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단 하나. -(3) >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던 진유경 형사를 향해 서진이 명함 하나를 꺼내 테이블에 올리며 말을 이었다.
“생각이 있으면 이쪽으로 연락하세요.”
진유경 형사의 눈동자가 명함으로 옮겨졌다.
이두진 변호사의 명함.
그 이름은 진유경 형사도 들어 본 적이 있다.
재벌과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는 변호사.
신일승의 구속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
‘김서진 검사와 이두진 변호사?’
진유경 형사의 머릿속에 몇 가지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어떤 전략으로 신일승을 잡아 처넣었는지 흐릿하게 보였다.
진유경 형사가 주먹을 꽉 쥐었다.
두 사람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다.
순간 ‘어쩌면?’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된다.
신마그룹에 비하면 바위 앞의 계란이다.
“위험해요.”
그런데 서진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아, 괜찮아요.”
웃기는 소리지만, 서진은 이미 극단적일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다.
사이비 종교의 신도가 아직도 서진을 노리고 있다.
서진의 타깃 수사에 돈 장사를 못 하는 사채업자의 큰손이 칼을 가는 중이다.
그리고 마약 상인, 그들은 서진 덕에 룸살롱과 클럽이라는 판매 루트를 잃었다.
마지막으로 왠지 모르게 꺼림칙한 작은어머니까지.
“사방에 지뢰가 깔려 있는데 거기에 지뢰 하나 더 던져둔다고 티도 안 나요.”
“······!”
“그리고 지뢰밭을 지났을 때, 천국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지뢰밭의 지뢰를 모두 치우면 그곳은 서진의 땅이다.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곳.
“함께했으면 좋겠네요.”
*
잠시 후, 서진은 커피숍을 떠났다.
진유경 형사는 혼자 남았지만 그 시선은 여전히 테이블에 놓인 명함을 향해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서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앞으로 연락은 이두진 변호사를 통해서 하죠. 형사님과 제가 연락하는 게 알려져서 좋을 것은 없으니까요.
진유경 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명함을 손에 쥐었다.
* * *
그 시각, 서진은 차에 올라 중앙지검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핸들을 틀고 있는데 휴대폰이 부르르 진동했다.
도광현이다.
핸들에 붙은 통화 버튼을 누르며 서진이 입을 열었다.
“어.”
-지금 도착했는데요.
도광현은 미국으로 향했다.
가상의 인물 제이든 김을 조금 더 실체화시키기 위해서다.
-그런데 검사님의 예상대로 신지연 사장이 움직인 것 같아요.
신지연이 제이든 김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서진은 신지연에게 가진 지분을 믿으라고 말했지만 그녀가 가만히 있을 사람은 아니다.
제이든 김은 신마건설의 지분을 집어삼킬 거인이며 신마그룹은 집안 전체가 의심병 환자.
제이든 김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과정은 당연한 거다.
“걸릴 가능성은?”
-제로죠. 제가 바로 도광현입니다. 하하하!
“그래, 최고의 사기꾼이지.”
-검사님? 제가 사기꾼이면 검사님은······.
서진은 도광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웃으며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또 휴대폰이 진동했다.
도광현인가 싶어서 확인하지 않고 통화 버튼을 눌렀는데······.
-이두진입니다.
이두진 변호사였다.
“아, 네.”
-지금, 진유경 경장에게 연락이 왔어요.
핸들을 잡은 서진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진유경 형사의 선택은 빨랐다.
진유경 형사는 서진과 손잡고 신종서를 부수기로 결심한 거다.
서진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신종서를 밟은 후 신마그룹의 경영권을 놓고 신명진과 신지연이 싸우게 한다.
싸움에는 먼지가 번지고 피가 흐르기 마련, 그 뒤를 밟으면 두 사람 모두 구속시킬 수 있다.
그때까지 제이든 김이라는 가상의 인물로 신마그룹의 이사진을 포섭하고 그룹에 매달려 있으면······.
‘손에 넣을 수도 있어.’
거기에 김영준 검사장이 가지고 있을 권력까지 모두 차지하면, 대한민국 역사상 손에 꼽는 강자가 될 수 있다.
서진은 서준경처럼 병신같이 죽지 않을 거다.
한 번뿐인 인생, 운 좋게 다시 살게 된 삶, 이왕이면 정점에 오르고 싶었다.
-그럼, 진유경 경장과 함께 신종서의 뒤를 밟고 검사님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오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고생······.”
그때였다.
차창 밖으로 뭔가 쑥 들어오는 게 보였다.
서진이 기겁하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이이익!
브레이크 소리가 요란하게 나며 차가 멈춰 섰다.
다행히 뭔가와 부딪치지는 않았다.
하지만 확인은 당연한 것, 서진이 다급히 내려 밖을 살폈다.
40대 중반의 남자가 쓰러져 있는 게 보인다.
행색은 남루하며 머리도 제대로 감지 않은 것 같다.
“······괜찮으세요?”
서진이 질문했지만 대답이 없다.
남자는 놀랐는지 눈을 깜빡이며 눈동자만 굴린다.
그 시선이 블랙박스를 보고 있다.
서진은 남자에게 다가가며 주변을 슥 확인했다.
4차선 도로, 차량은 보통 50~60km의 속도로 달리는 곳.
횡단보도는 멀리 있다.
무단 횡단을 하려 한 것 같다.
서진이 남자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다정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혹시 모르니까 병원에 가 보시겠어요?”
“아, 아니요. 괜찮습니다.”
남자의 입에서는 역할 정도로 지독한 알코올 냄새가 풍겨 왔다.
그리고 남자가 서진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이다.
서진의 시야가 회색으로 물들었다.
*
“······씨의 부탁으로 죽이려고 했던 검사 맞지?”
“네.”
“하······ 웃기네. 살았으면 얌전히 있어야지, 또 까불고 있어?”
창문이 커튼으로 가려진 어둠 속.
한 남자와 여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의 내용은 매출의 급감과 자신들의 대리점이 타깃으로 찍혔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남자는 말했다.
“죽여.”
“······이번에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쉽잖아?”
“그놈이 언론 플레이를 하고 있습니다.”
여자가 신문을 테이블에 올리자 남자가 주워 들었다.
커튼 사이를 뚫고 들어온 작은 빛으로 신문의 내용이 보인다.
-김서진 검사, 사채와의 전쟁
남자의 눈이 삐뚤어질 때, 여자가 말했다.
“그때는 피라미였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죽이면 우리가 의심받습니다.”
이들은 서진이 쫓는 사채업자 일당이다.
서진은 언론을 통해 강력히 도발했고 그 덕에 이들은 함부로 나설 수 없었다.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낄낄낄 웃었다.
“그럼 죽이게 해.”
“······?”
“교통사고 일으켜서 그놈이 사람을 죽이게 하라고. 어렵지 않잖아? 지켜보고 있다가 적당한 곳에 사람을 심어 둬. 그리고 놈의 차가 오는 순간 달려가라고 하는 거지.”
“······!”
“갑자기 뛰어나오면 F1 선수라 해도 못 피해. 꽝! 하고 사람을 칠 수밖에 없어. 검사가 교통사고로 사람을 죽인 거지. 아, 죽지 않아도 괜찮아. 다쳐서 병신만 돼도 재밌을 거야. 언론 준비하고 바로 시작해.”
여자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울리며 방을 벗어나려 했다.
그때,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히 해. 지금 손해 본 것만 해도 수천억이야. 회장님께서 화내시기 전에 끝내.”
“알겠습니다. 배우는 적당히 고르겠습니다.”
“그건 알아서 하고. 돈이 필요하면 그쪽 테이블에서 들고 가.”
여자의 시선이 테이블로 틀어졌다.
그 위에는 방금까지 도박을 벌인 것처럼 수북이 현금이 쌓여 있었다.
여자가 테이블로 또각또각 걸어갔다.
그리고 담배를 손에 들며 말했다.
“이거면 충분할 것 같은데요. 죽기 전에 담배 한 대는 피우게 해 줘야죠.”
*
사이코메트리의 상황이 끝났다.
몇 가지 정황이 보인다.
서진을 씹어 먹기 위해 기회만 보고 있는 사채업자.
돈을 받고 차에 뛰어든 사내.
서진은 물끄러미 앞의 사내를 바라봤다.
‘일부러 뛰어들었다고?’
만약 스치기라도 했다면 이 사내는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을 거다.
차량은 운 좋게 멈춰 섰다.
“다치신 곳이 없어도 혹시 몰라요. 병원에 가 보시죠.”
“아뇨. 정말 괜찮습니다. 진짜요. 술을 많이 마셨더니, 이것 참······.”
남자는 그 말을 끝으로 후다닥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서진이 옷깃을 잡았다.
“타세요.”
웃으며 하는 말이지만 목소리가 섬뜩했다.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
잠시 후, 서진의 승용차.
조수석에 탄 남자가 불안하게 입을 열었다.
“······어디 가시는 거죠? 이쪽에는 병원이 없는데요.”
“아, 잠깐 회사 좀 들어가려고요.”
“회사요?”
남자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창밖을 보는데.
‘어?’
분명 회사로 들어간다 말했다.
그런데 그곳이 중앙지검이라니.
남자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저, 진짜 괜찮아요. 스치지도 않았어요. 놀라서 넘어진 거니까, 그러니까······.”
서진은 묵묵히 액셀을 밟았다.
*
사무실로 들어온 서진은 남자를 의자에 앉혔다.
남자는 당황한 눈을 숨기지 못했다.
난데없이 검찰에 끌려온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그때 서진이 그 앞에 마주 앉으며 친절한 미소로 물었다.
“누가 시켰죠?”
“······네?”
“내 차에 뛰어들라고 지시한 사람요.”
검사의 사무실에 들어온 남자는 삽시간에 얼굴이 뻣뻣해졌지만 입을 열지 않았다.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거칠게 숨을 내뱉을 뿐이다.
시선을 피하더니 급기야 고개를 숙인다.
대답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러자 서진의 시선이 곧바로 수사관에게 옮겨졌다.
“수사관님, 서울 전 지역 CCTV 영상을 준비해 주세요. 그리고 실무관님은 이 남자의 신상 파악을 부탁드릴게요.”
“네.”
수사관과 실무관이 행동했고 남자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한숨만 푹푹 내뱉었다.
서진은 자리에 앉았다.
블랙박스에서 빼낸 메모리 카드를 노트북에 연결하자 화면이 들어온다.
방금 남자와 사고가 날 뻔한 장면.
‘역시.’
보도블록에 서 있던 남자는 초조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시선은 정확히 서진의 차를 향해 있었다.
그리고 서진의 차가 가까이 오는 순간 담배를 집어 던지며 눈을 질끈 감더니 몸을 날렸다.
서진이 영상을 되감았다.
남자는 몸을 날리기 전에 아주 잠깐이지만 멈칫거렸다.
‘일반인이야.’
보험 사기꾼이라면 그대로 몸을 날렸고 서진의 차와 부딪쳤을 거다.
하지만 남자는 무서워하고 있었다.
서진이 고개를 저으며 끌끌 웃었다.
‘방검복을 입고 다니는 것도 귀찮은데······.’
서진은 습격에 대비해 방검복을 항상 착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교통사고까지 조심해야 한다.
‘일단 지뢰 하나는 빨리 제거해야겠어.’
남자의 뒤에 누가 있는지는 사이코메트리를 통해 봤다.
바로 사채업자.
지금을 시작으로 꼬리를 밟고 올라가면 그 몸통을 만날 수도 있을 거다.
서진이 고개를 들고 실무관의 앞에 앉은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는 실무관의 질문에 순순히 답하고 있었다.
“마흔여섯요.”
남자는 석 달 전 사업에 실패하고 거리에 나온 노숙자.
조용히 남자의 대답을 듣던 서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언뜻 스친 생각을 물었다.
“저기요. 혹시, 사채를 끌어다 썼어요?”
다른 대답은 넙죽넙죽하던 남자가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서진의 질문에는 입을 다물었다.
침묵은 긍정의 표시.
서진은 남자와 사채업자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
잠시 후, 수사관이 USB를 들고 들어왔다.
서진이 남자를 향해 손짓했다.
“잠깐 이쪽으로 오세요.”
남자는 죽을상을 지으며 서진의 옆에 섰다.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그냥 술에 취해서 횡단보도인 줄 알고······.”
서진은 남자의 말을 무시하며 사고가 날 뻔한 지점에 있던 CCTV 녹화 영상을 열었다.
화면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남자가 보인다.
“다시 물어볼게요. 누구의 지시를 받은 거죠?”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서진이 마우스를 움직여 영상을 뒤로 넘겼다.
영상이 되감기며 남자는 뒷걸음질 치는 것처럼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서진은 곧장 다음 CCTV 영상을 클릭했다.
그렇게 계속해서 남자의 이동 경로가 드러났다.
남자는 눈을 감고 “끔······.” 하고 고통스러운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사이코메트리의 능력이 없었다면 단순 이벤트로 치부했을 거다.
사고가 날 뻔한 상황을 피했다며 운이 좋았다며 넘어갔을 게 분명하다.
놈들도 서진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 예측하며 이놈을 불렀다.
하지만 사이코메트리는 사기적인 능력이다.
그리고 노트북의 영상이 멈췄다.
남자가 누군가를 만나고 있다.
그 누군가가 남자에게 담배를 전해 주며 뭐라 말하고 있다.
서진이 손가락으로 상대를 쿡 찍으며 물었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누구죠?”
< 일단 하나.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