 떨며 어찌할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더불어… 끝장을 보겠다는 듯 과감하게 움켜쥐고 한껏 뒤로 당겼던 놈의 팔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였다.
“크크크!”
오식이가 웃었다.
놈을 비웃는 것 같기도 했고,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는 듯도 했다.
스으윽….
이어, 녀석이 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
머리 위로 올라가는 녀석의 손에는 모닝스타가 들려 있었다.
“헐….”
순간, 눈으로 목격하지 못한 격돌의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승리를 만끽하며, 자신만만하게 세 번째 맞대결을 준비하고 거침없이 주먹을 날린 놈.
그런 놈의 펀치에 호되게 당하고, 패배한 오식이는 어쩔 수 없이 놈의 도발과 공격에 대응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대로 다시 맞대결을 한다면 결과는 뻔한 일.
녀석에게는 이 뻔한 승부의 결과를 뒤집어야 할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모닝스타였다.
거세게 날아오는 놈의 펀치에 맞춰 주먹보다 확실히 단단한 모닝스타를 가져다 대면 끝.
녀석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결과를 예측했는지는 모르겠다.
뭐가 됐든 결과는 만족을 넘은 대만족 수준.
놈의 팔 전체를 완전히 날려 버렸으니, 이보다 더 큰 소득과 승리는 없을 듯했다.
‘자식, 머리 좀 썼는데?’
진화 전의 오식이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플레이였다.
뭐, 진화 후에도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으니 마찬가지라고 봐도 좋았다.
해서, 녀석이 그동안 누구를 만나, 어떤 짓거리들을 보며 경험을 쌓았는지는 대놓고 말할 수 없었지만, 참으로 잘 배웠다는 생각이 들고, 너무나 기특하기만 했다.
크크크크크!
어쨌든.
승기가 오식이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한순간에 팔 하나를 잃어버린 놈은 이전의 위용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놈이 오른손잡이였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하게 공격력이 반감되었고, 균형이 무너져서인지 움직임도 겁나게 느려졌으며, 끝내는 비틀대거나 휘청거리기까지 했다.
반면, 오식이는 완전히 신이 났다.
놈의 느려터진 공격을 몇 번 피하는가 싶더니만, 그것마저도 허락지 않겠다는 듯이 놈의 사각으로 돌며, 공격 자체를 하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크아아아앙!”
그것이 제대로 먹혀들자, 놈을 놀리듯 우렁찬 포효를 날렸고, 이내 놈을 아주 작살을 내겠다는 듯 마음껏 모닝스타를 휘둘렀다.
부우웅! 부우우웅!
퍼억! 퍼어억! 퍽! 퍽!
오식이의 모닝스타에 놈은 샌드백처럼 흠씬 두들겨 맞기만 했다.
간혹, 멀쩡한 왼팔을 들고 방어를 하긴 했지만, 그것이 방어인지 대놓고 팔을 내준 것인지 모를 정도였다.
그륵….
쿠우웅!
끝내는 놈이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래도 오식이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으라차!”
흥으로 가득한 기합과 함께 모닝스타를 머리 위로 치켜든 녀석이 크게 점프했다.
떨어지는 속도와 힘을 더해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는 행위였다.
무시무시한 위력의 모닝스타가 노릴 최종 목표는 힘을 잃고 앞으로 숙인 놈의 거대한 머리통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놈의 거대한 머리통이 산산이 조각나며 터져 버렸다.
상당히 끔찍한 장면이 예상되지만, 실상은 커다란 돌덩이나 바위가 터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바스스스스스….
머리통이 날아간 놈의 몸이 이내 모래성처럼 가루가 되어 무너져 내렸다.
돌가루라서 그런지 흩날림은 딱히 없었다.
대신에 땅으로 스며들 듯 가루의 일부만을 남긴 채 사라져 버렸다.
번쩍!
일부만 남은 놈의 흔적 안에서 뭔가가 빛을 발했다.
‘아이템?’
굉장한 것이 나왔을 것 같다는 기대감을 품고는 당장에 그곳으로 뛰어갔다.
린과 왕울이도 바로 달려왔다.
“잘했어! 훌륭해!”
“크하하하!”
“우선 손부터 치료하자. 린! 이 녀석 손부터 봐 줘.”
“네, 주인님.”
린에게 오식이의 치료를 맡기고는 골렘이 남긴 아이템을 주워 들었다.
그것은 주먹 크기의 반 정도 되는 노란색의 유리구슬이었다.
일단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게 뭐지? 보석은 아닌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하다가 본능적으로 그것을 흔들었다.
별다른 느낌은 없었지만, 유리구슬 안에 든 것이 움직였다.
‘어라? 그냥 노란색이 아니었어?’
그냥 전체가 노란색인 유리구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노란색의 무언가… 마치, 연기 같은 것이 구슬 안에 가득히 담겨 있는 모양새였다.
“흐음… 이게 대체 뭘까?”
나도 모르게 목소릴 냈다.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생기의 미약입니다.”
난데없이 린이 처음 듣는 이름을 뱉어 냈다.
이어진 반응도 이상했다.
“헛!”
마치, 실수라도 한 것처럼 제 입을 틀어막고는 커다란 눈을 더욱더 크게 떴다.
“엥? 너 이거 알고 있었어?”
내 물음에 눈을 깜빡거린 린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아니요. 처음 보는 건데… 갑자기 머릿속에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말이 좀 이상했다.
린은 더욱더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흐음… 어쨌든, 이것의 이름이 생기의 미약이란 말이지?”
“네… 그런 것 같아요.”
“뭐에 쓰는 건지는 모르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는데, 린이 곧장 대답했다.
“흡입이요. 마시면 상처가 치료됩니다. 헛!”
린이 또 자연스럽게 말을 하다가 스스로 놀라 제 입을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