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하니 소환수가 생겼다 (206)
날이 밝아 왔다.
잠은 자지 않았다.
완전한 회복도 되지 않았다.
그래도 조금은 움직일 수 있는 수준이 됐다.
밤샘과 머리카락 쥐어뜯기 신공으로 몇 가지 가능성 있는 것들을 더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 때렸다. 내가 내 여자 좀 때린다는데, 그게 뭐?’
엘리자를 때렸냐는 내 질문에 마에다 놈이 했던 대답이었다.
놈에게 대답을 듣기에 앞서, 식당 주인 여자로부터 엘리자가 맞고 산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얘기를 먼저 듣기도 했다.
당시에는 화가 나고, 열이 받아서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는 모순과 문제점이 있었다.
그렇다.
소문과 마에다 놈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방인은 던전 마을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할 수 없다.’라는 룰이 깨져 버리는 것이다.
엘리자는 던전 마을 사람이고, 마에다는 이방인이었으니까.
놈은 절대로 엘리자를 때릴 수가 없다.
때리려는 시늉만 해도 정신을 잃을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소문도, 놈의 말도 다 거짓이었나?’
확신할 수 없었다.
없는 소문이 퍼지거나 부풀려질 수는 있었다.
뭐, 놈이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리 좋은 일도 아니고, 공공연하게 알려진 룰까지 무시하면서 엘리자를 때렸다고 말하고 다닌다는 게 아무래도 이상했다.
“크으으! 미쳐 버리겠네!”
궁금증에 답답해 죽을 것 같았다.
해답을 찾고 싶었지만, 지금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더욱더 미칠 것만 같았다.
….
날이 완전히 밝았다.
자리를 이동하기로 했다.
숲속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갔다.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곳이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한통속일지도 모를 인간들보다는 차라리 괴물들과 마주치는 게 훨씬 나은 상황이었다.
“췟! 차라리 썬더 길드에 들어갈 걸 그랬나?”
그랬더라면 이런 개망신까지는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혹여, 당했더라도 피할 곳과 보호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지도 모르고, 궁금해 미치겠는 일들의 해답을 속 시원하게 알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찾아가 볼까?’
어떻게든 켄지에게 연락을 해 볼까도 싶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그들도 믿을 수는 없어.’
가재는 게 편이고, 초록은 동색이라 했다.
끼리끼리 논다는 뜻이다.
울트라 닛폰이나 썬더나 죄다 일본인들이다.
게다가 몇 년 전까지는 하나의 길드였다고도 했다.
뭐, 지금이야 사이가 소원하다고는 하나, 어쨌든 이곳 자트란드에서 오래도록 함께 어울리던 이들이다.
소문을 듣고, 인재를 영입하려 물밑 작업을 했지만, 한낱 이방인… 같은 일본 사람도 아니고, 타국의 각성자이니 진짜 이방인 같은 나보다는 저희끼리 짝짜꿍이 될 가능성이 더 컸다.
괜한 노파심이고, 기우이며, 쓸데없는 헛소리에 막장 시나리오라고 해도 상관없다.
아직 해답을 찾지 못한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되고, 몸을 신중하게 사려야만 했다.
‘그래, 일단은 숨어 있자.’
더욱더 깊숙한 곳으로 향하며, 철저하게 몸을 숨기기로 했다.
* * *
사건이 있고, 며칠이 지났다.
몸은 완전히 회복된 상태였다.
오식이에게서 얻은 놀라운 회복력이 이번에도 빛을 발했다.
당분간은 철저하게 몸을 숨기기로 했던 계획 대로 계속해서 숲속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당연한 일일 테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괴물들의 수준이 높아졌다.
그래 봤자, 거기서 거기라는 게 살짝 아쉬울 뿐이었다.
그래도 누구 하나 찾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만족스러웠다.
“오식아, 불 피워라!”
처음에는 조심스러워서 피우지 못했던 불도 이제는 마음껏 피웠다.
괴물들만큼이나 심심치 않게 보이는 온갖 짐승들에 식량 걱정도 없었다.
“쩝… 자연인 타입인가? 이런 생활이 왜 이렇게 편하지?”
더없이 편하고, 별다른 탈도 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
계속해서 자리를 이동했다.
빠른 진행은 아니었지만, 방향은 일정했다.
내가 이곳 자트란드를 떠나지 못하고 머무는 이유… 이제는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이유와 희망, 그리고 기대의 ‘그것’이 있다는 산으로였다.
앞서도 말했지만, 그것을 보거나 만나기 위해서는 ‘때’를 기다려야만 했다.
당연히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뭐, 언제 시작될지도 모르는 일.
일 년에 한 번… 그것도 딱 일주일간이라는 때를 정확히 아는 이는 그 누구도 없었다.
“흠…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인 건가?”
여전히 풀지 못한 괴현상의 사건이 오히려 득이 된 셈이 됐다.
무슨 소리냐고?
그것이 이곳 자트란드에 존재하고, 일 년에 한 번 있다는 때를 기다려야 하며, 그 기간이 일주일이라는 정보들을 얻고 난 뒤, 큰 기대와 희망에 부풀었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 희망에 비교해 준비는 부족했다.
아니, 안일했다고 보는 게 좀 더 옳겠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별다른 생각 없이 왕울이를 너무 믿고, 의지했다고나 할까?
그저, 때를 알리는 신호가 나타나면 왕울이를 타고서 내달려 도착하면 될 거라 여겼었다.
두 개의 산이건, 그 사이의 계곡이건 간에 그 누구보다 빠르게 당도할 자신이 있었다.
진심, 준비성 없는 안일함의 끝이었으며, 참으로 멍청한 짓이었다.
어느덧 가까워진 산을 눈앞에 두니, 그것이 더 확실해졌다.
대충 봐도 엄청나게 험난한 산세와 높이는 아무리 왕울이를 타고 달린다 해도 몇 시간 만에 넘을 수준이 아니었다.
못해도 하루 이상… 쉬지 않고 달릴 수는 없으니 이틀 이상은 족히 걸릴 듯싶었다.
더불어 아직 눈으로 확인하지 못한 산과 산 사이의 계곡과 다음의 산까지 넘어야 할 테니, 도착 예정 시간은 더 늘어날 터였다.
어쩌면, 주어진 일주일의 때를 다 보내고 나서야 도착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괴현상의 사건 직후, 이곳으로 방향을 잡아 움직인 것이 득으로 작용했다.
미리미리 산을 넘고, 계곡을 지나 다음 산까지 넘어갈 생각이었다.
뭐, 운이 좋아 때를 알리는 신호나 기색이 보인다면 금상첨화일 듯.
“얘들아, 가자!”
부푼 기대를 안고 첫 번째 산의 초입에 들어섰다.
….
다시 며칠이 흘렀다.
이제 막 첫 번째 산의 정상에 올랐고, 까마득하게 펼쳐진 계곡을 향해 내려갈 준비 중이었다.
산은 보는 것과 예상보다도 훨씬 더 험난했다.
마땅히 난 길도 없었고, 무척이나 가팔랐으며, 곳곳에 장애물과 같은 요소들이 넘쳐 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산세가 하도 지랄 같아서인지 괴물들도 서식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더불어 그런 곳을 노루인지 사슴인지 모를 엇비슷한 놈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리저리 뛰어다닌다는 건 더 어이없고, 놀라운 일이었다.
뭐, 그 때문에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는 점은 우리에게 이로운 일이었고 말이다.
“계곡에는 뭔가가 좀 있으려나?”
딱 봐도 뭔가 음침하고 살벌해 보였다.
해가 잘 들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조금은 변태 같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뭔가가 좀 나타나거나 있기를 조심스레 바라고 있었다.
한동안 강제로 잊고 지내야 했던 짜릿한 손맛과 두근대는 긴장감을 불러일으켜 줄 제법 쓸 만한 놈으로 말이다.
….
“쩝….”
실망감으로 인해 씁쓸해진 입맛을 다셨다.
기대했던 것과 달리 계곡은 별 볼 일이 없는 곳이었다.
그저, 수많은 돌과 바위 등으로 이루어진 형태였으며, 험난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동안 넘어온 첫 번째 산과 비교해서는 그리 심각한 수준도 아니었다.
“흐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왕울이와 함께 동물적 감각을 펼치고 사방을 살폈다.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어때? 뭐 좀 느껴지는 게 있어?”
별다른 기대감 없이 물었다.
돌아온 대답도 그랬다.
1차로 빠졌던 맥이 한 번 더 빠지며 한숨까지 새어 나왔다.
“휴우우… 뭘 바라니… 그냥 좀 쉬기나 하자.”
터덜거리는 걸음으로 근처에 있는 바위를 향해 다가갔다.
배낭도 벗어 던진 채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앉으면 눕고 싶다 했던가?
자리를 힐끔 확인하고는 뒤로 벌러덩 누웠다.
자박자박….
그런 나를 향해 린이 다가왔다.
“주인님, 식사 준비할까요?”
그러고 보니, 점심때가 한참이나 지나 있었다.
뭐, 진짜 변태스러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실망감 때문에 배도 고프지 않았다.
그래도 나만 생각할 수는 없기에 눈도 뜨지 않은 채 그러라 대답했다.
“그래, 그러도록 해.”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린이 뒤로 물러났다.
“에휴….”
괜한 심통에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려 누웠다.
일부러 아랫배에 힘을 주며, 좁게 닫힌 괄약근으로 가스를 분출했다.
뿌우웅….
퀴퀴한 냄새가 확 퍼지며 코를 자극했다.
“크으….”
급히 손사래를 치며 내가 뿜어낸 독가스를 날려 버렸다.
그때였다.
들썩!
착각이겠지만, 깔고 누운 바위가 움찔하듯 움직였다.
“…?”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하는데, 또다시 바위가 움직였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그그….
“헉!”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바위에서 굴러떨어졌다.
납작한 자세로 착지해 고개를 쳐들었다.
바위가 솟아나고 있었다.
그그그그….
“뭐, 뭐야?”
네발로 기듯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점심 준비로 한창이던 녀석들도 놀라서는 급히 내 곁으로 모여들었다.
“크륵!”
“저게 뭐죠?”
“크르르….”
그러는 사이에도 빠르게 솟아오른 바위가 끝내는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진짜 기지개였다.
양쪽 팔을 들고 뻣뻣해진 몸을 쭉 펴는 그런 것 말이다.
그랬다.
솟아오른 바위에는 하늘로 치켜든 두 개의 팔도 있었고, 뒤로 젖힐 허리가 존재하는 몸통도 있었으며, 거대한 몸을 든든하게 지탱하는 튼튼한 두 다리도 있었다.
더불어 괴상한 소리를 내는 입이 달린 머리도 있었다.
“그르릉… 그르르르릉!”
마치, 거친 표면의 돌들이 부딪치고, 갈리는 듯한 소리였다.
굉장히 우렁찼고, 고막을 거슬리게 했다.
“고, 골렘?”
놈의 정체를 바로 파악했다.
역시나 직접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워낙에 유명한 놈이라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놈들의 출현은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을 만큼 흔했다.
또한, 몸뚱이를 이루는 재질과 크기는 물론, 특성 등과 관련하여 레벨마저도 다양했다.
특출날 정도로 막강한 힘과 지치지 않는 체력, 거기에 웬만한 공격은 통하지도 않는 단단한 방어력을 겸비하고 있어, 상대하기가 무척이나 까다로운 놈으로 통하기도 했다.
흔하디흔한 놈들이었지만, 쉽게 볼 수는 없기도 했다.
어지간해서는 놈들 스스로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었다.
놈들은 지독한 잠꾸러기였다.
평소에는 바위나 진흙 덩이로 위장한 채, 주변의 지형지물인 것처럼 조용히 잠만 처자고 있다.
그러다가 어떤 자극… 그것도 꽤 큰 자극을 받아야만 깨어났다.
해서,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들지만 않으면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놈들의 서식지에 들어서도 조용하고, 얌전히 빠져나가면 놈들을 상대하거나 전혀 두려워할 것이 못 됐다.
반대로 괜한 짓에 놈들을 자극하여 깨우게 되면 상당한 피해를 보거나 다소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나는 꽤 엄청난 짓을 저지른 꼴이었다.
‘내 방귀가 그렇게 자극적이었던가?’
가스를 분출하는 순간, 퀴퀴한 냄새가 순식간에 퍼지기는 했지만,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닐 듯싶었다.
아니, 막말로 다들 방귀에서 그 정도 냄새는 나지 않나?
쩝….
어쨌든.
그건 그거고, 지금은 레벨이 몇이나 되고, 얼마나 강할지도 모를 놈과의 한판 대결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오식아, 모닝스타를 꺼내!”
내 외침에 오식이 즉시 모닝스타를 꺼내 들었다.
놈에게는 날붙이보다 둔기류가 먹혔다.
아니, 날붙이는 괜히 들이댔다가 날만 상하고 말 일이었다.
“오식이가 정면! 나머지는 흩어져서 서포트!”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녀석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나도 재빨리 자리를 잡고는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주변에 다른 놈들이 있을지도 몰라, 조심들 해!”
두근대는 놈과의 결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