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63화 (63/250)

<풀지 못할 숙제. -(5)>

***

“경찰 서장하고 강력반 팀장?”

지세헌 부장검사와 한정아 검사의 입이 떡 벌어졌다.

피해자 동생을 만나러 간 서진이 갑자기 성매매 업체를 쑤셨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경찰을 부수려 한다.

앞뒤를 빼놓고 보면 예상 밖의 극단적인 상황이다.

“뇌물 장부입니다.”

서진이 가져온 장부를 지세헌 부장검사 앞에 내려뒀다.

지세헌 부장검사가 다급히 장부를 살폈다.

일반 공무원부터 경찰 심지어 군인.

터지기만 하면 대단한 스캔들로 장식될 심각한 문제다.

“하...”

지세헌 부장검사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하지만 잠시다.

얼굴에 점차 핏기가 돌아온다.

그리고.

“이 악마 같은 새끼. 꿈에 조상님이라도 나왔냐?”

지세헌 부장검사가 손바닥으로 장부를 쾅! 내리쳤다.

그리고.

“잡아와.”

한마디로 정리했다.

*

잠시 후.

서진이 떠나고 한정아 검사가 장부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검사장님이 허락하겠어요?”

조용준 검사장은 아들의 살인 사건으로 옷 벗을 기회만 보고 있다.

말 그대로 이빨 빠진 호랑이.

하지만 호랑이는 호랑이다.

무시해서는 안 된다.

“경찰 서장하고 사이가 좋잖아요? 적당히 꼬리 자르라고 하면...”

“아니, 오히려 좋아할걸?”

“네?”

조용준 검사장은 아들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기자들이 들락거리고 포털 사이트의 기사는 비난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경찰 서장이 포주의 뒤를 봐주고 있었다고 해봐.”

비난의 화살이 과녁을 바꿀 거다.

“조용히 은퇴할 기회지.”

지세헌 부장검사가 끌끌 웃으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

경찰 서장을 향한 체포 영장이 발부됐다.

소문은 순식간에 돌았고 사람들은 수군댔다.

-신입이 경찰 서장 멱살 잡았다는 말 들어본 적 있냐? 쌍팔년도 이후로 처음 들어보네.

-그런데, 어떻게 잡은 거래?

-인력 사무소가 성매매 업소였대.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난 매일 지나다니면서도 몰랐는데.

-눈썰미가 다른 거지.

-하... 나도 탐정 놀이나 할까?

검사들은 담배를 입에 물고 밖을 바라봤다.

기자들이 허겁지겁 나오는 게 보인다.

곧 그들의 앞에 승합차가 섰고 수사관들에 의해 경찰 서장과 강력반 팀장이 끌려 나왔다.

그들을 향해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업소 운영의 뒤를 봐줬다는 게 사실입니까!”

“경찰 풍속반의 얼굴과 전화번호를 넘겨줬다고요?”

“단속 정보를 알려줄 때마다 50만 원씩 받았다고 하는데요!”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그리고 서진은 취조실로 향하고 있었다.

딸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소희와 피해자의 동생 서동석이 마주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이소희가 서진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서동석은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어르고 달래도 처음부터 말을 배우지 않은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이제 내가 할게.”

이소희는 순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서진의 옆을 스치며 입을 연다.

“밖에서 보고 있을게.”

“어.”

이소희는 서진이 어떤 식으로 서동석의 입을 열게 만들지 궁금했다.

서진이라면 반드시 진실을 토해내게 만들 것 같아서다.

이소희는 그게 보고 싶었고 유리 벽 너머로 이동했다.

그런데.

“어? 안녕하십니까?”

유리벽 너머에 익숙한 사람이 서 있었다.

바로 이명수 부장검사다.

“고생했다.”

“보고 계셨어요?”

“실어증 걸린 놈들 말 가르쳐 주는 게 제일 힘들지?”

입을 꾹 다문 서동석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자신은 서동석에게 어떤 말도 듣지 못했다.

그녀가 한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궁금해요. 김 검사라면 어떻게 할지.”

“저놈? 별다른 기술 없어. 그냥 존나 얍삽한 거야.”

“네?”

“사람이 궁지에 몰릴 때까지 모른 척 멀뚱멀뚱 있다가 기회를 보면 증거를 딱 던지는 거야.”

“그게 기술 아닌가요?”

이명수 검사가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

“경험이지.”

경험은 지식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바닥을 박박 기며 굴러먹어야 채워지는 거다.

그런데, 서진은 아직 어리다.

경험이라 해봐야 이소희와 다를 게 없다.

이명수 검사가 이소희를 보며 슬쩍 웃었다.

“그러니까 신기한 놈이야.”

논리나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

이명수 검사가 볼 때 서진이 그랬다.

*

서동석은 독기를 품고 있었다.

입을 열지 않으면 모든 게 비밀로 묻힐 거로 생각해서다.

누나의 과거가 밝혀지면...

‘안 돼.’

누나 신지민은 예쁘장한 얼굴로 어려서부터 유명했다.

양아치들이 주변에 꼬였고 술과 담배, 본드에 손을 댔다.

친구들의 돈을 뺏고 폭력을 행사하고.

한번은 여고생 집단 폭력이라는 이름으로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친구의 옷을 벗기고 동영상을 찍으며 죽일 듯 때리던 모습에 세상은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차라리 그때 잡혀갔으면...’

판사는 반성의 눈물을 보이는 신지민에게 ‘집행 유예’라는 가벼운 벌을 줬다.

그때, 신지민은 반성하지 않았고 ‘이렇게 해도 고작 이거구나.’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리고 신지민의 폭주는 걷잡을 수 없었다.

후배들을 끌고 원조 교제의 포주 노릇을 시작한 거다.

성인이 되어서는 춘천 최고의 양아치를 만나 본격적으로 성매매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게 모두 밝혀지면 서동석도 끝난다.

서동석은 한패였으니까!

최 사장 몰래 신지민에게 미성년자를 소개하던 게 서동석이다.

그 사실을 묻으려면...

‘누나는 그냥 그렇게 죽어야 해.’

서동석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앞에 앉은 검사는 지금껏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있다.

빤히 얼굴만 바라본다.

‘이 새끼를 요리하면 넘길 수 있어. 어차피 살인범을 잡으려고 하는 거야.’

서동석은 서진을 말랑말랑하게 생각했다.

낮에 커피숍에서 만났을 때도 그랬다.

떠드는 것은 모두 여 검사였고 서진은 조용히 앉아 있었다.

게다가 경찰에 잡혔을 때도 서진은 자신을 보호해줬다.

지검으로 오는 차량에서 예민한 것을 물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서동석이 침묵을 깨며 입을 열었다.

“저는 아는 게 없습니다.”

“......”

“그리고 정말 그만해주시면 안 될까요? 범인이 잡히면 좋겠지만 그때까지 우리 가족이 상처받아야 하잖아요. 최근에야 어머니, 아버지가 웃으세요. 그런데, 또 누나의 소식이 들려오니까 집에 웃음소리가 사라졌어요. 그러니까 그만해주세요. 부탁드릴게요. 제발...”

간절한 목소리였다.

톡 치면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다.

“효자네요?”

“네?”

“누나랑 사이가 좋았나 봐요?”

“아, 네.”

일단 대답했다.

그런데 서동석은 묘해진 분위기를 느꼈다.

서진이 웃고 있다.

‘뭐지?’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을 때, 서진이 테이블 위에 붉은 노트를 꺼내 펼쳤다.

서동석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성매매 장부다.

‘이, 이게 왜?’

성매매 업체가 박살 나고 서장과 팀장이 잡혀 오는 동안 서동석은 이곳에 잡혀 있었다.

그래서 밖의 상황을 몰랐다.

하지만 노트를 보며 확 이해했다.

모든 게 어긋나고 있다.

그리고 서진이 성매매 장부를 손가락으로 쿡 찍으며 입을 열었다.

“아는 것은 없어도 누나 글씨는 알죠?”

“아... 네.”

“누나 글씨 맞죠?”

“...누나가 이런 일을 했었나요?”

서동석이 할 수 있는 것은 일단 발뺌이다.

그런데 그 순간, 서진의 표정이 완벽히 바뀌었다.

악마 같은 눈으로 서동석을 노려보며 천천히 몸을 기울인다.

“까고 있네.”

“......!”

지금과 확연히 다른 목소리였다.

서동석이 놀란 눈으로 서진을 향했다.

서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옆 취조실에 강력반 팀장 앉아 있거든. 그 사람이 말하더라. 미성년자 취급하는 양아치가 있다고. 그게 너라고 하던데.”

“......!”

“미성년자 장부는 따로 관리했다고 들었어. 그리고 그 장부도 곧 드러날 거야. 너희 집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되어 있거든. 대포폰이든 아니면 장부든 나타나겠지.”

벼랑 끝에 선 사람의 심정은 같다.

지푸라기라도 쥐려 한다.

강력반 팀장은 살고 싶었고 서진에게 정보를 넘겼다.

그리고 서동석의 심장은 얼어붙고 있었다.

감옥에 들어가 썩어버릴 인생을 걱정하는 거다.

그게 1년이 될지, 10년이 될지는 모른다.

서동석은 후들후들 몸을 떨며 마른 침만 삼키고 있다.

그리고 서진은 느긋하게 깍지를 끼며 입을 열었다.

“아동, 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출소한다 해도 자유는 없어. 주민들에게 신상이 공개될 거고 위치추적 장치를 발에 차고 다니겠지. 넌 영원히 손가락질받게 될 거야.”

“......!”

“살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 누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거야. ‘모두 누나가 시켰어요. 저는 시키는 대로 했어요.’ 이렇게. 그럼, 3년 정도면 나올걸?”

그 말이 탈출구로 들렸나 보다.

서동석이 급하게 입을 열었다.

“마, 맞아요! 전 시키는 대로 했어요. 누나는 어릴 때부터...”

“됐고. 누가 죽였어?”

“네?”

“누가 죽였냐고.”

“그, 그건 정말 몰라요. 저도 누나 휴대폰도 뒤져보고 했는데, 아무것도 없었어요. 정말이에요!”

서진이 놈을 향해 더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

“남자 친구는? 있었어?”

“있었겠어요? 다 가지고 놀던 거지!”

“그게 누군지 알고 있어?”

“하... 너무 많아서 몰라요. 그게 한둘이 아니라!”

***

쾅!

문이 열렸다.

나홀로 아파트, 서동석의 집이었다.

수사관들이 일제히 들어와 검찰 박스를 내려뒀다.

그 박스에 집 안에 있는 모든 게 담긴다.

그곳에 이소희가 섰다.

그녀가 한숨을 내뱉었다.

형사 2부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관여해도 되나 싶었다.

하지만 일단 왔으니 주변을 둘러봤다.

신지민이 살해당한 후 그들의 부모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그러니까 이곳은 서동석 혼자 사용하는 거다.

청소를 하지 않았는지 정말 지저분하다.

곳곳에 쌓인 소주병과 아무렇게나 버려진 담배꽁초.

이소희가 방으로 들어가 책상 서랍을 열었다.

재떨이로 사용했는지 이곳에도 담배꽁초가 가득하다.

“에이...”

이소희가 손을 털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때.

“휴대폰 찾았습니다!”

한 수사관의 외침에 이소희가 그쪽으로 향했다.

휴대폰은 두 개.

모두 대포폰으로 서동석과 신지민이 사용하던 거다.

이소희가 신지민의 휴대폰을 손에 들어 메시지부터 확인했다.

하지만 나오는 것은 없다.

모두 성매매에 관한 일이다.

이소희는 다시 휴대폰을 꾹꾹 눌러봤다.

주소록에 엄청난 연락처가 저장되어 있다.

*

그 시각, 서진은 서류를 가득 들고 복도를 걷고 있었다.

멈춰선 곳은 한 취조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강력반 팀장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앉아 있다.

그가 서류를 가득 든 서진을 보고 눈을 깜빡였다.

“그건 뭡니까?”

“일해야죠.”

서진이 테이블 위에 서류를 쾅 내려뒀다.

그리고 서류에 손을 대며 입을 열었다.

“그동안 형사님께서 용의 선상에 올린 놈들입니다. 하나씩 물어볼 테니까 대답 잘해주세요.”

“네?”

“제일 잘 알잖아요? 수사에 도움 주실 거죠?”

“하!”

팀장은 황당한 표정으로 서진을 바라봤다.

하지만 서진은 팀장을 신경 쓰지 않고 서류를 넘기며 입을 열었다.

“침대 넣어 드릴 테니까, 오늘은 여기서 주무시고 가세요.”

서진이 담배까지 테이블 위에 두자 팀장도 거절은 안 한다.

아무래도 구치소보다는 취조실이 편한 것은 당연하다.

담배도 피울 수 있고.

서진은 계속해서 서류를 넘겼다.

일단 사이코 메트리에서 봤던 그놈은 덩치가 좋았다.

그래서 마른 놈은 패스.

마지막으로 이소희에게 온 메시지, 그러니까 신지민의 휴대폰 주소록을 바탕으로 정리 작업을 끝냈다.

“남택현, 이놈은 왜 용의 선상에서 제외된 거죠?”

“신지민 실종 신고 있었을 때 훈련 뛰고 있었어요.”

“네? 훈련?”

“군인이에요. 군인.”

군인이라면 철물점 주인이 의심하지 않았을 거다.

역시 패스.

“박명훈은?”

“그놈은...”

묻고 답하는 시간만 해도 한참이 지나갔다.

팀장이 담배를 입에 물며 서진을 바라봤다.

‘김서진이라고 했나?’

팀장의 인생은 이제 나락이다.

하지만 서진은 팀장 잡고 서장까지 잡았다.

이것만 해도 기세가 미친 거다.

앞으로 삐끗하지만 않으면 지금 이 이력만 갖고도 하이패스 단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살인범?’

애초에 발견된 것이 오직 유골인 증거 없는 살인이다.

경찰을 뒤집은 놈이 이 정도 해결 못 했다고 어디 가서 욕먹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안 되지만, 신지민은 죽어도 싼 애였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진은 사진까지 일일이 만져보며 집중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게다가.

‘절대 못 찾아.’

팀장이 몇 개월 동안 만지던 사건이다.

하지만 범인의 발자국도 보지 못했다.

‘그런데 네가?’

이 바닥에서 수십 년을 굴러다닌 자신이 물을 먹었다.

그런데 이제 막 수사 기관에 발을 들인 놈이 갑자기 범인을 찾으면 말이 안 되는 거다.

팀장은 빙긋이 웃으며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애써라.’

그때였다.

문이 열리고 이소희가 들어왔다.

“가져왔어.”

이소희가 서진의 앞에 신지민의 휴대폰을 내려뒀다.

“땡큐.”

서진이 곧바로 신지민의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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