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하게. -(1)>
***
“좋은 선택 하셨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시작한다고요?
“네. 보좌관님은 조용히 계십시오. 평소처럼 어떤 티도 내지 말고. 조선봉 의원을 잘 보좌하시면 됩니다. 그러다가 이상주 보좌관의 말도 좀 들어주세요.”
서진이 통화를 종료하며 시선을 들었다.
‘조선봉 국회의원 사무실’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곧 박살날 간판, 그 간판을 바라보며 서진이 다시 휴대폰을 귀에 댔다.
통화 연결 음이 들린다.
그리고 이어진 목소리.
-엄일섭입니다.
“의원님. 접니다.”
-그래, 시작할까?
“네.”
-민국당 새끼들 요란 떠는 것을 보겠어.
엄일섭 의원의 끌끌 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자신이 서진을 이용한다고 생각한다.
그 반대인 것도 모른 채.
*
“이번 주말에 방송국 불렀습니다. 전통 시장 돌면서...”
우진욱 보좌관의 말을 듣던 조선봉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직자들 깔아 둬.”
“알겠습니다.”
조선봉 의원이 시장을 돌면 그 이름을 외쳐야 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카메라에는 시장 상인처럼 잡히겠지만 그들은 모두 민국당의 당직자.
미디어에 조선봉 의원을 향한 민심이 튼튼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
“시장 아줌마들 안 달라붙게 가드 잘하고.”
“네.”
“그리고 그 분식집은 패스해.”
“네?”
시장 방문에 분식집은 필수다.
오뎅을 먹으며 진정한 서민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다.
“파전으로 바꿔.”
“왜...”
대답은 조선봉 의원의 옆에 앉아 있던 이상주가 했다.
“기억 안 나? 지난번에 의원님 방문했을 때, 장사 안된다고 소리쳤잖아.”
조선봉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신이야? 자기 장사 수완이 없는 것을 왜 나한테 지랄이야? 그거 위생만 좀 깨끗이 해봐. 거지새끼들. 요즘 누가 더럽게 길거리에서 오뎅을 먹는다고.”
“그럼, 다음으로 아파트 노인회...”
“거기도 됐어. 후원금으로 10만 원 보내고 퉁쳐.”
“의원님...”
조선봉 의원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우 보좌관. 여기는 내 지역이야. 그렇게 요란 안 떨어도 다 나를 찍을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고아원 가서 사진이나 찍어주고 오면 당선이야.”
이곳은 개가 민국당의 깃발을 들어도 당선된다는 소문이 있다.
그때.
“잠깐만.”
조선봉 의원이 두 보좌관을 향해 손을 들었다.
휴대폰이 울리고 있었다.
전화를 받은 조선봉 의원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밝고 경쾌한 목소리로.
“아이고. 박 기자! 잘 있지? 얼굴 한번 봐야 하는데, 그게 어렵네. 고아원 한번 갈 거야. 같이 갈래? 내가 애들을 엄청 좋아하잖아. 하하하하!”
거짓이다.
평소에는 고아원에 발도 들이지 않는다.
거지새끼들에게 전염병이 많다나 뭐라나?
그런데, 그 순간 조선봉 의원의 표정이 돌변했다.
“...뭐라고? 그게 무슨 개소리야! 그걸 믿어? 야, 박 기자!”
뭔가 어긋나기 시작한 거다.
우진욱 보좌관의 머릿속에 서진의 말이 떠올랐다.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이게 그건가?’
그때였다.
문이 쾅! 열리고 수행비서가 고개를 내밀었다.
불길한 표정에 전화를 받고 있던 조선봉 의원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왜!”
“의, 의원님...”
“뭐, 새끼야!”
수행비서가 리모컨을 들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 엄일섭 의원이 보이며 리포터의 목소리가 긴급하게 들려왔다.
-대한당 엄일섭 의원이 조선봉 의원의 아들 조영현 씨에 대한 입학 비리 의혹을 고발한다며 서울 중앙 지방 검찰청 앞에...
리포터의 목소리가 작아지고 엄일섭 의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선봉 의원은 공정한 사회를 이뤄야 한다며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그 아들 조영현은 고등학생 때 생명공학에 관련된 논문을 써서 입학사정관제로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수학 성적은 엉망이었으며.
화면을 보던 조선봉 의원의 얼굴이 발악하며 외쳤다.
“저, 저 미친 새끼가 뭐 하는 거야!”
하지만 엄일섭 의원의 목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TL 그룹 신약 사업부에 공채 합격했습니다. 그런데 학점이 2.8, 영어 인증 시험은 본 적 없고 컴퓨터 자격증 몇 개가 전부입니다.
조선봉 의원이 비틀거렸다.
우진욱 보좌관이 그를 부축했다.
“의원님! 괜찮으십니까? 의원님!”
조선봉 의원이 이마를 짚으며 목소리를 쩌렁 내뱉었다.
“당장 대응 기사 돌려. 어서!”
우진욱 보좌관과 이상주가 재빨리 밖으로 나왔다.
지시를 기다리던 인턴과 수행비서가 고개를 끄덕였고 이상주가 두 사람을 향해 다급히 말했다.
“미현 씨는 아래 편의점에서 의원님 드실 시원한 음료 하나 사 와. 그리고 동구야. 차 트렁크에 내 가방 있나 확인 좀 해봐.”
“예!”
두 사람이 뛰쳐나갔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음료 심부름이라니 이상한 지시다.
우진욱 보좌관이 이상주를 바라봤다.
“...갑자기 음료는 뭐고 트렁크는 왜 확인하라 하는 거야?”
이상주가 지금껏 보지 못한 진지한 눈으로 우진욱 보좌관을 향했다.
그리고 속삭이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진욱아... 조금만 늦추자.”
“뭐?”
“대응 기사, 조금만 늦추자고!”
이상주의 탐욕스러운 눈동자가 천천히 조선봉 의원의 방을 향해 틀어졌다.
그가 말을 이었다.
“진욱아. 저 노인네, 너무 오래 해 먹었어. 이건 우리한테 기회야. 언제까지 저 노인네 똥 닦고 있을 거야?”
우진욱 보좌관은 자신도 모르게 주춤주춤 물러섰다.
이상주, 방금은 저 방에서 우진욱을 쳐내자고 꼬리를 흔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조선봉 의원을 끝장내려 한다.
놈이 꼭 흉측한 괴물처럼 여겨진다.
‘쓰레기 같은 놈.’
그때, 우진욱 보좌관의 귓가에 또다시 서진의 목소리가 스쳤다.
-그러다가 이상주 보좌관의 말도 좀 들어주세요.
우진욱 보좌관은 닭살이 돋는 것을 느꼈다.
‘뭐지?’
이상주의 본질을 본 것과는 또 다른 충격이다.
지금 이뤄지는 모든 상황이 서진의 말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다.
아니, 서진이 미래를 보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럼...’
우진욱 보좌관의 눈동자가 이상주에게 옮겨졌다.
서진은 분명 이상주의 집에 떨어뜨릴 포탄이 있다고 말했었다.
그것도 그대로 이뤄질 거다.
그럼, 지금은 서진의 말을 따라야 한다.
그래야 이상주의 비명을 들을 수 있다.
우진욱 보좌관이 마른 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러자.”
이상주가 엷게 웃으며 우진욱 보좌관의 팔을 툭툭 쳤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는 친구다. 알지?”
***
서진은 서울에서의 볼일을 끝내고 곧장 동남군으로 향하고 있었다.
정치권의 일은 일단 여기까지다.
지금부터 얼마간의 시간은 그들이 치고받고 싸울 시간이다.
서진이 나서는 것은 그 다음.
지금은 본연의 일을 해야 한다.
그렇게 동남군에 들어선 것은 오후 5시.
‘조금 늦었네.’
밤을 새고 일했을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며 분식집에 들어 이것저것을 샀다.
떡볶이, 튀김, 순대 그리고 김밥.
바리바리 싸 들고 사무실 문을 열자 다크써클이 턱 밑까지 내려온 좀비들이 서진을 반겼다.
“...오셨어요?”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넨 것은 저녁 있는 삶을 원하던 임정택 수사관이다.
그가 간절한 눈으로 서진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정시 퇴근은 바라지 않아요. 퇴근만 시켜주면 행복할 것 같아요.”
죽는소리를 하던 임정택 수사관의 시선이 서진의 양손으로 옮겨졌다.
“그런데 그건 뭐예요?”
“양손은 무겁게.”
서진이 어깨를 으쓱하며 검은 비닐봉지를 들어 올리자 임정택 수사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채워졌고 그가 장난스럽게 입을 열었다.
“와! 독약이다. 저것 먹고 오늘도 지청에서 숙식인가요?”
임정택 수사관을 비롯한 각 직원이 몰려들었다.
언제나 간식은 진리, 잠시 피곤을 잊고 즐겁게 노닥거릴 수 있다.
그리고 이소희가 피곤한 얼굴로 고개를 틀어 서진을 바라봤다.
“한 시간 늦었네?”
“쏴리.”
“그건 뭐야?”
서진의 손에 남은 마지막 검은 비닐봉지.
“너 좋아하는 쉑쉑버거.”
“어?”
동시에 다른 직원들의 눈이 모두 서진에게 몰렸다.
잠시의 침묵 그리고 짓궂은 목소리.
“...우리도 쉑쉑 좋아하는데요.”
“어... 제가 좀 늦어서 일단 이소희 검사만 챙기는 척 주고. 화가 풀리면 차에 둔 나머지 햄버거를 가져와서 드리려고 했어요. 이소희 검사가 워낙 먹는 것을 좋아해서 먹이면 화가 풀릴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그럼, 다들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니었나요?”
도민지 실무관이 미안한 표정으로 입을 가렸다.
“어머. 그런 큰 뜻이 있는 줄 모르고. 우린 또 이소희 검사님만 챙기는 줄 알고. 정말 죄송해요.”
이소희가 고개를 저으며 서진의 손에 든 햄버거를 빼앗아 들었다.
“내가 어린 애야? 화 안 났어. 다른 분들 것도 어서 가져와.”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이소희는 햄버거를 보며 정말 환하게 웃고 있다.
*
“위준상 의원은?”
“자백했어. CCTV 확보했고 사과 박스에 있던 현금도 찾아냈고.”
간식 시간이 끝나고 곧바로 업무가 이어졌다.
서진은 이소희에게 그동안의 처리된 일을 전해 듣는 중이다.
“박상영은?”
“건방진 행동은 없는데, 정신이 나간 것 같아.”
옆에서 서류를 정리하던 임정택 수사관이 낄낄 웃었다.
“사형 시켜 달래요. 그 말을 끝으로 묵언 수행 중이고요.”
박상영 부장은 김영준 검사장과 통화 뒤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포자기한 상태다.
서진이 서류를 넘기며 물었다.
“뇌물 받은 공무원은?”
“아직 피의자, 며칠 후면 피고인이 되겠지만.”
그때, 지이잉.
서진의 휴대폰이 울렸다.
이명수 검사다.
-들어왔지? 부장검사님 방으로 와.
*
“부르셨습니까?”
김관용 부장검사의 방.
서진이 김관용 부장검사와 이명수 검사를 향해 구십 도로 허리를 굽혔다.
“앉아.”
김관용 부장검사가 자신의 앞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평소에도 엄격한 말투는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그 목소리가 정말 부드럽다.
옆에 앉은 이명수 검사는 한숨만 푹푹 내뱉고 있고.
“어쩐 일로...”
서진이 조심스레 물었다.
김관용 부장검사가 미안한 표정으로 서진을 바라봤다.
“시기하는 사람이 많아.”
서진은 짧은 시간에 자매 보험사기 살인 사건. 유아성 살인 사건 그리고 이번에 위준상 뇌물 사건을 해결했다.
“우리는 그게 김 검사의 능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존재한다.
“김 검사가 내 라인인 줄 알아.”
검찰도 사람 사는 곳이다.
복잡한 사건은 말 안 듣는 놈 주고 예쁜 놈에게 해결 쉽고 실적 좋은 사건을 준다.
김관용 부장검사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입을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내가 김 검사의 경력을 관리해 준다는 뒷말이 나오고 있어.”
서진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사건을 해결했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이미 다 해결된 사건에 숟가락만 올렸다고 생각한다.
“형사 1,2 부가 우리를 시기하고 의심하기 시작했어.”
지청의 모든 주목을 받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청장이 정치권과 손을 잡고 서울로 이동할 준비를 한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으니 더 미쳐버릴 지경이다.
하찮은 질투심, 그게 이유였다.
“그래서 말인데... 형사 1부가 갖고 있던 깡치 하나 하자.”
-깡치 : 밑에 가라앉은 찌꺼기나 앙금을 뜻하는 명사.
-법조계 은어로 복잡하고 너저분한 사건이나 장기 미제 사건을 말한다.
-해결하지 못한다면 임기 내 커리어에 스크래치가 나기도 한다.
-깡치를 받으면 복이 없거나 상관에게 미움을 받는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김관용 부장 검사는 정말 미안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서진은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깡치?’
일부러 미제 사건을 찾아 해결했던 것과 깡치를 받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그것도 형사1부에서 가지고 있던 것.
해내면 정말 인정받을 수 있다.
동남군에 모인 칼잡이들에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서진이 마른 입술을 핥을 때 김관용 부장 검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원하지 않으면 안 해도 돼. 하지만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하겠습니다.”
“한다고?”
“네.”
흔쾌한 대답에 지금껏 조용히 앉아 있던 이명수 검사가 눈을 크게 떴다.
“야, 너 깡치라는 말이 뭔지 모르고 넙죽 대답한 거지? 깡치가 뭐냐 하면...”
“알고 있습니다. 하겠습니다.”
서진은 이번에도 시원하게 대답했다.
김관용 부장 검사와 이명수 검사가 눈을 깜빡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