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지 못할 숙제. -(3)>
“언론에 알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지세헌 부장검사는 서진에게 필요한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물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언론이라니.
서진이 계속 말했다.
“범인은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유골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실종으로 처리되었을 문제죠.”
완벽 범죄가 될 수 있던 사건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마지막까지 신경 썼을 거다.
땅에 묻거나, 계곡에 뿌리거나.
하지만 놈은.
“숨기지 않고 방치했습니다.”
이런 경우는 두 가지다.
하나는 놈이 범죄 사실을 자랑하고 싶은 미친놈인 경우.
그럴 때는 죽음을 관장하는 신이라도 된 것처럼 메시지를 남겨두고 사람들의 반응에 쾌락을 느낀다.
하지만 이번에는.
“범인은 피해자가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합니다. 세상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어떤 원한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범인 나름의 처벌이겠죠.”
“처벌?”
“놈은 그렇게 믿고 있을 겁니다.”
무차별적 살인이 아니다.
치밀한 계획범죄다.
그런데 메시지는 없고 오직 살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두 번째 살인을 계획하고 있을 겁니다. 주인공은 그 ‘누군가’겠죠.”
서진은 사이코 메트리를 통해 본 것을 최대한 현실적으로 이야기했고 지세헌 부장검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진의 주장에 허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진을 믿기로 했다.
지세헌 부장검사의 머릿속에 얼마 전 이명수 부장검사와 했던 대화가 스쳤다.
-냅둬. 그럼, 잡아 올 거야.
유배당한 뒤로 타인을 믿지 않는 이명수 검사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한번 믿어볼 만 하다.
결과로 철물점의 장부까지 찾아오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껏 폐가 살인은 여론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정치인의 헛소리와 잔혹한 사건이 하루가 멀다고 터지는 시기다.
산속에서 발견된 유골은 토막 기사로 나오기도 어려웠다.
“관심이 집중되면 경찰은 다시 움직이겠죠.”
관심이 집중된 사건은 경찰 서장을 불안하게 만든다.
게다가 한창 꽃을 피워야 할 이십 대 중반의 여성이 살해당한 사건.
그녀는 꽤 예쁘게 생겼고 여론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여론은 그녀의 한을 풀어줘야 한다며 들고 일어날 거다.
“그럼, 범인의 행동에 제약을 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놈을 잡아 처넣을 증거는 없다.
하지만 지금부터 코너로 몰아넣을 생각이다.
불안해서 잠도 못 자도록.
*
부장검사실에서 나온 서진은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 귀에 댔다.
“이하은 기자님?”
시사 프로그램 ‘세상을 본다.’의 이하은 기자다.
그녀의 목소리가 반갑게 울렸다.
-네, 오랜만이에요.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
-또 특종?
***
-춘천의 한 야산에서 유골이 발견된 사건이 있습니다. 피해자의 이름은 신지민. 나이는 이제 스물넷, 앞으로의 꿈을 이루기 위해...
그 시각, 춘천 경찰서.
각 과의 과장과 팀장이 일제히 엘리베이터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는 중에도 뉴스는 계속된다.
-경찰은 어떤 단서도 찾지 못하고 사실상 수사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신지민의 얼굴은 예쁘게 생겼다.
뉴스를 본 사람들은 분노했고 경찰의 무능함을 비난했다.
-단서를 찾지 못 한 게 아니라 안 찾았을 듯.
-우리 집 도둑 들었을 때 신고하니까 기다리라고 하고 연락 안 주더라.
-세금이 이렇게 살살 녹습니다.
-그쪽 경찰서에 전화해서 욕할 사람?
-청문감사실, 민원실 전화번호 쏜다!
-경찰서 말고 경찰청으로 ㄱㄱ.
-2222.
-33333.
그리고.
꽝!
경찰 서장이 전화기를 집어 던졌다.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욕을 처먹었는지 귀까지 시뻘겋게 변해 있다.
“브리핑해 봐. 갑자기 왜 이런 거야?”
서장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살벌했다.
모두 눈치만 볼 때 형사과장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번 사건은...”
사건이 요약되었다.
“문제는 검찰에서 그림자를 밟았답니다.”
“검찰?”
“그쪽에 어린 검사 놈 하나가 들어왔는데, 그놈이 꽤...”
“넌 그동안 뭐 했어?”
“네?”
“책상머리에 앉아서 펜대만 굴리던 놈한테 밀려? 뭐 했냐고 새끼야!”
서장이 손에 집히는 것을 모두 집어 던졌다.
“당장 나가! 당장 잡아 와!”
사람들이 튀어 나갔다.
그런데 강력팀 팀장은 나가지 않고 서 있었다.
서장이 얼굴을 구기며 물었다.
“넌 왜 안 꺼져?”
“서장님...”
“왜?”
“별것 아니라고 생각해서 잊으신 것 같은데, 그 사건이 그겁니다.”
“뭐?”
“그거요. 그 여자...”
서장의 눈이 찌푸려졌다.
곧 머리를 쥐어뜯었다.
성매매 방지 특별법을 시작으로 성매매는 음지로 파고들었다.
그들은 안마시술소나 퇴폐 이발소, 혹은 주변 여관 등을 중심으로 영업을 계속했고 신고내용이나 단속정보를 제공해주며 돈을 받았었다.
그런데, 그들과 정보를 주고받던 여성이 살해당한 채 유골로 발견되었다.
“젠장!”
***
며칠 뒤.
지검에서 멀지 않은 커피숍.
이소희가 커피를 내려두며 입을 열었다.
“몇 시 약속이야?”
“10분 후.”
서진은 피해자의 동생 서동석과 만나기로 약속했다.
장소는 일부러 조용한 커피숍.
심리적으로 불안한 유가족에게 안정을 주기 위해서다.
이소희를 데려온 이유도 마찬가지.
아무래도 서진보다 말투나 행동이 부드럽다.
“이거.”
서진이 이소희에게 A4용지 한 장을 건넸다.
서동석에게 할 질문지다.
이소희가 질문지를 죽 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외웠어. 그런데, 부장님이 필요한 거 다 지원해주겠다고 했다며?”
“어.”
“부럽다. 부러워.”
“부러우면 너도 깡치를 맡아.”
“놉. 저는 야망이 없습니다.”
이소희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본청에 오며 이소희의 성격도 많이 바뀌었다.
조금 더 밝아졌다고 해야 하나?
야망이 없다는 등 이상한 뻘 소리를 당당하게 내뱉고 있다.
“그런데, 어제 투표했어?”
총선 다음 날이었다.
춘천에서 누가 당선되었는지는 관심 없었지만 송파에서는 서진이 원한 대로 우진욱이 당선되었다.
사실 우진욱의 당선은 모두 예상한 일이다.
서진이 엄일섭 의원 등 그 상대를 연이어 박살 냈기 때문에 손쉬운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
고맙다는 전화를 받았고 다음 서울에 올라갔을 때 만나기로 약속했다.
“난 원래 투표 안 하려고 했는데, 후보로 나온 사람이 전과자인 거야. 그걸 보고 어떻게 가만히 있겠어?”
“그쪽 바닥에서 전과는 우대 사항이잖아?”
“농담하지 마. 그리고 음주운전 여덟 번에 폭력...”
이소희가 이런저런 말을 하고 있을 때, 서진이 주먹으로 툭툭 테이블을 두들겼다.
신호를 본 이소희가 조용히 입을 닫았고 서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들었다.
“여기요.”
피해자 신지민의 동생 서동석.
그가 커피숍에 들어왔다.
피해자와 성이 다른 이유는 아버지가 다르기 때문.
신지민의 어머니가 이혼 후 새 가정을 꾸렸지만 신지민은 성을 바꾸지 않았다.
“서동석 씨죠?”
서동석은 중학교까지 야구를 했다고 한다.
덩치가 좋고 꽤 잘생긴 얼굴이다.
만약 놈이 범인이라면 피해자는 힘 한번 쓰지 못하고 끌려갔을 거다.
*
“혹시 돈을 빌렸거나 빌려준 적이 있나요? 아니면...”
이소희가 질문했고 서동석은 고개를 저었다.
“없었어요.”
“따로 하는 일은요?”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 신지민의 직업은 없었다.
게다가 원한 살 일도 없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서진이 본 사이코 메트리에서 본 것은 달랐다.
범인은 분명 말했다.
-사기꾼.
뭔가 일을 하지 않고는 그런 말을 들을 수 없다.
하지만 서동석은 고개를 저었다.
“계속 말씀드렸잖아요. 없었어요.”
“혹시 남자친구는요?”
“없었다고요.”
서동석은 없었다는 말을 이어갔고 서진은 조용히 그를 관찰했다.
동공이 수축되어 있고 팔이 뻣뻣한 게 보인다.
뭔가 감추고 있는 게 분명하다.
“누나는 집에만 있었어요. 그러니까 담당 검사님께 꼭 말씀 좀 전해주세요. 상처를 그만 헤집어 달라고요. 엄마도 아빠도 힘...”
조용히 있던 서진이 입을 열었다.
“멈춰 달라고요?”
“...네. 이제야 안정되고 있어요. 산 사람은 살아야죠. 그러니까 담당 검사님께...”
“아, 제가 담당 검사입니다. 전화로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요. 방금 인사도 했고요.”
“네? 제가 아는 검사님은...”
“담당이 바뀌었거든요.”
서동석은 눈을 깜빡였다.
검사라면 나이도 좀 있고 꽤 딱딱하게 생겼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전에 만났던 검사는 딱 그런 분위기였다.
하지만 서진의 얼굴은 생각한 것과 전혀 달랐다.
외모도 그렇고 어리다.
아무리 많게 생각해도 이십 대 후반.
게다가 잘 생겼다.
“검사라고요? 수사관이나 뭐 그런 게 아니라?”
“네.”
서동석이 눈을 깜빡일 때, 서진이 조용히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전에 했던 진술과 다를 게 없다는 거네요?”
“...네.”
“새로 알게 된 거나 바뀐 것도 없고요?”
“네.”
“알겠습니다.”
서진이 수첩을 접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서동석을 향해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혹시 생각이 바뀌시거나 따로 할 말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세요.”
상대가 모르쇠로 일관하는데 계속 앉아 있는 것은 시간 낭비다.
커피숍에서 벗어난 서진이 이소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느꼈지?”
“어.”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서동석은 뭔가를 숨기고 있었다.
사건에 관한 것이든, 피해자의 신상에 대한 것이든.
‘뭘까...’
그때였다.
커피숍 앞으로 승합차가 끼이이익! 멈춰 섰다.
서진의 시선이 다급히 이동했다.
승합차에서 우악스러운 형사들이 우르르 내린다.
“저기!”
“서! 새끼야!”
그들이 향한 곳은 서진과 반대 방향으로 떠나던 서동석이다.
험악한 목소리를 들은 서동석이 그들을 보고 움찔거렸다.
“어? 어?”
주춤주춤하더니 몸을 틀어 도망쳤다.
하지만 강력반 형사들은 쫓는 것에 익숙하다.
도망치는 방향에 기다리고 있던 형사가 서동석의 다리를 걸어버렸다.
콰당탕탕! 요란한 소리가 들리며 서동석이 자빠졌고 그 위로 형사들이 올라탔다.
“놔요! 왜 그러세요!”
“널 신지민 살해 혐의로 긴급 체포한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누가? 내가요? 아니라고!”
“그건 가서 이야기해!”
덩치가 좋고 힘이 세다 해도 강력반 형사 여러 명을 이길 수 없다.
서동석은 바동거리는 게 전부였다.
그때, 그들의 귀에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죠?”
강력반 팀장이 손을 저으며 건조하게 말했다.
“공무 중입니다. 가세요.”
“아, 저도 공무 중이라서요.”
강력반 팀장이 고개를 틀었다.
이십 대 후반의 남자가 보인다.
서진이었다.
팀장이 물었다.
“...공무 중이라고요?”
“검찰입니다.”
팀장이 담배를 내뱉으며 신분증과 서진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
‘김서진.’
잘 알고 있다.
지금 경찰을 엿 먹인 게 김서진이다.
경찰 수사를 믿지 않고 제멋대로 수사해서 말도 안 되는 증거나 가지고 온 놈.
얌전히 사라질 사건을 굳이 끄집어낸 원흉.
강력반 팀장이 이를 꽉 다물었다.
그리고 서진을 노려보며.
“폐가 살인 사건 담당하시는 검사님 맞죠?”
“네.”
“이놈이 그 범인입니다.”
서진은 고개를 틀어 서동석을 바라봤다.
아스팔트에 깔려 수갑이 채워지고 있다.
억울한 눈으로 바락바락 소리를 지른다.
“아니라고! 나 아니라고!”
서진의 시선이 다시 팀장을 향했다.
“...범인이라고요?”
“네. 곧 보고 올릴 테니까 이놈이 왜 범인인지 그때 확인해 보세요.”
서동석은 범인이 아니다.
덩치는 비슷하지만 사이코 메트리에서 봤던 것과 목소리가 완벽히 다르다.
그 말을 한다고 믿어 줄 리는 없을 테고.
‘하...’
서진은 한숨을 내뱉었다.
이대로 경찰이 서동석을 끌고 가면 사건이 흐트러지며 범인이 제멋대로 날뛸 수도 있다.
그럼, 사건이 망쳐지고 김영준 검사장의 의도대로 되는 것.
그건 서진의 계획이 아니다.
서진이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뭐요? 지금 실적 낚아채는 겁니까? 아무리 검찰이라 해도!”
서진이 팀장을 향해 고개를 틀었다.
그리고 서늘한 눈으로 상대를 바라봤다.
“문제 있나요?”
“......!”
팀장은 순간 움찔했다.
수많은 범죄자를 마주하며 살아왔다.
웬만한 눈빛에 겁을 먹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서진의 눈은 달랐다.
‘무슨 애새끼의 눈에 빠꾸가 없어.’
이런 눈빛의 인생은 극단적이다.
살인자 또는 검사.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일을 벌이는 놈.
서진이 팀장의 옆을 스치며 입을 열었다.
“사건 뺏는 것 아닙니다. 조사해봐서 정말 범인이라면 그쪽 어깨에 다 올려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요.”
팀장은 이를 꽉 깨물었다.
이대로 서동석을 내주면 안 된다.
그럼, 서장을 볼 낯이 없다.
“자, 잠깐만요.”
팀장이 서진의 옷깃을 잡았다.
그런데, 그 순간이다.
뜬금없이 사이코 메트리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