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5)>
아버지는 진영의 꿈을 좋아하지 않았다.
진영은 우수한 대학을 졸업한 사람, 재정건설을 이어받을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요리를 한다는 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아들의 꿈을 인정했고 응원도 했다.
프라이팬을 잡고 파스타를 만들 때, 즐거워하는 그 얼굴이 정말 행복해 보여서다.
“……그만둬?”
그런데 뜬금없이 그만둘 생각을 했다니.
그것도 그 이유가 김윤환이라니!
아버지가 ‘탕!’ 소리가 날 정도로 잔을 세게 내려 뒀다.
“됐어! 너희는 회사 일에 신경 쓰지 마.”
아버지의 표정이 언짢아졌다. 평소와 전혀 다른 서늘한 눈동자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이나 하라고 해.”
아버지의 머릿속에서 김윤환을 끄집어낼 계획이 솟구치고 있는 게 보였다.
김윤환이라는 멍청한 놈으로 인해 두 아들이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다.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말할게요. 아버지는 못 들은 척해 주세요.”
서진은 몇 가지 더 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는 사람 좋고 낙천적인 성격을 지녔고 언제나 허허 웃고 다닌다.
하지만 맨손으로 재정건설을 만들어 낸 인물, 결코 만만하지 않다.
김윤환이 아니라 김영준 총장이 나선다 해도 재정건설을 쉽게 차지할 수 없을 거다.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 일로 서진과 진영이 다칠 수도 있다면, 상대가 자신의 동생 김영준 총장이라도 멱살 잡고 싸울 생각이다.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의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다.
김윤환의 머리채를 잡고 교도소에 집어넣어도 서진을 응원할 게 분명하다.
언제나 자식의 편에 서는 것, 그게 아버지다.
“그런데 진영이요, 이태리 음식보다는 한식이 더 낫지 않아요? 김치볶음밥은 맛있던데, 파스타는 영…….”
서진은 아버지의 잔을 채우며 이야기를 돌렸다.
그제야 아버지도 껄껄 웃는다.
“그래? 난 다른 나라 음식은 원래 입에 안 맞아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네 입에도 그랬어?”
“사실, 저도 한식 체질이라 이태리 음식은 잘 몰라요. 맞다. 진영이가 며칠 전에 먼저 결혼해도 되냐고 물어보던…….”
“뭐? 결혼?”
아버지의 행동이 또 한 번 멎었다.
진영에게 여자 친구가 있는 것은 어머니만 알고 있었나 보다.
“만나 봤어? 참해? 어때?”
빠르게 질문을 던지는 아버지의 눈에 호기심이 가득 차올랐다.
서진이 고개를 저었다.
“저도 직접 본 것은 아니고요. 사진으로만 봤는데, 애교 많게 생겼더라고요. 진영이가 지금 출생의 비밀을 지키며 만나고 있는데…….”
출생의 비밀이라는 말에 아버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소리냐는 눈빛에 서진이 말을 이었다.
“아버지가 재정건설 대표고 형이 검사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여자가 집안을 보고 접근할 수 있다면서, 다 숨기고 있나 봐요. 어쨌든 지금 그 여자 친구는 진국이라던데…….”
아버지가 크게 웃기 시작했다.
“그렇지, 돈 냄새를 풍기면 똥파리가 끼어드는 법이야. 그런 것은 잘하고 있네.”
서진은 계속해서 진영이 떠들었던 여자 친구 자랑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전했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즐거워했다.
그렇게 술이 몇 잔 더 돌아간 후 아버지가 물었다.
“같이 요리하는 사람이라고?”
“네.”
“사람만 좋으면 됐지.”
재정건설의 대표 정도 되면 며느릿감으로 생각해 둔 레벨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집안은 어때야 하고 대학은 적어도 어디를 졸업해야 하고, 사람을 따지는 데 등급을 매기는 그 빌어먹을 과정.
하지만 아버지에게 그런 것은 없었다.
잠시 후, 식사가 마쳤다.
서진이 대리운전을 불렀고 아버지는 오늘 서진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여름밤의 습한 바람을 맞으며 아버지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윤환이…….”
김윤환에 대한 말을 입에 담았다.
진영의 여자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꽃피울 때도 마음 한구석에 김윤환에 대한 일로 머리가 복잡했던 거다.
서진은 말없이 아버지를 바라봤다.
그러자 아버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회사에 들어오는 것은 막을 수 없어. 너도 알겠지만 우리 회사에 네 작은아버지 지분도 상당하거든. 비록 차명이지만…….”
“…….”
“하지만 너희가 걱정한 일은 없을 거야. 법무 팀에 박아 놓고 다른 일은 못 하게 감시할 테니까.”
아버지는 재정건설의 대표, 법무 팀에는 아버지의 눈과 귀가 되어 줄 사람이 많다.
그들이 김윤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거다.
하지만 문제는 있다.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는 놈.
재정건설은 구멍가게가 아니다.
지분의 지배 구조에 의해 주인이 바뀔 수 있다.
그 많은 직원과 임원 중에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놈은 당연히 존재한다.
그놈이 김윤환과 쿵짝이 맞아 김영준 총장까지 타고 올라간다면, 형제간에 피 튀기는 싸움이 일어날 가능성은 충분하다.
김영준 총장은 감정보다 이성이 앞서는 사람.
그리고 그 성격은 도의적인 것보다 이득과 성공을 쟁취하려 한다.
탐욕적으로 모든 것을 씹어 먹으려는 괴물.
그 앞에 피를 나눈 형제는 뒷전이다.
김영준 총장은 오직 자신이 최우선.
아버지의 마음을 읽은 서진이 조용히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서진은 김윤환을 찢어 죽이고 그의 어머니를 시작으로 김영준 총장까지 무너뜨릴 생각이다.
‘지금껏…….’
서진이 걱정했던 것은 김영준 총장을 박살 내는 중에 아버지가 입을 마음의 상처였다.
하지만 아버지 역시 걱정하고 있다.
김영준 총장의 탐욕, 그에 걸맞은 권력.
그 칼이 언제 서진과 진영에게 향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이제 거칠 것은 없어.’
서진이 김영준 총장을 무너뜨릴 힘은 착실히, 하지만 빠르게 서진의 손에 모이고 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아버지가 염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
며칠 후, 서진은 다시 여동수 국회의원의 사무실을 찾았다.
서진이 거래의 조건으로 원했던 것을 실적.
여동수 의원이 내밀 것으로 예상했던 것은 동료 의원의 비리.
그리고 서진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황윤성 의원이라고 있어.”
알고 있다.
부동산 거물이었던 부모의 뒤를 이어 땅장사로 큰돈을 만진 사람.
고위층에 로비하며 공천에서 배제되지 않는 인물.
그 덕에 텃밭에 자리 잡아 3선, 호의호식하는 자.
“그 로비가 어느 주머니에서 나오는 줄 아나?”
“…….”
“깡패야.”
여동수 의원이 테이블 위에 서류를 올려 뒀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서류를 툭툭 두들기며 말을 이었다.
“그 깡패는 연예인 기획사를 운영하지.”
정상적인 연예인 기획사는 아니다.
지망생 몇 명을 꼬드긴 후 한류가 먹어 준다며 해외로 돌린다.
일본과 중국 그리고 동남아.
“그곳에서 하는 일은 뻔하지.”
밤무대를 전전하며 성접대.
하지만 걸리지 않는다. 그들은 결코 지망생에게 성 접대를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네가 선택해. 나도 이런 것 말하는 거 싫어. 그런데 성공하려면 어쩔 수 없어.”, “다른 멤버들은 한다고 하네? 네가 안 하면 걔들도 실패할 거야.”라는 개소리로 선택을 위장했을 뿐이니까.
서진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이 이런 짓까지 한다고요?”
“하지는 않지. 모른 척 외면할 뿐이지.”
“마음에 드네요.”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이런 쓰레기는 남의 다리가 잘려도 아픈 것을 느끼지 못한다.
반면에 자신의 손에 작은 가시만 찔려도 죽는다고 비명을 지른다.
이용하기 딱 좋은 자들.
‘깡패는 치우고.’
깡패는 필요 없다.
치워 버린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손에 얻고.’
놈의 권력은 필요하다.
국회의원이 가진 막강한 권한, 머릿수가 채워진 놈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괴물.
“감사합니다.”
서진이 서류를 손에 들며 고개를 숙였다.
인사를 하고 문밖으로 나서려 하는데, 여동수 의원이 서진의 발길을 잡았다.
“잠깐만.”
고개를 틀자 여동수 의원이 담배를 손에 들며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깡패야, 배우지 못한 것들이라 어떤 식으로 반항해 올지 몰라. 조심하도록 해.”
“네.”
“그리고 자네…… 김 총장하고 사이는 괜찮나?”
“네?”
서진과 김영준 총장은 친척, 겉으로 볼 때는 사이좋게 서로를 끌어 주고 밀어주는 중이다.
하지만 여동수 의원은 달리 보고 있었다.
“이런 말 하면 뭣하지만, 비슷해서.”
동류는 서로를 알아본다.
같은 극의 자석은 서로를 멀리한다.
사나운 개는 누구 하나 죽을 때까지 목덜미를 놓지 않는 법.
여동수 의원이 느낀 서진은 김영준 총장 못지않게 사나운 사람이었다.
물론 친척이라는 특수 관계가 있지만 여동수 의원은 확인해 보고 싶었다.
만약 좋지 않은 사이라는 게 느껴지면 어느 쪽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서진의 표정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서진이 황당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요. 작은아버지인데요.”
***
여동수 의원의 사무실 밖으로 나서던 서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놈이 서진과 김영준 총장의 관계를 의심하고 있다.
아직은 미약한 단계지만, 그 질문의 의도는 명확하다.
‘설마…….’
여동수 의원의 의심은 상관없다.
하지만 김영준 총장이 조금이라도 서진을 집중해서 보고 있다면 그건 큰 문제다.
서진은 김영준 총장에게 의혹을 남긴 적이 있는 지 잠시 생각해 봤다.
‘없어.’
있었다면 권력자들을 소개해 줬을 리 없고 총장 취임의 다과회에서 자신의 라인에게 인사시켜 줬을 리도 없다.
‘기우야.’
서진은 조금 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차에 올랐다.
이어서 시동을 걸고 받은 서류를 펼쳤다.
어떤 놈들인지 확인은 해 보고 싶었는데.
‘어?’
작은어머니의 친동생 엄선주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서류를 든 서진의 손에 힘이 콱 들어갔다.
머릿속으로 이미 계산이 섰다.
깡패를 잡는 과정에서 우연히 엄선주까지 잡아들이는 것.
그리고 엄선주를 통해 김영준 총장의 발목을 잡아채는 법.
그 모든 과정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좋아.’
순간, 서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강원지검에 있는 이소희다.
“어, 소희야.”
-잠깐만, 통화 가능해?
“말해. 괜찮아.”
-나…… 결혼하래.
이소희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
그 시각, 김영준 총장은 태블릿 PC를 들고 기사를 읽고 있었다.
‘제법…….’
김영준 총장에 대한 기사는 3일이 멀다 하고 나오고 있다.
그 덕에 김영준 총장의 지지율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중.
정계 입문에 대한 어떤 발표도 하지 않았는데, 이 정도라는 것은 정말 긍정적인 일이었다.
드르르륵.
김영준 총장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는 백기호 의원.
미간을 찌푸린 김영준 총장이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놈의 낮은 목소리가 흘렀다.
-고맙다는 말을 안 한 것 같아서요.
수사를 멈춰 줘서 고맙다는 말.
김영준 총장은 여동수 의원의 사건으로 백기호 의원까지 끌어내리려 했었다.
하지만 백기호 의원이 김영준 총장의 어떤 약점을 빌미로 그 수사를 멈추게 만들었다.
“고마울 게 뭐 있겠습니까?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끼리 피하고 지내야지.”
-총장…… 우리가 서로 피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오랜만에 얼굴 한번 봅시다.
김영준 총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조용히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백기호 의원의 느릿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총장, 내 오랫동안 생각해 봤어요. 우리가 힘을 합치면 어떨까? 내가 먼저 하고 다음에 총장이 하고. 이 나라, 우리가 만들어 갈 수 있어요.
김영준 총장이 끌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손은 믿을 수 있는 사람과 잡는 것.
그 신뢰 관계는 친분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일방적으로 쥐고 있는 명확한 약점.
또는 상대의 머리채를 흔들 수 있는 강력한 권력이다.
당연하게도 김영준 총장과 백기호 의원은 그 신뢰 관계를 쌓을 수 없다.
두 사람은 비슷한 권력을 지녔다.
심지어 서로 약점을 알고 있다.
그 약점을 통해 총구를 들이댄 사람끼리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언제 뒤통수를 맞을지 두려워하며 전전긍긍할 거다.
그때였다.
-우리, 사돈을 맺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