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244화 (244/250)

<목을 베다. (10)>

김영준 총장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

“……너였나?”

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영준 총장의 머릿속에 그동안 있었던 일이 빠르게 스쳐 가고 있었다. 김윤환부터 엄선주, 그리고 지금껏 일어났던 그 모든 사건, 그곳엔 언제나 서진이 있었다.

“미치겠네.”

그때 장지혁 검사가 김영준 총장을 스쳐 서진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김영준 총장은 장지혁 검사를 잡지 않았다. 서진이 데리고 온 깡패들의 숫자가 훨씬 많다. 여기서 발버둥 치는 것은 웃긴 일이다. 그래서 김영준 총장은 그저 끌끌끌 웃음을 토해 내며 웃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서진 앞에 선 장지혁 검사가 씁쓸하게 웃으며 들고 있던 봉투를 건넸다.

“고생하셨어요.”

장지혁 검사가 서진의 어깨를 툭툭 친 후 장석민을 향해 걸어갔고 서진은 봉투를 열어 확인했다. 1억을 받은 계좌의 사본이다.

서진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예상했던 것이 실제로 드러났을 때의 기분은 참 더러웠다. 검찰총장이라는 사람이, 아니 인간으로 태어난 자가 어찌 돈 때문에 부모를 죽일 수 있을까. 서진의 시선이 천천히 김영준 총장을 향했다.

“김영준 씨, 장지혁 검사를 살해하려던 혐의로 긴급체포 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서진의 목소리가 이어질 때, 김영준 총장이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서진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이해할 거라 생각했어.”

뜬금없는 말에 서진의 눈이 찌푸려질 때였다. 김영준 총장의 목소리가 담담하게 이어졌다.

“성공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 부모를 죽이고 형제를 죽이고, 그게 뭐가 나쁘지?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이고 위로 오르려면 그만큼의 원성을 어깨에 짊어져야 하는 법이잖아?”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시죠.”

“쓸데없다?”

김영준 총장이 다시 한번 끌끌 웃었다. 그리고 다 타들어 간 담배꽁초를 바닥에 툭 버리며 말을 이었다.

“서진아…… 넌 동남군에서 시작해서 여기까지 올라왔지? 내 도움이 있었다고 했지만, 쉽지 않았을 길이야. 그런데 난 맨손으로 벼랑 끝을 기어올랐어. 어떤 도움도 없이 모두 내 힘이었지. 그리고 지금도 오를 자신이 있어. 한 번 삐끗한 정도로 떨어지지 않아.”

“……!”

“자, 시작해 보자. 내가 지혁이를 죽이려 했다고? 지혁아, 대답해 봐. 내가 널 죽이려 했나? 그런 말을 단 한마디라도 내뱉었나? 아니야. 난 기회를 주겠다고 말한 게 전부야.”

장지혁 검사는 대답하지 못한 채 입을 꾹 다물었다. 김영준 총장의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영준 총장의 표정은 느긋했다. 그 어떤 초조함도 보이지 않았다. 놈의 목소리가 재수 없을 정도로 뻔뻔하게 이어졌다.

“난 지혁이의 차량이 도난 신고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저놈을 찾으러 왔지.”

“……!”

“여기 나와 함께 온 사람들? 이 주변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야. 나랑 잘 알고 지내는 사장이 저 사람들을 불러 주더라고. 근방의 지리를 잘 알고 있으니까, 도움을 받으라 하면서.”

김영준 총장이 서진을 향해 한 발 다가서며 낮은 목소리를 이었다.

“내 죄가 어디에 있지? 공소시효 지난 것으로 애쓰지 말고. 지금 나를 잡을 수 있는 걸 말해 봐.”

서진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김영준 총장이 입술을 찢어 웃으며 계속 말했다.

“지금은 네가 불리한 상황이야. 넌 깡패들을 끌고 이곳에 나타났지. 서울에 있어야 할 검사가 깡패와 손을 잡고 여기까지 올 이유가 뭐 있을까? 넌 나를 죽이려 한 거야. 사람들이 깡패들의 말을 믿어 줄까? 아니면, 깡패들과 손을 잡은 장지혁과 네 말을 믿을까? 머리가 있으면 알겠지. 사람들은 검찰총장인 내 말을 믿을 거야.”

“끝까지…….”

“네가 깡패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통장 몇 개만 뒤져봐도 바로 나올 증거야. 대포통장을 썼다면, 그 죄가 더 커지겠지.”

김영준 총장이 서진의 옆에 섰다. 그리고 서진을 하찮게 바라보며 계속 말했다.

“넌 샴페인을 일찍 터뜨렸어. 조금 더 숨어 있어야 했어. 모습을 드러낸 이상…… 그 뒷감당도 생각해야 했지. 하지만 넌 조급했고 이 게임은 네가 졌어.”

김영준 총장이 우산을 기울였다. 그러자 서진에게 쏟아지던 빗줄기가 우산을 타고 흘렀다. 김영준 총장이 몸을 틀어 서진의 등을 부드럽게 훑으며 입을 열었다.

“사무실에 있겠다. 그러니까, 품에 넣은 것이나 가지고 와. 그리고 계속 내가 씌워 주는 우산이나 쓰고 있어. 네 미래는 내가 닦아 줄 테니, 얌전히 따라가도록 해. 보장된 길을 걷는 것도 나쁜 인생은 아니야.”

김영준 총장이 서진의 손에 우산을 쥐여 준 후 저벅저벅 걸어갔다. 그 앞을 장지혁 검사가 가로막았다.

“비켜.”

김영준 총장의 목소리가 살벌하게 들렸지만 장지혁 검사는 몸을 틀지 않았다. 억울한 눈빛으로 김영준 총장을 쏘아볼 뿐이다. 김영준 총장이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난 널 여러 번 봐줬어. 하지만 이제 한계야. 비켜.”

“…….”

“김서진과 함께 깡패와 손잡은 검사로 남고 싶나? 검사의 치욕으로 기록되어 회자되고 싶은 것인가? 그게 아니면 비켜!”

김영준 총장의 목소리가 벼락처럼 울릴 때였다. 서진의 목소리가 김영준 총장의 귀에 꽂혔다.

“김영준 씨, 당신을 김서진 검사에 대한 청부 살인미수 혐의로 긴급체포 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고 지금부터 하는 모든 말은 당신에게 불리한 증거가 될 수 있으며…….”

김영준 총장의 눈동자가 천천히 틀어졌다. 그리고 서진을 노려보며 물었다.

“뭐라?”

“긴급체포 한다고.”

“……증거 있어?”

갑작스러운 살인 청부, 김영준 총장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서진이 김영준 총장이 준 우산을 땅에 툭 던지며 그를 향해 저벅저벅 다가섰다. 그리고 그 앞에 서서 음산하게 대답했다.

“있으니까, 체포하겠지.”

“……!”

김영준 총장은 부릅뜬 눈으로 서진의 표정을 살폈다. 눈동자를 기울이며 혹시 자신이 놓친 게 있는지 떠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자신은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순간, 김영준 총장의 머릿속에 오늘 아침 받았던 전화가 떠올랐다. 홍천의 요양원에서 왔던 연락.

-바, 박정길이 사라졌습니다.

서진이 김영준 총장의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박정길은 죄가 많은 만큼 겁도 많은 사람이야. 그래서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었어. 당신이 나를 죽이려 했던 것도 가지고 있었지.”

김영준 총장의 얼굴이 처음으로 굳어졌다. 얼굴색이 시시각각 바뀌었다. 허옇게 질렸던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며 느긋했던 표정이 사라지고 초조하게 바뀌었다.

서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48시간 안에 구속영장 받을 자신 있으니까, 그만 갑시다.”

“……!”

“김영준 씨, 게임은 끝이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이야.”

순간, 김영준 총장의 흔들리던 눈에 살기가 꽉 차올랐다. 서진의 얼굴을 노려보며 입술을 꽉 씹었다.

“날 잡으면, 너도 같이 죽을 거다. 검사로서 살 수 없을 거야.”

“상관없어. 검찰총장까지 잡았는데, 검사로 더 할 게 있나?”

“재정건설은 무너질 거야. 네 아버지가 지금껏 이뤄 놓은 모든 게 사라지는 거야.”

음산한 목소리에 서진이 고개를 저었다.

“안 사라져.”

“재정건설을 무너뜨릴 준비는 이미 끝났어. 내 신호에…….”

서진이 휴대폰 화면을 김영준 총장에게 불쑥 내보였다.

“……!”

화면에 조우재 부장검사의 연락처가 보인다. 김영준 총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그 눈이 시뻘겋게 변하는 것은 순간이었다. 불길한 무엇인가를 느낀 거다.

서진이 그 표정을 바라보며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조우재 부장검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서진아.

“재정건설 작업은 잘하고 계시죠?”

-사람들 눈물 쏙 빼 놓을 시나리오 하나 준비 중이야. 이거면, 너희 아버지는 완벽한 피해자가 되는 거지. 그런데 이래도 되나 몰라?

김영준 총장은 휴대폰과 서진의 얼굴을 다급히 번갈아 봤다. 지금 상황이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정확한 것은 있다.

‘조우재가?’

조우재 부장검사는 지금 김영준 총장의 지시가 아니라 서진의 뜻을 따르고 있다는 것.

잠시 멍하니 있던 김영준 총장이 상황 파악을 끝냈다. 그리고 그 입에서 욕이 내뱉어졌다.

“씨이발, 조우재!”

김영준 총장의 입에서 조우재 부장검사의 이름이 씹듯이 내뱉어졌다. 동시에 떠들어 대던 조우재 부장검사의 목소리가 증발된 것처럼 사라졌다. 휴대폰 너머에서는 당황한 숨소리만 들릴 뿐이다.

서진이 잔인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연락드릴게요.”

서진이 통화 종료 버튼을 꾹 눌렀다. 그러자 김영준 총장이 핏발 선 눈으로 서진을 노려보며 멱살을 콱 잡았다.

“너 이 새끼…….”

“지금…… 그 얼굴 마음에 드네.”

정말 보고 싶었던 모습이다. 벼랑 끝에 몰려 발악하는 그 얼굴,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 괴물의 마지막은 비참해야 한다.

김영준 총장의 입술이 뒤틀어졌다.

“지금, 이겼다고 생각하지? 난 안 죽어. 권력은 법 위에 있는 거야.”

“기대해. 땅 밑에 지하가 있다는 걸 가르쳐 줄게. 그리고 그 밑에는 지옥도 있어.”

“새끼야!”

김영준 총장이 서진을 때릴 것처럼 주먹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그 주먹은 휘둘리지 못했다. 두 사람의 옆으로 다가온 장석민이 그 손을 잡았기 때문이다.

김영준 총장이 장석민을 노려봤다. 그리고 자신을 에워싼 장석민의 부하들을 확인했다.

“하!”

김영준 총장이 꽉 쥔 주먹에서 힘을 뺐다. 그러자 서진이 품에서 수갑을 꺼내 흔들며 입을 열었다.

“끝났어. 그러니까, 얌전히 갔으면 좋겠는데?”

서진과 김영준 총장의 얼굴로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 * *

-김영준 총장의 재정건설 횡령 의혹을 수사하던 특검의 장지혁 검사가 오늘 오후 3시, 청부 살인미수 혐의를 들어 김영준 총장을 긴급체포 했다고 밝혔습니다. 장지혁 검사는 반드시 구속을 이뤄 내겠다며…….

장지혁 검사의 차량 문이 거칠게 열렸다. 그 앞으로 사상초유의 사태를 기다리던 기자들이 벌 떼처럼 몰려들었다. 그들이 장지혁 검사의 손에 끌려 나오는 김영준 총장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댔다.

“총장님! 살인 청부를 지시했다는 게 사실입니까?”

“오늘도 장지혁 검사를 살해하려고 했다는데요!”

“총장님!”

입을 닫고 앞으로 향하던 김영준 총장이 시선을 틀어 기자들을 향했다. 그리고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모두 거짓입니다. 이 모든 것은 집권 여당의 정치적 음모이며 정치 검사들의 행패입니다. 저는 하늘 아래 떳떳하며, 검사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습니다.”

김영준 총장은 끝까지 뻔뻔했다. 마지막까지 백기호 의원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백기호 의원 역시 몰락하고 있지만, 그가 정권을 잡으면 모든 상황이 바뀐다. 수사는 흐지부지될 테고 김영준 총장은 지금 정권에 대항했던 순교자처럼 세상에 인식될 수 있다. 김영준 총장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진은 먼 곳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서진은 김영준 총장의 생각을 모두 알 것 같았다. 궁지에 몰린 쥐가 취할 행동은 뻔하다.

‘발악해라. 그럴수록 더 깊은 늪으로 빠질 거다.’

서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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