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칫국부터 마시면. -(3)>
“...네?”
진희라는 가명을 쓰는 여자, 그녀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손에 들고 있던 담배가 길게 타들어 가는 것도 모른 채, 눈만 깜빡인다.
하지만 잠시였다.
그녀가 희미하게 웃으며 입을 연다.
“아뇨.”
그녀는 생각했다.
‘몇 달 전의 일이야.’
주민아가 사라지기 전, 마지막 테이블에 함께 들어간 것은 맞다.
하지만 잡아떼야 한다.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모르지만 검사와 엮여 좋을 일은 없다.
“전 아니에요.”
그녀가 담뱃재를 털며 고개를 저었다.
끝까지 모른척하면 지나갈 것이라 믿었다.
‘알 수가 없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시선을 들어 서진을 바라봤다.
그런데.
‘어?’
서진이 어이없다는 듯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웃고 있었다.
그리고.
“이 사이트 알지?”
서진이 휴대폰을 꺼내 그녀의 앞으로 밀어뒀다.
화면을 본 그녀의 눈빛이 확 커졌다.
화류계 여우들의 모임이라는 이름의 사이트.
서로 힘든 하루를 공유하자는 의미로 만들어졌지만 실상은 하루에 얼마 벌었는지, 테이블은 몇 개를 뛰었는지 자랑하는 곳.
“이, 이걸 어떻게?”
이 바닥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비밀리에 활동하는 사이트다.
외부인이 알 수 없는데...
그녀의 황당한 표정을 보던 서진이 한숨을 내뱉었다.
“검찰이 너희가 노는 사이트도 모를 줄 알았어? 띄엄띄엄 봤나 보네? 대통령의 먼지도 주워 담는 게 우리야. 그런데, 이런 냄새 나는 곳을 내버려 둔다고? 멍청한 생각하지 마.”
서진이 화면을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그러자 화면이 바뀌며 주민아의 게시글이 보인다.
-오늘의 마지막 턴. 젤 좋아하는 진희 언니와 함께! 그런데, 한 놈이 두 명을 불렀음. 변태인가???
주민아는 일기처럼 하루, 하루를 적어뒀다.
그리고 이 게시 글이 마지막이다.
서진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가입할 때 사용한 이메일, 주민아의 것이었어. 그럼, 다시 묻지. 주민아가 마지막으로 손님을 받았을 때, 같이 들어간 게 너였지?”
서진은 이동영 수사관을 통해 최근 실종된 여성을 집요할 정도로 쫓았다.
그리고 드디어 윤민우의 그림자를 밟게 됐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이게 마지막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
“끝까지!”
서진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그리고.
쾅! 쾅! 쾅!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세차게 내리쳤다.
그녀가 움찔거릴 때, 서진이 차가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사람이 실종됐어. 며칠 전까지 너와 함께 웃던 사람이야. 그런데, 끝까지 발뺌을 해? 그래, 대답하지 않아도 좋아. 어차피 이 룸살롱의 장부에는 기록되어 있을 거니까. 그리고 기억해. 장부를 뒤져서 주민아와 네 이름이 함께 담겨 있다면 너도 공범이야.”
서진은 그녀를 잡아먹을 것처럼 노려봤다.
그녀의 얼굴이 허옇게 질려갔다.
벼랑 끝에 몰린 것을 느낀 거다.
결국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마, 맞아요. 같이 들어갔어요.”
서진이 휴대폰의 녹음 기능을 켰다.
그녀에게 녹음이 되어 간다는 것을 보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주민아가 들어간 마지막 테이블, 함께 있었다고?”
“...네.”
“손님은 한 명이었고?”
“네.”
“그 손님의 얼굴이...”
서진이 윤민우의 유튜브 방송을 검색해서 그녀에게 보였다.
“이 사람 맞아?”
그녀가 윤민우의 얼굴을 살피다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이 사람이에요. 혼자 와서 우리 둘을 불러놓고...”
그녀는 지금껏 입을 닫고 있었다.
하지만 한번 열리자 당시의 정보를 마구 쏟아낸다.
“제가 요즘 손님이 없어서 단골 만들어 보려고 애를 썼어요. 매너도 좋았고 인상도 좋아서요. 민아는 저를 서포트했고요. 그런데, 마지막에 민아를 선택했어요.”
“어디로 갔지?”
“...그것까지는 몰라요.”
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서진이 휴대폰을 들고 이소희의 연락처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증언 받았어. 마지막 손님과 나간 후 연락 두절이야. 압수 수색 영장 받아줘. 용의자를 특정하려면 장부하고 카드 내역을 확인해야 하는데, 이놈들이 내놓을 리 없잖아. 홍천에 있는 여우 싸롱이야.”
지금껏 여자를 회유한 이유다.
증언보다 중요한 증거, 장부를 손에 얻으려면 영장을 받을 명분이 필요하다.
그리고 압수 수색 영장이라는 말에 그녀의 얼굴이 썩어들어갔다.
서진이 통화를 종료하자 창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 죽어요.”
이 바닥에 있는 여성들.
손님에게 돈을 뜯기거나 구타를 당해도 입을 열지 못하는 상황이 있다.
가게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가게 뒤에 있는 조직 폭력배가 무서워서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 너만 입 다물고 있으면 내가 검사인 것 아무도 몰라.”
“......”
“그리고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이 지역의 모든 깡패가 사라질 거야. 믿어. 그리고...”
서진이 슬쩍 웃으며 메뉴판을 건드렸다.
“의심받기 싫으면 이 가게에서 제일 비싼 술이나 시켜.”
말과 함께 지갑에서 돈을 꺼내 테이블 위에 툭 던졌다.
“남은 돈은 너 갖고.”
믿을 수밖에 없는 돈이었다.
그녀가 멍한 눈으로 돈을 향해 손을 뻗을 때 서진이 말을 이었다.
“증인 신청하면 멀쩡한 옷 입고 나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부하기 어려운 액수였다.
*
쾅!
문이 열리고 이동영 수사관이 룸살롱으로 들어왔다.
“검찰입니다.”
가게는 난리가 났다.
“우리는 성매매 같은 거 안 해요! 술도 정상적인 것을 쓰고요!”
마담이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사관들은 마담의 말을 듣지 않는다.
기계처럼 행동한다.
장부를 쓸어 담았고 각종 서류가 착착착 담았다.
그 사이, 서진이 앉아 있는 룸의 문이 벌컥 열렸다.
웨이터가 다급한 표정으로 안을 살폈다.
그리고 긴장된 한숨을 내뱉었다.
“하...”
다행히 진득한 분위기는 없었다.
조용히 술이나 마시는 중이다.
웨이터가 마른 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소, 손님... 오늘은 여기서 끝내셔야 할 것 같은데요?”
“왜?”
서진이 모른 척 고개를 틀었다.
서진의 여유로운 태도에 웨이터는 답답한 심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사정이 있어서요. 뒷문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그리고 술은 나중에 다시 새로 까드릴 테니까...”
“뭐, 알았어.”
서진이 망설이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여성을 향해 능글맞게 손을 흔든다.
“진희야, 나중에 봐.”
그렇게 서진과 웨이터가 떠났다.
혼자 남은 여성은 멍했다.
방금 서진이 보인 표정과 사건을 캐물을 때의 얼굴이 너무 달라서다.
‘뭐야...’
그녀가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차라리 깡패가 낫지.’
직접 마주한 검사는 깡패보다 더 무서웠다.
*
밖으로 나온 서진이 주변을 슥 살폈다.
중형차에 기대고 서서 담배를 피우는 놈이 보였다.
휴대폰을 들고 낄낄거리는 놈.
‘차량 번호가... 저놈이네.’
룸살롱에서 만난 여성이 알려줬다.
저놈이 룸살롱의 운전기사며 그때도 저놈이 운전을 했었다고.
서진이 저벅, 저벅 놈을 향해 걸어갔다.
“저기?”
휴대폰을 보던 운전기사가 고개를 틀어 서진을 바라봤다.
“왜요?”
“주민아 알지?”
“네?”
“실종되기 전에 네가 운전했었다며?”
“...형사에요?”
“검사.”
놈이 확 도망가려 한다.
하지만 서진이 발을 거는 게 빨랐다.
쾅!
놈이 요란하게 넘어졌고 서진이 느긋하게 다가가 팔을 잡아 꺾었다.
놈이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악!”
“도망은 왜 가?”
“팔! 팔!”
“주민아하고 손님이 내린 곳이 어디야?”
“저, 저 앞에 호프집 앞에 내려줬어요! 바로 모텔로 안 가고 술을 더 마신다고 해서요.”
서진이 놈의 팔을 꺾은 상태로 휴대폰을 앞에 내려뒀다.
“그 손님이 이 사람 맞아?”
“맞아요! 이 사람이에요! 동네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확실히 기억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팔! 아악!”
서진이 놈의 팔을 풀어줬다.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놈이 서진의 눈치를 살핀다.
“신분증.”
놈이 곧바로 운전면허증을 꺼내 건넸다.
서진이 휴대폰으로 놈의 운전면허증을 찍으며 입을 열었다.
“나중에 참고인 조사, 부탁 좀 하자.”
“...네.”
서진이 놈을 뒤로하고 자신의 차로 향했다.
운전석에 앉아 휴대폰으로 지도를 검색하며 윤민우의 범행 수법을 떠올렸다.
‘시신을 유기했다면 차로 이동할 수 있는 곳. 사람이 오가지 않으며 CCTV를 피할 수 있고...’
홍천은 산이 많다.
하지만 놈의 수법과 일치하는 장소는 몇 군데 되지 않는다.
똑똑똑.
누군가 서진의 운전석 창문을 노크했다.
이동영 수사관이다.
“압수수색 끝났습니다.”
“장부 확인해 보셨어요?”
“네, 예상했던 대로 그 테이블에 주민아와 진희라는 사람이 함께 있었습니다.”
“카드는?”
“...현금 계산이었습니다.”
서진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결정적인 증거가 사라지는 중이다.
그런데.
“웨이터가 놈의 카드를 들고 현금을 인출해서 계산했다고 합니다. 현금을 뽑은 곳은 저 편의점이요.”
서진이 주먹을 꽉 쥐었다.
드디어 꼬리를 잡았다.
이제 박살 낼 시간이다.
서진이 휴대폰 지도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주민아의 시신을 찾기 위해 경찰 협조를 요청할 겁니다. 수사관님이 이곳에서 고생 좀 해주세요. 예상되는 유기 장소는 메시지로 보내놓을게요.”
“제가요?”
“네.”
“검사님은요?”
***
-김윤환 검사는 강원지검 검사장의 아들을 구속하며 동남군으로 좌천당했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김윤환의 영웅 만들기가 이뤄지는 중이었다.
동남군으로 유배당한 것조차 소신 있고 강직한 검사라는 이미지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김윤환 검사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아그작.
과자 씹는 소리가 들렸다.
윤민우였다.
놈이 집중해서 화면을 집중하고 있다.
-김윤환 검사의 끊임없는 추적에 김태경은 결국 모든 것을 자백했고 우리 대한민국 25시는 김태경의 신상을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과자를 들던 윤민우의 손이 멎었다.
‘신상 공개?’
-인권이라는 이름 아래 김태경을 지켜주는 것, 그보다 신상을 공개하여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공익에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화면이 바뀌고 김태경의 얼굴이 드러났다.
재킷에 가려진 모습이 아니라 환하게 웃는 얼굴.
윤민우는 휴대폰을 들고 허겁지겁 방송 반응을 확인했다.
모두 김태경을 욕하고 있다.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며 난리도 아니다.
윤민우가 눈을 깜빡였다.
“와... 태경이 불쌍해서 어쩌나? 이건 쫌 미안하네.”
하지만 내뱉은 말과 표정은 다르다.
과자를 씹으며 정말 즐거워 보인다.
그때였다.
초인종이 울렸다.
윤민우가 휴대폰을 내려두고 현관으로 향했다.
“누구세요?”
“김서진입니다.”
윤민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 새끼는 또 왜?’
한두 번 왔으면 됐는데 왜 계속 오는지를 모르겠다.
‘미친 새끼. 오지랖도 이 정도면 병이야.’
윤민우가 애써 슬픈 표정을 지으며 문을 열었다.
그리고 힘없는 목소리로 서진을 반겼다.
“...오셨어요?”
“네.”
“그런데, 오늘은 어쩐 일로?”
“다른 게 아니고요. 이것 때문에요.”
서진이 품에서 영장을 꺼내 보였다.
놈의 눈을 가늘게 뜨고 영장을 향했다.
순간적으로 눈에 힘이 확 들어갔고 초췌했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어?”
놈은 그대로 굳었다.
현실을 외면한 채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그리고 더듬더듬 입을 연다.
“...왜, 왜요?”
“홍천의 룸살롱에서 아가씨 한 명이 실종됐습니다. 마지막으로 만난 손님이 윤민우 씨네요.”
“네?”
그 말과 함께 수사관들이 서진의 옆을 스치며 우르르 안으로 들어갔다.
윤민우의 표정이 싹 바뀌었다.
눈동자를 굴리며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려 한다.
그리고 소름 끼칠 정도로 당당해졌다.
“검사님! 그래, 룸살롱에 가기는 갔어요. 그런데, 그 실종과 저는 상관이 없어요!”
김윤환이 김태경을 잡으며 압수수색을 받았던 집이다.
그때도 나온 증거물은 없었다.
또 뒤진다고 해서.
‘너희가 뭘 찾을 수 있는데?’
윤민우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서진을 철저히 비웃는 얼굴.
“태경이도 이런 식으로 잡아간 거죠? 아무 증거도 없으면서! 왜요? 죄 없는 사람 범인으로 만들어 실적을 쌓으려고요? 그런데요. 전 태경이처럼 안 당합니다!”
놈이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익숙하게 쿡쿡 누르며 자신의 유튜브 방송을 열려 한다.
서진이 그 손을 콱 잡았다.
그러자 놈이 킥! 웃는다.
“왜? 무서우세요? 힘없는 사람 범죄자 취급하는 것은 괜찮고 이런 더러운 일이 알려지는 것은 두렵습니까?”
“그건 아니고.”
지금 방송이 열리면 놈의 범행이 세상에 알려진다.
‘안 돼.’
철저히 김영준 검사장과 김윤환의 눈을 속여야 한다.
그뿐이다.
하지만 윤민우는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럼, 사과하세요!”
서진이 윤민우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으며 입을 열었다.
“무혐의로 판단된다면 무릎 꿇고 사과하죠.”
“내놔!”
윤민우가 사나운 이를 드러내며 서진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수사관들이 윤민우를 뜯어말린다.
“힘 있는 놈들은 죄를 지어도 조사조차 안 하고! 우리 같은 서민들은 트집만 있어도 압수수색? 더럽네! 더러워! 이게 검찰이야? 이게 법이냐고!”
서진은 악악거리는 놈의 비명을 뒤로하고 방을 둘러봤다.
찾는 것은 하나다.
‘이놈은 컬렉터.’
살해당한 사람들의 신분증을 손에 쥐고 있다.
‘어디에 숨겼을까?’
이런 놈들은 컬렉한 물건을 보물처럼 다룬다.
심심하면 확인하고 다시 숨겨둔다.
가까운 곳에 숨겼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김윤환이 압수수색을 했을 때는 찾지 못했던 물건이다.
평범한 수색으로는 어렵다.
고위 체납자의 가택을 털듯이 샅샅이 뒤져야 한다.
서진이 한 수사관을 잡고 입을 열었다.
“수사관님, 화장실 확인해 주세요. 변기 수조까지요.”
“네.”
서진은 윤민우의 표정을 살폈다.
표정에 변화가 없다.
화장실은 아니다.
“수사관님, 자동차요. 의자 사이까지 손을 넣어 주세요.”
수사관이 자동차 키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 사이에도 윤민우는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있다.
“뭐 하는 거야! 도대체! 왜? 룸살롱에 다닌 여자라며? 만난 사람이 나 혼자겠어? 어!”
이번에도 표정의 변화는 없다.
어떤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는다.
자동차도 아니라는 뜻.
서진은 계속해서 주변을 훑었다.
‘확인해 보지 않은 곳. 천장.’
도배가 뜯어진 흔적이 없다.
“그럼, 싱크대?”
서진이 싱크대로 걸음을 옮겼다.
순간 놈의 목소리가 비명처럼 울렸다.
“그만해! 아무것도 없잖아!”
목소리의 톤이 바뀌었다.
‘여기?’
서진이 싱크대의 서랍을 열어젖혔다.
“없다고!”
놈의 말대로다.
밥그릇과 수저만 보인다.
이곳저곳을 확인했지만 마찬가지.
하지만 서진은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가장 아래의 걸레받이.
싱크대의 다리를 가려주는 가림막.
서진이 발로 툭 건드렸다.
힘없이 쓰러진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윤민우의 시끄러운 목소리가 멎었다.
적막.
서진이 몸을 낮춰 안을 살폈다.
수십 개의 신분증이 고무줄에 묶여 있는 게 보였다.
서진이 손을 뻗어 신분증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틀어 윤민우를 향했다.
수사관의 손에 잡혀 서진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방금까지 악을 지르던 기세는 소리 없이 증발했다.
서진이 윤민우의 앞으로 뚜벅, 뚜벅 걸어갔다.
놈의 머리를 콱 잡고 천천히 얼굴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놈이 무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알았어?”
서진이 피식 웃으며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그러면서 머리채를 쥐고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물어볼 땐, 예의 바른 자세로 물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