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222화 (222/250)

<쑥대밭. (1)>

***

엄 회장의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엄 회장이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텔레비전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전화해.”

“……네?”

난데없이 전화하라는 말에 비서가 멈칫거리자 엄 회장이 주먹을 꽉 쥐며 말을 이었다.

“국과수 원장한테 전화하라고!”

“아, 네.”

비서가 몸을 돌린 후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주소록을 죽죽 넘기며 전화번호를 찾았다.

그사이에도 최지범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살인자는 엄시영이 맞습니다. 살인을 저지른 후 저를 불렀고 저는 그 시신을 유기했습니다. 칼을 그대로 꽂아 둔 이유는 달리 버릴 곳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엄시영의 부친이 소유한 땅이었고 CCTV와 휴대폰이 존재하지 않던 시대였기 때문에…….

엄 회장이 시선을 틀어 비서를 향해 벼락처럼 소리쳤다.

“어서!”

-칼에 엄시영의 혈흔이 발견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시간이 오래 지났기 때문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지만 유전자 검사를 한다면, 제 말이 사실인 것을 알게 될 겁니다.

“네!”

비서는 통화 버튼을 누른 후 휴대폰을 귀에 댔다.

-물론 공소시효가 지난 일입니다. 범인이 드러난다고 잡혀갈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전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가 검찰총장의 아내, 훗날에는 정치인의 아내가 되어 호사스러운 인생을 사는 것은 안 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서가 든 휴대폰에서 통화 연결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검찰은 지금 당장 엄시영의 자택을 압수 수색하기를 바랍니다. 차명으로 산 땅, 주택, 주식 그리고 그동안 동생과 함께 저질렀던 죄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비서가 뻣뻣하게 굳은 얼굴로 엄 회장을 바라봤다. 휴대폰에서 들려오는 것은 국과수 원장의 음성이 아니다.

-전화를 받지 않아 소리샘으로…….

-제가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또 있습니다. 엄시영의 부친 엄동석이 저를 청부 살해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밝히려는 저를 죽이기 위해 엄동석은 살인 청부업자를 고용했고.

화면 속 최지범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어플을 연 뒤 재생 버튼을 눌렀다. 텔레비전에서 엄 회장의 목소리가 흘렀다.

-이 사람아…… 최 실장은 내 밑에서 30년을 넘게 있었어. 가족이랑 작별 인사할 시간은 줘야 하지 않겠나? 모레로 잡아.

엄 회장이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꽝, 꽝, 꽝 세차게 두들기기 시작했다. 테이블이 흔들리고 위에 있던 꽃병이 바닥에 떨어지며 ‘와장창!’ 하고 깨졌다. 엄 회장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재떨이를 들어 텔레비전을 향해 집어 던졌다.

콰직!

둔탁한 소리가 들리며 텔레비전 화면이 박살 났다.

거실은 적막했다.

엄 회장의 거친 숨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런데 엄 회장이 껄껄껄 웃기 시작했다.

비서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엄 회장의 옆에 섰다.

“회, 회장님…….”

엄 회장이 손을 저었다.

“걱정할 필요 없어. 누군가 말했지. 대중이란 이해력은 낮고 망각은 빠른 존재들이라고.”

“……!”

“그러니까 정치하는 놈들에게 속으면서도 또 꼬리를 치고, 재력가를 욕하면서 그들을 위해 노예처럼 일을 하지.”

“……!”

“이번에도 다르지 않아. 잊을 거야. 그리고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따라와.”

엄 회장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뒷짐을 진 채 뚜벅뚜벅 서재를 향해 올라갔다.

비서가 그 뒤를 재빨리 쫓았다.

서재에 선 엄 회장이 장부 하나를 꺼내 테이블에 툭 올렸다.

“전화해. 오늘 밤에 식사 한번 하자고 해.”

장부에는 숱하게 많은 국회의원과 권력자 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비서가 장부를 넘길 때, 엄 회장이 손을 쥐었다 펴며 말했다.

“민초들은 생각하지, 자신들이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도 멍청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게야. 세상은 국회의원의 절반만 손에 쥐고 있으면 돼.”

엄 회장, 일제강점기와 전란의 시대를 겪었다. 가난한 집의 아들로 태어나 시대의 변화를 눈으로 좇으며 역사의 기생충이 되어 막대한 이득을 손에 얻었다.

악덕한 사채업자로 살아가며 대한민국의 검은돈을 쥐고 흔들었다.

이제 그 세월은 지났고 그는 늙었다. 자식들의 앞날을 걱정하며 삶을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또 다르다. 엄 회장의 눈빛이 살아 있다. 마지막 시간에 다가온 위기, 엄 회장은 즐기고 있었다.

물론, 자신이 패배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이 나라에서 어깨에 힘주고 사는 놈들, 그들과 함께한 시간, 그들에게 던져 준 돈을 믿는 거다.

“계란은 바위에 부딪쳐 깨지기 전까지, 자기가 이긴다고 생각하지. 그런데 그걸 꼭 던져 봐야 아나?”

***

그 시각, 대검창청 총장실.

김영준 총장은 책상에 앉아 있었다.

휴대폰은 꺼 놨다.

사무실의 전화선 역시 뽑아 뒀다.

쉴 새 없이 울려 대는 전화.

지금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김영준 총장의 표정이 묘하다.

입꼬리가 살짝 비틀린 채 웃고 있다.

‘최지범은…….’

최지범은 기자회견을 통해 엄 회장과 엄시영의 죄를 폭로했다.

하지만 최지범의 발언 중 김영준 총장에 대한 것은 없었다.

김영준 총장이 다리를 외로 꼬며 며칠 전을 떠올렸다.

변사체가 발견되던 그날, 김영준 총장은 최지범에게 연락했고 이렇게 말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내 이름은 거론하지 마. 가족의 미래를 생각해. 내 이름을 거론하는 순간 너의 모든 자산이 동결될 거야. 그럼 가족에게 돌아갈 돈은 100원도 없게 되겠지.

자산동결이란 유죄가 확정되기 전에 재산을 은닉하고 빼돌리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법률이다.

하지만 김영준 총장은 최지범의 가족에 대한 경제봉쇄 수단으로 사용하려 했다.

그리고 최지범은 김영준 총장의 목소리에 무릎을 꿇었다.

김영준 총장은 그 통화를 기억하며 느긋한 표정과 함께 천천히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전원 버튼을 누른 후 슥슥 연락처를 찾았다.

“중앙지검장, 압수수색영장 승인하지 마.”

***

“검사장은 승인할 거예요.”

서진은 장지혁 검사의 차에 앉아 있었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장지혁 검사가 눈을 가늘게 떴다.

“확신하는 이유는?”

“차장검사님이 직접 갔어요. 그리고 약속하겠죠. 다음 차장검사. 우리 검사장님, 언제 죽을지 모르는 하루살이 인생이에요. 하루살이가 먼 미래를 계획하는 거 보셨어요?”

장지혁 검사가 눈을 깜빡였다.

“차, 차장검사? 설마 대검?”

“네.”

장지혁 검사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는 공대출 전 의원을 움직이더니 이번엔 대검의 차장검사가 움직였다.

“야…… 너 도대체 뭐야?”

“네?”

“공대출 의원부터 차장검사라니, 뭐야?”

하지만 질문의 대답을 들을 시간은 없었다.

장지혁 검사의 휴대폰이 진동했고 메시지가 도착했기 때문이다.

서진의 말대로 압수수색에 대한 승인이 났다.

***

다시 대검찰청, 김영준 총장의 사무실.

김영준 총장이 전화기를 내려 두며 끌끌 웃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스산하게 울렸다.

“재밌게 돌아가고 있어.”

중앙지검 검사장의 배신.

압수수색이 승인됐고 법원은 허락했다.

김영준 총장이 시퍼런 눈빛을 뿜으며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아내 엄시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압수수색이 들어올 거야. 숨길 생각은 하지 마. 일단 아줌마 집에 옮겨 둬.”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압수수색이라니!

김영준 총장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엄시영은 달랐다. 흥분된 목소리로 욕을 내뱉고 있다.

하지만 김영준 총장은 엄시영을 달랠 생각이 없었다. 지금은 부부 싸움을 할 때가 아니다.

“옮겨 둬, 당장.”

김영준 총장은 뒷말을 듣지 않고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휴대폰을 내려 두며 와이셔츠의 소매를 걷더니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 눈을 감았다.

김영준 총장의 머릿속에 이 위기를 해쳐 갈 방법이 빠르게 샘솟기 시작했다.

어차피 세상의 일은 사람이 하는 것. 사람들을 움직이면 뭐든 해결할 수 있다.

아군과 적군, 피아가 식별되지 않는 자들.

그들의 얼굴과 이름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러기를 잠시, 김영준 총장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위기를 탈출할 방법이 떠오른 거다.

그때 문이 열리며 반부패강력부장이 들어왔다. 고개를 꾸벅 숙인 부장검사가 책상 앞으로 다가와 서류를 건넸다.

“말씀하셨던, 장지혁 검사의 모든 것입니다.”

장지혁 검사는 김영준 총장에게 총구를 겨눈 인물. 하지만 장지혁 검사의 스케일로 이만한 일을 계획하기는 어렵다.

그 뒤에 선 인물이 있을 게 분명하다.

김영준 총장은 그렇게 생각하며 장지혁 검사에 대한 서류를 착착 넘겼다.

가장 먼저 본 것은 휴대폰 통화 내역. 김영준 총장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이게…… 사실인가?”

“네.”

“사실이라고?”

통화 내역이 거의 없다. 수사관과 실무관 그리고 이따금 보육원에 전화한 게 전부. 휴대폰으로 게임을 했는지 결제 내역만 보인다.

백지장과 같은 통화 내역을 보며 김영준 총장이 입술을 씹었다.

그 순간, 문이 또 열렸다.

이번에 들어온 사람은 장지혁 검사다.

“나가 봐.”

김영준 총장이 손짓하자 반부패강력부장이 허리를 굽힌 뒤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그러자 장지혁 검사가 김영준 총장의 앞으로 저벅저벅 다가섰다.

“부르셨습니까?”

“우리 집을 압수수색 한다고?”

“네. 뭐라 말씀하셔도 할 겁니다.”

장지혁 검사의 확고한 목소리에 김영준 총장이 입술을 비틀며 몸을 일으켰다.

“그래, 하던 일은 해야지. 그게 내 의혹을 없애 줄 테니까. 그런데 하나만 묻자. 네 뒤에 누가 있지? 여당? 정부? 아니면…….”

“그런 것 없습니다.”

김영준 총장이 고개를 저었다.

“지혁아…… 네 뒤에 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넌 버려질 거야. 그게 권력자들의 추한 민낯이니까. 놈들은 네 정의감을 이용하는 거야.”

“…….”

“그런데 압수수색이 승인 났다고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넌 헛수고를 할 테고 정해진 대로 유배를 가게 될 거야. 그런데 지혁아. 네가 내 손을 잡으면 난 너에게 날개를 달아 줄 수 있어.”

김영준 총장이 장지혁 검사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말을 이었다.

“힘없는 정의는 무능이라고 말했어. 하지만 내가 너에게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권력을 주마. 3년 정도만 참아. 그럼 넌 힘을 얻을 거야. 대신…… 말해. 네 뒤에 있는 사람이 누구지?”

“……날개를 달아 주신다고요?”

“그래. 난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야.”

장지혁 검사는 김영준 총장의 눈을 바라보며 느낀 게 있다. 김영준 총장은 압수수색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금의 사태에 어떤 걱정도 없어 보인다. 그저 지나가는 바람이라 여기고 있다. 그게 권력이다.

게다가 김영준 총장은 자신의 사람은 확실히 챙기는 사람. 약속은 끝까지 지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지혁 검사는 고개를 숙인 채 “날개…… 날개…….”라고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김영준 총장이 슬쩍 웃었다. 거의 넘어온 거라 생각한 거다.

김영준 총장이 장지혁 검사의 어깨를 쥐고 다정한 목소리를 이어 갔다.

“열심히 하면 할수록 또라이라 불린 검사. 하지만 내 손을 잡으면 또라이가 아니라 열심히 하는 검사로 인정받게 될 거야.”

“……드릴 게 있습니다.”

“그래, 누구지?”

김영준 총장의 눈이 반짝였고 장지혁 검사가 품에서 봉투를 꺼내 건넸다.

김영준 총장은 봉투 안에 누군가의 이름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빠르게 펼쳤다.

그런데 펼쳐진 것은 예상과 달랐다.

김영준 총장과 김윤환의 친자 확인 검사 결과.

김영준 총장의 행동이 그대로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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