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칫국부터 마시면. -(4)>
“끄으으...”
윤민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서진에게 얻어맞은 정강이를 부여잡으며 인상을 찌푸릴 뿐이다.
“아파?”
서진은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쾌락에 젖어 남의 고통을 즐기던 놈이다.
그런데, 고작 정강이를 맞았다고 힘들어하다니.
서진이 한쪽 무릎을 꿇어앉으며 윤민우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리고 놈의 머리를 확 젖히며 냉랭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프냐고 물었는데...”
“씨발...”
윤민우의 눈동자는 분노로 가득하다.
피해자를 향한 미안함 따위는 없다.
자신이 왜 잡혔는지 궁금할 뿐이다.
놈이 히죽 웃으며 입을 연다.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는데?”
서진이 놈의 어깨를 꽉 잡았다.
놈이 또 비명을 지른다.
“아아악! 아파! 아프다고!”
“견뎌. 앞으로 더 아파질 거야.”
“놔! 놓으라고!”
서진이 놈의 어깨를 툭툭 친 후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수사관을 향해 입을 열었다.
“끌고 가세요.”
***
-국민 안전 위원회가 주최하는 정의 사회 시상식 있잖아? 알아?
서진이 차를 끌고 지검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김윤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어, 알아.”
횟수로 20년이 넘었고 그 권위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시상식이다.
-방금 전화 받았는데, 내가 수상자래. 푸하하하!
김윤환이 수상자로 선정된 이유는 시사프로그램의 영향력이 컸다.
방송은 아이들의 모습을 집중 조명했고 시청자의 감성을 건드렸다.
-꽃다운 나이의 아이들이 고통스럽게 살해당했다.
-모든 경찰 병력이 움직였지만 단 하나의 증거도 찾을 수 없었다.
-사실상 수사가 종료되었는데, 김윤환이 잡아냈다.
모두가 포기했을 때, 수사를 멈추지 않고 결국 범인을 체포한 검사.
수상자로 선정되기에 충분했다.
“진짜? 축하해, 형.”
-고맙다. 하하하.
서진은 김윤환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룸미러로 시선을 옮겼다.
뒤에 따라오는 승합차, 저 안에 윤민우가 잡혀 있다.
김윤환은 진범이 잡힌 줄 모르고 여전히 낄낄대고 있다.
그러다가 놈의 목소리가 갑자기 진중해졌다.
-아, 너무 웃었네. 미안하다. 자랑하려고 전화한 게 아니라 고민이 있어서 연락했어. 상담 좀 하려고.
“고민? 어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너밖에 없잖아.
“말해.”
또 어떤 헛소리를 내뱉을지 궁금했다.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 김윤환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이어졌다.
-이 상 받은 사람들 나중에 다 정치판으로 넘어간 것 알지? 아버지처럼 평생 검사로 살 생각이었는데, 고민되게 만드네.
서진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김윤환은 범인을 만들어 스타가 됐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제는 정치판까지 고민하고 있다.
진범이 영원히 잡히지 않으리라 생각하는지, 아니면 그 뒤의 계획까지 세웠는지 몰라도 이건 정말 미친놈이다.
“...정치하려고?”
서진의 질문에 놈의 목소리가 심각해졌다.
-요즘에 여당이고 야당이고 밥 한번 먹자고 계속 연락이 와. 내년 보궐 선거에 얼굴마담으로 등판해 달라는 곳도 있고.
김윤환은 고민이라 말했지만 결국은 자랑질이다.
‘내가 이렇게 주목받고 있다.’, ‘너와는 급이 다르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서진은 김윤환의 멍청한 소리에 어울려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꾹 참고 다정히 입을 열었다.
높이 올라가야 추락할 때, 정말 아플 테니까.
“형 생각이 가장 중요하지. 형은 어떻게 생각하는데?”
-검사 생활만 애국이 아니잖아? 요즘에는 정치로 큰 그림을 그리는 것도 국민을 위한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렇지, 형이랑 어울리기도 하네.”
진심이다.
배신과 거짓으로 가득한 정치라는 바닥에 김윤환만큼 어울리는 놈은 또 없을 거다.
“시간 있으니까 천천히 고민해 봐. 보궐 선거에 형이 선수로 뛴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도울게.”
-그래, 고맙다. 그런데, 시상식 올 거지?
“어. 꽃다발 준비해서 갈게.”
서진은 김윤환에게 국화를 헌화할 생각이다.
*
그 시각, 강원지방 검찰청.
이소희는 서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대체 뭐야?’
주민아를 살해한 범인을 체포하러 간다고 했다.
그런데, 앞에 나와 기다리라니.
‘하...’
서진이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 일단 나와 기다리고는 있지만...
‘내가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그때, 멀리 자동차의 불빛이 보였다.
서진의 차였다.
차에서 내린 서진이 이소희에게 서류 봉투를 건넸다.
“이 사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네가 담당한 것으로 해.”
“어?”
“수사관님들에게도 부탁했어.”
“그게 무슨 말이야?”
“여중생 연쇄 살인 사건, 진범이야. 저놈이.”
이소희의 시선이 뒤따라온 승합차로 틀어졌다.
수사관들의 손에 한 남자가 끌려오고 있다.
윤민우였다.
검찰에 잡혀 오면 죄가 없어도 긴장해야 하는데, 놈은 소름 끼칠 정도로 표정이 평온했다.
“...저 사람이?”
“어. 나는 주민아의 실종 사건을 쫓은 것뿐이야. 나머지는...”
서진이 이소희의 손에 건네진 서류를 툭 건들며 말을 이었다.
“네가 하는 거야.”
이소희는 당황했다.
여중생 연쇄 살인 사건은 극단적일 정도로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다.
김윤환은 세상의 영웅이 되었고 어디를 가도 그 이름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그런데 이 판을 뒤엎어 버리면 이소희가 주목받고 만다.
“내, 내가 이걸 어떻게 해?”
“하지만 사건을 공개하는 D-day는 내가 정할 수 있도록 해줘.”
서진은 다른 소리를 하고 있었다.
이소희가 다시 입을 열었다.
“D-day가 문제가 아니잖아. 이걸 내가 어떻게 하냐고!”
“걱정하지 마. 뒤에서 도울게. 그리고 우려하지 마. 네가 이 사건을 해결하면... 대통령이라도 못 건들 거야.”
“뭐?”
“그리고 누구든지 널 같은 편으로 만들고 싶어 할 거야. 그러니까 믿어.”
서진의 마지막 말에 이소희는 눈을 깜빡였다.
서진이 자신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나 해서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알 방법이 없다.
아무리 서진이라도...
‘다른 의미일 거야.’
서진과 이소희는 지검의 막내다.
여기저기 치이고 있다.
‘그런 의미일 거야.’
그리고 이소희의 생각은 다른 곳으로 틀어졌다.
‘...아무도 못 건든다고? 같은 편으로 만들고 싶어 할 거라고?’
이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쯤은 자유가 되고 싶었고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
취조실.
이소희와 윤민우가 마주 앉았다.
서진은 유리 벽 너머에 서서 두 사람을 지켜봤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놈이 컬렉한 신분증을 꺼냈다.
총 22장.
여중생 여섯 명의 학생증 그리고 그 후에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여성들.
서진이 신분증을 툭툭 넘겼다.
그때마다 사이코 메트리가 발동했다.
신분증에 담긴 끔찍한 상황이 이어진다.
목을 졸려 죽는 여성들.
그 앞에서 윤민우는 변태처럼 숨을 몰아쉬며 쾌락을 느끼고 있다.
서진은 눈을 꾹 감았다.
입에서는 저절로 욕이 흘러나온다.
여중생 이후로 살해된 사람들은 유흥업소나 불법체류자 등 법의 보호를 받기 어려운 여성이다.
-너도 좋지? 너도! 그러니까 견뎌!
서진이 천천히 눈을 떴다.
유리 벽 너머 윤민우의 얼굴이 보인다.
태연한 얼굴.
이소희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곧잘 대답하고 있다.
그래서 정말 궁금했다.
판사의 입에서 사형이란 말이 떨어졌을 때도 저런 얼굴을 짓고 있을지.
서진이 손에 쥐고 있던 신분증을 툭 테이블 위에 내려뒀다.
그리고 직원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거, 이소희 검사에게 전달해 주겠어요?”
저놈의 우는 모습은 잠시 미뤄둔다.
지금은 김윤환의 날개를 꺾을 시간이다.
***
서울의 한 컨벤션 센터.
‘제23회 정의 사회 시상식’이라는 현수막이 크게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의 햄버거 체인점.
서진이 햄버거를 한입 베어 물고 있었다.
드르륵.
휴대폰이 진동한다.
발신 번호는 김윤환.
서진이 햄버거를 옆에 두고 휴대폰을 귀에 댔다.
-어디야?
“거의 다 왔어. 한 삼십 분 후면 도착할 것 같아.”
-도착하면 연락해. 이것도 시상식이라고 수상 소감을 적었는데 피드백이 필요해.
“가면서 읽을 테니까 사진 찍어 보내.”
-오케이.
김윤환의 목소리는 밝았다.
그리고 곧 메시지가 도착했다.
놈의 수상 소감이다.
앞으로도 정의와 진실을 위해 어쩌고저쩌고.
서진은 훑어보지도 않았다.
지금 김윤환에게는 수상 소감보다 해명이 필요할 시기다.
다시 햄버거를 손에 드는데, 가게 안으로 이은하 기자가 들어왔다.
그녀가 서진의 앞으로 재빨리 다가와 마주 앉았다.
그녀는 서진을 통해 윤민우의 사건을 이미 접해서 그런지 거대한 특종을 잡았다는 기쁨이 얼굴에 환하게 드러나 있다.
그리고 가쁜 숨을 내뱉기도 전에 빠르게 입을 열었다.
“오늘이 D-day죠? 제가 시나리오 한번 써봤는데, 들어보실래요?”
“아뇨, 시나리오는 이미 써뒀어요.”
서진이 이은하 기자의 앞으로 작게 접힌 A4 용지를 내밀었다.
이은하 기자가 착착 접힌 용지를 펴더니 소리 없이 읽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서진을 빤히 바라봤다.
“...김윤환 검사한테 원한 있으세요?”
“뭐, 가정사에요.”
서진이 슬쩍 웃으며 콜라를 손에 들었다.
*
컨벤션 센터에는 사회의 저명인사들이 가득했다.
시민 단체의 장, 여야의 국회의원 그리고 김윤환을 응원하러 온 각 검사들.
그 자리에 김영준 검사장은 없었다.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윤환이가 부담스러워할 거라고 안 오셨어.”
조우재 부장검사였다.
“윤환이 형은요?”
“못 봤어? 로비에 있을 거야. 어울리지 않게 수상 소감을 연습한다나?”
서진은 조우재 부장검사를 뒤로하고 로비로 향했다.
테이블에 앉아 종이를 들고 중얼거리는 김윤환이 보였다.
“왔어?”
김윤환이 느긋이 고개를 틀어 서진을 바라봤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수상 소감, 읽어 봤어?”
“고칠 것 없던데? 작가해도 되겠어.”
사실 읽지 않았다.
메시지만 확인하고 덮어 버렸다.
김윤환이 끌끌끌 웃는다.
“땡큐. 그런데, 좀 긴장되거든? 네 얼굴 보고 수상 소감 말할 테니까 가장 앞에 앉아. 오케이?”
말하지 않아도 가장 앞에 앉을 생각이었다.
서진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동영상도 찍을게.”
“뭘 그렇게까지 하냐? 적당히 사진 몇 장만 박으면 되는 거지.”
“아이고, 알아서 할게.”
두고두고 간직할 장면이다.
사진으로 찍어두면 아쉬울 거다.
무조건 동영상으로 박제해둘 생각이다.
서진이 다리를 꼬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어떻게 할 거야?”
“뭘?”
“정치.”
“모르겠네. 검찰에 남아서 널 끌어줘야 하나 아니면 사무실을 여의도로 옮겨야 하나. 고민이다. 고민이야.”
곧 날개가 꺾여 처박힐 것도 모르고 까불어 대고 있다.
하지만 서진은 놈의 헛소리에 장단을 맞춰줬다.
“나중에 형이 대통령돼서 총장 시켜주면 되겠네.”
“그럴까?”
그렇게 낄낄거리고 있을 때 안내자가 로비로 나왔다.
“수상자분들은 입장해주세요!”
김윤환이 A4용지를 접어 품에 넣으며 몸을 일으켰다.
“들어가자.”
서진이 김윤환을 쫓아 강당 안으로 들어갔다.
서진이 앉은 자리는 단상 바로 앞.
김윤환의 얼굴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다.
높은 양반들의 축사가 이어졌고 각 분야의 시상자들이 한 명, 한 명 단상에 올랐다.
언론인, 교사 등등.
-다음은 법조계 시상자입니다. 최근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분이죠? 강원지검 동남 지청의 검사 김윤환!
사회자의 목소리에 김윤환이 넥타이를 매만지며 단상으로 나왔다.
박수가 뜨겁게 들려오며 사회자가 계속 말했다.
-김윤환 검사는 모두가 포기한 사건을 계속 수사했습니다. 오직 어린 생명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악마를 잡아냈습니다. 그 신념과 의지는 영원히 기억될 겁니다.
김윤환이 상을 받은 후 마이크 앞에 섰다.
그리고 최대한 선한 얼굴을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동시에 카메라 셔터 소리와 함께 플래시가 번쩍였다.
김윤환은 정말 영웅이 된 것처럼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그 얼굴에 긴장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동남 지청 검사 김윤환입니다.”
김윤환의 눈동자가 서진을 향해 틀어졌다.
아는 사람의 얼굴을 보며 긴장을 풀려 한다던 말.
거짓이다.
상을 받으며 부러워하는 서진의 얼굴을 지켜보려 한 거다.
그런데.
‘어?’
서진의 행동이 이상했다.
손으로 엑스를 그리더니 입술을 꽉 깨문다.
심지어 귀까지 벌게져 있다.
‘저 새끼 왜 저래?’
김윤환은 눈을 가늘게 뜨고 서진의 표정을 살폈다.
입으로는 계속해서 소감을 내뱉으며.
“당연한 일을 했는데 이런 큰 상을 주시니...”
그때였다.
“잠시만요!”
난데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김윤환은 물론이고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이은하 기자였다.
그녀가 살짝 들었던 손을 내리며 입을 열었다.
“지금 막 들어온 소식인데요. 진범이 잡혔다는데요?”
“...뭐가 잡혔다고요?”
“여중생 살인 사건의 진범이요.”
김윤환의 얼굴에 쩍 금이 갔다.
말을 잃은 것처럼 줄줄줄 읊어가던 시상 소감이 그대로 멎었다.
순간 반대편에 앉아 있던 기자가 손을 들었다.
“진범이 모든 것을 자백했다고 합니다!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끝이 아니었다.
좌석의 중앙에 앉아 있던 기자가 벌떡 일어섰다.
“검사님! 범인은 김태경의 성폭행도 자신이 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혹시 사건 해결을 위해 무리한 수사를 한 것은 아닙니까?”
시상식장이 청문회처럼 바뀌었다.
모두가 웅성인다.
강당에 앉은 모든 사람들이 의문 가득한 시선으로 김윤환을 주목하고 있다.
김윤환의 표정이 괴상하게 썩어들어갔다.
어떤 말도 못 하고 손만 발발발 떠는 중이다.
그 사이에도 기자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대답해 주십시오!”
그리고 서진은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웃고 있었다.
‘생각보다 멘탈이 약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