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73화 (173/250)

<준비 (4)>

***

잠시 후.

보좌관은 물렸고 사무실에는 서진과 여동수 의원만 존재했다.

“하…….”

서진과 마주 앉은 여동수 의원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 한참 동안 담배만 피워 댔다.

“거래?”

“네.”

여동수 의원은 다시 입을 닫았다.

아직도 자신이 잘나가는 국회의원인 줄 알고 있다.

일개 평검사와 마주 앉아 거래 운운하는 게 자존심이 상한 거다.

그러면서도 서진과 마주 앉은 이유는 지푸라기라도 잡기 위해서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살고는 싶은 마음, 서진은 그 이중적인 모습에 웃음이 나왔지만 조용히 놈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그리고 여동수 의원은 연속으로 몇 개비의 담배를 비벼 끈 후에야 무겁게 입을 열었다.

“……말해 봐.”

“먼저 의원님의 상황을 객관화하는 게 좋겠죠?”

예의는 여기까지.

지금부터 누가 갑이고 을인지 확실하게 알려 줘야 한다.

상대는 국회의원, 어설프게 짓밟으려 하면 오히려 서진이 물릴 수도 있다.

확실하게 우위를 정한 후, 서진의 뜻대로 따르게 만들 생각이다.

“보세요.”

서진이 서류를 꺼내 테이블 위로 툭 던졌다.

여동수 의원은 마른 입술을 핥으며 서류 봉투를 펼쳤다.

내용물은 여동수 의원의 비리, 백기호 의원이 여동수 의원의 목을 치라며 건넨 칼.

생각 이상으로 잘 정리된 자료에 여동수 의원의 얼굴은 굳어지기 시작했다.

“누, 누가 이걸…….”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잖아요? 그것만 해도 5년.”

“……또 있다는 것인가?”

여동수 의원은 생각보다 말귀를 잘 알아들었다.

서진이 고개를 끄덕인 후 다른 서류를 그 위에 덮었다.

종로경찰서 서장을 치던 날, 룸살롱에서 얻었던 뇌물 장부 그리고 사이비 종교에서 가져온 뇌물 장부.

돈 그리고 성 상납, 그 날짜가 자세히 적혀 있다.

여동수 의원의 얼굴은 시커멓게 변했다.

자신도 모르게 손을 파르르 떨고 있다. 그러다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씨, 씨발! 나 혼자 먹었어? 여기 적힌 다른 사람들은!”

이 사람, 아직도 자신이 갑인 줄 알고 있다.

서진이 끌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왜 그러세요? 검찰 조사를 처음 받는 것도 아니고. 만약 이 장부를 사용할 때가 되면 전 의원님의 이름만 찢어서 증거로 사용할 거예요. 나머지는…… 뭐, 훼손됐다고 둘러대면 되죠.”

“야!”

“목소리는 낮추시고, 귀는 쫑긋 여시고.”

“뭐?”

“말씀드렸잖아요, 거래를 제안하려 한다고.”

국회의원, 아무리 당에서 버려졌어도 그 힘은 무시할 수 없다.

가진 권한이 다르다.

심지어 구속도 힘들다. 법원은 어지간한 죄로는 현직 국회의원을 법정 구속하지 않는다.

‘게다가…….’

1심, 2심에서 처벌을 받는다 해도 마찬가지, 놈의 국회의원직이 상실되는 것이 아니다. 최종심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시간이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 어쩌면 3년이 될지 그건 모르는 거다.

그 긴 시간 동안 여동수 의원이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다.

증거는 희미해질 테고 물귀신 작전으로 서진을 끌고 들어갈 수도 있다.

어쩌면 아버지의 회사를 건들려 할 수 있으며 한 치 앞을 모르는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을 이용해 화려하게 부활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래서 서진은 놈과 거래할 생각이다.

애초에 놈은 백기호 의원의 손과 발.

백기호 의원이라는 야당의 머리를 치기 위해서라면 이런 잡범은 이용해야 하는 거다.

“제가 왜 거래라고 말했겠습니까? 저는 의원님을 존경해 왔습니다. 그런데 계속 흥분한 모습을 보이고 계시니 말씀을 드릴 수가 없네요.”

여동수 의원이 입술을 씹었다.

그리고 담배를 입에 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보라는 뜻이다.

멍석이 깔렸으면 놀아 줘야 하는 법, 서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큰 그림을 그릴 때, 주변이 물감으로 더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데, 사람들은 왜 그림을 보지 않고 주변만 볼까요?”

“…….”

“룸살롱과 사이비 종교의 뇌물은 제가 덮겠습니다.”

서진의 손에 자신의 비리가 계속 들려 있다는 것을 넌지시 전한 거다.

즉, 같이 죽고 싶지 않으면 다른 생각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여동수 의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

서진이 계속 말을 이었다.

“문제는 이 장부예요. 저도 위에서 받은 것이라…… 전부 짬 처리하기는 힘들어요.”

“…….”

“하지만 의원님이 이 장부를 가지고 계시면, 그리고 유능한 변호사와 함께하시면, 적당히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여동수 의원의 시선이 서류로 향했다.

상당한 양의 비리, 하지만 이게 변호사의 손에 들어간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이 서류는 검찰이 어떻게 공격해 들어올지 알려 주는 것과 같은 것.

상대의 전술을 알고 있다는 것은 법정에서 큰 도움이 된다.

게다가.

“저는 이걸 시작으로 기소를 진행할 겁니다. 이어서, 이 순서대로 하나씩 던질 예정이죠.”

서진은 세밀한 계획까지 전달했다.

여동수 의원이 슬쩍 웃으며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여동수 의원의 머릿속에 서진의 치부를 어쩌고 하는 계획은 이미 사라졌다.

불확실한 계획이 아니라 확실한 미래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 최종 형량은 어떻게 될 것 같나?”

“저도 입장이 있으니, 가볍게 싸우지는 않을 겁니다. 변호사의 실력과 판사의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많으면 3년…….”

“3년은 안 돼. 길어.”

방금까지 5년을 예상하며 벌벌 떨던 놈이 물에서 빠져나왔다고 무죄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서진이 예상한 반응이다.

품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럼, 이 변호사를 쓰세요.”

신마 그룹을 상대로 싸움을 걸고 있는 이두진 변호사의 명함이다.

“약자를 돕는 변호사로 인망이 높습니다. 대기업과 거대 로펌을 상대로 승리를 거머쥐었을 정도로 실력도 좋고요. 이 사람이라면 많으면 집행유예, 어쩌면 증거불충분도 이끌어 낼 수 있을 겁니다.”

“인권 변호사?”

“그런 것은 아니고요.”

“그런데 이 사람이 내 변호를 맡을까?”

서진이 조용히 웃으며 속삭였다.

“지금껏, 약자를 왜 도왔겠어요? 돈도 되지 않고 힘들기만 한 일인데요. 세상에 목적 없는 호의 없다고 뭔가 꿍꿍이가 있지 않겠어요?”

“……!”

여동수 의원의 눈이 반짝였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는 법.

서진의 한마디에 이두진 변호사가 정계를 꿈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짓이다.

서진은 여동수 의원을 살려 둘 생각이 없다.

적당히 이용하다가 교도소로 보낼 계획, 이두진 변호사는 그 역할에 걸맞는 사람.

이미 서진과도 이야기가 다 되어 있다.

이두진 변호사는 결정적인 순간에 등을 돌릴 거다.

‘그때까지는…… 내 지시를 따라라.’

백기호 의원의 손바닥에서 놀아날 생각은 없다.

모든 것은 서진의 뜻대로 움직여야 한다.

서진의 날카로운 눈빛이 보일 때, 여동수 의원이 테이블에 올라온 이두진 변호사의 명함을 콱 움켜쥐었다.

미끼를 문 거다.

“연락해 보지. 그런데, 거래라고 했지? 그럼, 자네가 원하는 것은 뭔가?”

서진은 백기호 의원의 약점을 얻고 싶었지만, 그건 입에 담지 않았다.

놈은 정치인이다.

지금은 백기호 의원과 등을 돌리고 있지만 언제 다시 손을 잡을지 모른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원수가 되는 곳이 정치 판.

그 비열한 곳을 노리려면.

“실적 하나 얻고 싶습니다.”

“실적?”

“네, 스타가 되어 보니 나쁜 기분이 아니더라고요. 이번 기회에 자리매김하고 싶습니다.”

놈은 지금 야당의 동료 의원들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그들의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겠지만, 그들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무엇인가를 던져 줄 거다.

서진은 그 무엇인가 역시 여동수 의원의 개목걸이로서 이용할 생각이다.

놈이 동료 의원의 치명적인 것을 검찰에 밀고했다는 사실.

그것은 꽤 훌륭한 무기가 될 예정이다.

그리고 이번 역시 서진의 예상대로였다.

“기다려. 곧 연락을 주도록 하지.”

***

서진은 여동수 의원의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이번엔 국회의원.’

여동수 의원도 서진의 손바닥 위에 올랐다.

검사와 언론 그리고 국회의원.

하지만 아직 모자라다.

고작 검사 몇 명과 찌라시 언론, 국회의원 하나로 세상을 뒤흔들 수는 없다.

세상 모든 것을 손에 넣으려면 더 많은 것을 쥐어야 한다.

계단을 내려가던 서진은 휴대폰의 진동을 느꼈다.

이두진 변호사였다.

-몸이 달았나 봐요. 바로 연락 왔네요. 흐흐.

여동수 의원은 서진이 나가자마자 이두진 변호사에게 연락했다.

-적당히 공천 노리는 척 받아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네, 고생하세요.”

서진은 휴대폰을 품에 넣은 후 건물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1층의 지상 주차장에 도착, 차에 오르며 다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아버지, 바쁘세요?”

아버지에게 거는 전화.

며칠 전, 진영과 나눴던 대화의 일부를 전해야 할 것 같았다.

어머니는 모르게, 아버지에게만.

-아, 괜찮아. 왜? 무슨 일 있어?

“오랜만에 아버지랑 밥 먹고 싶어서요.”

-그래? 그럼, 회사로 올래?

“회사요?”

아버지의 회사는 부담스러웠다.

순간, 서진의 머릿속에 아버지 회사에 들렀을 때가 스쳤다.

광고판에 서진의 인터뷰가 쉬지 않고 흐르며 로비의 책꽂이에는 서진에 관련된 신문이 준비된 곳.

그것만으로도 섬뜩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 보다 지금이 더 심각할 거라는 거다.

최근 9시 뉴스부터 모든 뉴스의 메인이 서진이었다.

타이틀은 낯 뜨거웠고 대문짝하게 실린 얼굴은 부끄러울 정도였지만 아버지가 놓칠 리 없다.

집에도 박스가 쌓여 가는 중이다.

회사의 로비가 멀쩡할 가능성은 낮다.

‘아니야, 더 심하지는 않겠지.’

서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회사다.

아버지는 직원이 곧 주인이라 말씀하시는 분이다.

그런 분이 로비를 당시보다 더 사적인 용도로 사용할 리 없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래서 회사로 갈까 생각했지만 결국 아버지를 믿을 수 없었다.

“아뇨. 그때 식사했던 한정식집 있잖아요? 바로 그리 갈게요.”

-아…… 회사로 오는 게 아니라?

“네.”

-그래…….

서진은 아버지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이 착각이었기를 바랐다.

***

식사 자리는 지난 번, 회사에 왔을 때 아버지와 들렀던 한정식집이었다.

아버지가 물티슈로 손을 닦은 후 입을 열었다.

“왜?”

“그냥 궁금해서요.”

혹시나 해서 물었다.

만약 검찰이나 국세청이 회사를 털기 시작하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서진이 권력에 가까워질수록 아버지가 표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표정은 담담했다.

“건설 현장에 버려진 철근만 주워가도 수십억이야. 현장 일이라는 게 그래. 항상 변수가 있어. 여기 메꾸고 저기 바르고, 이것저것 버리다 보면, 지금껏 공구리와 함께 파묻힌 돈만 해도 엄청나겠지.”

문제가 있다는 것.

서진의 표정이 심각해지자 아버지가 끌끌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회사 일은 신경 안 써도 돼. 넌 계속 나쁜 놈들이나 때려잡아. 내가 너 보는 맛으로 산다. 하하하.”

아버지는 걱정하지 않고 있다.

김영준 총장을 믿는 것인지, 아니면 큰 문제는 없을 거라는 낙천적인 성격인지.

하지만 서진은 달랐다.

아무도 모르게 아버지 회사를 알아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약점은 없어야 하는 거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음식이 들어왔다.

아버지와 오랜만에 마시는 술.

한 잔 두 잔 오가며 즐거운 이야기를 꽃피웠다.

그리고 서진이 아버지의 잔을 채우며 이곳에 온 진짜 목적을 입에 담았다.

“윤환이 형이 곧 돌아온다고 들었는데요. 어떻게 하실 거예요?”

“뭘?”

“회사요.”

“어쩔 수 있나, 법무팀에 자리 하나 만들어 두라고 했어.”

아버지 역시 김윤환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선을 넘는 작은어머니의 행동을 계속 지켜볼 수는 없었다.

그 피해는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동생인 김영준 총장이 고스란히 받기 때문이다.

“진영이가 윤환이 형 일로 식당을 그만둘 생각까지 했었어요.”

아버지의 행동이 뚝 멎었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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