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62화 (62/250)

<풀지 못할 숙제. -(4)>

*

청성 인력 지원센터라 적힌 사무실.

강력반 팀장이 낡은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가 재떨이에 담배를 툭툭 털며 앞을 바라본다.

머리가 길고 꽤 예쁘게 생긴 여성.

바로 피해자 신지민이 앉아 있다.

팀장이 입을 열었다.

“내일 단속 뜨니까 알아서 조심하고.”

“항상 감사해요.”

신지민이 활짝 웃으며 머리를 뒤로 넘겼다.

그리고 두둑한 흰 봉투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보지 않아도 뭐가 있을지 뻔하다.

돈이다.

팀장이 망설이지 않고 봉투를 손에 쥐며 안을 살폈다.

액수가 마음에 드는지 슬쩍 웃는다.

“좋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그런데, 주말에 뭐하냐? 오빠랑 술 한잔할래?”

마흔이 넘은 팀장이 신지민을 향해 ‘오빠’라는 말을 서슴없이 말하고 있다.

그런데 신지민의 태도가 더 놀랍다.

“서장님한테 혼나고 싶어요?”

“야, 이제 한번 마실 때도 되지 않았냐?”

“죄송해요.”

“에이.”

팀장이 담배를 비벼 끈 후 몸을 일으켰다.

돈을 받았으니 사무실을 떠날 생각이다.

주머니에 손을 꽂고 건들건들 문으로 향한다.

그러던 팀장의 걸음이 뚝 멎었다.

눈동자가 책상에 놓인 붉은색 장부로 향했다.

수많은 연락처.

-두민 여관, 로즈, 군인, 2시간.

-라이브 모텔, 화란, 회사원, 1시간.

-부일 모텔, 소민, 회사원, 1시간.

성매매 장부다.

장소, 일시, 성매매에 나선 여성의 가명.

그리고 매수자에 대한 전화번호와 특이사항이 자세히 적혀 있다.

팀장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하루 매출이 얼마냐?”

“글쎄요.”

신지민이 팀장의 옆에 서더니 장부를 덮었다.

더는 못 보게 하려는 거다.

아무리 돈을 주고받는 관계라 해도 정해 놓은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팀장이 다시 담배를 물며 입을 열었다.

“청소년도 있지?”

“그것도 글쎄요.”

“야, 네가 최 사장 몰래 민자 끌고 오는 거 알아. 그런데 웬만하면 하지 마. 그건 서장님도 못 막아.”

신지민이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돈이 되는 걸 안 할 수는 없잖아요?”

“얼만데?”

신지민은 대답 대신 봉투 하나를 더 꺼내 팀장의 품에 넣었다.

“이 정도는 드릴 수 있을 정도요.”

팀장이 낄낄 웃는다.

“이래서 정직하게 살면 병신인 거야. 너 같은 애들은 떵떵거리며 돈 벌고 나 같이 성실한 새끼들은 발발거려야 하고. 씨발.”

“제가 민자 관리하는 건 우리 사장님한테 비밀이에요.”

“그런데, 진짜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팀장이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뒷말을 줄였다.

신지민이 팔짱을 끼며 묻는다.

“뭔데요?”

“너도 여자잖아? 몸 파는 애들한테 안 미안하냐?”

“내가 선택했나? 지들이 선택했지.”

*

세상이 색을 찾았다.

서진의 시선에 강력반 팀장이 보인다.

팀장이 간절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절차대로 하시죠. 우리가 데려가서 보고할 테니까...”

그사이 서진의 머릿속은 사이코 메트리를 통해 본 것이 정리되고 있었다.

-성매매, 신지민, 서장, 팀장.

더럽게 얽힌 관계다.

이들이 신지민의 동생 서동석을 끌고 가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빤히 예상된다.

그래서 간절한 눈빛의 팀장을 스치며 서동석의 팔을 잡았다.

“일어나요. 가서 이야기합시다.”

다른 형사들은 서진을 말리지 못하고 인상만 구기고 있다.

그때, 팀장의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무리 검사라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닙니까!”

“...너무하다고?”

서동석을 일으키던 서진의 시선이 팀장에게 향했다.

그 눈빛이 살벌하다.

지금 당장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이 오히려 소리를 지르고 있다니.

서진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내뱉어졌다.

“조만간 또 봅시다.”

팀장은 멈칫거렸다.

모든 것을 아는 눈빛이 그를 옥죄고 있었다.

“저, 저...”

팀장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서진이 떠났을 때, 휴대폰을 다급히 귀에 댔다.

“서장님, 접니다.”

*

서진은 이소희 그리고 서동석과 함께 차를 타고 지검으로 향하고 있었다.

조수석에 앉은 이소희가 서진과 서동석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왜? 무슨 일이야?”

“잠깐만.”

서진이 차를 갓길에 정차하며 브레이크를 꽉 밟았다.

그리고 시선을 틀어 뒤에 앉은 서동석을 향했다.

서동석은 수갑을 찬 채 가늘게 떨고 있다.

“서동석 씨?”

“저, 저는 아니에요! 제가 누나를 왜 죽여요!”

“알아요. 그런데, 누나가 무슨 일 했는지 알죠?”

“네?”

“반응 보니까 알고 있네.”

서진은 확정 지었고 서동석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창백한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간다.

서진이 그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누나 휴대폰이 두 개죠? 하나는 대포폰인 것 같은데, 그거 어디에 숨겼어요?”

서동석이 치아를 꽉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한없이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저, 저는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서동석의 태도를 보면 절대 입을 열 것 같지 않다.

바들바들 떨면서도 비밀을 지키려 한다.

서진이 고개를 틀어 이소희를 향했다.

“지검 들어가면 취조 좀 해줘. 신지민은 휴대폰이 두 개였어.”

고개를 끄덕이던 이소희가 눈을 크게 떴다.

“취조? 내가?”

“어. 난 따로 할 일이 있어서.”

“야, 이거 우리 팀 사건이...”

“범인 잡는데 우리 팀, 너희 팀이 어디 있어? 검사잖아? 그럼, 부탁할게.”

서진은 자기 할 말만 하고 차에서 내렸다.

차에서 이소희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서진은 길을 걸으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이동진 수사관님? 부탁드릴 게 있어요. 경찰에 요청할 상황은 아닌 것 같아서요.”

*

잠시 후, 서진은 낡은 건물 앞에 섰다.

4층에 청성 인력 지원센터라 적힌 간판이 보인다.

‘여기.’

서진은 곧장 계단을 걸어 올랐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남자 세 명이 낡은 소파에 앉아 고스톱을 치고 있다.

한 명, 한 명이 흉악하게 생긴 놈들이 화투장을 내려두며 서진을 바라봤다.

“지금 일 없어요.”

서진은 답하지 않고 주변을 슥 둘러봤다.

8평의 작은 사무실, 이곳은 이름만 인력지원 센터지 실제는 성매매 알선 업체다.

그리고 서진의 눈동자가 책장에서 멎었다.

‘저거.’

붉은색 노트가 보였다.

사이코 메트리의 세상에서 강력반 팀장이 봤던 그 장부다.

그때.

“일 없다니까요.”

서진은 그들의 말을 무시하고 책장으로 향했다.

그러자 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가라고!”

서진은 이번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서준경 검사로 있을 때 숱하게 많은 양아치와 깡패를 만났다.

이 정도면 귀여운 애들이다.

서진은 책장 앞에 서서 곧바로 붉은색 노트로 손을 뻗었다.

동시에 놈들이 우르르 일어섰고 험악한 목소리가 내뱉어졌다.

“손대면 죽인다.”

서진이 고개를 틀어 놈들을 향했다.

놈들이 서진을 향해 저벅저벅 다가온다.

“너 뭐야? 왜 지랄이야!”

“손대면 죽인다고?”

“그래!”

서진은 놈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부를 꺼내 펼쳤다.

놈들의 눈이 부릅떠진다.

“이 새끼가!”

그때였다.

드르륵.

한 놈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이 업체의 사장이다.

발신 번호를 확인한 사장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잠깐.”

사장이 주변을 조용히 시킨 후 휴대폰을 귀에 댔다.

“네, 팀장님.”

무슨 말을 듣는지 몰라도 사장의 눈동자가 다급히 흔들렸다.

그리고.

“...검사가 올지도 모른다고요? 검사가 여길 어떻게 알고 와요? 혹시 모르니까 준비하라고요?”

동시에 사무실은 얼음이 쏟아진 것처럼 서늘해졌다.

놈들이 놀란 눈으로 서진을 바라봤다.

서진이 붉은 노트를 흔들며 입을 열었다.

“협상의 여지는 있는데.”

서진이 눈을 깜빡이는 놈들을 스쳐 소파로 향했다.

그리고 사장을 바라보며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쿡 찍었다.

“앉아.”

사장은 섣불리 앉지 못하고 눈치를 봤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한숨을 내뱉으며 서진과 마주 앉았다.

그리고.

“협상의 여지가 있다고요?”

“어.”

“원하는 게 있으십니까?”

“패는 그쪽이 까야지.”

사장은 조용히 서진의 얼굴을 살폈다.

아직 어리다.

검사 경력을 생각해봐도 1, 2년이 전부일 거다.

‘그러고 보니...’

주먹을 쥐었다 펴고 있다.

가끔 손목시계를 보며 시간도 체크한다.

마른 침을 삼키는 걸 보면 불안한 심정을 숨기려는 게 분명하다.

‘허세를 부렸던 건가?’

검사란 존재는 마음만 먹으면 이곳을 쑥대밭으로 만들 힘이 있다.

하지만 협상이라는 여지를 남겨뒀다.

게다가 수사관이나 다른 검사를 대동하지 않고 혼자 왔다.

‘왜?’

원하는 게 돈이기 때문이다.

그것 말고는 없다.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순간이다.

사장이 고개를 숙이고 소리 없이 끌끌 웃었다.

‘어린 새끼가 못된 것만 배워서.’

아무리 검사라 해도 인생의 경험이 없다.

어른 무서운 줄 모른다.

사장은 돈에 미친 어린 검사를 쉽게 요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사장이 마른 입술을 핥으며 손을 슥슥 비볐다.

이제 저 머저리의 입에 족쇄를 채울 시기다.

미끼를 던지고 돈을 받는 순간 그 장면이 CCTV에 담길 거다.

그럼, 꽤 괜찮은 인형이 만들어지는 거다.

‘검사까지 포섭하면 이 지역에서 위험 요소는 싹 사라지는 거야.’

사장이 고개를 들고 서진과 시선을 마주쳤다.

그리고 첫 번째 미끼를 던졌다.

“매달 삼백만 원씩 드리겠습니다.”

“삼백?”

“네.”

그런데, 서진의 표정이 심드렁하다.

어린 새끼가 벌써 돈맛을 알았는지 삼백에는 흔들림도 없다.

하지만 사장의 표정도 변함이 없었다.

레이스는 이제 시작이다.

“...오백이면 되겠습니까? 더 드리고 싶지만 저희도 사정이 어렵습니다. 예전에야 가게 돌리면 한 달에 벤츠 한 대씩 뽑았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지금은 단속이 심해지고 민원도 많이 들어가서요. 이것저것 빼고 나면...”

사장의 말을 듣던 서진이 장부를 착착 넘기더니 픽 웃었다.

“어디서 약을 팔고 있어. 매출 보니까 지금도 벤츠 뽑을 것 같은데?”

“그게 아가씨가 가져가는 비율이 높아졌고 사이트도 운영해야 하거든요. 그리고 여기저기 찔러주면 남는 게 없어요.”

사장이 슬쩍 서진의 표정을 살폈다.

이번에도 덤덤하다.

우는 소리를 지껄이면 듣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데 오로지 돈만 밝히고 있다.

“그래요. 그럼 육백.”

“......”

“칠백!”

“......”

“하... 알겠어요. 천만 원씩 드리겠습니다. 정말, 그 이상은 저도 안 됩니다. 그냥 잡아가세요. 손가락 빨며 굶어 죽는 것보다는 빵에 가서 콩밥이라도 먹는 게 좋은 거죠.”

사장은 이번이 마지막 레이스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더 빼 먹으려 하면 양아치다.

그런데, 이 젊은 검사는 양아치였다.

“강력반 팀장하고 서장은 얼마 받지?”

“네?”

“명색이 검산데 그 사람들보다는 많이 받아야 하지 않겠어?”

사장이 인상을 팍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팀장은 건당 50이고요. 명절에 백만 원씩 주고 있습니다.”

“서장은?”

“달에 오백씩 주고 있습니다. 됐습니까? 저희가 검사님은 특별 대접해드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서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 욕심 많은 노인네가 오백에 만족한다고? 그럼, 까봐.”

“네?”

“장부 까보라고.”

공무원과 연결된 장부는 최후의 보루.

그들에게는 생명줄과 같은 거다.

그런데, 서진이 그걸 요구하고 있다.

이건 선을 넘은 거다.

사장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검사님,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겁니다. 제가 삼촌뻘인 것 같은데 말씀드린 천만 원 받고 끝내시죠. 그게 아니면...”

“장부가 있다는 거네?”

“네.”

“가져와.”

“검사님!”

사장이 버럭 소리치며 서진을 향했다.

그런데 서진이 웃고 있다.

지금껏 머저리 같았던 표정이 돌변하며 냉랭한 눈으로 사장을 내려다본다.

저 눈은 돈을 보는 게 아니라 범죄자를 보고 있다.

사장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씨발... 검사면 다야!”

사장이 사나운 이빨을 드러냈다.

이 멍청한 검사는 혼자 왔다.

박살 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 뒤에는 배를 타고 다른 나라로 튀어도 되고 지방에 숨어 살아도 된다.

어차피 돈은 많다.

이왕 걸린 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죽여!”

쾅!

사장이 테이블을 내리쳤다.

동시에 문이 열리며 수사관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잡아!”

사장의 직원들이 수사관들에게 잡히고 있다.

도망치려 하다가 자빠져서 빌기도 한다.

사장이 멍한 눈으로 서진과 수사관을 번갈아 봤다.

이게 뭔가 하는 표정이다.

그를 보며 서진이 슬쩍 웃었다.

그리고 그를 향해 몸을 기울이며 낮은 음성으로 속삭였다.

“내가 미쳤다고 혼자 오겠어? 장부 가져와 새끼야.”

사장의 얼굴이 쩍쩍 갈라진다.

인생의 끝을 예상하는 거다.

서진이 몸을 일으켰다.

이제 서장과 팀장을 박살 내고 살인범을 찾아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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