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76화 (176/250)

<위험한 만남 (2)>

“…….아들 사랑?”

이소희는 눈치가 빠르다.

서진의 한 마디에 앞으로 벌어질 일을 눈치 챘다.

-자신의 가정사를 작은어머니가 알아채는 것.

-첩의 자식이니 뭐니 하며 강한 반발을 일으키는 것.

물론, 이소희의 가정사만으로 결혼이 파탄나지는 않을 거다.

놈들이 가진 권력의 탐욕은 작은어머니의 반발 정도는 충분히 찍어 누를 테니까.

하지만 그것은 앞으로 일어날 계획의 시작.

서진이 술잔을 손에 쥐며 물었다.

“싫어?”

“아니. 상관없어. 거짓이 진실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인데,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잖아? 팔려가는 것 보다는 낫겠지.”

이소희가 술잔을 들어 입에 댔다. 그리고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입술을 움직였다.

“…….그런데, 넌 괜찮겠어?”

이소희와 김윤환의 혼인은 김영준 총장과 백기호 의원이라는 거대한 권력의 합병.

누군가는 역사라 말할 정도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뒤흔들 수 있는 일.

그런데, 서진은 두 사람의 혼인을 망치려 한다.

그 사실이 김영준 총장의 귀에 들어가면, 어떤 끔찍한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권력은 자식과도 나누지 않는 것, 그 후폭풍은 거셀 것이며 서진이 다칠 수도 있다.

이소희의 걱정은 당연했다.

하지만 서진은 담담한 표정으로 빙긋이 웃었다.

이미 계획은 섰다.

김영준 총장의 눈길을 피해 움직일 방법도 생각했다.

조용히 그 집안의 분란을 지켜 보면 되는 것, 돌아올 김윤환에게 전해 줄 선물이 착착 쌓이고 있다는 사실이 즐거울 뿐이다.

서진이 술잔을 손에 쥐며 입을 열었다.

“결혼은 하고 싶어도 못 할 테니까, 적당히 어울리는 척 행동해.”

***

잠시 후, 서진은 집에 도착했다.

돈을 받아 든 대리 기사가 우산을 펼치는 모습을 보며 서진은 엘리베이터로 걸음을 옮겼다.

빗줄기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다.

집에 들어가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응접실에 앉아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비에 젖은 한강을 보는 게 운치라나 뭐라나.

고개 숙여 인사하자 아버지가 와인 잔을 하나 더 꺼내 들며 입을 열었다.

“한잔 해야지? 어? 이미 한잔 한 것 같은데?”

“괜찮아요. 마실 수 있어요. 저도 아버지한테 드릴 말씀이 있었거든요.”

“그래? 어서 앉아.”

아버지가 활짝 웃으며 서진의 앞에 와인 잔을 내려 뒀다.

서진이 자리에 앉아 텁텁한 와인의 맛을 느끼며 부모님의 얼굴을 바라봤다.

가족이 없었을 때는 모르던 감정.

부모, 동생, 가족.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지켜야 할 것.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힘.

서진이 와인 잔을 내려 두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 부탁드릴 게 있어요.”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 것인데, 아버지가 껄껄껄 웃었다.

서진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웃음이 이해되지 않았고 물끄러미 기다리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네가 뭘 부탁한 게 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 자전거 사달라고 징징 거린 후로 처음이야. 진영이 저 놈은 매일 같이 이거 사 달라, 저거 사 달라 졸랐는데, 넌 책만 봤잖아. 그래, 말해 봐. 해 줄 수 있는 것은 다 해 주마. 차? 집? 뭐든 이야기 해.”

아버지가 단숨에 마신 와인 잔을 탁! 내려 두며 또렷한 눈동자로 서진을 바라봤다.

서진이 뭔가 물질적인 것을 원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순간 서진은 ‘제가 아버지보다 현금은 더 많을 거예요.’라는 장난스러운 생각을 했다가 접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사람을 얻고 싶어요.”

아버지의 눈이 가늘어졌다. 서진의 요구가 자신의 예상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사람?”

“네.”

아버지는 재정건설의 대표다.

기업을 일으키기 위해 흙을 퍼내고 시멘트를 바르는 과정에서 손이 더러워지는 것은 필연,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과의 연줄은 반드시 필요했다.

“그 사람들을 얻고 싶어요.”

서진의 목표는 모든 것을 쥐는 것.

그런데, 멀리 돌아갈 필요가 없다.

아버지의 도움을 받으면 더 빨리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사람이라…….”

아버지는 말없이 와인을 따른 후 마셨다.

지금 서진의 모습에서 김영준 총장의 얼굴이 스친 거다.

김영준 총장이 어떤 방법으로 그 자리까지 올라갔는지 잘 알고 있어서다.

하지만 그 끝이 결코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형제의 신뢰는 간신히 이어지는 중이고 가정의 행복은 뒷전.

서진이 그 길을 걷기로 한다면 김영준 총장과 비슷할 수도 있다.

지금은 진영과 사이좋은 형제지만 언젠가는 어긋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진아…….”

“걱정하실 일은 없을 거예요.”

서진은 김영준 총장과 같은 괴물은 결코 되지 않을 생각이다.

그걸 넘어서는 게 목표다.

서진의 눈빛에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 날 때, 회사로 와.”

***

김영준 총장의 집.

1층의 실 평수만 해도 50평이 넘는 대저택, 그 넓은 거실은 적막했다.

집안일을 도와주는 분은 퇴근했고 서진의 작은어머니만이 소파에 앉아 독한 술병을 기울이고 있을 뿐이다.

작은어머니는 한 잔, 두 잔, 계속해서 술잔을 입에 댔다.

“미친년…….”

얼마 전, 동생 엄선주에게 맡겨 둔 돈이 화재로 사라졌다.

“그게 어떤 돈인데…….”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작은어머니의 머릿속을 계속해서 휘젓고 있었다.

그때,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어머니는 시선도 돌리지 않는다. 당연히 김영준 총장이 들어왔겠지 생각하며 또 술잔을 입에 댄다.

그리고 작은어머니의 생각은 맞았다. 김영준 총장이 넥타이를 풀며 작은어머니의 앞에 마주 앉고 있었다.

김영준 총장이 풀어 낸 넥타이를 옆에 던져 두며 입을 열었다.

“술 좀 그만 마셔. 벌써 몇 병이야?”

목소리는 건조했다. 마치 타인에게 하는 말투.

작은어머니가 깔깔 웃었다.

“걱정해 주는 척 하는 거야? 그런데, 시체 치우기 싫으면 그냥 놔둬. 알잖아? 나 이거 없으면 못 사는 거. 그리고……. 너도 술 마시고 왔네. 오늘은 어디서 마셨어? 애들 얼굴은 예뻤어? 몸매는? 몇 살이야? 아침에 안 들어왔으니까 칭찬이라도 해 줄까?”

작은어머니의 이어지는 목소리에 김영준 총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지금은 싸우려고 마주 앉은 게 아니다.

우선해야 할 말이 있다.

“윤환이, 내일이라도 그쪽 생활 정리하고 들어오라고 해.”

“어?”

술잔을 입에 대던 작은어머니의 행동이 뚝 멎었다. 눈동자만 틀어 김영준 총장을 향한다.

“…….내일이라도?”

“윤환이 결혼 시킬 거야. 그놈 나이도 있고 이제 사람 구실하며 살아야지.”

갑자기 결혼이라니, 작은어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대는 있고? 누구야?”

“백기호 의원의 친척이야. 직업은 검사고 집안도 괜찮아.”

“백기호?”

정치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백기호 의원의 이름은 알고 있다.

판사 출신의 정치인이며 야권의 유력한 대선 후보.

“…….그런데, 친척? 부모는 뭐하는 사람인데?”

작은어머니가 술잔을 내려 둔 후 머리를 질끈 묶으며 바른 자세로 앉았다.

김윤환의 혼사 문제다. 흐트러진 자세로 들을 수는 없는 거다.

김영준 총장이 또렷해진 작은어머니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애 아빠가 뉴욕 증권가에서 일하는 것 같아. 재산도 괜찮고 학벌도 나쁘지 않아. 백기호 의원과 가까운 사이니까 윤환이 역시 정계를 노릴 수도 있을 거야. 거기에 대해서는 언질도 받았어.”

물론 거짓된 스펙이며 가족관계.

하지만 김영준 총장과 백기호 의원은 거짓을 진실처럼 포장할 능력이 있다.

두 사람이 입을 다물면 이소희의 가족 관계는 누구도 알 수 없을 거다.

김영준 총장은 그렇게 생각하며 거침없이 거짓말을 전했다.

“…….정계?”

작은어머니는 정계라는 단어에 집중했다.

애지중지 키운 아들, 김윤환이 금배지를 달고 여의도에서 활약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중이다.

어쩌면 당대표, 나아가 대통령.

자신의 잘난 아들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생각됐다.

김영준 총장은 누그러진 작은어머니의 표정에 슬쩍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얼굴 한번 봐봐.”

화면에 나타난 것은 이소희의 사진.

예쁘다. 여배우의 옆에 있어도 밀리지 않을 외모.

게다가 검사, 머리까지 우수하다.

마음에 안 드는 게 이상한 일.

이 정도면 김윤환의 아내로 손색없다.

작은어머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방금까지 언짢은 얼굴로 술을 마시던 게 없었던 일만 같다.

“참하기도 해라…….”

“일정이 잡히면 3개월 안으로 결혼 시킬 생각이야. 그 뒤에는 백기호 의원도 대선 준비로 정신이 없을 테니까. 조금 급한 감도 있지만……. 어떻게 생각해?”

“윤환이만 좋다고 하면 난 괜찮아.”

작은어머니는 화면 속 이소희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고 김영준 총장은 담배를 입에 물었다.

입에서 뿌연 연기가 내뱉어진다.

김영준 총장은 며느리가 될지 모르는 이소희보다 그녀가 가지고 올 혼수, 백기호 의원의 비리를 기대하고 있었다.

***

그 시각, 서진은 책장을 들어 낸 채 벽을 보고 있었다.

원래의 서진이 썼던 낙서.

서진은 펜을 들어 그곳에 새로운 글씨를 적었다.

물론 다른 사람이 보면 알 수 없을 글자.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약어.

‘이소희.’

이소희는 서진의 계획에 없던 사람이다.

하지만 백기호 의원의 권력욕에 의해 그녀는 이 판에 들어오게 됐다.

‘소희를 통해 포탄에 불을 붙일 수 있어.’

김영준 총장은 이소희의 스펙을 거짓으로 꾸몄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그 사실을 작은어머니가 알게 된다면, 지금껏 참아왔던 불신의 포탄이 터지게 될 거다.

그 파편이 어디까지 튈지 모르지만, 김영준 총장을 뒤흔드는 데는 충분하다.

‘내가 직접 나설 수는 없고.’

서진이 행동하기는 어렵다.

포탄을 설치하다 파편에 맞아 죽는 것은 사양이다.

그래서 선택한 인물이.

‘엄선주.’

서진이 빈 공간에 엄선주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그리고 화살표를 죽 그어 이소희의 이름과 연결했다.

엄선주는 작은어머니의 동생.

평소 작은어머니에 대한 피해의식이 강한 사람.

‘엄선주는 질투하고 있어.’

겉모습으로만 봤을 때, 작은어머니는 성공한 사람이다.

검찰 총장의 아내이며 권력은 물론 막대한 재산마저 거머쥐고 있다.

게다가 초호화 엘리트들의 모임, 그 안에서 이뤄지는 사교계.

그것은 돈이 있다고 들어갈 수 있는 모임이 아니다.

엄선주는 작은어머니의 모든 것을 부러워한다.

‘엄선주의 귀에 이소희의 가정사가 들어가면?’

엄선주는 작은어머니를 위하는 척, 걱정하는 척, 모든 위선의 가면을 쓴 채 작은어머니의 감정을 건들 게 분명하다.

‘터지는 거지.’

서진은 그 틈을 노릴 거다.

김영준 총장의 가정이 흔들릴 때, 그래서 시야가 좁아질 때.

결혼은 파국으로 향할 것이고 김윤환은 교도소로 끌려갈 거다.

서진은 다시 펜을 들고 ‘여동수 의원.’ 그리고 놈이 알려 준 다음 타깃 ‘황윤성 의원.’ 이어서 신마 그룹의 신지연까지 쭉 적어 넣었다.

원래의 서진이 누구의 손에 당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놈이 왜 죽었는지에 대한 이유는 확실히 알 수 있다.

힘을 키우기 전에 들켰기 때문이며 놈들보다 힘이 약해서다.

권력의 판은 약자의 편을 들어 주지 않는다.

약한 놈이 보이면 벌레처럼 달려들고 물어 뜯는 게 그 세상이다.

‘난 다를 거야.’

서진이 펜을 내려 두며 조용히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상대는 장지혁 검사.

통화 연결음이 잠깐 울린 후 곧 장지혁 검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밤 늦게 죄송해요.”

-아니야. 말해. 괜찮아.

“엄선주의 스케줄을 알고 싶어서요.”

-엄선주?

서진은 시선을 틀어 창밖을 바라봤다.

여전히 빗줄기가 거세다. 창문을 때리며 우는 것 같다.

곧 김윤환이 흘릴 눈물처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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