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만남 (1)>
***
그날 오후.
김영준 총장은 평소보다 이른 시각에 사무실을 나섰다.
백기호 의원을 만나기 위해서다.
약속 장소는 남한산성 부근의 한정식집.
김영준 총장은 차량의 뒷좌석에 앉아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사돈을 맺자?’
김영준 총장의 머릿속에는 백기호 의원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다.
-우리, 사돈을 맺읍시다.
사돈이란 가족이 되어 동맹을 맺자는 말, 그리하면 서로를 향한 총구를 거둘 게 분명하다.
‘사돈이라…….’
김영준 총장은 백기호 의원과 사돈을 맺었을 때의 득실이 따지기 시작했다.
김영준 총장의 머릿속에 현대판 정략결혼과 같은 단어는 없다.
오직 자신의 손실만 생각할 뿐이다.
김영준 총장과 백기호 의원은 같은 모임을 양분하고 있는 사람.
‘힘을 합친다면…….’
정말 이 나라를 손에 쥘 수 있다.
어쩌면 지금의 박무혁 대통령이나 여당의 실세라 불리는 이성윤 의원이 가진 세력보다 더 거대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문제는…….’
백기호 의원은 자신이 먼저 대권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며 정치판이란 어제와 오늘이 다른 혼돈의 세상.
그 5년이란 시간 동안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지금 있는 모임이 어떻게 분열될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어 백기호 의원이 다른 마음을 먹을 수도 있다.
껄끄러운 김영준 총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끌어 줄 가능성도 꽤 높다.
어쩌면 최악의 대통령으로 낙인찍혀 김영준 총장의 앞길을 막을 수도 있다.
‘믿을 수 있을까?’
김영준 총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을 예상하는 것은 한계가 존재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생각해 봤지만, 백기호 의원과 손잡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다.
‘일단 들어 본 후 결정하기로 하고.’
김영준 총장이 턱을 쓸며 생각의 방향을 틀었다.
‘누가 될까?’
백기호 의원의 자식 관계는 공식적으로 아들만 존재한다.
첫째 아들은 판사, 둘째 아들은 뉴욕의 증권 회사에서 일을 한다고 들었다.
두 아들의 스펙 모두 자신의 딸 유미와 견주어 나쁘지 않다.
그렇게 생각을 이어 가는 사이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김영준 총장은 바로 들어가지 않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옮기며 주변을 살폈다.
검찰 총장과 야당의 실세 중 하나가 만나는 자리.
혹시 따라붙은 기자라도 있다면 골치 아프기 때문이다.
김영준 총장에게 정치 검사니 뭐니 하는 소리란 지지율을 깎아 내는 원수 같은 존재.
하지만 없다. 한정식집을 통째로 빌렸는지, 주차장에 백기호 의원의 차량 외에 다른 차는 보이지 않는다.
기자가 달라붙었다는 느낌도 없다.
그저 풀벌레 우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백기호 의원의 보좌관이 앞으로 나와 김영준 총장에게 허리를 굽혔다.
김영준 총장이 비치된 재떨이에 담배꽁초를 툭 떨어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지.”
김영준 총장이 뚜벅뚜벅 안으로 향했다.
보좌관이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에 빠졌다.
‘역사…….’
보좌관은 백기호 의원과 김영준 총장의 만남이 역사라고 여겼다.
비록 공식적으로 기록되지는 않겠지만 지금 이 순간은 대한민국의 미래가 크게 요동칠 만남이 될 게 분명하다.
두 사람은 같은 모임에 있었지만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았다.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자들을 양분한 채 서로 노려보기만 했다.
그 두 사람이 만나는 거다.
게다가 손까지 잡는다면, 저들은 대한민국의 10년을 손에 쥘 게 분명하다.
***
김영준 총장과 백기호 의원은 한동안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술잔만 오갈 뿐, 공간은 침묵이 채우는 중이다.
그러다가 먼저 입을 연 것은 백기호 의원, 그가 김영준 총장의 빈 잔을 채우며 특유의 느릿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듣는 사람도 없는데, 우리 툭 터놓고 이야기하죠. 임기가 끝나면 정계를 노릴 생각이죠?”
“뭐, 다들 예상하는 일 아닙니까?”
“우리야 알고 있지만 국민들은 모르지. 알아서도 안 되고.”
이번엔 김영준 총장이 술병을 넘겨받아 백기호 의원의 잔을 채웠다.
그러자 백기호 의원이 넥타이를 풀며 말을 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는 뒤로하고. 우선은 법무부 장관의 자리를 약속하죠. 적당히 지지율을 높이다가 총선에 나가세요. 다음은 우리 당의 대표, 그리고 대선. 단순하지만 완벽한 계획 아니겠습니까?”
달콤한 제안이다.
하지만 김영준 총장이 이런 제안에 혹해서 넘어갈 사람은 아니다.
술잔을 들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계획은 계획일 뿐이죠. 변수가 생기고 그 변수가 문제가 되면 계획은 어긋나기 마련, 그 전에 우리의 신뢰에 대한 문제나 풀었으면 합니다.”
사돈에 대한 이야기를 할 차례다.
김영준 총장은 백기호 의원의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다.
하지만 백기호 의원의 목소리는 김영준 총장의 예상과 달랐다.
“총장의 아들 김윤환 그리고 내 딸 이소희, 꽤 괜찮은 부부가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
김영준 총장의 눈빛이 일그러졌다. 무서운 얼굴로 백기호 의원을 쏘아본다.
동시에 평온했던 공간의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백기호 의원은 대수롭지 않게 김영준 총장의 눈빛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약속을 하는데, 손가락이 필요하다지? 우리, 잘라도 아프지 않은 손가락부터 걸어 봅시다.”
“농담도 과하십니다. 윤환이가 모자라다 해도 족보에도 오르지 못할 것과 비교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크게 생각하세요. 총장이 정치 바닥에 나서면, 이겨 낼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의원들이 주둥이만 살아서 나불댄다고 우스워 보입니까? 그 사람들, 먹잇감이 보이면 개미 떼처럼 달려들어요. 내 도움이 없다면, 총장의 힘으로 버텨 낼 수 없을 겁니다. 수레 앞에서 앞발을 치켜세우는 사나운 사마귀도 개미 떼에게는 쓰러지는 법이니까요.”
***
그 시각, 미닫이문의 밖.
보좌관은 그곳에 서 있었다.
다른 사람이 오지 못하게 경계를 서는 중이다.
그리고 그의 귀에도 두 사람의 대화가 들려왔다.
김영준 총장과 백기호 의원은 서로의 상처를 아낌없이 긁어내고 있다.
‘이, 이게 뭐야?’
보좌관은 자신도 모르게 눈치를 보며 긴장된 숨을 내뱉었다.
두 사람의 만남이 역사의 현장이라 여겼다.
하지만 아니다.
거인과 거인은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았다. 언제 불벼락이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김영준 총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건조하고 톤이 없는 말투, 협상의 결렬.
이대로 김영준 총장이 저 방을 나서면 전쟁이 일어날 거다.
검찰과 야당의 피 터지는 싸움.
이득을 보는 것은 오직 여당뿐.
‘아, 안 돼.’
보좌관이 문을 열고 들어가 두 사람을 말려야 하나 고민할 때, 백기호 의원이 목소리가 들렸다.
“소희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듭니까? 혼수로 내 비리를 들고 가도?”
“…….”
“사돈이란 관계, 이혼하면 끝이죠. 그런데 혼수는 남아요.”
“…….”
“같이 갑시다. 그리고 똑같이 나눕시다. 권력도 돈도 모두.”
보좌관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시 김영준 총장이 자리에 앉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이어서 술이나 한잔하자는 김영준 총장의 목소리가 들렸고 보좌관은 소리 없이 웃기 시작했다.
보좌관은 알고 있었다.
저 두 사람은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이 없다.
그저 권력의 끝을 보고 싶은,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자들이다.
하지만 저들과 함께 있으면 보좌관의 미래에도 해가 뜰 거다.
보좌관은 다가올 청사진을 그리며 벽에 등을 기댔다.
***
그 시각, 서진은 차를 몰고 춘천으로 가는 길이었다.
흐릿했던 하늘은 어느새 비를 몰고 왔고 눅눅할 정도로 습한 공기가 느껴졌다.
‘기분 나쁘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춘천의 한 바, 그곳의 작은 룸에 이소희가 앉아 있었다.
“……김윤환이랑?”
“어.”
이소희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한숨 섞인 한마디를 덧붙였다.
“미친놈. 날 물건으로 생각해. 좋은 조건에 거래할 수 있는 물건. 엄마도 그렇게 옭아매더니, 이제 나까지…….”
백기호 의원이 전화했다고 한다.
뜬금없이 결혼을 하라고.
“웬일로 다정하게 말하더라.”
백기호 의원이 이소희에게 말했다.
-아비로서 해 준 게 없어 언제나 가슴이 아팠지. 그래서 좋은 집안, 좋은 남자를 알아봤어.
그게 김윤환이다.
이소희는 당연히 싫다고 거절했지만 들려온 목소리는 고압적이었다.
네 엄마가 힘든 꼴을 또 보고 싶냐, 언제까지 검사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느냐는 협박.
백기호 의원에게는 그 협박을 현실로 이룰 수 있는 힘이 있다.
즉, 부탁이 아닌 명령.
그 목소리를 떠올리며 이소희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눈물을 보이기 싫은 거다.
“……꼭 팔려 가는 것 같네. 조선 시대도 아니고. 이게 뭐냐?”
이소희는 담담한 척 말했지만 가늘게 떨리는 어깨를 숨길 수 없었다.
서진은 이소희를 바라보며 술을 한 잔 입에 댔다.
그리고 감정적이 아니라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순간에 감정은 낭비다.
오직 이성적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김윤환과 이소희.’
두 사람이 어떻게 묶이게 됐는지에 대한 과정 그리고 그 일이 만들어 낼 결과.
그 예상은 어렵지 않았다.
적이었던 두 사람이 서로 부족한 부분을 메꾸기 위한 행동, 권력을 갖기 위한 준비, 그 안에 이소희가 포함된 것.
‘그런데 김윤환이라니…….’
최근 김윤환의 이름이 자주 들려온다.
진영이 그놈 때문에 꿈을 포기하려 했고 검사 생활을 좋아하는 이소희 역시 마찬가지이며 아버지의 회사는 말할 것도 없다.
‘이놈 정말 안 되겠네…….’
서진은 입술을 쓸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생각했다.
머릿속에서는 김영준 총장과 부딪치지 않는 선에서 김윤환을 끌어낼 여러 방법이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서진이 다리를 외로 꼬며 입을 열었다.
“……막아 줄까?”
이소희는 천장을 바라본 상태로 고개를 저었다.
“됐어. 그냥 하소연하고 싶었는데, 내 상황을 아는 친구가 너밖에 없네. 그래서 불렀어. 힘 빠지는 소리 들어 줘서 땡큐.”
이소희는 그 누구보다 백기호 의원의 힘을 알고 있다.
그 잔혹한 성격 역시 마찬가지.
어릴 적부터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에휴, 시집이나 가야지…….”
이소희는 서진이 백기호 의원을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서진은 법이라는 룰 안에서 싸움을 준비하지만 백기호 의원은 법 밖에서 움직이는 사람.
원하는 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백기호 의원에게 법이란 이용해야 할 대상이며 서민을 다스리는 통치 수단일 뿐이다.
그런데 서진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원한다면 막아 줄 수 있어.”
“어?”
이소희의 시선이 천천히 서진을 향했다.
그리고 눈가에 맺힌 눈물을 슥슥 닦은 후 똑바로 바라봤다.
서진의 눈빛과 목소리는 언제나 믿음이 간다.
지금껏 서진이 했던 행동과 발언이 믿음의 증거다.
그 대단한 백기호 의원이라 해도 정말 막아 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소희가 서진을 보며 중얼거렸다.
“……막아 준다고?”
서진이 끌끌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화장, 번졌다. 예쁜 줄 알았는데 화장…….”
“야…….”
“울다가 웃으면…….”
“야!”
“어쨌든, 막아 줘? 대신 술값은 네가 내고, 서울까지 대리비도 네가 내고. 그 정도면 내 시급으로 충분하겠네.”
잠시 멍하니 있던 이소희가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
막을 수 있다면, 결혼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술값이나 대리비가 문제가 아니다.
“방법이 있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뭐든 할게.”
“뭐, 몇 가지가 있긴 한데…… 일단, 김윤환의 어머니 그러니까 내 작은어머니. 아들 사랑이 대단하셔.”
작은어머니가 이소희를 김윤환의 결혼 상대로 인정할 수 있을까? 아마 대단한 부부 싸움이 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