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29화 (29/250)

<유치하게. -(2)>

***

부장검사실에서 나온 서진은 복도에 서서 이소희에게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얘기가 길어지나 봐. 우리는 먼저 퇴근할게.

이소희를 비롯한 다른 직원들은 어제 밤을 새고 일했다.

오늘은 푹 쉬었으면 좋겠지만.

서진이 통화 버튼을 누르며 휴대폰을 귀에 댔다.

“퇴근?”

-응, 집.

“할 말이 있는데. 집 근처로 갈게. 잠깐이면 될 것 같아.”

-지금? 잠깐이면 전화로 해. 이미 씻고 잘 준비...

“커피하고 케이크 쏠게.”

-내가 어린애냐? 사준다고 하면 쪼르르 나가게? 어차피 햄버거 먹어서 배불러.

“그럼 치킨?”

-옷 입고 있으면 되는 거지?

*

이소희의 집은 지청에서 멀지 않은 주택이었다.

서진은 약속된 호프집 근처에 차를 주차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골목이 많고 가로등이 흔들리는 게 조금은 을씨년스럽다.

‘마중가야겠다.’

서진은 이소희의 집을 향해 걸었다.

밤에 불러내는 만큼 이정도 매너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다.

그렇게 조금 걸었을 때, 골목 뒤에서 이소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먹었어요. 그러니까 제발 걱정하지 마. 그리고 동남군에 있는 거 그 사람 때문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고맙다고 할 필요 없어요. 제발, 나까지 옭아매지... 어?”

이소희가 서진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주름진 미간을 보면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어... 어...”

그녀가 휴대폰에 대고 다급히 말했다.

“나중에 전화해요.”

통화를 종료한 그녀가 한숨을 내뱉었다.

머리카락을 헝클며 서진을 바라봤다.

“...들었어? 모른 척 해줬으면 좋겠는데.”

“어떤 걸?”

“엄마한테 틱틱대는 딸이란 것?”

이소희의 통화 내용에서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그녀는 분명 ‘동남군에 있는 거 그 사람 때문이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그 사람...’

생각해 보면 이소희가 동남군에 남아 있는 게 이상했다.

그녀는 성적이 우수하다.

지난 인사 명령 때 본청으로 발령도 났었다.

그런데, 그녀는 여전히 동남군에 남아 있다.

‘그 사람?’

서진이 빤히 바라보고 있자 이소희가 입을 열었다.

“뭐야, 왜 대답 안 해?”

궁금했지만 가정사, 물어볼 이야기는 아니다.

서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치킨은 네가 사는 거지?”

“야...”

*

“짠.”

치킨이 나오기 전이었다.

테이블에는 맥주 두 잔과 오이, 당근이 놓였다.

두 사람은 가볍게 잔을 부딪친 후 맥주를 입에 댔다.

맥주가 주는 첫 모금은 하루의 피로를 싹 풀어주는 예술과 같다.

이소희가 잔을 내려두며 입을 열었다.

“치킨 나오기 전에 일 얘기부터 하자. 먹는 중에 들으면 체할 수도 있어.”

“미안한 부탁하려고 하는데.”

“돈 빌려 달라는 것 빼고는 다 좋아.”

“깡치 한번 하자.”

“깡치?”

서진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소희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짓궂은 표정으로 묻는다.

“까앙치?”

“그래.”

“그런데, 닭다리 하나 던져 주면서 깡치를 하자고요?”

서진이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앞에 메뉴판을 펼쳤다.

“원하는 것 다 시켜.”

이소희가 잽싸게 메뉴판을 낚아채더니 시선을 파묻으며 말했다.

“도대체 어떤 깡치에 손을 댔기에 메뉴판을 주셨을까?”

“부장검사님이 원하는 대로 팀을 꾸려보라고 했어.”

이소희의 눈동자가 느릿하게 서진을 향했다.

“부장검사님?”

“어.”

“...깡치를 네가 찾아서 하는 게 아니라 부장검사님이 시킨 거야?”

“어.”

이소희의 표정이 좋지 않다.

포크를 쥔 손이 작게 떨려온다.

“야, 깡치 맡으면 이력에 기스나는 것 몰라? 그걸 왜 한다고 그랬어!”

이소희는 서진이 원치 않는 사건을 떠맡았다고 생각했다.

막내이기 때문에 ‘네가 해.’하면 어쩔 수 없이 ‘네.’하며 받는 부조리.

그녀의 분기어린 눈동자를 보며 서진이 슬쩍 웃었다.

“저기... 내 걱정해줘서 고마운데, 뭔가 오해가 있어. 내가 한다고 한 거야.”

“뭐?”

“내가 원한 거라고.”

“그걸 왜 원해! 고생만 하고 남는 것도 없을 텐데. 좋은 거면 자기들이 했겠지.”

“고생은 당연히 하겠지만 얻는 것도 있을 거야.”

이소희의 행동이 멈칫거렸다.

그녀의 큰 눈이 다시 서진을 향했다.

같이 지낸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서진이 말하면 정말 그렇게 될 것만 같다.

생각해보면 서진이 용한 무속인처럼 여겨진 적도 있었다.

“얻는 게 있을 거라고? 깡치에서?”

“어. 그러니까 원하는 것 다 시켜.”

서진이 다시 메뉴판을 가리켰고 이소희가 머리를 넘기며 한숨을 내뱉었다.

“너 후회한다. 계란말이. 소시지 야채볶음. 일단 이 두 개 추가. 나머지는 먹으면서 생각하자.”

“...배 안 불러? 햄버거를 그렇게 먹어 놓고.”

“누나 집에 그릇 하나 없거든. 그래서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야 한다가 지론이야. 사장님!”

이소희가 손을 번쩍 들었다.

*

“기획 부동산 사건이야.”

테이블에 안주가 가득이었다.

치킨에 계란말이에 소시지 야채 볶음에.

이소희는 국물이 있으면 좋겠는데 라고 중얼거리며 메뉴판을 또 보고 있다.

서진은 사건에 대한 가벼운 브리핑을 시작했다.

“사기꾼들은 은퇴를 앞둔 사람을 타깃으로 잡았어. 그리고 동남군의 임야를 추천했지.”

사기꾼의 말은 항상 똑같다.

“개발이 될 겁니다! 미리 알 박고 있어야 해요. 그런데, 이 기회를 놓친다고요? 알았어요. 가세요. 그런데, 생각해 보고 오시면 이 땅은 없을 거예요. 기회는 지금입니다. 지금도 전화 오는 거 보이죠? 보러 온 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

“돈이 부족하다고요? 요즘 누가 자기 돈으로 땅을 삽니까? 대출 받아 사는 거지. 저희가 거래하는 은행이 있어요. 연결해 드릴까요?”

사람들은 퇴직금을 털었다.

사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그렇게 쓸데없는 땅을 샀다.

이소희가 눈동자만 움직여 서진을 향했다.

“...사기?”

사기는 형사처벌이 어렵다.

그것도 기획부동산이라면 더더욱.

놈들은 말한다.

“우리는 투자를 권한 겁니다. 보세요! 개발된다고 다 그랬잖아요. 그런데, 경제 문제, 환경 문제! 그래, 그게 문제였어요. 환경단체인지 뭔지 우르르 달려들었잖아요.”

“......”

“개발이 안 될 줄 알았으면 권하지 않았죠! 그런데, 우리가 사기꾼이라고? 하!”

-사기란 사람을 속여서 재산상의 이익을 얻는 것을 말한다.

-고의성을 입증할 수 없다면 사기가 아니다.

-투자 실패에 불과하다.

-사기는 무죄가 나오는 사례가 적지 않다.

-무고죄로 역공을 당할 수 있다.

서진이 이소희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살인 사건이 더해졌어.”

“......!”

사기꾼들은 해당 임야에 펜션을 짓고 있었다.

정당한 투자였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방법 중 하나다.

-우리도 이곳이 개발 될 거라 생각해서 알박고 있어요.

-그게 아니면 여기서 펜션을 왜 지어요?

“뒤늦게 사기였다는 것을 깨달은 피해자가 펜션 공사 현장에 찾아갔지.”

서진이 이소희의 앞에 서류를 내려뒀다.

이소희가 메뉴판을 덮고 서류를 펼쳤다.

-박형주 63세.

펜션 공사 현장에 찾아가 돈을 돌려 달라며 화를 냈다.

그러다가 늦둥이 아들 장가보낼 돈이라고 무릎마저 꿇었다.

화를 내다가 애원하다가.

피해자의 전형적인 행동이었다.

“당연하지만 돈을 돌려받지 못했고 속상한 마음에 술을 마셨어.”

박형주는 공사장 근처에서 술을 마셨다.

그리고 공사장을 향해 더러운 놈들이라고 욕을 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

“산을 내려가던 중 발을 헛디뎠지. 꽤 경사진 비탈이었어.”

뒤늦게 박형주가 굴러 떨어진 것을 확인한 공사장의 인부가 구급차를 불렀다.

하지만 산을 내려가는 과정에서 이미 사망했다.

“그런데, 박형주의 몸에 몸싸움을 한 흔적이 있었지.”

“그건 그럴 수 있잖아? 술을 마셨고 화도 냈고. 몸싸움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소희가 서류를 한 장 더 넘겼다.

순간 그녀는 눈을 찡그렸다.

서류에 붙은 사진이 끔찍해서다.

그녀는 아직 신임, 이런 사진에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서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사망의 직접원인은 두개골 파손으로 인한 뇌출혈이야. 그런데, 그 비탈에 두개골에 충격을 줄만한 바위는 없었어.”

하지만 공사 현장에는 사람의 두개골을 파손시킬 물건이 얼마든지 있다.

“잠깐만, 폭력에 의한 사망을 의심하는 거야? 그런데 부검도 했어. 생활반응을 보면 몸에 난 상처는 모두 살아 있을 때 생긴 거야.”

“비탈에 구르기 전에 이미 죽어가는 중이었겠지. 뒷장을 봐. 살아 있는 상태에서 던져진 가능성이 높다고 적혀 있잖아.”

그 말이 사실이라면 놈들은 죽어가는 사람을 보며 낄낄 거렸고 빨리 죽으라며 기도를 했다는 거다.

“...그게 사람이야?”

서진이 이소희를 향해 천천히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

“이 사건을 조사한 경찰도 명백한 살인 사건으로 판단했고 부검 결과도 그렇게 나왔어. 하지만 어떤 증거도 없어. 기획부동산 사기부터 살인까지 모든 게 완벽할 정도로 무죄로 흐르고 있어.”

“......”

“어떤 놈인지 궁금하지 않아? 난 이놈의 얼굴을 꼭 보고 싶은데.”

서진이 슬쩍 웃으며 다시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이 깡치, 조용히 끝낼 생각 없어. 고생만 하고 끝나지는 않을 거야.”

“그럼?”

“기대해봐.”

이소희가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포크로 소시지 야채 볶음을 쿡 찍으며 중얼거렸다.

“먹은 다음에 들었어야 했어. 체하겠네. 체하겠어.”

“같이 한다는 거지?”

“오뎅탕 추가.”

“...배 안 불러?”

***

“임정택 수사관님은 이 사람의 뒤를 쫓아 주세요.”

“옙!”

“그리고 이소희 검사는 부동산 사기 피해자들을 만나서 과장, 허위광고의 한계를 넘었는지 파악해줘. 참조 판례하고 관련 문헌은 여기.”

다음 날.

서진은 바쁘게 움직였다.

살인이 벌어진 날은 이미 몇 달이나 지났다.

증거는 바람과 빗물에 씻겨 내려가고 있다.

부동산 역시 피해자들이 지쳐갈 시점이다.

그들이 포기하기 전에 몰아쳐야 한다.

“정우야, 부탁할 게 하나 있는데. 기획부동산 사건 기억해? 그래, 어.”

서진의 행동을 물끄러미 보던 임정택 수사관이 이소희에게 시선을 틀며 슬쩍 웃었다.

“우리 검사님 보면 몇 십 년 굴러먹은 것 같지 않아요? 사방에서 몰아친 후에 제 발 저리는 놈 있으면 빡!”

이소희가 슬쩍 서진을 봤다.

임정택 수사관의 말대로다.

머뭇거리는 것 없이 수사를 지휘하고 있다.

“그러게요.”

*

“저 새끼 누구냐?”

“검사랍니다.”

“검사가 여기서 왜 지랄이야. 다 끝난 것 아니었어?”

살인 사건이 벌어진 펜션 공사 현장이었다.

공사 현장의 상황을 지켜보던 기획 부동산 상무 김경웅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 이곳저곳을 살피는 서진이 보였다.

김경웅이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미친 새끼, 쓸데없이 풀 한포기까지 확인하고 있어.”

김경웅은 키가 190cm가 훌쩍 넘는다.

떡 벌어진 어깨와 짧은 머리카락 그리고 험상궂은 인상은 위협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상무님, 손 흔드는데요? 오라고 하는 것 같아요. 가볼까요?”

“가봐.”

김경웅의 옆에 있던 똘마니가 서진을 향해 슬쩍슬쩍 걸어갔다.

그런데 서진이 손을 흔들며 김경웅을 가리킨다.

똘마니 말고 김경웅이 오라는 거다.

김경응이 담배를 짓밟으며 인상을 구겼다.

“아... 씨발. 검사면 다야?”

김경웅이 성큼성큼 서진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최대한 공손한 미소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기요? 검사님이시라고요?”

“...네가 죽였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