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23화 (23/250)

<친구. -(7)>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던 지동민 검사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오, 오해입니다. 마, 맞아요. 오해!”

“오해? 그래, 그럼, 해명해봐.”

살벌해야 할 분위기에 사무적인 목소리는 더 섬뜩한 법이다.

김관용 부장 검사의 말에 지동민 검사는 움찔거렸다.

하지만 지금은 무섭고 두려워도 빠져나갈 길을 찾아야 한다.

지동민 검사는 마른 침을 삼키며 어떻게 변명을 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났는지 빠르게 입을 열었다.

“하, 함정을 파고 싶었습니다!”

“함정?”

지동민 검사는 살기 위해 발악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이어갔다.

“박상영은 여우같은 놈입니다! 그래서 수사의 냄새를 맡으면 당장 꼬리를 감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정보를 흘렸다?”

“제가 첩보를 흘리면 적어도 제게는 정보를 주겠다고 생각...”

지동민 검사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서진이 잠시 멈춰뒀던 녹취 파일을 다시 재생 시켰기 때문이다.

휴대폰에서 박상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됐고. 앞으로 검찰에서 뭘 터는지 연락 줘. 그럼, 다음 인사 명령 때 동남군을 벗어나게 해줄 게.

지동민 검사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꺼. 함정이라고 했잖아.”

하지만 서진은 꿈적하지 않았고 녹음은 이어졌다.

-형이 윤환이한테 꼬리 치는 이유가 딱 하나잖아? 동남군 떠나고 싶은 것. 내가 잘 이야기해줄 게.

급기야 지동민 검사가 핏발선 눈으로 서진을 노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끄라고 새끼야!”

-동남군은 바이, 바이야.

“함정이야! 함정! 몇 번을 말 해!”

마지막으로 지동민 검사의 작별 인사가 흘러나왔다.

-상영아, 조심히 가라. 그리고 수사는 걱정하지 마. 내가 최대한 미뤄볼 테니까. 내가 네 변호사야.

지동민 검사의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따듯했고 진심이 가득했다.

이게 연기라면 검찰을 떠나 할리우드를 노크해야 한다.

서진이 녹취 파일을 정지하며 지동민 검사를 향했다.

“끝났습니다.”

지동민 검사의 얼굴이 확확 변하고 있다.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긴장된 주먹을 쥐었다 피는 중이다.

지금도 빠져 나갈 길을 찾고 있었다.

동시에 김관영 부장 검사가 들고 있던 라이터를 집어 던졌다.

퍽!

라이터는 지동민 검사의 가슴에 맞고 튕겼다.

지동민 검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닥을 뒹구는 라이터를 바라봤다.

이제 김관용 부장은 지동민 검사가 어떤 말을 해도 믿어주지 않을 거다.

하지만.

“부, 부장 검사님... 믿어 주십시오. 오해입니다. 제가 다 소명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지동민 검사는 추잡할 정도로 끝까지 변명을 하려했고 김관용 부장 검사가 팔을 걷으며 천천히 일어섰다.

“김서진, 이소희.”

“네.”

“나가 있어.”

다시 말하지만 살벌한 분위기에서 톤 없는 사무적인 목소리는 정말 섬뜩했다.

이소희는 사무실을 빠져 나가며 힐끗 지동민 검사를 바라봤다.

지동민 검사는 이제야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방금 전 이소희를 보며 쏘아대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런지 이러면 안 되는데, 조금은 쌤통이었다.

*

“왜 그랬어?”

밖으로 나온 지 5분쯤 지났을 때다.

복도 벽에 기대고 서 있던 이소희가 처음으로 입을 떼고 물었다.

“뭐가?”

“녹취, 지금 터뜨려야 했어? 우리가 저격한 게 되잖아.”

후배가 선배를 의심하고 뒤를 밟았고 그 치부를 부장 검사 앞에서 터뜨렸다.

뒤통수에 총구를 바짝 대고 방아쇠를 당긴 것으로 여겨질 거다.

“우린 굴러온 돌이고 지동민은 박혀 있던 돌이야. 그런데, 우리를 보면서 사람들이 뭐라고 말할까? 선배도 잡는 정의롭고 용기 있는 검사라며 칭찬해줄까? 아니, 비난할 거야. 너무 대놓고 움직였어.”

이소희는 걱정하고 있었다.

정말 심할 경우 기수 열외를 당할 수도 있어서다.

그런데.

“...넌 왜 그렇게 담담해?”

서진은 침착했다.

엷은 미소까지 보이고 있다.

물끄러미 서진을 보던 이소희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 얼굴 보니까 별일 없을 것 같네. 나도 안심 되는 것 같아.”

“별일 없을 거야. 걱정할 필요 없어.”

“어?”

“정말이야.”

서진이 김관용 부장 검사 앞에서 녹취 파일을 재생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김관용 부장 검사의 성격을 알고 있어서다.

-김관용 부장 검사는 일을 크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같은 검사라고 저지른 잘못을 덮어주지 않는다.

-성격이 조심스럽고 배려심이 있다.

“마지막으로 김관용 부장 검사님이 동남군으로 유배된 이유가 뭔지 알아?”

몇 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스폰 검사 사건이 있었다.

한 검사장이 기획 부동산 대표에게 고액의 뇌물을 받고 수사를 무마시켰던 일.

“그 검사장은 결국 징역 7년을 받았어.”

“설마...”

“맞아. 그걸 잡은 게 김관용 부장 검사님이야. 검사장을 교도소에 처넣으며 온갖 비난을 받았고 그 끝이 동남군이었지. 선배를 잡은 후배, 이미 겪었던 일. 그런데, 우리에게 똑같은 길을 가게 할까? 그럴 성격은 아닌 것 같지 않아?”

이소희는 고개를 끄덕였고 서진의 목소리가 조용히 이어졌다.

“내가 볼 때는 지동민만 쳐내고 조용히 끝낼 것 같아. 부장 검사님이 직접 나서면 시끄러워지니까 이명수 검사님의 손을 빌리겠지. 교통 정리해라. 라고 하시면서...”

이소희가 ‘풉’ 웃었다.

“마치 본 것처럼 이야기한다?”

“글쎄.”

서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지금 내뱉은 말은 흑백의 세상을 통해 본 미래가 아니다.

서진이 직접 전체적인 상황을 바탕으로 예상한 일이다.

하지만 엇나갈 것 같지는 않다.

서진의 감은 잘 벼려진 칼처럼 예리했다.

이소희가 서진의 어깨를 툭툭 쳤다.

“만약에 네 예상이 틀려서 오지로 쫓겨나도 걱정하지 마. 누나가 같이 가줄 게. 나도 조금은 고소했거든.”

그때, 부장 검사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밖으로 나온 것은 김관용 부장 검사다.

벽에 기대고 있던 서진과 이소희가 재빨리 자세를 바로 하자 김관용 부장 검사가 입을 열었다.

“술 한 잔 하자.”

*

“먹고 싶은 것 있으면 시켜.”

지청 앞 호프집이었다.

김관용 부장 검사가 서진과 이소희에게 메뉴판을 건넸다.

하지만 불편한 자리이며 가시 방석이다.

수사 지휘를 하던 지동민 검사가 첩자짓을 했고 수사 대상인 박상영은 정보를 듣고 증거를 지우는 중이다.

어떤 것을 시키든 먹다가 체할 것 같았다.

두 사람 모두 조용히 있자 김관용 부장 검사가 말했다.

“치킨에 맥주, 괜찮지?”

“네.”

그렇게 말해놓고 김관용 부장 검사는 오백 한잔과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이소희는 맥주 서진과 김관용 부장 검사는 소주다.

그 뒤로 김관용 부장 검사가 간간히 소주를 입에 털어 넣는 것을 제외하면 조용했다.

그 적막을 깬 것은 호프집의 문이 벌컥 열리면서부터였다.

김관용 부장 검사의 호출을 받고 이명수 검사가 들어왔다.

그가 점퍼를 벗으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어? 너희도 있었어?”

이명수 검사가 뒤늦게 서진과 이소희를 발견했다.

그런데, 눈을 깜빡이는 이명수 검사보다 이소희의 눈이 더 휘둥그레져 있었다.

이소희의 눈동자가 천천히 서진에게 향했다.

그녀의 귓가에 복도에서 들었던 서진의 목소리가 스쳤다.

-부장 검사님이 직접 나서면 시끄러워지니까 이명수 검사님의 손을 빌리겠지.

‘진짜야?’

이소희가 멍하니 있을 때, 이명수 검사가 부장 검사의 옆에 앉으며 물었다.

“부장 검사님, 얘들은 왜?”

김관용 부장 검사는 대답대신 소주만 들이켰다.

그러자 이명수 검사가 서진을 향해 물었다.

“죄졌어?”

“네? 저요?”

“어, 너.”

“아뇨. 안 졌는데요.”

“그럼, 내가 이 시간에 끌려 나왔는데 네가 부장 검사님 옆에 잡혀 있는 이유가 뭐야?”

김관용 부장 검사가 잔을 내려두며 이명수 검사를 째려봤다.

“끌려 나온 거냐?”

“죄송합니다.”

“됐다.”

김관용 부장 검사가 이명수 검사의 앞에 잔을 놓고 술병을 기울이며 말을 이었다.

“사고 쳤지.”

“부장 검사님, 저 이제 김서진 담당 아닙니다. 이놈 제 손 떠났어요.”

“김서진 말고 지동민이가 사고 쳤어.”

이명수 검사의 행동이 멈칫거렸다.

분위기를 풀기 위해 장난스럽게 떠들던 모습은 온데 간데 사라졌다.

언제나 봤던 바로 그 시크한 모습이었다.

소주를 쭉 들이켠 뒤 입을 열었다.

“동민이가요?”

“그래.”

김관용 부장 검사가 앞서 있던 일을 전했다.

건조하게 이어진 이야기에 이명수 검사가 한숨을 푹 내뱉었다.

“아직 어려서 그럴 겁니다.”

지동민, 서진과 이소희 앞에서 대단한 척 했지만 겨우 5년차다.

“동민이 그놈은 자기가 했던 일을 후회하고 있을 겁니다. 그때, 딱 눈 감았다면 계속 서울에 있었을 텐데 하고요.”

김관용 부장 검사가 다시 이명수 검사의 술잔을 채웠다.

“교통정리 좀 해봐.”

김관용 부장 검사의 말에 이소희는 콜록 헛기침을 했다.

이번에도 그녀의 귓가에 서진의 목소리가 스쳤다.

-교통 정리해라. 라고 하시면서...

이소희가 눈을 깜빡이며 서진을 바라봤다.

‘...또 맞췄어?’

이명수 검사가 온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대화까지 맞췄다.

농담이 아니라 살짝 닭살까지 올라왔다.

이제는 용한 무속인처럼 느껴진다.

그 사이 이명수 검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조용히 옷 벗기겠습니다.”

“알아서 하고.”

김관용 부장 검사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이명수 검사는 다시 술잔을 털어 넣었다.

그리고 이명수 검사의 시선이 서진과 이소희에게 옮겨졌다.

“너희 둘, 잊어.”

“네.”

“이건 부장 검사님과 우리만 아는 거야.”

알고 있다.

막 시작하는 신임이 선배의 목소리를 녹취하고 터뜨렸다.

좋게 볼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서진의 알맹이는 이 바닥에서 한참을 굴러먹은 서준경 검사다.

그에게 5년 차 검사 하나 자빠뜨린 것은 자랑할 일이 아니었다.

단지 수사를 하는데 자꾸 훼방을 놓아서 치워버린 거다.

김관용 부장 검사가 손뼉을 짝 쳤다.

이제 모두 잊으라는 뜻이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고 김관용 부장 검사가 잔을 들며 입을 열었다.

“마시자. 먹고 잊자.”

네 사람의 잔이 부딪쳤다.

독한 소주가 목을 타고 넘어간다.

슬쩍 이소희를 봤는데, 참 주당이다.

지금도 넙죽넙죽 마시고 있다.

술을 마신 후 김관용 부장 검사가 닭다리를 집게로 집어 서진과 이소희의 앞 접시에 내려뒀다.

“먹어.”

그 모습에 이명수 검사가 웃는다.

“너희 둘, 영광으로 알아야 해. 부장 검사님이 닭다리는 지청장님께도 안 뺏기는 거야.”

“정말요?”

이소희가 물었고 김관용 부장 검사가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라이터 가지고 나와.”

테이블 위에 소주병이 가득 쌓여 있었다.

취기가 조금 올랐을 때 김관용 부장 검사가 서진을 향해 눈짓했다.

“담배 한 대 피자.”

서진이 라이터를 들고 김관용 부장 검사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밖은 추웠다.

3월이 지나가는데 밤에는 쌀쌀한 바람이 불어온다.

김관용 부장 검사가 담배를 물며 입을 열었다.

“김 검사야.”

“네.”

“미안하다. 사건 접자. 지동민 통해서 정보가 이미 샜다며? 공사판 먼지 이미 다 빠졌어. 해봤자...”

김관용 부장 검사의 목소리에 미안함이 가득했다.

신임 검사 둘이 의욕적으로 달라붙은 사건을 엎어야 하는 게 정말 미안해서다.

그런데.

“할 수 있습니다.”

단호한 목소리에 김관용 부장 검사의 시선이 서진에게 틀어졌다.

“끝까지 해보겠습니다. 아니, 하게 해주십시오. 녹음을 통해 들었던 박상영의 그 건방진 목소리를 비명으로 바꿔주고 싶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돌한 목소리다.

하지만 그 말에 믿음이 간다.

김관용 부장 검사가 담배 연기를 내뱉더니 끌끌끌 웃었다.

“해보겠다고?”

“네.”

“그래, 나도 기억난다.”

녹취되었던 박상영의 목소리, 지동민 검사를 향해 내뱉은 말이지만 동남 지청 전체를 업신여기고 있었다.

그 목소리를 떠올리며 김관용 부장 검사의 눈이 시퍼렇게 물들었다.

그리고 그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 해봐. 그런데, 이왕 할 거면 죽여.”

***

다음 날이었다.

동남군 시장에 있는 3층 건물,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계단을 서진이 오르고 있었다.

도착한 곳은 3층 ‘국회의원 엄일섭’ 이라 적힌 간판이 보였다.

서진이 휴대폰을 귀에 댔다.

“재정 건설 김준만 대표의 아들 김서진이라고 합니다. 이번 동남군 해양 공원 공사로 인해 드릴 말씀이 있어 전화 드렸습니다. 찾아뵙고 싶은데, 괜찮습니까?”

지동민 검사 때문에 검찰이 해양 공원 공사를 뒤적이고 있다는 것은 이미 소문이 쫙 깔렸다.

그런데, 재정 건설 대표의 아들이 찾아왔다.

엄일섭 의원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흘렀다.

-아, 그래. 언제가 괜찮나요?

“지금요.”

서진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로비에 앉아 있던 비서가 깜짝 놀란다.

“누, 누구세요?”

“약속되어 있습니다.”

“네?”

서진은 거침없이 엄일섭 의원의 방으로 향했다.

비서가 서진을 앞서 다급히 움직이더니 문을 열고 입을 열었다.

“의, 의원님. 손님이 찾아왔는데요.”

그 말과 동시에 비서의 뒤에서 서진이 나타났다.

턱살이 처진 엄일섭 의원이 당황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일 때, 서진이 허리를 굽혔다.

“동남 지청 김서진 검사입니다.”

“거, 검사? 방금 재정 건설의 아들이라고...”

“검사라고 하면 안 만나 주실 것 같아서요.”

서진이 빙긋이 미소를 그렸다.

엄일섭 의원, 서진이 권력을 손에 쥘 첫 번째 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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