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칫국부터 마시면. -(2)>
*
서진은 모텔을 나서며 조우재 부장검사에게 전화했다.
“부장검사님, 서진입니다.”
-어, 무슨 일이야?
지난번, 춘천에서의 만남이 괜찮았는지 조우재 부장검사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걱정스러운 일이 있어서 전화 드렸어요.”
-걱정?
“윤환이 형이 지금 잡은 사건이요. 뭔가 이상해서요. 뭐라고 딱 말씀드릴 수는 없는데요. 정황상...”
서진은 누구나 의심할 수 있는 부분을 미끼처럼 툭툭 던졌다.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 애쓰던 놈이 자신의 학원생을 살해한 게 이상하다.
-학생들이 납치되던 시간에 김태경은 학원에서 강의 준비를 했다. 즉, 알리바이가 확실하다.
서진의 이야기를 듣던 조우재 부장검사도 이상함을 느꼈다.
-그래, 한번 알아보지.
조우재 부장검사가 김윤환을 멈출 수는 없을 거다.
시사 프로그램에서 특집 영상을 뿌려대는 중이었고 사람들이 열광한다.
그런데 김영준 검사장의 눈치를 보며 사는 인간이 서진의 말만 믿고 김윤환의 밥상을 뒤집는다고?
어려운 일이다.
조우재 부장검사와 통화한 이유는 하나.
‘훗일을 위한 떡밥.’
김윤환이 무너지면 김영준 검사장은 서진에게 힘을 실어줄 거다.
자신이 검찰을 떠나도 눈과 귀가 되어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힘을 온전히 받으려면 조우재 부장검사가 필요하다.
지금의 이야기는 ‘나는 너를 믿고 의지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그리고...’
조우재 부장검사는 김영준 검사장을 부숴버릴 때 최선봉에 세울 장기짝이다.
***
“수사관님, 오늘 바쁘세요?”
퇴근할 시간이었다.
서진이 이동영 수사관을 잡았다.
“괜찮습니다. 해야 할 일이 있나요?”
“아뇨. 소주 한잔하고 싶은데, 제가 주변에 친구가 없네요.”
*
서진과 이동영 수사관은 삼겹살집에 마주 앉았다.
서준경이었을 때는 일주일에 서너 번은 함께 마셨었는데...
옛 기억을 더듬던 서진이 소주병을 들고 기울였다.
“독약입니다.”
이동영 수사관이 눈동자만 들어 서진을 향했다.
“독약이요?”
“네.”
독약, 서진이 간식을 들고 오면 실무관이 하는 말이다.
‘이거 먹으면 퇴근을 못 하잖아요!’라면서.
그런데, 서진의 입에서 대놓고 독약이란 단어가 나온 것은 처음이다.
“각오해야 한다는 거죠?”
“네. 당분간은.”
“알겠습니다.”
이동영 수사관은 담담히 대답했다.
그리고 소주병을 넘겨받아 서진의 잔을 채우며 물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것 보면, 실무관에게도 비밀로 해야 한다는 것인가요?”
“네.”
중앙지검 김영준 검사장의 아들 김윤환을 저격하는 일이다.
아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누구도 모르게 은밀히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이동영 수사관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알겠습니다. 말씀하세요.”
“윤민우라는 유튜버가 있습니다. 영상에 나온 여행지, 거기서 실종된 여성이 있는지 확인해 주세요.”
“유튜버...”
이동영 수사관은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다.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한다.
그러다가.
“그런데, 그 사람은 왜?”
이동영 수사관의 질문에 서진이 시선을 틀어 텔레비전을 향했다.
화면에 김윤환의 얼굴이 보였다.
-철저한 수사를 통해 추가 범행이 있는지 확인하겠습니다.
아주 작정을 했다.
다른 죄까지 김태경의 어깨에 올리겠다는 거다.
화면에 재킷으로 얼굴을 가린 김태경이 나오자 지켜보던 사람들이 한마디씩 했다.
“저 새끼는 얼굴 공개 안 하나?”
“난쟁이 똥자루 같은 새끼가 쓰레기였어.”
“학원 강사였다며?”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서진은 다시 이동영 수사관을 향해 고개를 틀었다.
그리고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김태경은 범인이 아니에요. 말씀드린 유튜버가 진범이죠.”
이동영 수사관의 얼굴이 확 굳었다.
“거, 검사님?”
서진은 김영준 검사장의 조카다.
그래서 김영준 검사장을 잡겠다고 말했을 때 긴가민가했다.
작은아버지였고 심지어 총장 자리를 노리는 검사장이었으니까.
그런데.
“진범 잡고 김윤환, 저놈 옷 벗길 겁니다.”
서진의 목소리에 의지가 확고히 느껴졌다.
이동영 수사관의 시선이 자신의 휴대폰으로 향했다.
스마트 폰에 익숙하지 않지만.
“알겠습니다. 해보죠.”
“내일부터 바빠질 테니까 오늘은 시원하게 마시죠.”
서진이 잔을 들었다.
두 사람의 잔이 부딪친다.
이동영 수사관과 정말 오랜만의 술자리.
오늘은 김윤환을 잊고 찐하게 마시고 싶었다.
***
-속보입니다. 여중생 연쇄 살인 사건의 용의자 김태경이 모든 것을 자백했습니다. 용의자로 특정된 지 27일 만의 자백입니다. 검찰은 17차례에 걸쳐 프로파일러 등을 동원해 대면 조사를 진행했고...
차를 운전하던 서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라디오를 꺼버렸다.
“하...”
김태경은 자백을 강요당했다.
견디고 견뎠지만 결국 고개를 숙였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보지 않아도 뻔하다.
인권을 무시한 폭력과 고문에 가까운 취조.
김태경은 어떤 힘도 없는 서민, 김윤환에게는 갓난애 손목 비트는 것만큼 쉬웠을 거다.
27일이면 정말 오래 견뎠다.
지이이잉.
서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발신 번호는 김윤환.
어떤 말을 할지 뻔하다.
서진이 숨을 내뱉으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김윤환의 잘난 척하는 목소리가 차량 내부를 울렸다.
-소식 들었지? 자백받았다. 이놈이 버티고 버티다가 증거 내미니까 고개를 숙이네.
“축하해. 고생했어.”
서진의 목소리는 밝았다.
룸미러에 비치는 눈빛과 전혀 다른 목소리다.
김윤환이 계속 말했다.
-내가 이놈이 범인이라고 말했잖아. 강원도 애들이 뭘 알겠어? 그러니까 지금까지 이놈을 못 잡고 있었지.
김윤환은 서진이 동남군을 찾았을 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서진은 ‘이럴 때일수록 차분히 가야지.’라는 이야기를 전했고 김윤환은 그 말을 곱씹던 중이다.
그래서 서진에게 인정받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래야 이겼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서진은 놈이 원하는 대로 맞장구를 쳐줬다.
“난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형이 맞았네. 졌어. 대단해.”
-됐고. 서울 가서 길 닦아 놓고 있을 테니까 느긋하게 올라와.
김윤환은 이번 일로 김영준 검사장의 화가 누그러질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서진이 서울로 올라오면 자신의 뒤를 닦을 것이라 확신했다.
김영준 검사장과 조우재 부장검사처럼, 서진은 자신의 수족이 될 것이라고.
김윤환이 계속 말했다.
-나도 이번 사건 하면서 배운 게 참 많아. 너처럼 탐정 놀이하는 검사가 옆에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했거든.
“......”
-그러니까 네 자리는 확실하게 보장할게. 우리 같이 잘해보자. 어?
무시하는 말투가 역력하다.
서진이 서늘하게 웃었다.
하지만 내뱉어지는 목소리는 여전히 다정하다.
“알았어. 난 언제나 형 편이야. 우리는 가족이잖아. 같이 가야지.”
통화가 종료됐다.
서진은 끌끌끌 웃었다.
‘탐정 놀이?’
김윤환은 지금 영웅 놀이에 심취해 있다.
히어로가 된 것처럼 행동한다.
착한척하며 어떻게든 멋있어 보이려 노력하는 중이다.
‘그러다 추락하면 많이 아플 텐데.’
김윤환의 모든 행동이 거짓이었다는 게 밝혀지면 대중은 이를 악물고 끌어내릴 거다.
높이 올라갈수록 떨어질 때의 아픔은 크다.
견디기 어려울 거다.
*
서진이 도착한 곳은 홍천의 한 번화가였다.
차를 주차 후 ‘여우 싸롱’이라는 이름의 룸살롱을 찾아 계단을 내려갔다.
“어서 오세요!”
나비넥타이를 맨 웨이터가 서진을 반겼다.
“몇 분이세요?”
“혼자.”
혼자 오는 손님의 경우 두 가지다.
만취한 진상이거나 아가씨와 술 한잔 마시고 집에 가거나.
웨이터가 서진의 위아래를 살폈다.
‘술을 마신 것 같지 않고.’
반반하게 생긴 게 사고 칠 것 같지도 않았다.
나이도 어린놈의 말이 반 토막인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쪽으로 오십시오.”
웨이터는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서진을 구석진 방으로 안내했다.
“술은 어떻게 할까요?”
“진희라는 아가씨 있지?”
웨이터의 눈이 일그러졌다.
아가씨를 지명할 정도면 단골이어야 하는데, 서진의 얼굴은 기억 속에 없어서다.
서진이 품에서 오만 원을 꺼냈다.
“지명이야. 불러줘. 술은 진희가 원하는 것으로 시키지.”
의심을 품고 있던 웨이터의 얼굴이 한순간에 풀어졌다.
“옙!”
웨이터는 기분 좋게 대답하며 방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서진은 생각에 빠졌다.
몇 달 전, 실종 신고가 있었다.
주민아라는 이름의 31세 여성.
부모는 주민아가 홍천의 한 회사에서 경리를 본다고 알고 있었다.
연락도 곧잘 왔고 때마다 집에도 왔기에 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주민아의 연락이 갑자기 뚝 끊겼다.
부모는 주민아의 자취방을 찾았고 룸살롱에 다녔다는 것까지 알게 됐다.
부모는 곧바로 룸살롱을 찾았다.
하지만 ‘도망갔어요.’라는 말을 들었을 뿐, 어디서도 주민아의 소식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윤민우가 맛집 영상을 찍었던 곳이 바로 홍천이다.
*
“지갑에 오만 원짜리가 가득하다니까? 옷도 슬쩍 봤는데 명품이었어.”
웨이터가 대기실에 와서 떠들고 있었다.
진희라는 이름의 여성이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며 입을 열었다.
“진상 아니야?”
“그건 아닌 것 같아. 어린 애야.”
“어린애? 이 동네 와서 어린 애 본 적이 없는데? 다 아저씨였잖아?”
“다른 동네에서 찾아왔나 보지.”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희라는 이름은 이 가게에서 처음 쓰는 건데...”
“어쨌든 잘 해봐. 술도 네가 원하는 것으로 시켜준다고 했어. 비싼 거? 오케이?”
“뭐...”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또각, 또각 힐 소리가 복도를 울린다.
그리고 가장 구석에 있는 방.
작게 한숨을 내뱉은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십 대 중 후반의 남성이 보였다.
꽤 잘생겼고 웨이터의 말처럼 수트도 명품이다.
하지만 처음 보는 얼굴.
뭐 상관은 없다.
돈만 준다면 누구나 환영이다.
훤칠하기도 하고.
그녀가 활짝 웃으며 서진의 옆자리에 앉았다.
“오빠? 지명했다며? 나 알아?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녀의 간드러진 목소리에 서진이 손가락으로 맞은편을 가리켰다.
“일단 저 앞에 앉지?”
“어? 옆에 앉는 거 싫어?”
서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맞은편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미소는 여전히 깔려 있다.
그녀가 메뉴판을 손에 들며 말한다.
“술 어떤 거 시킬까? 비싼 거 시켜도 돼?”
웨이터는 분명 그녀가 원하는 술을 시켜준다고 했다.
그런데 서진의 입에서 뜬금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야, 민아 알지? 주민아.”
주민아는 몇 달 전 사라진 아가씨다.
주민아의 부모가 가게를 찾아와 딸을 내놓으라며 난리를 쳤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갑자기 주민아라니?
그녀의 눈동자가 기울어졌다.
“누구?”
“대답이나 해.”
“하...”
한숨을 내뱉은 그녀가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며 태도를 바꿨다.
자신을 지명한 줄 알았더니, 진상.
다른 아가씨를 찾는 손님이다.
“오빠, 민아 찾아왔어? 그런데, 어쩌나? 걔 도망갔어. 이 바닥에 그런 애들 많아. 선금받고 튀는 애들. 그러니까 나랑...”
가만히 놔두면 쓸데없는 소리가 이어질 것 같았다.
서진이 품에서 신분증을 꺼내 그녀의 앞으로 툭 던졌다.
동시에 그녀의 얼굴이 뻣뻣해졌다.
그저 잘생긴 호구라고 생각했는데.
“...거, 검사?”
상대는 검사다.
마음만 먹으면 이런 룸살롱쯤 순식간에 없애버릴 수 있다.
그녀가 잔뜩 겁을 집어먹을 때, 서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시 물어볼게. 주민아가 마지막으로 손님을 받았을 때, 같이 들어간 게 너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