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1)>
* * *
특검의 사무실은 바빴다. 카트에 산더미처럼 놓인 서류가 계속해서 들어오는 중이었다.
“이것도 재정건설 횡령 의혹인가요?”
“네.”
“그럼 저쪽으로.”
조우재 부장검사가 준비한 서류였다. 서진의 아버지 김준만의 도움으로 얻은 증거물은 창고로 사용하는 공간이 비좁을 정도로 많았다.
“이건?”
“장지혁 검사를 살해하려던 의혹이에요. 연관되었던 경찰 모두 찾아냈습니다.”
“그건 저쪽이고요. 바로 구속 준비하세요.”
특별검사를 맡은 이두진 변호사의 지시에 직원은 카트를 드르륵 끌며 이동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이두진 변호사가 사무실을 가득 채운 서류를 보며 손을 툭툭 털었다.
“아시겠지만…… 오늘 밤 안으로 모두 읽어야 합니다.”
“오, 오늘 밤 안으로요?”
“네.”
곧 대선이다. 시간을 끌면 다 된 밥에 엿을 뿌리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사건이 흐지부지되고 이들은 어떤 것도 해결하지 못한 무능한 특검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조금이라도 빨리 일을 처리해야 한다.
“야식은 제가 쏘겠습니다.”
이두진 변호사의 말에 특검의 일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은 힘들지만 지지부진하던 수사가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특검의 일원들이 박스를 꺼내 서류를 펼칠 때, 이두진 변호사는 복도로 이동하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휴대폰에 적힌 전화번호는 서진이다.
“김영준은 발악하고 있어요. 어서…… 증거를 찾아야 해요.”
김영준은 모든 것을 부인하고 있다. 지금 일어난 모든 일을 보며 정치권의 음모라고 부르짖는 중이다. 그 덕에 음모론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백기호 의원을 지지하던 자들은 정부 여당을 욕하고 있다.
-또 시작이네.
-뭘 감추려는 거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한테 뭐라 하는 꼴.
-연예인 사건은 없나요?
-정권 유지하려고 개소리를 계속 이어 가네. 더럽다. 퉤퉤퉤.
그래서 김영준 총장을 구속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백기호 의원을 끝장내는 것.
백기호 의원은 손가락 하나로 벼랑 끝에 매달린 것과 같은 상황이다. 하지만 그놈 역시 뻔뻔하게 이 상황을 부인하고 있다.
“신마그룹에서 돈을 받았다고요? 그런 일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마 제 가족이 모르고 받았을 겁니다!”
신마그룹의 장남 신명진 부회장이 구속된 상황이었지만 백기호 의원은 버티고 있었다.
“여검사 성추행? 그건 그 단편을 보고 판단하지 마세요. 전 판사 출신입니다. 검사를 성추행한다는 게 어떤 일인지 잘 아는데, 그렇게 행동했겠습니까? 그 검사가 먼저 모욕적인 말을 내뱉었고 저도 모르게 화가 났을 뿐입니다.”
이두진 변호사의 말을 들은 서진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백기호에 대한 것은 이은하 기자가 계속해서 터뜨릴 겁니다. 그리고…… 여당에서도 백기호 의원을 잡기 위해 준비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여당은 축제 분위기였다. 스타 정치인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된 대선, 백기호라는 야당의 거물이 50% 이상의 지지율을 먹어 치우던 시간, 여당은 패배 의식에 짓눌리고 있었다.
그런데 백기호 의원이 흔들렸다. 계속 터지는 비리로 50%가 넘는 지지율이 순식간에 반토막이 났다. 어느새 여당의 후보와 3% 차의 육박전을 벌이는 중이다.
서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지지율이 역전되었을 때, 여당은 백기호를 구속해야 한다고 움직일 겁니다.
여당은 아직 몸을 사리고 있다. 지금은 시민 단체를 앞세워 백기호 의원의 후보 사퇴를 시위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지지율이 역전되는 순간, 그들은 전면에 나설 거다. 너도나도 백기호 의원을 규탄하며 국민의 머릿속에 올바른 정치인인 척 각인되기를 바랄 거다.
“그 증거를 가진 사람은 어떻게 됐죠?”
박정길이 도주했다. 물론 도주 과정은 서진의 지시였다. 그 새벽, 장석민의 부하가 병원으로 향했고 그를 빼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놈은 여전히 김영준 총장을 두려워했다. 서진의 손아귀에 있으면 언젠가 김영준 총장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놈은 차량이 휴게소에서 멈췄을 때, 도주했다.
-곧 찾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진행하세요.
서진과의 통화가 종료됐다. 이두진 변호사가 한숨을 내뱉으며 몸을 틀었다. 그리고 그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서울의 밤이 보인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들끓게 하는 김영준 총장의 게이트 소식이 계속 들려오고 있다.
“이 모든 게…….”
서진 한 사람이 이뤄 낸 일이다. 백기호 의원이나 김영준 총장 같은 거대한 괴물, 그 누구도 그 사람들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서진은 그들을 몰아세웠다. 심지어 신마그룹의 장남 신명진 부회장까지 한 구렁텅이에 집어넣었다.
“대단한 사람이야.”
* * *
“박정길이 아직 안 잡혔다고?”
“네.”
김영준 총장은 변호사 접견실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물며 계속 질문을 던졌다.
“내가 가진 의혹이 몇 가지인가?”
“자질구레한 것을 제외하면…….”
변호사가 마른 입술을 핥으며 수첩을 펼쳤다.
김영준 총장이 가진 의혹은…….
-정치권을 향한 뇌물 수수와 취득.
-장지혁 검사와 서진에 대한 살인미수.
-재정건설의 횡령.
변호사의 말을 들은 김영준 총장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김영준 총장은 비벼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뇌물 수수와 취득은 혐의만 있다. 대포통장과 해외 계좌를 통해 돈을 거래했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없다.
장지혁 검사에 대한 살인미수 역시 사실 무근이라 주장할 수 있는 일. 그곳에 함께 있던 외국인들의 신분은 그저 외국인 노동자다. 서진에 대한 것은 박정길이 실종된 이상 말할 것도 없다.
재정건설의 횡령 의혹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적으로 돈이 오간 증거는 없다. 그쪽에서 증거를 조작했다고 변명할 수 있다.
“판사는 누구지?”
변호사가 다시 수첩을 촤르륵 펼쳤다. 그리고 안경을 고쳐 쓰며 입을 열었다.
“이한영 부장판사라고 합니다.”
“아…….”
김영준 총장이 그 판사를 잘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놈…… 정권에 휘둘리지 않는 강직한 판사로 유명하지. 하지만 약점이 있어. 증거 우선주의야. 명확한 팩트가 밝혀지지 않으면 죄를 묻지 않아.”
김영준 총장이 변호사가 가져온 수첩을 손가락으로 툭 찍으며 말을 이었다.
“모든 죄에 물을 타. 진실이 흐려지게 만들어. 판사의 눈을 가리고 국민의 감정을 흔들어. 그럼 넌 내가 약속한 돈을 받을 수 있을 거야.”
* * *
“횡령은 빠져나가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그걸로 김영준 총장을 완벽히 무너뜨리기는 어렵다. 일반 사람들이 봤을 때 재정건설의 문제는 형제의 싸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음모론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정부가 대선을 이기기 위해 그 싸움을 이용했다고 생각하죠.”
그리고 김영준 총장은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고 있다.
“김영준이 정치권을 입에 담고 있는 이상, 재정건설이 아니라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게 나와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국민은 믿지 않을 거예요.”
곱창집이었다. 서진은 장지혁 검사와 만나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두 사람의 표정은 아직 밝지 않다.
김영준 총장은 괴물이다. 어떤 상황이라도 이용해서 살아나려 할 거다. 그 목에 완벽히 칼을 쑤셔 넣으려면 확실한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장지혁 검사가 술잔을 입에 대며 말했다.
“내일 총장실을 쑤셔 볼 거야. 자택에서는 아무것도 안 나왔지만…… 거기선 뭔가 나오겠지.”
“…….”
“그리고 김영준과 한 번이라도 통화한 모든 사람을 타깃으로 수사하는 중이야. 몇몇은 이미 참고인으로 불러들였고.”
조용히 장지혁 검사의 목소리를 듣던 서진이 가방을 열어 서류 한 뭉치를 건넸다.
“이거…… 그때, 엄시영 휴대폰에서 나온 자료예요. 여기 있는 전화번호도 모두 살피세요.”
“오케이.”
장지혁 검사가 서류를 챙긴 후 빈 잔에 술을 따랐다. 그리고 힐끗 서진을 보며 물었다.
“집에는 들어가 봤어?”
김영준 총장을 구속시킨 후 서진은 아직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동생 진영을 통해 옷 몇 가지를 받은 후 사무실과 호텔에서 생활하는 중이다.
“……아직, 아버지를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네요. 어떤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고요.”
서진의 품에는 김영준 총장이 부모를 죽였다는 증거자료가 있다. 그걸 어떻게 김준만에게 말해야 할지 고민이다. 누구보다 가족을 생각하는 김준만이 받을 충격은 상상 이상으로 클 게 분명하다.
“넌 그게 문제야. 앞으로 일어날 일 걱정하지 말고 일단 저질러. 얼굴부터 뵈도록 해. 부모님이 얼마나 걱정하시겠냐? 동생이 자식을 죽이려 했다는 소식이 세상에 깔렸잖아? 일단, 들어가서 너 멀쩡한 것부터 보여 드려.”
“네.”
서진이 쓰게 웃으며 술잔을 손에 들었다. 찰랑거리는 술에 서진의 얼굴이 비쳤다. 서준경의 얼굴 그리고 서진의 얼굴이 겹쳐졌다가 희미해지는 것 같다.
서진이 말없이 술잔을 꺾을 때, 장지혁 검사가 곱창을 젓가락으로 집으며 물었다.
“그런데 박정길은? 아직 소식 없어?”
장석민의 부하가 전국을 뒤지는 중이다. 연계되어 있던 깡패를 통해 각종 유흥업소와 달방을 확인하고 있지만, 아직 그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
“재판 전에는 끌고 올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 * *
-사상 초유의 재판이라 불리는 김영준 검찰 총장의 재판이 지상파를 통해 생중계됩니다. 정치적인 문제가 있다는 국민의 목소리에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법정 앞은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기자 그리고 각 관계자를 비롯한 재판을 보기 위해 온 사람들. 한쪽에서는 시위가 한창이다.
-김영준 총장을 석방하라!
-석방하라! 석방하라!
그들에 김영준 총장은 정치권의 칼날에 무릎을 꿇은 순교자와 같았다. 김영준이라는 한 사람 때문에 대한민국이 분열되는 중이다.
그리고 김영준 총장이 버스에서 내렸다. “와!” 하는 소리와 함께 기자들이 그를 향해 몰렸다.
“김영준! 김영준! 김영준!”
김영준 총장의 이름을 연호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김영준 총장은 법정으로 향하며 걸음을 멈춰 그들을 향해 시선을 틀었다. 그리고 자신만만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진실은!”
그 한마디에 세상이 조용해졌다. 김영준 총장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가려져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와! 김영준! 김영준!”
김영준 총장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허리를 펴고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 * *
법정 안은 적막했다.
스산한 바람이 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정치적 재판.
이두진 특별검사와 그 옆에 앉은 장지혁 검사는 귓속말을 나누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피고인석에 앉은 김영준 총장과 변호사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그 두 사람을 살폈다.
장지혁 검사와 눈이 마주친 김영준 총장이 입을 열었다.
“내가 검사들에게 항상 하던 이야기가 있어. 법 앞에 부끄럽지 말라. 장지혁 검사, 넌 지금 부끄럽지 않나?”
장지혁 검사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부끄럽네요. 개같이 공부해서 검사가 되었는데, 당신 같은 사람이 총장이었다는 것이 정말 쪽팔려요.”
재판이 시작되기 전의 신경전이다.
하지만 여유로운 것은 김영준 총장이다. 그는 횡령 외의 죄만 넘어가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며 끌끌 웃고 있었다.
그때였다. 법정 경위의 목소리가 법정을 울렸다.
“재판이 시작됩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쾅! 문이 열리며 재판부가 안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