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천십지제일신마 제1권 제4장 대폭풍(大暴風) -
잠마(潛魔)는 섬전(閃電)속에 재현(再現)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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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늘 아래 가장 오만한 인물이 있으니 그는 하늘조차 거부하고
딛고 선 중원십팔만리조차 비좁다고 입버릇처럼 떠들어댔다.
또한 이 땅이 만들어 낸 가장 잔인한 인물이 있으니 그는 자신을
받드는 자에겐 천귀영화(天貴榮華)를 주었으나 거역하는 자는 육
신을 갈라 그 피를 들이켰다.
이렇듯 오만하고 잔인했던 인물이 백이십 년 전의 무림에 존재했다.
단천양(端天亮).
이 사람은 구천십지만마전의 제 칠대(第七代) 제일신마(第一神魔)
로 구천십지만마전의 수백 년 역사가 탄생시킨 제일신마 중 가장
무서운 인물로 평가된다.
하늘과 땅 사이에 단 한 명의 적수가 존재하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던 인물이 바로 단천양이었다.
그런 그의 입에서 어느 날 추상같은 불호령이 떨어졌다.
― 구천십지만마전에 대한 거역이나 불경(不敬)은 곧 역천(逆天)의 뜻!
지난 육백삼십 년 동안 본전(本殿)을 거역한 자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 광오하게도 본좌에게 그 역천의 뜻을 비친 자가 있다.
당연히 구천십지만마전은 발칵 뒤집혔다.
― 구천마제(九天魔帝)와 십지마황(十地魔黃) 및 전 고수에게 명(命)하노니,
잠마혈문(潛魔血門)의 삼족구문(三族九門)을 멸하고 조상 십대의
묘지를 파헤쳐 역천에 대한 대가를 지불토록 하라!―
절대로 거역할 수 없는 지상 명령과 함께 단천양은 한 장의 서찰
을 꺼내 수하들에게 펼쳐 보였다.
서찰의 내용인 즉 이러했다.
<구천(九天)이 넓다 하나 하늘을 모두 덮지 못하고 십지(十地)가
크다 하나 대지의 전부는 아니다.
만마전의 고수가 아무리 많다 하나 천하마종(天下魔宗)의 전체를
관장할 수는 없는 것이니...... 본 잠마혈문(潛魔血門)은 구천십
지만마전의 권위를 부정하며 참배 또한 거부할 것을 만천하에 공
표하노라!>
명백한 도전(挑戰)!
만마전의 전 고수들이 서릿발같은 분노를 안고 모조리 만마전을 박차고 나갔다.
그후 십 년에 걸쳐 구천십지만마전과 잠마혈문의 싸움은 하루도
거름 없이 계속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무림천년사혈전록(武林千年
史血戰錄)의 첫 장을 기록하는 역천(逆天)의 혈전(血戰)이었다.
잠마혈문.
스스로 삼천 년 역사를 이룬 마교(魔敎)의 단맥(斷脈)임을 주장하
는 신비마문(神秘魔門)이며 오 만(五萬)의 일급 고수와 수많은 대
마황(大魔皇)을 끌어들여 그 세력을 비밀리에 확장해 온 죽음의 문파!
그 힘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영원한 마도(魔道)의 불멸혼을 기원하며 세워진 지
상 최강의 단체 구천십지만마전이었다.
십 년에 걸친 역천대혈전은 끝내 잠마혈문이 붕괴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문주(門主)인 잠형천존(潛刑天尊) 사도무기(司道武琦)는 단천양에
의해 황산의 고혼(孤魂)이 되었고 그 수하들은 모조리 씨가 말랐다.
완벽한 패배였다.
단 한 번 하늘을 기웃거린 대가치곤 너무 엄청난 것이었다.
그후 세월이 흘러 단천양은 제 팔대 제일신마를 그의 아들에게 계
승하고 이승을 떠났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무림인들은 누구나 잊지 못하고 있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구천십지만마전에 대항했던 유일한 문파!
죽어 가는 순간까지 오 만의 수하 중 단 한 명도 구천십지만마전
에 그 오만한 허리를 굽히지 않았던 그 잠마혈문을......!
서릉협(西陵峽).
저 유명한 무산삼협(巫山三峽) 중의 하나이며 천길 낭떠러지로 둘
러싸인 그 험준절악함은 나는 새조차 지나칠 생각을 버려야 한다
는 죽음의 험협(險峽).
쏴아아아......
억수같은 장대비가 서릉협을 온통 희뿌연 우막(雨幕)으로 뒤덮고 있었다.
우기(雨期)도 아닌데 연 사흘째 계속되는 이 폭우는 멈출 기미는
커녕 갈수록 기승을 더해갔다.
사위는 먹물을 풀어놓은 듯 어둡고 서릉협의 물결은 폭우와 어울
려 미친 듯이 광란한다.
콰르르릉― 쿠콰콰콰―
뇌성같은 굉음을 울리며 무섭게 소용돌이치는 급류(急流)와 폭발
하듯 퉁겨 오르는 엄청난 물보라!
그 모든 자연의 조화는 섬뜩하기보다는 차라리 장엄했다.
번쩍!
돌연 몸서리쳐지도록 시퍼런 뇌광(雷光) 한 줄기가 어둠을 찢었다.
꽈르르르... 콰콰쾅!
곧이어 대기를 찢어발기는 천둥소리에 온 산하가 뒤흔들렸다.
폭우는 광란하는 천둥과 번개를 타고 더욱 미친 듯이 쏟아져 내렸다.
헌데 저게 무엇일까?
백사(白蛇)같이 새하얀 섬광(閃光)이 작렬한 때마다 희끗희끗 드
러나는 그것은 글씨였다.
풍상에 씻겨 알아보기도 힘들지만 그것은 분명히 글씨였고 그 글
씨가 새겨진 곳은 마치 도끼로 내려친 듯 양쪽으로 쩍 갈라져 있
는 단애(斷涯)의 중턱 부근이었다.
<잠마(潛魔).>
글씨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무슨 뜻일까?
그리고 어떤 할 일 없는 위인이 저런 곳에 글씨를 새겨 놓았을까?
번― 쩍!
희다 못해 처절하도록 새파란 섬전 한 줄기가 서릉협으로 내리 꽂
혔다.
그 위치는 공교롭게도 글씨가 새겨진 바로 그 단애였다.
콰콰쾅!
요란한 폭음이 터지면서 글씨가 새겨졌던 석벽이 시퍼런 불꽃에
휩싸여 산산조각 박살났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조화인가?
부서져 나간 석벽 속에서 또 한 줄기 섬광이 하늘로 번쩍 치솟는
것이 아닌가!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번개는 있어도 땅에서 하늘로 솟구치는
번개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번개는 분명히 땅에서 하늘로 솟구쳐오르고
있었으며 놀랍게도 백여 장 높이에 이르러선 우뚝 멈추는 불가사
의한 현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곧이어 그 정체도 드러났다.
놀랍게도 그것은 사람이었다.
머리는 제멋대로 풀어헤쳐져 있어서 용모는 확인할 수 없으나 그
것은 분명히 사람이었다.
쪼개진 절벽 속에서 사람이 솟구쳐 나오다니.... 실로 괴사(怪事)
중의 괴사가 아닐 수 없었다.
허공을 평지처럼 밟고 우뚝 선 괴인의 입에서 돌연 천둥을 방불케
하는 쩌렁쩌렁한 광소가 터져 나왔다.
"크하하핫...... 드디어 터득했다! 마교최대(魔敎最大)의 비예(秘
藝), 천섬마형뢰(天閃魔形雷)를...... 크하하핫......."
한바탕 떠들썩하게 웃어제낀 괴인은 광란하는 암천(暗天)을 향해
미친 듯이 부르짖기 시작했다.
"아버님! 당신은 잠마혈문에서 유일하게 살아 남은 나를 이곳에
가두어 내 생명을 보존시켰소!"
이게 무슨 말인가?
잠마혈문이라니......
"천섬(天閃)의 뜻을 알기 전까지 이곳을 나오지 말라 하신 당신의
뜻을 나는 충실히 지켰소!"
하늘을 무너뜨릴 듯한 굉렬한 외침에 짓눌리기라도 한 듯 그 토록
광란하던 천둥과 번개가 멎고 폭우마저 그 기세를 누그러뜨렸다.
"이 아들...... 백이십 년 전 당신이 나를 이곳에 남겨두고 떠날
때 흘린 그 뜨거운 피눈물의 의미를 똑똑히 기억합니다!"
백이십 년 세월을 운운한다는 건 이 괴인의 나이가 이미 백이십
살을 훨씬 넘었다는 얘기다.
독백은 피냄새가 물씬 풍기며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잠마혈문은 다시 세워집니다! 그런 다음 단천양의 묘를 파헤쳐
그 시신을 당신 앞에 무릎 꿇리고 구천십지만마전을 지상에서 영
원히 없애 버릴 것입니다!"
엄청난 말이 거침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구천십지만마전을 지상에서 영원히 없애 버린다니!
누군가 옆에서 이 말을 들었다면 틀림없이 미친놈이라고 손가락질
했으리라.
"와하하핫핫......."
또 한 번의 광소(狂笑)를 끝으로 괴인의 신형은 섬전보다 빠른 속
도로 서릉협을 향해 내리 꽂혔다.
그리고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아무데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콰르르릉!
쏴아아아....
서릉협은 그저 미친 듯이 광란하고 폭우는 원래의 힘을 되찾고 있었다.
소림(少林)의 혜인(慧人).
전진도문(全眞道門)의 삼 인(三人).
대막(大漠)의 괴인.
잠마혈문(潛魔血門)의 마인(魔人).
대폭풍의 불씨를 안고 일제히 준동한 이들 네 명이 훗날 어떤 모
습으로 다시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들이 노리는 목표는 한결같이 구천십지만
마전이라는 사실이다.
위대한 마도의 불멸혼을 추구해 온 구천십지만마전의 절대 권위를
넘보는 네 명의 이단자가 탄생했다는 사실이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가운데 천하의 네 군데에서 거의 비슷한
시각에 발생한 일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