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끼. -(3)>
***
지검의 휴게실.
서진은 이소희를 만나고 있었다.
같은 지검으로 발령받아 왔는데 지청에서보다 더 보기가 어렵다.
지금도 짬을 내서 겨우 얼굴을 보는 중이다.
이소희가 커피에 입을 댄 후 물었다.
“괜찮아?”
“뭐가?”
“검사장님이 너희 부장검사님 싫어한다며.”
비아냥거리는 게 아니다.
진심으로 걱정해서 묻는 거다.
강원 지검 조용준 검사장은 은퇴를 기다리는 늙은 여우.
승진에 대한 욕심은 없고 자신에게 살살거리는 사람만 좋아한다.
그런데 서진의 부장검사에게 아부의 능력은 없었다.
게다가 형사 2부가 굵직한 사건을 모두 놓쳐버리고 있으니 미운털만 잔뜩 박히고 있다.
그래서 서진의 부장검사는 능력 없는 놈으로 취급되었고 조용준 검사장이 있는 이상 승진은 물 건너갔다고 평가받는다.
그 덕에 서진이 있는 형사 2부 역시 개차반 취급을 받고 있다.
서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서진은 대수롭지 않았다.
조용준 검사가 아무리 부장검사를 싫어하고 형사 2부를 얼빵한 놈들의 집합소라 외친다 해도.
이제 볼 일이 며칠 안 남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조용준 검사장은 조만간 옷을 벗을 테니까.
“그런데 공판 연기는 왜 한 거야?”
이소희가 눈을 깜빡이며 서진을 바라봤다.
서진이 동남 지청에서 해결한 사건은 어마하다.
그래서 등판 소식이 전해졌을 때 강원지검의 모든 시선이 서진에게 쏠렸다.
여기서 뭔가 보여주면 서진은 물론이고 형사 2부의 주가도 올라갈 게 분명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공판을 연기하다니.
이소희의 의문 가득한 시선에 서진이 슬쩍 웃었다.
“취소될 공판에 죽자고 달려드는 것은 힘 빠지는 일이잖아?”
“어?”
“그런 게 있어.”
이소희는 고개를 저었다.
서진은 또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견하는 느낌.
이해하고 싶어도 머리만 아픈 일이다.
***
“김용우?”
중앙지검.
김윤환은 다리를 외로 꼬고 앞을 바라봤다.
이제 스무 살, 앳된 얼굴의 김용우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김윤환은 뱀 같은 눈으로 김용우의 표정을 관찰하며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서류로 책상을 툭툭 치며 생각을 이어갈 뿐이다.
‘일단 김용우와 마주 앉았어.’
첫 단추는 잘 끼웠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문제다.
-이 사건을 강원도의 추락 사건과 어떻게 연관 지을 수 있을까.
-김용우의 입에서 자백을 받으려면 어디서부터 매듭을 풀어야 할까.
그리고 테이블을 두드리던 서류가 움직임을 멈추며 김윤환의 눈동자가 김용우의 전체를 살폈다.
‘겁이 많아.’
김용우는 온몸을 떨고 있다.
고작 교회의 문을 파손한 혐의로 잡혀 와 놓고 툭 치면 울 것 같은 얼굴이다.
고등학교 때는 싸움 좀 한다고 어깨에 힘을 줬을 거다.
하지만 검찰에 오면 가볍게 밟아 죽일 수 있는 벌레와 같다.
이런 놈은 조금만 압박해도 술술 불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김윤환이 생각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하나만 묻자.”
조용한 목소리에 김용우가 화들짝 놀라더니 다급히 입을 열었다.
“수, 술을 마셔서 기억이 잘 안 나요. 제가 술이 약해서, 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넘어졌는데 문이 부서졌어요. 맞아요. 그런 거예요.”
김윤환은 빙긋이 웃었다.
뭐든지 물어보면 다 대답해 줄 분위기다.
김윤환이 다시 입을 열었다.
“기물 파손을 묻는 게 아니야.”
“그, 그럼요?”
“왜 그랬어?”
“네?”
“왜 사람을 죽였어?”
김용우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어갔고 입이 허옇게 변해갔다.
김윤환은 그 모든 것을 관찰하며 입을 열었다.
“다 알고 있어. 그러니까 솔직히 말해봐.”
“뭐, 뭘요?”
“아파트.”
김용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초조하게 손만 꼼지락거린다.
그 고민의 순간을 지켜보던 김윤환은 입을 다물며 다 알고 있다는 눈빛으로 김용우를 압박했다.
‘제발...’
김윤환은 김용우가 자백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저는 말렸어요.”
김윤환의 주먹에 힘이 꽉 들어갔다.
‘됐어.’
보통의 범죄자라면 잡아떼는 시간만 1박 2일이다.
그런데 시작부터 자백이라니.
김윤환의 머릿속에 환하게 웃는 김영준 검사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김윤환은 지금까지 집에 들어가는 게 가시방석이었다.
냉랭한 아버지의 표정과 그 눈빛.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오랜만에 아버지와 소주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김윤환은 그 표정을 숨기며 테이블 밑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딸칵.
마이크를 꺼버렸다.
이어서 나직이 입을 열었다.
“너... 3년만 살다가 나와라.”
“......!”
“다른 새끼들은 10년이야.”
김용우가 눈을 반짝였다.
동시에 김용우의 머릿속에 서진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
가로등이 흔들리는 골목에서 서진이 말했었다.
“조준태 아버지가 누구지?”
“거, 검사장이요.”
“그래, 검사장이야. 이 지역의 왕. 그런데 잘 생각해봐. 여기서 재판을 받으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조준태가 받아야 할 죄까지 다 네 어깨에 올라갈 거야. 검사장은 그럴 힘이 있어.”
김용우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분명 말렸었어요. 이러지 말자고 어서 구급차를 부르자고 했었어요!”
서진이 김용우의 어깨를 토닥였다.
“알아. 그런데 여기서는 네 변명이 안 먹혀.”
“......”
“여기서 재판을 받으면 넌 조준태의 죄까지 뒤집어써야 해.”
“......”
“그런데, 서울에서 받으면 달라져.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넌 네가 저지른 죗값만 받게 될 거야. 난 널 도우려는 거야.”
저지른 죗값만 받게 하겠다는 말.
서진의 진심이었고 김용우도 그것을 느꼈다.
“저, 정말이에요?”
“어.”
게다가 김용우는 조준태의 죗값까지 짊어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차피 조준태는 서울의 대학교로 떠난 후 연락 한번 하지 않았다.
의리 따위는 없었다.
김용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시키는 대로 할게요.”
*
김용우가 그 상황을 기억하며 시선을 들었다.
다시 김윤환이 보인다.
놈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연다.
“어떻게 생각해?”
김용우는 간절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서진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말을 내뱉었다.
“할게요. 시키는 대로 할게요.”
김윤환이 싱긋 웃으며 테이블 아래로 손을 가져갔고 스위치를 꾹 눌렀다.
마이크가 다시 on 상태로 바뀌었다.
이제 영상과 음성을 기록하며 재판에 쓰일 증거를 만들어야 할 시간이다.
그리고 잠시 후.
“조준태, 오성구, 강구영...”
김용우의 입에서 살인을 저질렀던 놈들이 이어졌다.
김윤환이 그 이름을 수첩에 적으며 말했다.
“같은 고등학교 나온 거지?”
“네.”
자백과 함께 용의자가 지정되었다.
망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됐는지 김윤환은 곧장 휴대폰을 귀에 댔다.
“수사관님. 잠시만요.”
3분도 걸리지 않아 수사관이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이놈들 전부 잡아 와 주세요. 지금 당장.”
김윤환이 건넨 쪽지를 보던 수사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죠?”
“살인 사건 용의자들입니다.”
수사관의 눈이 커졌다.
분명 기물파손으로 간단 조사를 마친 후 보냈어야 할 놈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살인이라니.
믿을 수 없어서 다시 물었다.
“...살인이요?”
“네, 자백받았으니까 영장도 바로 나올 겁니다. 그건 제가 할 테니까 일단 놈들 위치 파악해서 체포하는 데 집중해 주세요.”
수사관의 시선이 김용우에게 향했다.
김용우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저 모습은 죄를 저지른 놈이 맞다.
그리고 김윤환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바로 시작하죠.”
그동안 김윤환은 깡치를 해결하는 서진을 보며 부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미안하다. 서진아.’
김윤환이 뚜벅, 뚜벅 취조실을 벗어났다.
*
“...살인이라고?”
조우재 부장검사 역시 수사관과 똑같은 반응, 의심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김윤환이 빙긋이 웃으며 조우재 부장검사의 책상에 태블릿PC를 내려뒀다.
“보시죠.”
조우재 부장검사가 태블릿PC의 화면에 집중했다.
곧 취조실의 영상이 재생된다.
어깨를 움츠리고 고개를 숙인 김용우가 입을 열었다.
-강구영이 장난으로 칼을 휘둘렀고 세광이가 길가로 도망쳤어요. 그런데 준태가 차를 끌고 오다가.
-사고가 난 거지?
-네, 그래서 제가 구급차를 부르자고 했는데, 음주운전이 걸리면 안 된다고 하면서.
-옥상에서 던졌다?
-네.
김윤환이 영상을 정지했고 조우재 부장검사는 눈을 찌푸렸다.
잡범을 취조하더니 살인범을 만들어 놨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
하지만 진범이 자백했으니 뭐라 할 수도 없다.
멍한 표정의 조우재 부장검사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그림 한번 그려보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
김윤환은 서진의 예상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사무실에 앉아 업무를 보던 서진의 휴대폰이 드르륵 진동했다.
-대회의실로. 형사 2부 검사 전체. 지검장님 지시.
간단한 메시지, 예정에 없던 호출.
서진은 직감했다.
‘터졌구나.’
적어도 3주는 걸릴 줄 알았다.
그런데 단시간에 흔들다니.
그 참을성 없는 성격이 폭탄에 불을 붙인 거다.
고맙게도.
서진이 복도로 나가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당연히 김윤환에게 거는 거다.
통화가 연결되더니 놈이 대뜸 말한다.
-미안하다. 나도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어.
“형!”
-야, 내가 일부러 그랬겠냐? 일이 꼬여 버린 거지. 이놈이 우리 관할에서 술 처먹다가 교회 문을 부쉈어. 가볍게 조사하는데, 미심쩍어서 찔러봤더니 술술 부네? 그럼, 어쩔 수 없잖아? 좀 믿어라. 우리는 가족이야.
정말 가족같이 일하는 놈이다.
이것도 정말 고오맙다.
서진은 쐐기를 박기 위해 한 번 더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이러는 게 어디 있어? 얘기라도 하던지!”
-미안하다고. 나중에 예쁜 애기들 있는 곳에서 술 살게. 어?
서진은 헛웃음이 나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예상보다 빠른 시간에 일을 터뜨리더니 그 이상으로 일을 내고 있다.
급하게 달리면 체하는 것도 모르고.
그런데, 그때였다.
김윤환의 목소리가 갑자기 다급해졌다.
-네? 조준태가 누군데요? 아버지? 아니, 검사장님이 나를 왜 불러? 화가 났다고요? 왜? 야, 잠깐 끊어 봐.
서진은 지검장의 호출을 받아 대회의실로 가는 중이었다.
정황을 보면 조준태에 대한 체포 영장이 나온 상황.
이미 폭탄은 터졌고 불은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고 있었다.
‘지검장은 옷을 벗을 테고.’
검사장의 아들이 살인을 저질렀다.
조용준 검사장은 당연히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
아들을 잘 못 키운 것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도 해야 할 거다.
하지만 조용준 검사장은 늙은 여우.
당하기만 하고 떠날 사람이 아니다.
지옥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김윤환 또는 김영준 검사장을 내버려 둘리 없다.
‘싸우고 또 싸우겠지.’
이제 서진은 강 건너 불구경만 해도 된다.
하지만 서진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상황에 기름을 뿌려주기로 했다.
더 활활 탈 수 있도록.
서진은 휴대폰의 주소록을 검색해 시사 프로그램 ‘세상을 본다’ 이은하 기자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통화 버튼을 꾹 누르자 이은하 기자의 목소리가 반갑게 흘렀다.
-아, 검사님. 소식 들었어요. 본청으로 가셨다면서요? 지나가다 밥 한번 먹고 싶어도 바쁘실까 봐 연락을 못 하겠어요.
가만히 놔두면 이야기가 산으로 갈 것 같았다.
서진이 이은하 기자의 말을 막으며 본론을 꺼냈다.
“요즘도 기사 쓰시죠? 시사프로그램 MC라 이제 기사는 안 쓰시나?”
잠시 대답이 없었다.
대신 묘한 흥분감이 전해져 온다.
이은하 기자도 느낀 거다.
뭔가 있다는 것을.
그녀가 조심히 물었다.
-...왜요?
“왜긴요. 특종 하나 드릴까 하는데.”
파티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