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8)>
***
“그러니까, 위준상이 용돈 기입장을 적고 있었다는 거지?”
“네.”
서진은 엄일섭 의원에게 위준상 의원의 하드디스크에서 본 것을 전했다.
날짜와 액수 그리고 해당 은행까지.
모든 말을 들은 엄일섭 의원은 상당히 불쾌한 표정으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 입술이 분노로 꿈틀거렸다.
“새끼가...”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기초 의원에게 뇌물을 받은 사실이 터지면 공천은 물 건너가는 거다.
아니, 공천을 받았다 해도 문제다.
상대 당에서 물고 뜯고 난리가 날 거다.
즉, 모든 게 무너진다.
엄일섭 의원의 분기 가득한 눈동자가 천천히 서진에게 향했다.
“또 누가 알지?”
“없습니다.”
“없어?”
“있었다면 검찰에서 연락을 드렸겠죠. 직접 오지 않고.”
엄일섭 의원이 껄껄 웃더니 담뱃재를 툭툭 털며 입을 열었다.
“자네, 머리가 좋아. 그래, 원하는 게 뭔가? 동남군에 있는 검사들 다른 곳으로 옮기고 싶어 하던데, 자네도 그걸 원하는 가? 그런 것이라면 내가...”
“서울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래, 보내 준다고.”
“아뇨. 보내드리겠습니다.”
엄일섭 의원의 행동이 멈칫거렸다.
이제야 그 말을 이해했다.
“...자네가 나를?”
“네.”
엄일섭 의원이 픽 웃었다.
“장난은 그만 치고 원하는 것이나 말해봐.”
“계속 동남군에 계실 겁니까?”
“이봐.”
“보내드리겠습니다.”
엄일섭 의원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꼬투리 하나 잡고 까부는 것은 귀엽게 봐줬다.
그런데, 도를 넘었다.
당돌하다 못해 건방지다.
“자네 지금 선을 넘고 있어.”
목소리의 톤은 낮았지만 그 분위기가 살벌했다.
서진은 지금 엄일섭 의원의 역린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라고 어깨에 힘을 주고 있지만 비주류, 언제 갈려 나갈지 모를 4년 계약직.
그런데 어린놈이 나타나 서울을 들먹이고 있으니 놀리는 것으로 들렸다.
그래서 조금만 더 까불면 찢어 죽이겠다는 눈빛으로 노려보며 씹듯이 말했다.
“그만 까불어.”
하지만 서진은 처음과 같았다.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중앙으로 가십시오.”
동시에 엄일섭 의원의 목소리가 벼락같이 터졌다.
“건방지게!”
“서울 송파 정 지역구 국회의원 조선봉. 4선 의원으로 그 지역의 터줏대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천재라는 것 알고 계셨나요?”
“...뭐? 소, 송파 정? 조선봉?”
“그 아들은 만들어진 천재, 아버지의 과한 욕심이 만들어낸 괴물입니다. 그 괴물을 잡으면 그 지역은 의원님 것이 될 겁니다.”
엄일섭 의원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고 서진이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지금껏 서진을 노려보던 엄일섭 의원의 눈동자가 서서히 기울어지더니 서류로 향했다.
“이게 뭐지?”
서진이 서준경 검사일 때, 수사 대상은 언제나 권력자였다.
그리고 지금 이 서류는 당시 조사했던 것 중 하나.
보고 있으니 씁쓸한 옛 기억이 떠올랐다.
의욕만 넘쳤던 그때, 법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그 날, 대한민국 헌법 제 11조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하지만 지금 서진이 느끼는 것은 동물 농장이다.
-어떤 사람은 법 위에 존재한다.
일개 검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없었고 결국 자살로 위장되어 살해까지 당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를 거다.
서진은 서준경의 정의로운 행동이 통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제 다른 방식으로 행동할 생각이다.
그 첫 번째가 엄일섭 의원을 통해 조선봉의 아가리에 포탄을 집어 던지는 거다.
“읽어 보세요.”
서진의 건조한 목소리에 엄일섭 의원이 느릿한 동작으로 서류를 넘겼다.
그리고 서진이 말을 이었다.
“고등학생 때 생명공학에 관련된 논문을 써서 입학사정관제로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수학 성적은 개판이었죠. 군대는 디스크로 면제를 받았어요. 그런데 SNS를 보면 코어 운동이 취미입니다. 마지막으로 대학교 4학년 때 TL 그룹 신약 사업부에 공채 합격했죠. 그런데 대학 학점은 2.8, 영어 인증 시험은 본 적 없고 컴퓨터 자격증 몇 개가 전부네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도 들어가기 힘든 곳에 학점 2.8 학부생이라... 천재죠.”
엄일섭 의원이 고개를 들어 서진을 바라봤다.
그의 눈동자가 떨리고 있다.
“이걸 어떻게 조사했지?”
“중요한 것은 어떻게 조사했는지가 아닙니다. 그 모든 것에 조선봉 의원의 입김이 들어가 있다는 게 중요한 거죠. 정황도 있고 증거도 있습니다.”
엄일섭 의원이 마른 입술을 핥았고 서진이 그를 향해 몸을 기울이며 계속 말했다.
“이게 터지면 조선봉 의원은 총선에 불출마할 겁니다. 그럼, 대타로 나올 사람은 이상주. 조선봉 의원의 보좌관으로 명예욕이 높은 사람이죠. 그런데 별로 인지도가 없습니다. 그저 당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인물입니다.”
엄일섭 의원의 입에서 고민 가득한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가 내뱉어졌다.
“내가 직접 터뜨린다?”
“그래야 의원님의 이름이 알려지겠죠.”
“그리고 내가 그 지역구에 자리한다?”
“아, 당적은 옮겨야 합니다. 의리가 있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면 한민당으로 가세요. 송파 정에서 지금 당은 절대 안 됩니다.”
엄일섭 의원은 대답 없이 눈동자를 굴렸다.
“한민당이라...”
한민당으로 옮기고 송파 정에 공천받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다.
그곳은 조선봉 의원의 앞마당, 대한당이나 한민당이나 험지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든 그곳에 출마한다 하면 경쟁 없이 공천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조선봉 의원을 박살 낼 수는 있어도...
“거기는 민국당의 텃밭이기도 해. 강아지가 나와도 민국당 점퍼만 입으면 당선이라는 말이 있어.”
“조선봉 의원의 대타로 나올 사람 이상주, 그 사람 역시 깨끗한 사람은 아닙니다.”
“설마, 이상주에 대한 것도 조사한 게 있나?”
“하나씩 던져드리겠습니다.”
서진이 빙긋이 미소 지었고 엄일섭 의원은 끌끌끌 웃기 시작했다.
“재밌어, 정말 재밌어. 나도 모르게 자네의 말에 혹했거든. 하지만... 생각해 보지.”
고민은 길지 않을 거다.
엄일섭 의원의 머릿속에는 이미 가능성이라는 마약이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비주류로 살다가 죽느냐, 도전하느냐.
-험지에서 승리하면 단숨에 주류.
-그 가능성이 보이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서진은 더 몰아붙이지 않고 여기서 멈췄다.
지금은 스스로 결정한 것처럼 만들어줘야 한다.
엄일섭 의원이 담배를 비며 끄며 입을 열었다.
“그래, 자네가 원하는 게 뭐지?”
“아직은 없습니다.”
하지만 서진이 원하는 것은 이미 시작됐다.
어떤 힘도 없는 동남군의 국회의원 엄일섭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척,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그의 몸에 줄을 감는 중이었다.
엄일섭 의원은 서서히 길들여질 테고 서진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거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서진이 일어서서 허리를 굽혔다.
밖으로 나가려 하는데 엄일섭 의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위준상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자네에게 선물로 주고 싶은데.”
***
“누구?”
상견례 장소로 곧잘 이용되는 횟집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 박상영 부장과 위준상 의원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위준상 의원이 박상영의 잔에 술을 채우며 다시 물었다.
“누구라고? 누가 잡혔다고?”
“하... 지동민이라고 등신 같은 놈 있습니다. 내 변호사가 되겠다느니 어쨌다느니 까불다가 꼬리가 밟혔나 봐요.”
위준상 의원이 눈알을 굴리며 술잔을 입에 댔다.
“그럼, 뭐 잘 못 되는 거 아냐? 정말 다 정리한 거 맞지?”
“장사 하루 이틀 하십니까? 공사판 먼지는 물 뿌리면 다 사라져요. 그리고 의원님이 뭘 걱정합니까? 재수 없으면 나 혼자 걸리는 거지.”
위준상 의원이 낄낄 웃었고 박상영이 말을 이었다.
“의원님 주머니에 들어간 돈은 다 세탁됐잖아요. 그런데 뭘 그렇게 걱정하세요? 누가 보면 겁이 많은 분인 줄 알겠네.”
“말했잖아. 며칠 전에 검사가 찾아왔는데, 하... 그놈 눈빛이 찝찝하더라고.”
“에헤이, 자라보고 놀란 가슴 아가씨 가슴 보면서 달래야죠. 이거 먹고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아냐, 아냐. 지금 상황에는 몸 사려야지.”
“아이고 또 이러신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다 정리했어요. 의원님만 입을 꾹 다물면 검찰이 아니라 검찰 할애비가 와도 어쩔 수 없어요. 우리나라는 그 뭐라더라? 증거가 있어야 하거든요.”
“그래?”
“그러니까 이거 마시고 가죠.”
위준상 의원과 박상영이 음흉하게 웃으며 술잔을 툭 부딪쳤다.
그렇게 한잔을 마시는데, 위준상 의원의 휴대폰이 드르륵 진동했다.
위준상 의원이 물끄러미 휴대폰을 보다가 다급히 귀에 댔다.
“네, 의원님!”
엄일섭 의원에게 걸려온 전화다.
-어디야?
“지금 바닷가에서 술 한 잔 하고 있습니다. 그 예전에 말씀드렸던 박상영 부장이라고 건설...”
-준상아.
엄일섭 의원의 목소리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몇 초 걸리지 않았다.
위준상 의원의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렸다.
“네, 말씀하십시오.”
-다른 사람은 됐고 지금 동남군 사무실에 있으니까 이쪽으로 와. 얼굴이나 보게.
“아, 네.”
위준상 의원이 통화를 종료하며 박상영에게 고개를 틀었다.
“좋은 곳은 나중에 가야겠는데?”
“엄일섭 의원님 아니세요? 소개해준다면서요?”
“오늘은 기분이 안 좋으신 것 같아. 목소리가 싸해. 왜 그러시지?”
*
“가까이 와.”
엄일섭 의원 사무실이었다.
막 들어온 위준상 의원이 엉거주춤 서 있자 엄일섭 의원이 손을 흔들었다.
“제가 술을 좀 마셔서.”
“됐어.”
위준상 의원이 조심스레 책상 앞에 섰다.
그러자 엄일섭 의원이 담배를 물며 입을 열었다.
“준상아, 너 일기 쓰냐?”
“네? 그게 무슨...”
“네 일기장에 내 이름이 적혀 있다는 소문이 검찰에 쫙 깔렸던데?”
위준상 의원이 아찔함을 느끼며 눈을 콱 감았다.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한 거다.
“의, 의원님...”
“너로 끝내자.”
엄일섭 의원의 목소리는 사무적이었다.
위준상 의원이 다급히 무릎을 꿇으며 비명처럼 외쳤다.
“살려 주십시오!”
“네가 그 박상영이란 놈한테 뇌물 먹었다고 가서 자백해.”
“의원님!”
위준상 의원의 목소리는 간절했다.
하지만 엄일섭 의원은 무심하다.
“준상아...”
“의원님! 제발, 제발!”
엄일섭 의원이 책상 위에 있던 서류 뭉치 하나를 위준상 의원의 앞으로 던졌다.
“읽어봐.”
위준상 의원이 허겁지겁 서류를 펼쳤다.
위준상 의원의 비리가 낱낱이 적혀 있다.
지역 창업 지원 자금, 어촌 지원 자금을 자식과 처남 이름으로 빼돌렸다.
그것도 모자라 내부 정보를 이용해 투기까지 했다.
얼마나 처먹었으면 2년 동안 자산이 7억이나 올랐다.
위준상 의원의 눈이 부릅 떠졌다.
“이, 이걸 어떻게...”
“정치를 하니까 믿을 놈 하나 없더라. 그래서 나도 네가 뭔 짓을 하고 다니는지 지켜봤어. 그거 다 터뜨릴까? 아니면 박상영이란 놈 멱살 잡고 검찰에 갈래?”
“한번만 봐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잘 못 했습니다! 다시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제발! 제발!”
위준상 의원이 바닥을 박박 기며 엄일섭 의원을 향해 걸어갔다.
그때.
“준상아... 딸 시집가는 것은 봐야지?”
위준상 의원의 행동이 뚝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창백해진 얼굴로 엄일섭 의원을 바라봤다.
“딸이요?”
엄일섭 의원이 천천히 다가와 무릎을 꿇고 위준상 의원과 시선을 맞췄다.
이어서 위준상 의원의 어깨를 툭툭 치며 느릿하니 입을 열었다.
“...아니면 한 10년 썩을래?”
“......!”
“준상아, 키우던 개도 주인은 안 물어. 그런데 내 이름을 기록하고 있어? 마음 같아서는 갈아 버리고 싶은데 꾹 참는 거야. 그러니까 자백하고 들어가. 그걸로 끝내줄 테니까.”
위준상 의원, 왕처럼 살았다.
여자들을 희롱하고 공무원을 괴롭혔으며 뇌물을 받고 갑질을 일삼았다.
하지만 모든 게 끝났다.
위준상 의원이 고개를 푹 숙였다.
“자, 자백하겠습니다.”
“1층 주차장에 검찰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위준상 의원이 비틀비틀 엄일섭 의원의 사무실을 벗어났다.
*
“타세요.”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서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