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27화 (27/250)

<티를 내지 않은 사람. -(2)>

서진이 시선을 들어 우진욱 보좌관을 향했다.

이제 잡담을 끝내고 본론으로 들어갈 차례다.

흑백의 세상을 보기 전까지, 서진은 동남군의 엄일섭 의원을 송파구에 꽂으려 했다.

우진욱 보좌관의 역할은 백병전이 전부, 하지만 지금 그 역할이 바뀌었다.

우진욱 보좌관은 능력도 좋고 사람도 좋다.

게다가 젊다.

“보좌관님,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보겠습니다. 목표가 무엇입니까?”

“목표요? 내 개인적인?”

“네.”

우진욱 보좌관이 슬쩍 웃는다.

“글쎄요. 우리 의원님 잘 보좌해서 언젠가 청와대 한번 가보는 것? 그런데 그건 왜요?”

서진은 대답하지 않고 우진욱 보좌관을 조용히 바라봤다.

우진욱 보좌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야, 왜 말이 없어요?”

“......”

“허허, 참.”

우진욱 보좌관은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제야 서진이 입을 열었다.

“...정말 그게 목표입니까?”

뭔가 아쉽다는 목소리에 우진욱 보좌관의 행동이 뚝 멎었다.

눈동자만 움직여 서진을 향하더니 불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모시는 의원님을 청와대에 보내는 게 약하나? 그럼, 백악관은 보내야 원대한 목표인가요? 그거 국적 바꿔도 자격이 안 될 텐데.”

“전 조선봉 의원님이 아니라 보좌관님의 개인적인 목표를 여쭤봤습니다.”

“개인적인 목표?”

“네.”

우진욱 보좌관의 눈에 욕망 가득한 빛이 스쳤다.

하지만 잠시였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피곤한 기색으로 서진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젊은 검사님. 우리 같은 놈들은요. 개인의 꿈이라는 게 없어요. 모시는 의원님의 성공을 바라보는 게 우리의 기쁨이죠.”

우진욱 보좌관이 젓가락을 탁 내려두며 말을 이었다.

“배는 다 채웠고 할 말도 다 끝난 것 같은데, 이제 일어나도 되겠습니까?”

“저는 보좌관님의 개인적인 목표를 응원하고 싶습니다.”

서진은 흑백의 세상을 통해 그의 욕망을 들여다 봤다.

가볍게 던진 말이지만 우진욱 보좌관은 충분히 알아들었을 거다.

그 증거로 그의 눈빛이 삐뚤어지고 있었다.

“...개인적인 목표?”

“네.”

“이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다시 소개하겠습니다. 재정 건설 김준만 대표의 아들 김서진이라고 합니다.”

우진욱 보좌관의 눈빛이 멈칫거렸다.

재정 건설, 도급 순위 20위~23위를 오가는 기업이다.

최근 신도시 노른자 땅에 아파트를 완판 시키며 가파르게 성장하는 곳.

많은 사람들이 몇 년 안에 메이저 브랜드가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재정 건설?”

“죄송하지만 보좌관님에 대해 조금 알아봤습니다.”

우진욱 보좌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서진은 거침없이 입을 열었다.

“지역에 대한 모든 일부터 정책적인 것까지 도맡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조선봉 의원은 말합니다. 지역은 이상주 보좌관에게 물려주겠다고.”

이상주 보좌관은 뒷돈을 받는다.

그 돈으로 조선봉 의원에게 술도 사고 손바닥도 비빈다.

조선봉 의원의 딸이 유학을 갈 때 비행기 표를 퍼스트 클래스로 끊어 선물한 것은 유명하다.

그 사이 우진욱 보좌관은 묵묵히 일했을 뿐이다.

하지만 알아주지 않는다.

묵묵히 일하면 빛을 본다는 것은 헛소리다.

선물 하나 더 챙겨준 놈이 예쁜 거다.

그런데 우진욱 보좌관의 목소리가 사나워졌다.

“그래서요?”

“보좌관님의 목표를 돕고 싶습니다.”

우진욱 보좌관이 부스스한 머리를 벅벅 긁더니 손을 휘휘 저었다.

“가세요.”

하지만 서진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가라고!”

급기야 우진욱 보좌관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쾅쾅쾅 테이블을 내리쳤다.

“나가!”

이번에도 서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우진욱 보좌관이 화를 내고 있지만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다.

만약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먼저 박차고 일어났을 거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앉아 있다.

‘이 상황을 의심하고 있겠지.’

서진은 우진욱 보좌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는 지금 혼란스럽다.

-어린 검사 놈이 만나자고 했다.

-갑자기 건설 회사의 아들이라고 한다.

-뜬금없이 자신의 목표를 응원한단다.

황당한 상황이 이어졌다.

유치하지만 조선봉 의원이 만들어 낸 보좌진의 충성심을 확인하는 이벤트가 아닐까 걱정하고 있다.

그렇게 우진욱 보좌관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사나웠던 공간에 적막이 채워졌을 때 서진은 술잔을 들어 그의 잔을 채웠다.

그리고 몸을 일으킨 뒤 고개를 숙였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잠깐만요.”

우진욱 보좌관의 목소리에 서진이 멈춰섰다.

“네?”

“그쪽의 이유는 뭐죠?”

“이유라뇨?”

“정치판에서 제일 무서운 게 대가없는 호의죠. 날 돕겠다는 이유가 뭡니까? 들어나 봅시다.”

서진이 슬쩍 웃었다.

“보좌관님은 젊습니다. 그리고 저도 젊죠. 앞으로 오랜 시간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진욱 보좌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서진의 이유는 명확했다.

이제 궁금한 것은 하나다.

“나를 선택한 이유는?”

“당선될 것 같아서요. 그뿐입니다.”

우진욱 보좌관은 서진이 방을 빠져 나갈 때 까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눈을 부릅뜬 채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탁 미닫이문이 닫혔을 때 우진욱 보좌관은 자신의 앞에 놓인 술잔을 바라봤다.

‘김서진이라고?’

처음엔 부모 잘 만나 검사된 놈이 인맥을 얻으려고 찾아왔나 싶었다.

가끔 검사가 됐다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놈들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놈은 애송이가 아니었다.

악마처럼 사람의 마음을 헤집었다.

-욕망. 야망. 탐욕.

이게 없는 정치인이 어디 있을까?

이 바닥에 뛰어 들었을 때 누구나 갖고 있던 그 마음.

지금도 갖고 있다.

언젠가 다가올 때를 기다리며 꾹 숨기고 있었다.

조선봉 의원에게 굴욕을 당하면서도, 기초 의원들에게 호구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완벽히 숨겼었는데 그걸 어린놈에게 고스란히 들켰다.

마치 발가벗겨진 것처럼.

우진욱 보좌관이 서진이 따르고 간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한 입에 털어 넣은 뒤 술잔을 탁 내려뒀다.

우진욱 보좌관의 눈빛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지금 서진과의 만남이 기회인지 사기인지 조금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기회라면 지금 조선봉 의원을 엎어야 할지 말아야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하...’

*

서진이 고개를 틀었다.

한정식 집이 보인다.

‘우진욱...’

사람 좋고 능력도 있다.

지역민을 위한다며 노력도 한다.

정치인으로 딱 괜찮다.

하지만 단점이 있다.

결단력이 없다는 것.

서진은 우진욱이 결단내리는 것을 도와줄 생각이다.

그럼, 그는 서진을 의지할 테고 서진의 생각대로 움직일 거다.

‘그렇게 내 사람으로 만들면...’

최선봉의 장수로 최고다.

서진이 천천이 몸을 돌렸다.

‘질질끌지 말고 오늘내로 결정합시다.’

***

“어디 갔다 온 거야?”

조선봉 국회의원 사무실.

우진욱 보좌관이 막 들어왔을 때, 소파에 앉아 있던 이상주 보좌관이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오늘 의원님이 지역구 도는 날이야. 잊었어?”

잘 안다.

지역구 스케줄도 모두 우진욱 보좌관이 짰으니까.

게다가 아직 1시간이나 여유가 있다.

이상주가 조선봉 의원의 방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계속 말했다.

“의원님이 아까 묻더라고. 너 어디 갔냐고.”

“그래서?”

“시 의회 일 보고 왔다고 말씀드렸어. 그러니까 물어보면 눈치껏 잘 말해.”

“고맙다.”

“뭘 우리 사이에.”

이상주가 우진욱 보좌관의 어깨를 툭툭 쳤다.

조선봉 의원을 향해 손바닥을 비비고 어쩌고저쩌고 해도 이상주의 성격이 참 좋다.

‘저래서 편애하겠지.’

우진욱 보좌관은 넥타이를 풀며 책상으로 향했다.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하다.

김서진이란 놈의 목소리가 계속 귓가를 울리고 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우진욱 보좌관은 자리에 앉아 노트북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김서진 검사를 검색해서 관련 기사를 찾았다.

어렵지는 않았다.

최근 미제 사건을 해결했다며 여기저기 그 이름이 보였고 재정 건설 김준만 대표의 아들이라는 기사도 간간이 있다.

우진욱 보좌관이 눈을 질끈 감았다.

서진의 말에 거짓은 없었다.

이제 우진욱 보좌관의 선택만 남은 것 같다.

-애송이의 말을 듣고 장렬히 싸운다.

-지금처럼 조용히 엎드린 채 또 다른 기회를 기다린다.

전자를 선택하면 직장을 잃을 수 있다.

아니, 조선봉 의원에게 박살날 가능성도 크다.

후자를 선택하면 지금처럼 언제가 될지 모를 그 때를 기다리면서 살아야 한다.

그때, 조선봉 의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상주 보좌관!”

소파에 앉아 있던 이상주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조선봉 의원의 방으로 향하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술 냄새 나더라. 화장실에서 가글이라도 해.”

“아, 땡큐.”

우진욱 보좌관이 이상주를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조선봉 의원에 대해서는 어떤 감정도 없다.

아니, 악 감정만 남았다.

그래서 기회만 온다면 그 목에 칼을 대고 싶다.

하지만 이상주가 걸린다.

우진욱 보좌관과 이상주는 같은 나이, 같은 시점에 정치에 입문했다.

함께 고생했고 소주잔을 나눴다.

항상 격려해주고 응원해주는 친구이기도 했다.

적어도 이상주가 망하는 것은 보고 싶지 않다.

생각을 이어가던 우진욱 보좌관의 앞으로 수행비서가 섰다.

“보좌관님.”

“어? 왜.”

“잠깐 1층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아, 그래.”

수행비서가 쪼르르 나갔고 사무실을 지키는 인턴도 화장실에 간다며 자리를 피했다.

졸지에 우진욱 보좌관이 전화를 대기해야 하는 사람이 됐다.

팔짱을 끼고 앉아 있는데 문득 조선봉 의원과 이상주가 안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했다.

술김이었다.

몇 잔 마시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취기는 올랐다.

우진욱 보좌관이 슬쩍 귀를 가져다 댔다.

이상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우진욱이가 점심에 술을 마셨나 봐요. 냄새가 나더라고요. 흐흐.”

동시에 노기 어린 조선봉 의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술을 마셔?”

“의원님, 화내지 마세요. 지역구 관리하면서 한 잔씩 먹는 것은 당연하잖아요.”

“저 미친 새끼! 진짜, 확 잘라버려야 하는데.”

“의원님! 보좌진과 오래 가는 국회의원이라고 기사도 났습니다. 댓글 보면 성격 좋다고 난리예요. 그러니까... 이번 총선까지만 쓰시죠. 얼굴 마담으로 쓰고 버리세요.”

“혹시 보좌관 할만한 괜찮은 애 있어?”

“들어보셨나요? 차성은이라고 있어요.

이상주가 추천하는 차성은.

그녀는 이상주의 내연녀다.

고작 내연녀와 함께하려고 수십 년 함께한 동료를 잘라내고 있다.

우진욱 보좌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조선봉 의원에게 토사구팽 당할 것은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운 정, 고운 정 가득 든 이상주에게 뒤통수를 맞을 것은 몰랐다.

그것도 망치로 여러 번 두들겨 맞은 느낌이다.

‘내가 호구였나?’

그렇게밖에 생각이 안 든다.

지금당장 문을 열고 들어가 분노를 토해내며 이상주의 얼굴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그때, 드르륵 책상 위에 휴대폰이 진동했다.

우진욱 보좌관이 자신의 휴대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발신 번호가 김서진.

우진욱 보좌관이 휴대폰을 귀에 댔다.

-생각은 좀 정리되셨습니까?

“네.”

-목소리 들으니까 좋은 쪽으로 결정 되는 것 같네요.

“글쎄요.”

-그런데, 말씀 안 드린 게 있어서요.

“뭐죠?”

-포탄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조선봉 의원을 향하게 될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는?”

-이상주 보좌관의 집에 떨어지겠네요. 결정에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우진욱 보좌관의 눈동자가 조선봉 의원의 방으로 틀어졌다.

작은 창문을 통해 이상주와 조선봉 의원의 재수 없는 얼굴이 보인다.

놈들이 낄낄 거리고 있다.

그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등신이죠. 등신. 푸핫핫핫!

우진욱 보좌관이 그들을 노려보며 휴대폰에 대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하겠습니다.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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