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113화 (113/250)

< 똥 묻은 개. -(1) >

잠시 후, 서진이 빠져나갔다.

김영준 검사장이 담배를 물며 씁쓸히 웃었다.

‘...정말 저 반만 됐어도.’

서진의 모습은 김윤환에게 바라고 있던 거다.

상대가 누구라 해도 위축되지 않고 거침없이 행동하는 실행력, 게다가 그 자신감을 받쳐 주는 실력.

서진은 어디에도 기대지 않고 스스로 길을 찾아 나가는 중이다.

하지만 김윤환은 달랐다.

쉬운 길만 찾는다.

김영준 검사장의 권력에 기대려 하거나 꼼수를 고민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려운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징징대며 재정건설의 자리를 탐내고 있다.

‘하...’

서진과 김윤환의 모습을 겹쳐 생각하던 김영준 검사장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잘 못 키웠어.’

***

서진은 자신의 사무실에 들어와 있었다.

책상 위에 놓인 서류, 부운 교의 교단에 들어가 가져온 증거를 확인하는 중이다.

가장 먼저.

‘횡령.’

신지석은 간판만 달아둔 교회를 만들었고 그곳에 자금을 숨겼다.

노숙자 등의 이름을 사용해 많은 대포 통장을 만들어 자금을 세탁했다.

‘이걸로 5년.’

하지만 5년으로 끝낼 생각은 없다.

이번에는 노트, 권력자에게 뇌물을 꽂아 준 장부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노트를 펼쳐 읽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용하기는 힘들 거야.’

권력자가 엮이면 진흙탕 싸움이 된다.

놈들이 장부를 보며 외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정치 음모입니다! 거짓이에요!

어쩌면 모든 증거가 휴지 조각이 되어 사라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 시대의 괴물들은 충분히 그럴 힘을 가지고 있다.

‘양아치 새끼들.’

지금껏 서진이 만난 대다수의 정치인은 비슷했다.

국민이 갈려 나가는 것을 보면서 껄껄 웃었다.

하지만 자신의 손에 박힌 작은 가시에는 눈물을 흘리며 아파했다.

놈들은 잃을 게 많은 만큼 겁이 많다.

작은 약점을 가지고 있으면 머리채를 잡고 권력의 계단으로 향할 수 있다.

‘김영준 검사장만 믿고 있을 수는 없어.’

김영준 검사장의 권력은 대단하지만 완성된 것은 아니다.

검사장이 되는 과정에서 많은 적을 만들었고 견제 세력이 존재한다.

특히 이번 사이비 종교 사건을 통해 백기호 의원과 틀어졌을 가능성도 크다.

서진이 책상 서랍을 열고 뇌물 장부를 던져뒀다.

‘이건 내가 사용한다.’

그리고 다음 증거를 손에 쥐었다.

신도 명단, 이소희가 실종자와 사망자를 추려서 보내줬다.

‘의문의 사망자가 32명, 실종자가 47명.’

이들의 죽음을 신지석의 어깨에 올리면 게임은 끝이다.

‘문제는.’

서진의 시선이 옆에 둔 화이트보드로 향했다.

강석룡 변호사와 그 팀원들의 사진이 붙어 있다.

놈들은 열세 명의 변호인단으로 이뤄져 있는 브레인.

‘저쪽은 열세 명.’

하지만 서진은 혼자다.

이번 사건에서는 공판 전담팀이 꾸려지지 않는다.

강석룡 변호사는 법리 다툼보다 법정 뒤에서의 싸움을 즐기는 놈.

검사의 약점을 캐고 비리로 흔들어 먹잇감으로 삼는 데 능숙하다.

그래서 사람이 많을수록 위험하다. 혼자인 게 편하다.

순간, 강석룡 변호사의 얼굴을 보던 서진이 슬쩍 웃었다.

‘어쩌나, 나도 법정 뒤의 싸움을 좋아하는데. 지저분하게 놀아 봅시다. 누가 더 개새끼인지 궁금하네.’

***

법률사무소 J&S.

회의실에 선 강석룡 변호사가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대표님도 이번 사건에 관심 가진 것 알고 있지?”

회의실에 앉은 열두 명의 변호사가 기분 좋은 미소를 그렸다.

승리 후 두둑한 보너스를 기대하는 거다.

“100억짜리 판떼기야. 100억!”

거부들의 상속 싸움이 아니면 쉽게 나오지 않을 금액.

“이 판떼기 우리가 먹는다.”

강석룡 변호사가 양손으로 테이블을 쾅! 지시를 시작했다.

“박성우 변호사! 김서진의 지난 공판을 뒤져 봐. 어떤 식으로 판을 끌어가는지, 세세하게 확인해.”

“네!”

“그리고 김영현 변호사! 검찰에서 마무리할 증거는 살인과 실종이야. 주도자였던 놈이 도주했다고 하니까, 그놈 확보해. 경찰이 잡기 전에 우선적으로 손에 넣어. 풀어주는 것은 재판이 끝난 뒤야!”

“네!”

지시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판사의 뒤를 캐! 만나서 밥을 먹고 술을 먹여. 마지막으로 룸살롱으로 끌고 가. 그때, 장 변호사는 판사의 아내를 만나. 그리고 리스로 벤츠 하나 뽑아줘. 거절하면, 그 장인어른, 장모를 찾아 가. 사돈의 팔촌, 누구라도 받을 때까지 영업할 수 있도록 해!”

“......!”

“넌 김서진의 개인 자산을 파고들어. 만나는 모든 사람을 파악해. 유치원 때부터 지금까지 학교 폭력 등에 연루된 게 있는지 확인해! 특히 여자관계, 그쪽을 중점적으로 쑤셔. 그놈 얼굴이 반반하잖아? 분명히 문제 있을 거야.”

“......”

“그리고 신도율 변호사, 김서진의 집이 재정건설이라고 했어. 그쪽 털어봐. 공사판에 먼지 안 날리는 경우는 없잖아?”

강석룡 변호사는 생각했다.

재판은 승리를 확정한 후 들어가는 거라고.

탈탈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없다고.

강석룡 변호사가 뒷짐을 쥔 채 창가로 걸어가며 계속 말했다.

“김서진은 운이 좋은 검사로 유명해. 하지만 운이란 것은 언제까지 이어지는 게 아니야. 언젠가는 끝이 나지. 그게 지금이야.”

“......”

“우리는 이번 공판에서 그놈을 발가벗길 거야.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빽을 믿고 평탄하게 살아온 놈의 삶에 밑바닥을 보여줄 거야!”

강석룡 변호사의 목소리가 이어지는 중이었다.

그때, 신도율 변호사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그는 강석룡 변호사에게 재정건설을 조사하라고 지시받은 사람이었다.

신도율 변호사가 주변의 눈치를 보며 휴대폰을 들었다.

메시지가 보인다.

-식사 한번 하죠.

신도율 변호사가 ‘누구지?’라고 생각할 때였다.

-김서진입니다.

눈이 부릅떠졌다. 그리고 서진에게 연락 온 것을 보고하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이다.

-딸이 부정 입학을 했네요?

신도율 변호사의 행동이 멎었다.

눈동자가 기울어진다.

또 메시지가 들어왔다.

-얼굴도 예쁘던데, 기자들이 좋아하겠어요. 1분 안에 연락 오지 않으면 던집니다.

신도율 변호사는 악마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다급히 답 메시지를 보냈다.

-어디서 볼까요?

그때, 강석룡 변호사의 목소리가 벼락같이 들려왔다.

“신도율 변호사, 집중 안 해!”

“아, 죄송합니다.”

신도율 변호사는 서둘러 휴대폰을 품에 숨겼다.

***

그 시각.

서진은 신도율 변호사에게 온 메시지를 확인 후 시선을 들었다.

이곳은 진영이 일하는 호텔 로비에 있는 커피숍이다.

‘대단한 놈이야.’

재정건설의 규모가 재벌급은 아니다.

하지만 평생 놀고먹은 후 원하는 것을 다 사고도 남을 만큼의 돈이 있다.

그런데, 그 집의 아들이 호텔 주방에서 일한다.

그것도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프라이팬을 잡았다며 좋아하고 있다.

그렇게 진영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얼굴이 따끔거리며 주변의 시선이 느껴졌다.

지나는 사람들이 힐끔힐끔 서진을 보고 있다.

그 목소리도 들린다.

“맞지?”

“어, 맞아. 김서진.”

며칠 전부터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전에도 언론에 얼굴이 실렸던 적은 있지만 브리핑하는 검사의 얼굴을 유심히 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번 사이비 종교 사건을 시작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단독행동으로 교주와 목사를 잡아 온 게 히어로처럼 보였나 보다.

좀비 영화의 기사에 ‘우리나라는 김서진이 좀비 숙주 잡아 올 거라 괜츈.’이라는 댓글이 달려 있을 정도다.

‘젠장.’

앞으로 모자를 쓰고 다녀야 하나 생각하며 커피를 손에 쥘 때였다.

진영이 의자를 빼내며 서진의 앞에 앉았다.

서진이 진영의 앞으로 시켜둔 커피를 밀어두며 물었다.

“바쁜데 불러낸 거 아니야?”

“아, 지금은 브레이크 타임. 괜찮아.”

진영의 얼굴은 집과 달랐다. 일하던 중이라 그런지 항상 밝았던 표정이 지쳐 있다.

진영이 커피를 입에 대며 말했다.

“그런데, 왜? 어쩐 일이야?”

“물어볼 게 있어서 왔어.”

“어떤 거?”

“내 과거. 고등학교, 중학교. 뭐하던 놈이었어? 만나던 여자는 있었나?”

서진은 강석룡 변호사를 상대해야 한다.

놈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를 찾아 상대를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치졸한 놈.

문제는 서진 자신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모른다.

자칫 모르던 과거가 변수가 되어 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

그래서 그걸 묻기 위해 진영을 찾아왔다.

진영이 서진의 심각한 표정을 보며 팔짱을 꼈다.

그리고 ‘과거라...’ 중얼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검사 되고 나서 윤환이 형이랑 놀았던 것은 알지?”

“어.”

술을 먹고 다니며 금수저 놀이를 했던 것.

하지만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인다.

지금의 서진이 아니라 원래의 서진, 그는 김윤환의 뒤를 밟으려는 목적이 있었다.

목적이 있는 놈이 자신의 치부를 질질 흘리고 다녔을 리는 없다.

진영이 커피를 내려두며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학교 다닐 때 형은... 문제가 많았어.”

서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검사까지 되었다면 공부만 하고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대충 어떻게 살았는지 확인만 하려고 했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진영의 대답에 따라 강석룡과의 싸움을 다시 생각해봐야 할 수도 있다.

진영이 말을 이었다.

“여자도 좋아했어. 싸움도 많이 했고. 부모님이 그때 얼마나 걱정하셨는데...”

예상 밖의 말이다.

서진이 고민 가득한 얼굴로 진영을 바라봤다.

“...정말이야?”

그런데, 진영이 갑자기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농담이야. 농담. 표정 풀어. 학원 끝나면 집에 와서 책만 읽었어.”

“어?”

“아버지가 남자가 일탈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PC방이라도 가라고 책을 찢은 적도 있어. 그때, 나는 형이 야한 만화책 숨겨뒀던 거 말할까 고민했었다니까. 하하하.”

서진이 허탈하게 웃으며 긴장을 풀었다.

다행히 강석룡 변호사가 과거를 뒤져도 나올 것은 없어 보였다.

***

그날 밤. 강남의 한 아파트.

강석룡 변호사가 차에서 내렸다.

휴대폰이 쉬지 않고 울린다.

강석룡 변호사가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으며 전화를 받았다.

“김서진이 조우재와 자주 만난다고? 됐어. 그 새끼는 털 것도 없어. 개털이야. 가족 중심으로 털어봐. 아, 김영준 검사장은 됐고. 그쪽은 잘 못 했다가 우리가 위험해.”

강석룡 변호사가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가장 최상층으로 오르며 통화를 종료했다.

‘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곧 현관문 앞에 섰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에 들어가는데 아내가 나와 있다.

그런데, 아내의 표정이 밝다.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아? 가방 샀어?”

“손님 왔어요.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요?”

“손님? 누구?”

아내가 강석룡 변호사의 팔을 끌며 입을 열었다.

“그 유명한 검사 있잖아요. 이름이 뭐더라?”

“...검사?”

“당신 통해서 J&S에 들어갈 수 있는지 묻고 싶어서 왔대요. 선물도 좋은 거 사 왔던데요?”

강석룡 변호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머릿속에서 유명한 검사들의 얼굴이 휙휙 스쳤다.

‘누구지?’

J&S의 요직에 들어가려면 중앙지검 부장검사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게 아닌 자들은 이렇게 찾아와 뇌물을 바치며 손을 비빌 수밖에 없다.

“당신은 올 필요 없어.”

강석룡 변호사는 아내를 막은 후, 응접실로 향하는 긴 복도를 걸었다.

그런데.

“아이고, 이제 오셨습니까? 퇴근이 늦으셨네요?”

강석룡 변호사를 반긴 것은 서진이었다.

강석룡 변호사의 눈이 가늘어졌다.

“...김서진 검사?”

“앉으세요. 변호사 생활도 쉽지 않은가 봐요?”

서진이 서글서글한 목소리로 물었지만 강석룡 변호사는 경계를 풀지 않고 조용히 물었다.

“잠깐, 정말 우리 회사에 들어오고 싶어서 온 건가?”

서진이 끌끌 웃으며 손을 저었다.

“에이, 당연히 아니죠.”

“그럼?”

“남의 가족 건들면 내 가족도 당할 수 있다는 걸 가르쳐 주고 싶어서 왔어요.”

“뭐?”

“아들이 미국에서 유학 중이죠? 얼마 전에 한국 들어왔는데, 혹시 모르셨나?”

서진이 가방에서 사진을 꺼내 테이블 위에 던지며 말을 이었다.

“루프탑 수영장이 있는 호텔인데요. 아빠가 이렇게 늦게까지 고생하며 돈 버는 걸 모르는지, 옥상을 싹 빌렸네. 아주 불효자야.”

“......!”

“여기 이 애들, 연예인 연습생이에요. 미성년자인지 성인인지 모르겠지만... 마약은 안 했나 몰라?”

강석룡 변호사의 얼굴에 분노가 확 솟아올랐다.

서진을 죽일 것처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너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무슨 짓은 당신 아들이 하고 있고.”

“이 새끼야...”

“욕은 하지 마시고.”

“야!”

“소리도 지르지 마.”

서진의 얼굴이 싹 바뀌었다. 순했던 얼굴이 사라지며 살벌한 미소만 남았다.

서진이 강석룡 변호사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섰다.

그리고 강석룡 변호사의 재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입을 열었다.

“강석룡 변호사님, 남의 먼지 털 때는 자기 먼지 털리는 것도 각오해야죠. 이번 재판의 목표, 신지석의 무기징역은 당연한 거고... 그쪽 한번 잡아 보려고 하는데.”

“......!”

“내가 검사, 형사는 잡아봤어도 변호사는 아직 못 잡아봤거든.”

강석룡 변호사의 눈에 핏발이 섰다.

이런 무시를 당해 보는 것은 처음이다.

검사고 판사고 굽실대는데, 새파랗게 어린놈의 입에서 저딴 말이 나오다니.

하지만 서진은 놈의 눈빛을 무시했다.

화를 참기 위해 주먹을 꽉 쥐고 있는 강석룡 변호사를 향해 몸을 기울이며 말을 이었다.

“만약에 우리 가족 건들면, 당신만 감옥에 가지 않을 거야. 당신 아들을 옆방에서 보게 될 거야. 감옥에서 효도 받고 싶지 않으면, 우리 페어플레이 합시다.”

“......!”

서진이 싱긋 웃으며 강석룡 변호사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그리고.

“사모님, 잘 놀다 갑니다!”

큰 목소리로 외치며 강석룡 변호사를 스쳤다.

그렇게 집을 빠져나갔고 곧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강석룡 변호사가 소리를 질렀다.

“이 개새끼가!”

강석룡 변호사가 테이블에 놓인 물건을 사정없이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집어 던질 게 없자 자신의 머리를 뜯으며 악을 질렀다.

“으아아악!”

< 똥 묻은 개.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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