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끼. -(4)>
***
대회의실의 분위기는 서늘했고 모여 있는 모든 검사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항상 웃는 얼굴이었던 한정아 검사도 마찬가지.
서진은 조용히 자리에 앉아 주변을 살폈다.
아직 조용준 검사장은 보이지 않는다.
형사 2부 부장검사만 창밖을 보며 서 있을 뿐이다.
부장검사의 이름은 지세헌.
그가 무거운 한숨을 내뱉으며 검사들을 향했다.
“다 왔지?”
한정아 감사가 ‘네.’하고 대답했고 옆에 있던 다른 검사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모르지. 좋은 일은 아니겠지.”
이런 식의 호출은 좋은 일이 아니다.
욕을 처먹거나 암담한 소식을 듣거나, 둘 중 하나다.
가뜩이나 검사장에게 찍힌 형사 2부 검사들은 불안했다.
하지만 서진은 느긋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진은 검사들의 표정을 살피며 생각에 빠졌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아파트 추락 사건을 진행하던 사람들이다.
피고인은 물론 증거 또한 애매했기에 밤낮 없이 파고들며 고생했다.
그런데 진범이 검사장의 아들 조준태.
‘검사장은 미안하다고 사과할까? 아니면...’
보통이라면 얼굴도 들 수 없다.
사과하고 또 사과해야 한다.
하지만 상대는 조용준 검사장이다.
서진은 조용준 검사장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리고 지세헌 부장검사가 휴대폰을 귀에 댔다.
“네, 검사장님. 다 모였습니다.”
동시에 쾅! 문이 열리며 조용준 검사장과 형사 3부 부장검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조용준 검사장의 얼굴이 살벌하다.
분노한 눈동자로 형사 2부의 검사들을 바라본다.
서진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적반하장, 자신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는다.
“이 쓸데없는 놈들.”
조용준 검사장의 첫 마디였다.
대회의실의 분위기는 한순간에 얼어붙었고 조용준 검사장은 뚜벅, 뚜벅 지세헌 부장검사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그 앞에 서서 더 차갑게 입을 열었다.
“세헌아. 네가 하는 일이 뭐냐?”
지세헌 부장검사는 뭘 잘 못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고개를 숙였고 일단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조용준 검사장이 손에 든 서류로 지세헌 부장검사의 가슴을 팍! 팍! 팍! 때렸다.
“뭐 하는 새끼냐고!”
“죄송합니다.”
“뭐가! 뭐가 죄송한데 이 새끼야!”
조용준 검사장이 지세헌 부장검사를 향해 서류를 집어 던졌다.
서류가 지세헌 부장검사의 얼굴에 맞고 땅에 떨어진다.
“읽어봐 새끼야!”
지세헌 부장검사가 허리를 굽히며 땅에 떨어진 서류를 주섬주섬 손에 들었다.
그리고 내용을 읽는 순간 행동이 굳어갔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조용준 검사장을 바라봤다.
“이, 이게 뭡니까?”
검사장의 아들 조준태가 중앙지검에 체포되었다.
죄명은 살인.
조용준 검사장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쥐구멍에라도 머리를 처박아도 모자라다.
하지만 당당하게 입을 연다.
“너희가 일을 똑바로 못해서야.”
“......!”
“형사 2부는 지금 하는 일 다 3부로 넘겨.”
검사장을 쫓아 들어온 형사 3부 부장검사가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네. 일은 많지만 전부 처리하겠습니다.”
조용준 검사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형사 2부는 지금부터 중앙지검 김윤환, 그 새끼를 쑤셔. 너희가 헛짓거리하는 바람에 일이 틀어졌어. 그러니까 너희가 제대로 돌려놔.”
조용준 검사장은 전쟁을 선택했다.
김윤환의 뒤를 조사해 카드로 사용할 계획, 아들의 일은 아들로 막을 생각이다.
노리는 것은 증거 불충분과 불기소.
가진 권력을 이런 데 쓰고 있다.
이어서 조용준 검사장의 시선이 서진에게 향했다.
손가락으로 까딱거리며 입을 연다.
“김서진, 넌 빠져. 휴대폰도 반납해. 이 일 끝날 때까지 사무실에 있어.”
서진은 김윤환과 친척이다.
서진의 움직임을 제한해서 정보가 새는 것을 막으려 한다.
조용준 검사장의 시선이 다시 지세헌 부장검사에게 향했다.
“제대로 해라. 김윤환이란 새끼 머리카락까지 살펴. 알았어?”
그런데 지세헌 부장검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있을 뿐이다.
“대답 안 해!”
“이거 사실입니까?”
“뭐?”
“준태가 살인을 저질렀습니까?”
조용준 검사장의 눈이 부릅떠졌다.
사실이라는 거다.
지세헌 부장검사가 고개를 저었다.
“...못 하겠습니다.”
“뭐?”
“차라리 옷 벗겠습니다.”
“이 새끼가...”
조용준 검사장의 눈이 삐뚤어졌고 재빨리 형사 3부 부장검사가 나섰다.
“야, 너만 옷 벗으면 끝나? 얘들은? 연대책임이야. 평생 주홍글씨 박혀 살게 할 거야?”
이어서 지세헌 부장검사의 귀에 속삭이듯 계속 말한다.
“새끼야. 검사장님이 그 정도 힘은 있어! 알잖아! 그러니까 한 번만 딱 눈감아. 너 말고 애들을 위해서! 쟤들 아직 창창해. 그런데 쟤들 앞길에 똥을 집어 던질 거야?”
조용준 검사장이 은퇴를 앞둔 뒷방 늙은이라 해도 그 동기가 대검과 법무부 그리고 국회와 청와대까지 이어져 있다.
그 정도 힘은 있다.
하지만 지세헌 부장검사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실력 없다고 무시 받아도 쪽팔린 짓은 안 했다. 그런데, 살인을 덮으라고? 지금 검사라는 게 쪽팔리네. 그러니까 너도 쪽팔린 짓 그만해.”
그 목소리는 조용준 검사장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 얼굴이 악귀처럼 변해간다.
“지세헌! 그래서 지금 내 말을 안 듣겠다고?”
“네.”
지세헌 부장검사는 시원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틀어 검사들을 향했다.
미안한 눈빛으로 힘없는 목소리를 내뱉는다.
“미안하다. 쪽팔린 놈보다 이기적이 되련다.”
조용준 검사장의 얼굴은 귀까지 벌게졌다.
보는 눈이 없었다면 지세헌 부장검사의 머리채를 잡고 때렸을 분위기다.
“죄송합니다.”
지세헌 부장검사가 조용준 검사장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그게 끝이었다.
미련이 없다는 듯 몸을 틀고 문으로 향한다.
그 모습을 보며 형사 3부 부장검사가 중얼거렸다.
“저, 저 새끼...”
그때였다.
쾅!
문이 부서질 것처럼 열리더니 지세헌 부장검사의 수사관이 뛰어 들어왔다.
끔찍한 것을 본 것처럼 얼굴이 굳은 수사관이 지세헌 부장검사를 향해 다급히 입을 열었다.
“크, 큰일 났습니다.”
“뭔데요.”
지세헌 부장검사의 목소리는 영혼이 빠져 있었다.
검사장의 아들이 살인을 저질렀고 그걸 은닉하라는 지시까지 받은 상황.
아무리 큰일이 벌어져도 놀라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자, 잠시만요.”
수사관이 빠르게 회의실 앞으로 달려가더니 텔레비전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들어왔고 이은하 기자가 보인다.
-강원도 춘천시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중앙지검...
모두의 행동이 정지했다.
특히 조용준 검사장의 눈은 튀어나올 것처럼 커져 있다.
“저, 저게...”
이은하 기자의 목소리는 빠르게 이어지고 있다.
-용의자를 전원 체포했습니다. 이들은 음주운전 후 교통사고를 냈고 사고를 숨기기 위해 피해자를 아파트 15층으로 끌고 가...
형사 3부 부장검사가 몸을 바르르 떨었다.
‘언론이?’
놈들이 냄새를 맡았다.
사전에 협의했으면 모를까 이미 터져버린 상황.
게다가 그 특종을 잡은 게 인기 많은 이은하 기자다.
아무리 조용준 검사장이라 해도 걷잡을 수 없다.
-당시 피해자는 아직 살아 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꿈을 향해 달려가던 피해자의 마지막 말은 ‘살려줘.’였다고 합니다.
조용준 검사장의 몸이 비틀거렸다.
“그, 그만.”
목소리가 간절했다.
하지만 이은하 기자에게 그 목소리가 전해질 리 없다.
그녀는 조용준 검사장이 가장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말을 꺼냈다.
-강원 지검 조용준 검사장의 아들 조 군이 주동자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조용준 검사장의 얼굴이 쩍 갈라졌다.
*
조용준 검사장은 비틀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그 뒤를 형사 3부 부장검사가 뒤쫓았고 이곳엔 형사 2부만 남아 있었다.
대회의실에는 한숨만 남았다.
폭풍이 할퀴고 간 곳에는 상처만 있을 뿐이다.
한정아 검사의 시선이 벽에 비스듬히 기대서서 한숨만 내쉬는 지세헌 부장검사에게 향했다.
그녀가 그 옆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안 그만두실 거죠?”
지세헌 부장검사는 대답이 없다.
한정아 검사가 살짝 웃으며 조금은 장난스레 말한다.
“설마 말씀 번복하는 게 쪽팔려서 그래요?”
“뭐?”
옆에 있던 검사가 그 장난을 받았다.
“한 검사, 쪽팔린 것보다 이기적인 백수가 되겠다고 하셨잖아. 조만간 변호사 개업하시겠네.”
“전관예우는 바라지 마십시오. 항상 그러셨잖아요. 전관 예우하면 죽여 버린다고. 그 말 명심하고 최선을 다해 짓밟겠습니다. 지세헌 변호사님.”
지세헌 부장검사가 눈을 찌푸렸다.
“이 새끼들이. 나는 좀 봐주면 안 되냐? 애가 이제 고등학교 가는데... 아니지, 너희 어차피 이긴 적 없잖아?”
한정아 검사가 지세헌 부장검사의 소매를 끌었다.
“그러니까 계속 계세요. 아까 말씀하신 것은 홧김에 한 말로 생각할게요.”
“허 참...”
그사이 서진은 바닥에 놓인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막내니까 당연히 할 일이다.
그런데 서류를 손에 올리던 손이 점점 느려진다.
서류에는 조준태에 대한 내용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이것 봐라?’
김윤환에 대한 내용이 존재했다.
디테일하지는 않지만 주로 여자 문제.
조용준 검사장은 이전부터 김윤환에 대한 뒷조사를 하고 있었다.
“뭐해?”
한정아 검사가 옆에 앉아 서류 줍는 것을 도우며 물었다.
서진이 말없이 김윤환의 서류를 건넸고 한정아 검사의 눈이 찌푸려졌다.
찌라시에서 볼법한 양아치적인 내용.
그녀의 시선이 서진에게 향했다.
“이거 진짜야?”
서진은 김윤환의 사촌.
그녀의 눈빛은 이게 진실인지 묻고 있다.
이상한 분위기를 느낀 다른 검사들도 주변에 몰려들었다.
그들의 눈빛도 한정아 검사와 똑같았다.
“진짜야?”
서진이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이거... 수사하면 안 될까요?”
“......!”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조용준 검사장님 지시를 따르면 어떨까요?”
사실이라는 뜻.
모두의 눈이 반짝였고 서늘한 분위기가 주변을 조여 왔다.
지시를 따르자는 것은 중앙지검을 향해 칼을 겨누자는 것.
말 그대로 벼랑 끝에 선 것처럼 위험한 일이다.
서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쪽도 당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들 문제는 아들 문제로. 조준태는 김윤환으로 받아치는 거죠.”
“......”
“그리고... 조용준 검사장님이 지시한 일로 포장하면 문제가 생겨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고래 싸움에 낀 새우로 동정을 받을 것 같은데요.”
지세헌 부장검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빠졌다.
이번 사건은 중앙지검에 밥그릇을 빼앗긴 것이며 자존심 문제다.
엿을 먹었으면 똥을 뿌려주는 게 예의.
은밀히 움직이면 성공 가능성은 충분하다.
목에 힘을 주고 살아가는 김영준 검사장의 앞길에 돌덩이가 놓이는 거다.
그런데.
“김서진, 너 사촌이잖아? 괜찮겠어?”
“쪽팔린 것보다 이기적인 사촌이 되겠습니다.”
서진이 정중히 허리를 굽혔고 지세헌 부장검사의 얼굴이 콱 일그러졌다.
서진의 한 마디에 긴장됐던 분위기가 확 풀렸다.
다른 검사들이 낄낄 웃는다.
“그렇지, 이기적인 게 낫지. 푸하하하.”
“이것들이 진짜!”
지세헌 부장검사가 한숨을 푹푹 내뱉으며 손부채를 부쳤다.
서진은 그들을 보며 빙긋이 웃었다.
확실히 괜찮은 분위기의 팀이다.
그리고 서진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머릿속에 김윤환이 떠올랐다.
놈은 지금 무척 난처한 상황일 거다.
하지만...
‘기대해. 앞으로는 미쳐버릴 거야.’
***
“몰랐다고?”
중앙지검.
김영준 검사장은 메마른 음성을 내뱉으며 앞을 바라봤다.
김윤환과 조우재 부장검사가 서 있었다.
김윤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일단 칭찬하지. 우리가 할 일이 저런 놈들 잡는 거야. 그런데, 윤환아. 뒷일을 생각했어야지. 조용준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그놈이 이제 널 타깃으로 생각할 거야. 버틸 수 있겠어?”
조용준 검사장, 썩어도 준치다.
이빨이 빠졌어도 호랑이다.
이 악물고 덤벼들면 다칠 수밖에 없다.
김영준 검사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아니면 내가 네 뒤처리까지 해야 해?”
“죄송합니다.”
김윤환은 고개를 숙였고 김영준 검사장의 시선은 조우재 부장검사에게 향했다.
“우재야, 넌 나가 있어. 그리고 내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앞으로 내 앞에 얼굴 보이지 마.”
“네.”
조우재 부장검사는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문이 닫히는 순간 사무실의 공기가 확 바뀌었다.
김영준 검사장은 무서운 눈빛으로 김윤환을 노려본다.
“아, 아버지...”
김윤환의 얼굴이 뻣뻣해졌다.
김영준 검사장이 저런 표정을 지으면 어떤 일이 다가올지 알고 있어서다.
김윤환은 그게 두려웠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김윤환은 김영준 검사장을 믿고 있다.
몇 대 맞으면 문제는 해결될 거다.
아버지가 검사장, 그것도 총장이 확실시되는 사람.
조용준 검사장의 보복은 막아 줄 수 있다고 믿었다.
‘하...’
문제를 일으켜도 단지 몇 대 때리고 맞으면 끝내는 세상.
법 위에 사는 사람들.
서진은 이런 자들의 뒤통수를 칠 생각이다.
그리고 김영준 검사장이 김윤환을 보며 시계를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