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221화 (221/250)

<기억하고 있다 (7)>

그들이 손 실장과 검은 양복을 향해 다가갔다. 적막한 옥상에 저벅저벅 발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손 실장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장석민의 부하들을 향해 삿대질하며 외쳤다.

“죽여!”

동시에 손 실장의 패거리가 장석민의 부하들을 향해 달렸다.

이런저런 대화는 없다. 그저 주먹이 오가고 야구방망이가 휘둘린다. 둔탁한 소리와 비명이 이어졌다.

손 실장의 패거리는 필사적으로 대항했다. 하지만 숫자가 다르다. 그들이 아무리 세다 해도 놈들은 고작 십여 명.

장석민이 끌고 온 서른 명에 육박하는 덩치를 이기기는 어려웠다.

“끄아아악!”

“이 개새끼들!”

서진은 그 싸움의 현장을 스치며 손 실장을 향해 걸었다.

손 실장의 얼굴은 창백했다. 궁지에 몰렸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놈은 끝까지 저항했다.

“……뒈지고 싶지 않으면 오지 마.”

손 실장이 주춤주춤 물러서며 협박의 목소리를 내뱉었다. 잭나이프를 꺼내 흔들기까지 한다.

“죽여 버릴 거야!”

하지만 서진은 멈추지 않았다. 품에서 수갑을 꺼내 들며 느긋하게 말했다.

“너를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한다.”

“오지 마!”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으며 네가 하는 말은 너에게 불리할 수 있다.”

“오지 말라고!”

손 실장이 핏발 선 눈으로 서진을 노려보며 달려들었다. 쥐고 흔들던 잭나이프로 서진을 찌르려 했다.

하지만 턱, 뒤에 있던 최지범에게 어깨가 잡히며 놈의 몸짓이 멈칫거렸다.

손 실장이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최지범이 입 꼬리를 비틀며 입을 열었다.

“같이 가자, 교도소.”

“……뭐?”

최지범이 손 실장의 다리를 걸어 자빠뜨렸다.

쾅!

최지범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재빨리 손 실장의 팔을 꺾고 머리채를 잡아 제압했다. 그리고 서진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수갑 채우세요.”

“안 가! 내가 왜 가! 놔! 놓으라고!”

손 실장은 끝까지 발악했다. 바동거리며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그게 끝이다.

서진이 수갑을 빙글빙글 돌린 후 손 실장의 손목에 채웠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도 있다.”

“씨발! 아아아아악!”

손 실장이 비명을 질렀다.

서진은 손 실장의 목소리를 외면하며 반대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장석민의 부하와 손 실장 패거리의 싸움도 정리가 된 상태다.

싸움은 끝났고 스산한 바람만이 옥상에 불어오고 있었다.

서진이 손을 툭툭 털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최지범의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또 한 번 선택의 기회가 왔는데…….”

“말씀하십시오.”

“하나, 엄 회장의 죄를 까발리고 함께 감옥에 간다. 그럼 당신 자식들의 안전은 보장하지. 둘, 끝까지 엄 회장에게 충성을 다하며 지금의 일을 모른 척한다. 그럼 엄 회장은 당신은 물론이고 가족까지 죽일 거야.”

최지범은 잠시 눈을 감았다.

엄 회장을 향해 30년을 넘게 꼬리를 흔들었다.

그 결과는 토사구팽.

선택의 고민은 빨랐다.

“까발리고 함께 감옥에 가죠.”

서진이 최지범의 팔을 툭툭 두들겼다.

“좋은 결정 했어. 엄 회장의 모든 것은 지금부터 무너질 거야.”

그때였다.

“미친 새끼들! 크핫핫핫!”

손 실장이 웃기 시작했다.

“회장님을 무너뜨린다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이 나라의 역사가 그분에게 있어. 정치인이고 재벌이고 회장님께 손 벌린 사람들이야!”

“…….”

“최 실장님, 알잖아요? 돈은 귀신도 부려요. 회장님은 귀신을 부릴 정도로 많은 돈이 있고요. 이 일, 흐지부지될 겁니다. 최 실장님만 감옥에 가겠죠.”

“…….”

“그리고 어떻게 될 것 같아요? 회장님이 최 실장님의 가족을 가만히 놔둘 거라 생각해요? 본보기로 다 죽일 겁니다! 그래야 우리 같은 놈들이 겁을 먹고 더 열심히 할 테니까요!”

“……!”

“그러니까 가족 죽이기 싫으면, 입 닥치고 있어!”

서진이 슬쩍 웃으며 손 실장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어앉았다. 그리고 그의 뺨을 툭툭 치며 말했다.

“지켜봐. 네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엄 회장이 어떤 식으로 발가벗겨질지, 어떻게 무너질지. 돈이 없는 엄 회장의 본모습이 어떨지.”

“개소리!”

그 순간이었다.

서진의 시야가 흑백으로 물들었다.

***

사무실에 앉은 손 실장이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최지범을 죽일 준비를 하라고?”

손 실장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뭔가 고민하는 모습이다.

그때 부르르르, 휴대폰이 울렸다.

엄 회장의 비서에게 걸려 온 전화다.

-회장님께서 오시랍니다.

손 실장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최지범의 사망 날짜를 결정할 시간이 된 거다.

손 실장이 휴대폰을 내려 두며 웃었다.

“성공하면…… 돈방석, 실패하면 교도소.”

손 실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사무실을 나가던 그가 멈칫거렸다.

“……어쩌면 입막음으로 사망…….”

손 실장의 시선이 테이블로 향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손 실장이 다시 테이블로 다가섰다. 서랍을 열어 낡은 휴대폰을 꺼내 품에 넣었다.

잠시 후, 손 실장은 엄 회장의 서재 앞에 서 있었다.

비서가 손을 내민다.

손 실장은 휴대폰을 건넸다. 그리고 허리띠를 풀어 바구니에 넣었다.

그러자 비서가 손 실장의 몸에 쇠붙이와 전자 기기가 있는지 검색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문을 열었다.

“들어가세요.”

손 실장이 저벅저벅 안으로 들어갔다.

책상에 앉은 엄 회장이 보인다.

손 실장이 그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내일 하겠습니다.”

“이 사람아……. 최 실장은 내 밑에서 30년을 넘게 있었어. 가족이랑 작별 인사할 시간은 줘야 하지 않겠나? 모레로 잡아.”

“알겠습니다.”

손 실장이 허리를 굽힌 후 몸을 틀어 다시 서재의 문에 섰다.

문고리를 돌리는데 엄 회장이 입을 연다.

“아니야……. 뭐든 빠른 게 좋지. 식사 끝나면 바로 움직여.”

“네.”

손 실장은 그 말을 끝으로 서재를 벗어났다.

비서에게 휴대폰을 받은 뒤 복도를 걸었다.

그리고 주차장으로 내려간 손 실장이 운전석에 앉은 뒤 바지 밑단을 걷었다.

안에 낡은 휴대폰이 보인다. 화면에는 마이크 표시. 엄 회장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있던 거다.

손 실장이 빙긋이 미소 지었다.

“난 병신처럼 혼자 안 죽어.”

***

사이코메트리가 끝났다.

손 실장은 여전히 개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하! 일개 검사가 회장님을 잡을 수…….”

“고맙다.”

“……뭐?”

뜬금없는 감사 인사에 손 실장이 눈을 깜빡였다.

서진이 끌끌 웃으며 손 실장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손 실장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녹음된 휴대폰…… 차에 뒀나? 아니면, 사무실?”

“뭐…… 뭐라는 거야?”

서진은 놈의 표정을 관찰했다. 당황하고 있다. 얼굴이 경직되었고 이마에 주름이 지어졌다.

“혹시…… 가지고 다니나?”

“뭐라는 거냐고!”

“가지고 다니네.”

서진이 거침없이 손 실장의 품을 뒤졌다.

나온 것은 낡은 휴대폰.

손 실장의 눈이 부릅떠졌다. 입술이 허옇게 변했고 주절주절 떠들던 목소리가 사라졌다.

시끄러웠던 공간이 적막해지며 손 실장의 몸이 바들바들 떨려 왔다.

“……사, 살려 주세요.”

휴대폰에 녹음된 음성이 세상에 공개되면 손 실장은 물론이고 그 친인척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

“제, 제발…… 살려 주세요.”

서진이 손 실장의 입에 담배를 물리며 대답했다.

“쏘리.”

***

“뭐, 뭘 잡아 온 거야?”

그날 밤, 서진의 사무실.

퇴근하던 장지혁 검사가 되돌아왔다.

서진이 테이블에 앉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부터 모든 것을 비밀로 해야 해요. 검사님과 저만 알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뭘! 내 사무실에 가둬 둔 애들이 도대체 누군데?”

서진이 손 실장의 휴대폰을 건네며 말했다.

“엄 회장에게 살인 청부를 받은 자들. 휴대폰에는 엄동석의 살인 청부가 녹음되어 있어요.”

“……!”

“그리고 내일 오전 9시, 최지범은 기자회견을 열고 작은어머니의 죄를 말할 거예요.”

최지범은 지금 검찰의 취조실에 앉아 있다.

이곳은 가장 안전한 곳.

최지범은 날이 새면 곧장 검찰을 벗어나 호텔로 이동할 거다.

그리고 서진의 작은어머니 엄시영의 모든 것을 까발릴 예정이다.

엄시영의 살인.

지금껏 저질렀던 부정부패.

엄시영이 끝장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시작이야.’

김영준 총장이 본격적으로 움직일 거다.

밑바닥부터 정상까지 바득바득 기어오른 김영준 총장을 상대해야 한다.

지금은 점잔 빼고 앉아 있지만 김영준이라는 괴물의 본모습을 마주할 거다.

‘일단은 엄시영.’

서진의 눈에 힘이 들어갈 때, 장지혁 검사가 손 실장의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녹음 어플을 열자 엄 회장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아니야……. 뭐든 빠른 게 좋지. 식사 끝나면 바로 움직여.

명확한 살인 청부.

그런데 장지혁 검사가 입술을 씹으며 말했다.

“……법원에서 증거로 인정해 줄까?”

살인 청부를 받은 손 실장과 청부한 엄 회장, 당사자끼리의 대화다.

일반 사람이었다면 충분히 증거로 인정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상대는 엄 회장이다.

그 안에 ‘살인’ 등 직접적인 발언이 들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을 수 있다.

“증거로 인정되지 않겠죠. 하지만 최지범이 기자회견을 통해 세상에 공개할 거예요.”

“……!”

그럼 완벽한 압박이 될 수 있다.

판사를 향한 국민의 원성이 하늘까지 치솟을 거다.

서진이 책상에서 내려와 장지혁 검사의 옆을 스치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검사님은 압수 수색 준비해 주세요. 대상은 검찰총장 김영준의 자택.”

“야…….”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썩어 빠진 총장이라 하더라도 검찰의 수장.

그 집을 턴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하지만 서진은 가능한 것처럼 입을 말하고 있다.

장지혁 검사가 얼굴을 쓸어내리며 물었다.

“방법이 있다는 거야?”

서진이 장지혁 검사의 품에 쪽지 하나를 집어넣었다.

“공대출 전 의원의 전화번호입니다. 도움이 될 거예요.”

장지혁 검사가 껄껄 웃으며 짧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오! 이건 유배가 아니라 옷 벗을 일이네.”

***

다음 날.

소파에 앉아 있던 엄 회장의 표정이 좋지 않다.

“소식이 들려오지 않아.”

손 실장의 연락이 두절됐다.

손 실장만이 아니다. 최지범은 물론이고 함께 나갔던 모든 놈들이 사라진 것처럼 조용하다.

전화를 걸어도 신호만 이어질 뿐이다.

혹시나 해서 검찰에 연락했지만 아는 사람이 없다.

“설마…… 최지범에게 설득됐나?”

최지범 역시 많은 돈이 있다. 가진 전 재산을 주겠다며 거래했을 수도 있다.

“아니야…….”

엄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돈보다 엄 회장을 두려워한다.

배신의 대가를 잘 알고 있다.

엄 회장이 소파의 팔걸이에 손을 얹고 손가락을 툭툭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때 비서가 빠르게 다가왔다.

“회장님…….”

비서의 표정이 좋지 않다. 그녀는 빠르게 리모컨을 들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텔레비전의 화면이 켜졌고 엄 회장의 얼굴이 박살 났다.

“저, 저놈이…….”

***

그 시각, 호텔의 기자회견실.

최지범이 앉아 있었다.

기자들이 멍하다. 그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속삭였다.

“……공대출 의원이 기자회견 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저 사람은 누구야?”

기자들은 공대출 전 의원이 기자회견을 한다는 말을 듣고 이곳에 왔다.

그런데 앉아 있는 사람은 최지범.

서진은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모든 것을 숨긴 거다.

그리고 최지범이 입을 열었다.

“검찰총장 김영준, 그의 아내 엄시영이 저지른 30년 전의 살인 사건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기자들의 목소리가 증발된 것처럼 사라졌다. 모두 눈을 크게 뜨고 최지범을 바라보고 있다.

“어, 어쩌죠?”

“이거 보도 중지 걸린 것 아니에요?”

“미친놈아, 보도 중지고 뭐고 이건 먼저 올리는 놈이 임자야!”

‘속보’라는 타이틀을 달고 포털 사이트에 기사가 올라가는 순간, 최지범이 말을 이었다.

“저는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