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243화 (243/250)

<목을 베다. (9)>

-점심 먹으러 가고 있습니다.

장지혁 검사의 태연한 목소리에 김영준 총장의 눈이 벌게졌다. 언제든 찢어 죽일 수 있을 것 같던 평검사에게 농락당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지혁 검사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럼…….

장지혁 검사는 김영준 총장의 목소리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대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휴대폰 너머는 적막으로 채워졌다.

김영준 총장의 몸이 분노로 바들바들 흔들렸다. 그리고 부서질 것처럼 꽉 다문 입에서 신음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원주에…… 뭘 감추고 있는 거야.”

원주, 부모님이 돌아가신 곳이며 서진이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지기 전 가려 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 장지혁 검사가 그곳으로 향하려 한다.

“도대체…… 뭐가 있는 거야!”

김영준 총장은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그저 자신의 목을 벨 수 있는 칼이 있다고 예상될 뿐이다.

지금껏, 그게 무엇인지 알기 위해 애를 썼지만 박정길은 협박과 회유 속에서도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

‘하…….’

김영준 총장이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 김영준 총장에게는 폭풍이 몰아치는 중이다. 그런데 과거의 사건까지 끄집어진다면 걷잡을 수 없을 거다. 세상의 정점에 오르고자 했던 꿈을 이루지 못할 수 있다.

김영준 총장이 감았던 눈을 떴다. 여기까지다. 화를 내고 있을 시간이 없다. 지금은 움직여야 한다.

김영준 총장이 몸을 틀고 사무실의 문을 향해 걸었다.

‘차라리 잘됐어.’

김영준 총장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장지혁 검사를 쫓으면 자신의 목을 노리고 있던 그것이 무엇인지 실체를 알 수 있다. 그럼 자신을 향한 칼을 하나 치울 수 있게 되는 거다.

‘그래, 이런 위기는 몇 번이고 있었어.’

맨손으로 이곳까지 기어올랐다. 그동안 숱하게 많은 정적을 치웠고 협박했으며 권력과 돈으로 짓밟았다. 그 과정에서 이런 위기는 언제든 있었다. 그리고 승자는 언제나 김영준 총장이었다.

‘이번에도 다를 것은 없어.’

김영준 총장이 사무실의 문을 ‘쾅!’ 소리가 날 정도로 거칠게 열어젖힌 후 그곳을 빠져나갔다.

* * *

장지혁 검사의 차가 갓길에 서 있었다. 앞에는 경찰이 보인다.

“신고가 들어와서요.”

경찰의 말에 장지혁 검사가 머리를 헝클며 입을 열었다.

“죄송한데……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요. 벌써 세 번이나 잡혔거든요?”

“네, 알았으니까 신분증 보여 주세요.”

장지혁 검사의 차가 도난 차량으로 신고가 접수되었다. 가는 길마다 경찰이 나타나 이동을 방해하고 있었다.

딱 봐도 누가 수를 썼는지 알 수 있었다. 김영준 총장과 연결된 경찰의 고위직이 움직인 거다. 놈들이 장지혁 검사를 묶어 두며 이동 경로를 확인하고 있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듯이 김영준은 대한민국 검찰의 수장이다. 장지혁 검사가 한숨을 내뱉으며 신분증을 내밀었다.

“됐죠?”

“아, 죄송합니다.”

경찰의 사과를 받으며 장지혁 검사는 다시 액셀을 밟았다. 그리고 뚫린 도로를 보며 중얼거렸다.

“치졸하네.”

* * *

그 시각, 김영준 총장은 직접 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원주로 가고 있다고 합니다.

“고마워요.”

김영준 총장은 경찰을 통해 장지혁 검사의 이동 경로를 확인하며 그 뒤를 쫓는 중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몇 가지를 확신했다.

‘역시, 엄 회장이었어.’

경찰은 장지혁 검사뿐만 아니라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는 모든 차량을 단속했다. 그런데 그중에는 서울에서 깡패 생활을 했던 놈들이 다수 있었다.

그들은 바로 장석민의 부하들이었다. 그들은 경찰에게 잡혔다. 지은 죄가 없지만 지었던 죄가 있기 때문에 공권력에 대항할 수 없었다.

‘장지혁은 깡패를 움직일 깜량이 안 돼. 엄 회장이 있던 거야.’

김영준 총장은 깡패의 행동을 제한한 다음 특검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특검은 모두 서울에 머물러 있다.

‘놈은 혼자야.’

김영준 총장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걸렸다. 사람으로 생긴 일을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그 사람을 치우는 거다. 즉, 죽이면 된다. 혼자가 된 놈을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장지혁 검사가 향하는 곳은 강원도다.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사람을 묻어 버리기에 좋은 장소가 많다. 산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평생을 그곳에 묻힌 채 있어야 할 거다.

김영준 총장이 끌끌끌 음산하게 웃으며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원주에서 가까운 놈들이 있나?”

비가 한 방울씩 쏟아지며 차량의 창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 * *

잠시 후, 장지혁 검사는 서진과 통화하며 차를 주차하고 있었다.

“와, 이런 곳에 집이 있네?”

-조금 늦으셨네요?

“총장이 냄새 맡은 것 같더라. 경찰이 계속 단속하는데…….”

장지혁 검사가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시선을 천천히 틀었다. 차 한 대가 간신히 이동할 작은 길, 그 중턱에 있는 오래된 전원주택 앞이었다. 주변에 다른 집은 없다. 오직 그 집만 이질적인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장지혁 검사가 집 앞으로 다가갔다. 관리가 되지 않았는지 마당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다.

“폐가 체험하는 애들이 여기를 알았으면, 엄청 왔겠는데?”

그곳의 분위기는 그만큼 을씨년스러웠다.

“나 이런 곳 싫어하는 거 알면서…….”

장지혁 검사가 구시렁대며 풀을 헤친 후 앞으로 걸었다. ‘사유지 출입 금지’라는 간판이 보였지만 상관하지 않고 그 안에 들어섰다. 그리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문이 잠겨 있으면 부숴도 괜찮아요.

장지혁 검사가 마당을 지나 현관에 도착했다. 문고리를 잡고 당겼지만 역시 잠겨 있다. 창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게 수월할 거라 생각하며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장석민 있잖아? 그 친구들은 언제 오는 거야? 온다고 하더니…….”

-글쎄요. 금방 도착하겠죠.

“넌?”

-저도 거의 다 왔어요.

장지혁 검사가 돌멩이를 손에 쥐고 창문으로 이동했다. 힘껏 던졌더니, ‘쨍그랑’ 소리와 함께 창문이 깨졌다. 장지혁 검사가 깨진 창문으로 손을 넣고 문을 열었다.

창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간 장지혁 검사는 서진의 말을 따르며 2층으로 올라갔다.

-화장실 환풍기를 열어 보면 그 안에 있다고 했거든요?

화장실로 들어간 장지혁 검사가 환풍기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드라이버가 필요할 것 같은데. 잠깐만 전화 끊어 봐.”

장지혁 검사가 통화를 종료한 후 휴대폰을 품에 넣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벗어나 드라이버로 삼을 게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그때, 창밖에서 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장지혁 검사가 창가로 걸어가 밖을 살폈다. 승합 차량에서 낡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내리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장지혁 검사가 중얼거렸다.

“씨발…….”

* * *

서진은 한숨을 내뱉으며 액셀을 꾹 밟았다. 장지혁 검사와 동일한 시간에 도착하려 했지만, 준비해야 할 일이 많아 조금 늦어졌다.

‘장석민이 안 왔다고?’

장석민은 부하들과 함께 장지혁 검사를 가드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하지만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문제가 생겼다는 거다.

신호에 걸렸을 때, 서진은 차량의 글러브 박스를 열어 대포폰 하나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장석민의 연락처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이어진 후 장석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대답만 해. 전화 받을 수 있는 상황이야?”

-아…… 단속에 잡혔었어요. 쓸데없는 걸로 시비 걸면서, 잡아 두는데……. 그래도 지금 가고 있으니까, 금방 도착할 거예요.

서진의 가슴속에 불안한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젯밤, 요양원에서 봤던 사이코메트리가 떠올라서다. 아파트 옥상에서 던져지던 서진의 모습과 장지혁의 얼굴이 겹치고 있다.

김영준 총장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데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다.

장석민과 그 부하들이 늦는다면, 방금했던 불길한 상상이 사실이 될 수도 있다.

경찰에는 연락할 수 없다. 지금은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태다.

‘안 돼.’

서진은 신호를 무시한 채 액셀을 밟았다. 자동차가 굉음을 울렸다. 그리고 한 방울씩 내리던 비가 어느새 폭우로 변해 떨어져 내렸다. 서진의 차가 그 폭우를 뚫고 질주했다.

30분 정도 지났을 때, 서진은 그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장지혁 검사의 자동차와 낯선 승합차 그리고 김영준 총장의 승용차가 보인다. 서진은 그 집으로 달렸다. 길게 자란 풀을 헤치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두려울 정도의 적막이 그곳을 채우고 있다. 안으로 들어간 서진은 2층으로 향했다. 역시 아무도 없다. 널브러진 가구가 이곳에 있던 격투의 현장을 알리고 있을 뿐이다.

“어디…… 어디야……. 어디!”

서진은 다급한 표정으로 사이코메트리가 나타나기를 바라며 집 안의 이곳저곳을 만져 봤다. 하지만 사이코메트리는 나타나 주지 않았다.

서진은 다시 밖으로 나왔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산길에 발자국이 드러나 있었다.

‘제발!’

서진은 산길을 달렸다.

* * *

아찔한 비탈이 있는 곳이었다. 장지혁 검사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더 뒤로 갈 수 없다. 조금만 발을 내디디면 추락하고 만다. 그 끝은 반드시 사망일 거다.

장지혁 검사가 긴장된 숨을 내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틀어 앞을 바라봤다.

“하…….”

너저분한 옷을 입은 사내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으로 우산을 쓴 김영준 총장이 다가서며 손을 뻗고 있다.

“지혁아…… 어차피 공소시효도 지난 것, 네가 가지고 있어 봤자 쓸모없는 거야. 그건 나한테 망신 주는 것밖에 되지 않아.”

“망신? 부모를 죽인 게 망신이야? 너 정말 미쳤구나?”

김영준 총장이 고개를 저으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여전히 다정하다.

“미친 게 아니라, 욕심이 많은 거지. 그걸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야. 그런데 특검이 날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비리 조금 터졌다고 백기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외면할 것 같나? 난 계속해서 위로 올라갈 거야. 언제나처럼, 똑같이.”

김영준 총장이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장지혁 검사를 향해 한 발 더 다가섰다. 뻗은 손을 까딱까딱 움직이며 낮은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러니까, 가져와. 그거 들고 내 손을 잡아. 내가 널 키워 주마.”

“……!”

“지금의 넌 날 잡을 수 없어. 조금 더 커서 날 잡아.”

장지혁 검사의 짓눌린 표정을 보던 김영준 총장의 입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김영준 총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굽히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행동이 아니야. 잠시 물러서는 것이지. 난 널 인정하고 있어. 키워 준다는 약속 지킬 테니…….”

순간, 김영준 총장의 눈에 의문이 채워졌다. 장지혁 검사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그런데, 진짜 미친 것처럼 낄낄 웃고 있다. 이곳이 방이었다면, 배를 잡고 웃었을 것처럼 즐거워하는 중이다.

김영준 총장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장지혁 검사가 젖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입을 열었다.

“너 좆 됐어.”

“……!”

장지혁 검사가 손가락을 들어 김영준 총장의 뒤를 가리켰다. 김영준 총장의 시선이 장지혁 검사의 손가락을 향해 천천히 틀어졌다. 그리고 그 여유롭던 눈빛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기, 김서진?”

그곳에 서진이 있었다. 함께 온 덩치들이 그 옆을 채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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