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64화 (64/250)

<풀지 못할 숙제. -(6)>

서진은 곧바로 메시지부터 확인했다.

하지만 별다를 것은 없다.

사진과 동영상도 마찬가지다.

예쁜 척하는 셀카가 몇 개 있을 뿐이다.

그 모습을 팀장이 보고 있었다.

갑자기 초조한 모습으로 담배를 뻑뻑 피워댔다.

‘새끼가... 없다고 했잖아!’

팀장은 신지민이 죽고 나서 가장 먼저 서동석을 찾았었다.

-신지민 휴대폰 어디 있어. 그거 말고 대포폰!

-없어요. 진짜예요.

-원조교제 알선으로 잡아가기 전에 빨리 말해!

-정말이에요. 없다니까요.

팀장이 대포폰을 찾았던 이유는 하나.

자신의 연락처가 들어 있을까 두려웠다.

어떤 메시지를 주고받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메시지가 발견되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팀장은 협박을 했었고 만나 달라 애원을 했었다.

‘어쩌면 내가 범인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어. 막아야 해.’

팀장이 깊은 생각에 빠졌을 때, 서진은 이소희와 대화하고 있었다.

“하나만 더 부탁해도 될까?”

“뭐든.”

자신의 일도 바쁠 텐데 이소희는 흔쾌히 대답했다.

서진이 테이블에 놓인 서류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휴대폰 데이터 복원 신청하고 올 테니까 이 사람들이 왜 용의 선상에서 제외됐는지 답을 들어줘.”

“오케이.”

이소희는 팔을 걷었고 서진은 정보 통신계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팀장이 뜬금없이 초를 친다.

“검사님, 노파심에서 말씀드리는데요. 그거 복원해도 나오는 게 없을 겁니다. 시간 낭비에요.”

“......”

“생각해 보세요. 범인은 완벽 범죄를 계획했어요. 신지민의 휴대폰에 메시지를 보냈었다면 가장 먼저 뭘 했겠습니까? 찾아 없앴겠죠.”

“......”

“그리고 통화 녹음도 안 되는 폰이잖아요. 건드려도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

“오랜 형사 경험으로 봤을 때, 이 사건은 여기가 끝입니다. 미제로 덮어지는 거예요.”

그 순간 팀장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서진의 표정이 바뀌고 있다.

그러더니 뚜벅뚜벅 다가온다.

책상에 두 손을 짚고 천천히 몸을 기울여 팀장과 얼굴을 가까이했다.

이어서 서진이 소름 끼치도록 낮은 음성을 내뱉었다.

“왜 그러세요?”

“네?”

“찔리는 게 또 있어요?”

“그, 그게 무슨...”

“표정 보니까 있네.”

팀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당황한 팀장이 큰 소리를 내뱉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노파심이라고 했잖아요!”

팀장은 후회했다.

도둑이 제 발 저려 쓸데없는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하지만 이미 물은 엎어졌다.

지금은 무조건 모른 척 오리발을 내밀 수밖에 없다.

“노파심입니다. 노파심!”

하지만 서진의 표정엔 변화가 없다.

아니, 오히려 냉랭해진 표정이다.

그리고 서진은 사이코 메트리를 통해 봤던 팀장과 신지민의 대화, 그때 팀장이 했던 말을 그대로 내뱉었다.

팀장만 들을 수 있도록 작게.

“야, 최 사장 몰래 민자 끌고 오는 거 알아. 그런데 웬만하면 하지 마. 그건 서장님도 못 막아.”

동시에 팀장의 얼굴이 쩍 갈라졌고 끔찍한 귀신을 본 것처럼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팀장은 자신도 모르게 과거를 떠올렸다.

*

팀장은 신지민이 원조교제로 돈을 버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알선책이 서동석이라는 것도 알아버렸다.

용돈이나 받으며 끝내기엔 아쉬웠다.

그래서 신지민의 몸을 위아래로 훑으며 말했었다.

“이것도 가족 같은 회사냐? 최 사장한테 이야기할까? 너희가 쌍으로 지랄한다고?”

일반적인 성매매와 미성년자 성매매는 개념부터 다르다.

사장이 알면 난리가 날 게 분명하다.

단순히 몇 대 맞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거다.

“너는 봐줘도 서동석은 그냥 안 넘길걸? 팔다리 하나 잘릴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

신지민은 결국.

“알았어요. 언제 볼까요?”

팀장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

그리고 며칠 후.

팀장의 앞에 신지민이 섰다.

체크 미니스커트에 갈색 카디건, 누가 봐도 대학생이었다.

그것도 청순하게 아름다운.

그 모습을 보며 팀장이 마른 입술을 핥았다.

“얼굴 한번 보기 더럽게 힘드네.”

“앞으로 찝쩍거리기 없기에요. 그럼, 진짜 서장 아저씨한테 이야기할 거예요.”

“알았다고. 사람 못 믿어?”

두 사람은 유흥가를 걸었다.

일단 술 한잔 마실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 신지민의 휴대폰이 벨을 울렸다.

발신 번호를 본 신지민이 인상을 구기며 전화를 받았다.

“고객님? 돈 떨어졌으면 이제 연락하지 마세요. 성폭행으로 신고해줄까요? 모텔에 CCTV도 있던데.”

더없이 차가운 목소리에 팀장의 시선이 신지민에게 틀어졌다.

정확한 내용은 모르지만 대화의 흐름은 알 수 있었다.

-신지민은 꽃뱀 짓을 했고 호구는 돈이 떨어졌다.

거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신지민이 워낙 더럽게 놀았으니까.

그런데, 신지민의 입에서 이상한 말이 뱉어졌다.

“...너 나 보고 있어?”

그 말에 팀장의 머리가 쭈뼛거렸다.

아무래도 당당한 사이가 아니다.

그래서 신지민이 주변을 둘러볼 때 팀장도 함께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없었다.

호구의 허세일 뿐이었다.

신지민이 픽 웃으며 입을 열었다.

“도망가는 게 좋아. 이 오빠 무서운 사람이니까. 그리고 마음대로 해. 너하고 이 오빠는 달라.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야.”

그 말을 끝으로 신지민이 키득키득 웃었다.

그리고.

“미친 새끼.”

신지민은 통화를 종료했고 팀장은 찝찝한 느낌을 버리지 못한 채 물었다.

“왜? 뭔 전화야?”

“남자 친구인 척 해줘요.”

“어?”

신지민이 팀장의 팔에 찰싹 달라붙었다.

*

팀장의 눈에 다시 서진이 보였다.

열정 가득한 젊은 검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닳고 닳은 이무기다.

그 이무기가 조용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네가 죽였지?”

“네?”

난데없는 말에 팀장이 눈을 깜빡였다.

그런데, 서진은 진짜 그렇게 생각한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대포폰에 예민한 거 아니야? 궁금하네, 이걸 복원하면 무슨 내용이 있을까?”

“......!”

서진은 팀장이 범인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다.

덩치와 목소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눈빛을 보면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래서 사정없이 찌르기 시작했다.

“메시지? 그동안 껄떡댄 흔적? 아니면 협박?”

구석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물고 벼랑 끝에 선 사람은 지푸라기를 찾는다.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아, 미치겠네! 난 그냥!”

쾅!

서진이 테이블을 내리찍었다.

그리고 팀장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다.

“아니야, 너야.”

“아! 만난 적은 있어요. 그런데, 맞다! 맞아요! 갑자기 떠올랐는데요. 그때 이상한 전화를 받았어요.”

“전화?”

“그래, 그 새끼가 살인범일 거예요. 그 새끼 맞아요!”

팀장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그리고 신지민의 통화 내용을 전했다.

그게 범인인지는 모른다.

신지민에게 원한 갖은 호구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팀장은 벗어나고 싶었고 열심히 떠벌렸다.

“신지민이 꽃뱀도 했었거든요. 호구를 물었나 봐요. 그런데 그 호구가 계속 스토킹을 했어요. 그래서 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남자 친구인 척 해달라고 했었어요. 정말이에요!”

팀장의 이야기는 두서가 없었다.

입에서 내뱉어지는 대로 지껄이고 있다.

하지만 서진은 앞뒤가 맞아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처음 이 사건의 현장에서 사이코 메트리를 봤을 때, 범인이 했던 말.

-사기꾼.

-이제야 나를 봐줄 마음이 생겼나?

-바람을 펴? 내가 그동안 퍼다 준 돈이 얼만데?

-너 다음은 그놈이야. 지옥에서도 행복하나 보자. 개 같은 놈들.

그 말을 기억해 보면 지금 팀장이 하는 말과 매칭된다.

그럼, 범인의 다음 목표는 팀장이었다.

서진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팀장이 여기 잡혀 온 게 운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나쁜 것인지 모르겠어서다.

하지만 팀장은 서진의 알 수 없는 웃음소리에 불안감을 느꼈다.

그리고 서진이 다시 팀장의 앞으로 몸을 기울였을 때 움찔거렸다.

‘또 왜!’

팀장은 이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서진이 무섭기까지 했다.

그 순간, 서진이 입을 열었다.

“언제야?”

“네?”

“둘이 따로 만난 게 언제냐고.”

“정확한 시간은 기억 안 나는데요. 날짜는...”

***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휴대폰의 데이터가 복원되었다.

“이거 어렵겠는데요?”

직원이 고개를 저었다.

사진이나 동영상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문제는 연락을 주고받은 남자가 말 그대로 한 트럭이라는 거다.

하지만 서진이 관심 갖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

팀장과 데이트를 하던 날, 추정되는 시간에 연락받은 번호.

‘모두 열세 명.’

팀장을 제외하면 모두 수많은 남자 친구 중 하나다.

서진이 슥슥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런데...’

그중에 군인이 있다.

부사관이고 중사, 남택현.

신지민의 실종 신고가 들어왔을 때, 훈련을 뛰고 있었기에 용의 선상에서 제외되었던 사람.

그런데, 그냥 넘기기에 뭔가 찝찝하다.

‘뭐지?’

서진의 눈이 찌푸려졌고 순간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 하나 있었다.

-완벽한 알리바이, 완벽 범죄.

서진이 턱을 매만졌다.

훈련이라 해도 밤이면 빠져나올 수 있다.

근무를 서기는 하지만 다들 피곤해서 시간만 때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간부라면, 프리패스다.

서진이 자신의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남택현의 번호를 꾹꾹 눌렀다.

통화 연결음이 이어졌고.

-여보세요?

서진은 눈을 감고 조용히 놈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비슷해.’

서진은 어떤 말도 하지 않고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 정보 통신계를 빠져나가며 곧장 이동영 수사관에게 연락했다.

“수사관님? 지금 좀 나갔으면 하는데요. 그리고 포병대대에 연락해서 남택현 중사가 부대 내에 있는지 확인 좀 부탁드려요.”

서진이 군인을 쫓는다는 소문이 지검을 채웠다.

-경찰이 이미 조사한 애라며?

-경찰 띄엄띄엄 생각하네.

-그런데 경찰이 놓친 것까지 잡아내면 진짜 대박 아니야?

-야, 아무리 썩었어도 경찰이야. 신입 검사가 무시할 정보력이 아니야.

서진이 경찰 서장과 강력반 팀장을 잡아 오며 지검이 술렁이고 있었다.

조상님의 은덕이라며 운으로 치부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경찰이 한번 놓친 사람을 잡아 왔는데 그게 정말 진범이면?

검사들이 한숨을 내뱉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설마...

그 시각, 서진은 이동영 수사관과 함께 차에 올랐다.

이동영 수사관이 시동을 걸며 입을 연다.

“휴가를 받아 집에 있대요. 아, 걱정하지 마세요. 고향에 간 게 아니라...”

놈은 부대 주변에 집을 얻어 혼자 살고 있다.

휴가를 받았지만 집에 처박혀 있다는 소식이다.

이동영 수사관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폭력적인 성향이 좀 심하답니다. 잠잠했는데 다시 도져서 불명예 전역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나 봐요.”

*

창이 커튼으로 가려져 어두운 방.

그곳에 남택현이 앉아 있었다.

수첩을 들고 끄적끄적 뭔가를 적고 있다.

그때 남택현의 휴대폰이 드르륵 진동했다.

발신 번호가 부대 후임이다.

남택현이 귀찮은 표정으로 휴대폰을 귀에 댔다.

“어. 왜?”

-반장님, 무슨 일 있어요?

“왜?”

-검찰에서 연락이 왔다는데?

남택현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때였다.

초인종이 딩동 거렸고 덜컹덜컹 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남택현 씨? 안에 있는 것 다 알고 있어요! 남택현 씨?”

남택현이 인상을 확 일그러뜨렸다.

‘씨발!’

다급히 베란다로 이동했다.

2층이다.

충분히 뛰어서 도망갈 수 있다.

그가 베란다 문을 확 열어젖혔다.

그런데.

‘어?’

낯선 사람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서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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