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하게. -(3)>
“...네?”
서진이 김경웅의 앞으로 한발 다가서며 낮은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죽였냐고 물었는데.”
김경웅의 표정이 바뀌었다.
웃고는 있지만 억지다.
험악한 인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삐뚤어진 입으로 화를 꾹 참으며 입을 연다.
“...지금 검사님은 무고한 시민을 살인자로 몰고 있는 겁니다.”
“무고한 시민?”
“네, 무고한 시민.”
두 사람의 분위기가 살벌해지기 시작했다.
서진이 끌끌끌 웃었다.
“어쩌냐? 난 깡패 새끼를 무고한 시민으로 생각한 적이 없는데.”
“......!”
김경웅의 주먹에 힘이 꽉 들어갔다.
서른도 안 된 것 같은 어린놈이 앞에서 알짱대며 깡패 어쩌고 하는 중이었다.
화가 안 나면 이상한 거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상대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검사다.
“저는 살인을 한 적이 없습니다.”
“살인?”
“네.”
“무슨 소리야? 난 저 새를 죽인 게 누군지 물어본 건데.”
서진이 가리킨 곳을 향해 김경웅의 시선이 다급히 틀어졌다.
쓸데없이 새 한 마리가 죽어 있다.
서진이 김경웅의 곁을 스치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깡패 잡으러 온 게 아니니까 긴장 풀어.”
김경웅이 자신을 스치는 서진을 보며 물었다.
“그럼, 왜 온 거죠?”
“알면서 왜 그래? 내가 정말 저 새 죽은 것 때문에 왔겠어? 살인자 잡으러 왔겠지.”
“검사님!”
“주변 확인 좀 할게.”
서진이 손을 흔들며 현장으로 향했고 김경웅의 곁으로 똘마니가 다가와 재빨리 섰다.
똘마니가 속삭인다.
“상무님, 저 검사 새끼 혼자 온 것 같은데요?”
“뭐?”
김경웅이 눈동자를 움직여 주변을 살폈다.
그러고 보니 서진은 혼자 왔다.
경찰이고 수사관이고 보이지 않는다.
서진은 주머니에 손을 꽂고 슬렁슬렁 공사 현장을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김경웅이 입술을 핥았다.
“새끼가 겁이 없는 거야 아니면 우리가 우스워 보이는 거야?”
김경웅의 눈에 살기가 차올랐다.
그런데, 그때였다.
“헤이.”
김경웅과 똘마니의 시선이 뒤로 틀어졌다.
언덕에서 경찰 수십 명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불길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남자가 보였다.
“저, 저 독사 새끼...”
독사, 이 지역 양아치들이 이정우를 부르는 별명이다.
그리고 이정우가 김경웅의 앞에 섰다.
잔혹하게 웃으며 입을 연다.
“수사 좀 하자.”
*
“몇 달 전 일을 가지고 왜 또 그러십니까? 그동안 중단됐던 공사를 생각하면 손해가 얼마인지 아세요! 이제 겨우 다시 공사가 재개됐는데 또 멈추라고요?”
김경웅이 서진과 이정우를 보며 이빨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정우는 귀찮은 표정이다.
“우리라고 꼭대기까지 올라와서 이러고 싶겠냐? 까라면 까는 거지. 그러니까 조금만 참아. 어?”
이정우가 담배를 물며 고개를 틀었다.
경찰들이 공사 현장의 삽과 해머에 혈액 반응 시약인 루미놀을 뿌리는 게 보였다.
김경웅이 미간을 찌푸리며 계속 말했다.
“뭐하는지 대충 알겠는데요! 그동안 비도 오고 눈도 오고 바람도 불고! 우리 중에 누가 죽였다고 해도 흔적이 있겠습니까?”
“락스를 쏟아도 반응하는데 눈이나 비가 내린 정도로 없어지겠어?”
서진의 건조한 대답에 김경웅이 눈을 깜빡였다.
“네? 안 없어져요?”
“어.”
혈흔은 세탁기에 돌려도 락스를 부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점성이 높은 혈장 단백질이 쉽게 제거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경웅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하지만 곧 다시 우긴다.
“몇 개월이에요! 몇 개월!”
“2, 3년 전 피도 찾아내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하나 더 가르쳐 줄까? 루미놀 시약은 피에 포함된 철분을 찾는 거야.”
김경웅이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렸다.
그리고 뭔가 생각났는지 퍼뜩 입을 열었다.
“오함마나 삽도 다 쇠잖아요! 쇠!”
루미놀 반응이 나타난다 해서 전부 혈흔이라 볼 수 없다.
녹슨 철에 있는 철분과 혼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녹이 슬어 퍼진 것과 피가 뿌려진 것은 철분의 상태가 달라.”
서진은 다시 경찰 조사 현장으로 시선을 틀었다.
그러자 김경웅이 조심스레 묻는다.
“다르다고요?”
“어.”
김경웅이 슬슬 눈치를 봤다.
그러다가 한숨을 내뱉으며 자리를 떠났다.
이정우가 서진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자세히 알려준 거야?”
“보고하라고.”
“보고?”
“놈들 뒤에 있는 브레인. 그놈은 생활반응까지 계산해서 사람을 죽였어.”
김경웅은 딱 봐도 무식이 철철 넘친다.
저런 양아치가 생활반응까지 생각하기는 어렵다.
분명 부검 또는 살인에 능숙한 사람이 뒤에 있을 거다.
서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김경웅은 지금 그놈에게 전화할 거야. 그리고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고스란히 보고하겠지.”
이정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김경웅의 뒷모습을 쫓았다.
놈은 건물 뒤쪽으로 사라지는 중이다.
서진의 말대로 주변의 눈치를 보며 휴대폰을 꺼내고 있다.
동시에 서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뭐, 그 브레인은 이미 루미놀에 대한 대처를 끝냈을 거야.”
“뭐?”
범행에 쓰인 도구는 폐기처분 되었을 거고 피가 묻은 모든 흔적 역시 사라졌을 거다.
루미놀로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없다.
서진은 그렇게 판단했다.
이정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왜 이 조사를 하라고 한 거야?”
해봤자 나올 것 없는 조사.
즉, 시간낭비.
그런데, 서진은 조용히 웃었다.
“초조하게 만드는 거야.”
검찰과 경찰이 재수사를 시작했다.
가장 기초적인 것부터 다시 확인하는 중이다.
“불안하겠지. 뭔가 놓친 것은 없는지, 혹시 실수한 게 있는지. 인간이 하는 일에 완벽한 것은 없으니까.”
놈은 모든 상황을 재검토할 게 분명하다.
“현장은 완벽할수록 인위적이야.”
그리고 놈이 신경 쓸 곳은 이 현장만이 아니다.
기획부동산 과장 광고 등 사방팔방으로 수사가 조여오고 있다.
“어디선가 변수가 터지겠지. 그럼, 잡을 수 있어.”
그리고 놈을 잡는 순간 동남군은 또 한 번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될 거다.
***
“못 잡아.”
동남 지청.
형사 1부 부장검사가 커피를 내려두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마주 앉은 검사가 슬쩍 웃었다.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죠.”
형사 4부, 김서진에게 넘긴 사건은 보통 깡치가 아니다.
70여 명의 피해자, 약 300억 원의 피해액.
게다가 한 명은 산에서 사고사, 4명은 화병으로 사망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사기라는 증거가 없다.
놈들은 그 임야가 개발될 줄 알았다며 박박 우기고 있다.
군청에서 나온 개발계획을 믿었다며 오히려 억울해하는 중이다.
-우리도 손해 봤어요!
-원자력 병원이 생긴다며!
-공무원이 사기를 친 거지!
사기의 냄새는 짙게 나지만 투자 실패로 볼 수밖에 없다.
1부 부장검사가 담배를 입에 물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신분증에 잉크도 마르지 않은 애들 둘이서 탐정 놀이하다가 증거를 찾는다고? 그럼, 미친 거지.”
“그래도 혹시 또는 만약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1부 부장검사가 고개를 저었다.
“가능성은 제로야.”
“네?”
소파에 앉아 있던 검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능성이 제로인 사건은 없다.
게다가 아무리 애송이라 해도 그 두 사람은 검사다.
그들이 다른 사건 제쳐두고 발 벗고 뛰는 중이다.
***
-한민당 이성윤 대표는 이번 총선 공천에서 뼈를 깎는...
텔레비전에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시끄럽게 들리고 있었다.
이곳은 기획 부동산 ‘랜우드’가 위치한 상가 1층의 국밥집.
랜우드의 직원 한 명이 뒤늦은 점심을 먹는 중이다.
직원의 나이는 스물다섯, 군대를 제대하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에 이곳에 취업했다.
하지만 돈은 개뿔, 부동산 경기가 하락이라는 변명을 들으며 고생만 하는 중이다.
직원의 앞으로 낯선 남자가 마주 앉았다.
숟가락을 움직이던 직원이 눈동자만 움직여 주변을 살핀다.
빈자리도 많은데 왜 여기 앉느냐는 눈빛.
낯선 남자가 입을 열었다.
“동남지청 임정택 수사관입니다. 영장 같은 것은 없고. 가볍게 물어볼 것이 있어서 왔어요.”
“저, 저한테요? 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요.”
직원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렸다.
하지만 임정택 수사관의 목소리는 다정했다.
“119를 부른 게 박성진 씨였죠? 최초 제보자던데.”
직원의 얼굴은 긴장으로 바짝 물들었다.
들고 있는 수저가 발발발 떨리고 있다.
임정택 수사관이 그의 표정을 살피며 목소리를 이었다.
“최초 제보자, 그러니까 최초 목격자. 맞죠?”
“......”
“그런데 여기서 질문. 살인사건에서 최초 신고자가 범인일 확률이 몇 퍼센트나 될 것 같나요?”
“......”
“우리는 지금 그 사건을 살인사건으로 보고 있거든요.”
직원의 행동이 굳었다.
그리고 잠시 후 사색이 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저,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아뇨. 알잖아요.”
“정말이에요. 믿어주세요. 정말 몰라요.”
직원의 목소리는 간절했다.
하지만 임정택 수사관은 멈추지 않는다.
직원을 향해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
“자, 말 해봐요. 어떻게 죽인 거예요? 오함마로?”
*
“왜, 왜 그러세요?”
동남군 지역 수협.
은행 업무를 마치고 나오는 기획 부동산 ‘랜우드’의 경리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그 앞으로 이소희가 신분증을 들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검찰입니다.”
살면서 경찰을 마주할 일도 많지 않은데 검찰, 그것도 검사가 직접 왔다.
경리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소희가 커피숍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잠깐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왜요. 왜...”
“효정 씨가 랜우드의 자금 흐름을 가장 잘 알잖아요. 그래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검찰로 부르기는 뭐해서 직접 찾아왔어요. 싫으면 정식으로 검찰에서 볼까요?”
“아, 아뇨.”
경리의 대답에 이소희가 생긋 웃었다.
“커피는 제가 살게요.”
***
쾅! 쾅! 쾅!
책상을 내리치는 소리가 거칠게 울렸다.
“씨발!”
다음 날, 기획 부동산 랜우드의 대표 사무실.
부서진 전화기와 널브러진 서류를 보면 마치 태풍이 지나간 것 같았다.
랜우드의 대표가 도깨비 같은 얼굴로 화를 내는 중이다.
“젠장!”
랜우드의 대표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책상 앞 소파로 틀어졌다.
살벌한 분위기에서 혼자 느긋하게 앉아 있는 남자가 보였다.
안경을 쓰고 곱상하게 생긴 그의 이름은 한상준, 랜우드의 브레인이다.
“다 끝난 일이잖아! 그런데, 검찰이 왜 또 지랄이야! 직원들은 왜 쑤시는 거야!”
한상준이 금테 안경을 고쳐 쓰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최근에 동남 지청 애들이 열심히 합니다. 고여 있다 못해 썩어 버린 미제 사건도 해결하고 군의원도 잡아가고.”
대표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동태 눈깔로 있던 놈들이잖아? 썩었어도 칼잡이다 이거야? 그런데 갑자기, 하필이면 지금 왜 이러는 거야!”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대표의 방으로 한 청년이 들어왔다.
아직 서른도 안 된 것 같은 앳된 얼굴.
대표가 청년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
“넌 뭐야 이 새끼야. 노크하는 법 몰라!”
그런데, 청년의 뒤에서 경리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경리의 표정을 조심히 보던 대표의 시선이 다시 청년에게 향했다.
뭔가 이상했다.
“누, 누구세요?”
“동남지청 김서진 검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