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6)>
***
“고쳤어?”
다음날 아침.
복도를 걷는 서진의 옆으로 이소희가 섰다.
하드디스크를 고쳤냐는 말에 서진은 고개를 저었다.
“안 되더라. 그래서 본청으로 보냈어.”
“아이고... 쉬운 일이 없네.”
이소희는 작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조금은 미안했다.
위준상 의원을 지옥으로 보낼 수 있는 결정적 증거를 서진이 먹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옥행 티켓은 그것만 있는 게 아니다.
위준상 의원은 업보가 많고 그 죄는 시시각각 그를 향해 다가가는 중이다.
그때였다.
“쉿.”
서진의 낮은 목소리에 이소희가 눈을 깜빡였다.
“왜?”
“저기.”
복도의 끝에서 지동민 검사가 다가오고 있었다.
지동민 검사가 두 사람 앞에 멈춰서더니 입을 열었다.
“연락하려고 했는데, 잘 됐다. 그동안 수사 많이 했어? 오늘 밤 어때? 부장 검사님 모셔서 브리핑 한번 했으면 하는데.”
지동민 검사는 웃고 있다.
하지만 저 표정, 서진은 지동민 검사의 저 눈빛을 잘 알고 있었다.
서준경이었을 때, 그는 고아였고 방통대 출신이었다.
모두가 무시했다.
넌 할 수 없다고.
그리고 지금 지동민 검사의 눈빛 역시 마찬가지로 이야기하고 있다.
-신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지동민 검사는 그 눈빛을 지우지 않은 채 서진과 이소희의 옆을 스치며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수사했던 것도 공유할 테니까 다 가지고 와.”
*
“공유? 공유를 하자고? 그럼, 박상영한테 전화해서 쪼르르 전달하겠지?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어디까지 팠는지?”
이소희가 들고 있던 포크가 치즈 케이크 조각에 푹 박혔다.
그리고 분기 가득한 표정으로 케이크를 가르며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하지? 지동민한테 우리가 수사한 것 미주알고주알 밝혀야 해?”
“케이크부터 먹어.”
“어.”
이소희는 냉큼 케이크를 입에 가져갔다.
오물오물 케이크를 먹으면서도 미간이 찌푸려져 있다.
그녀가 중얼거렸다.
“마음에 안 들어.”
“케이크가?”
“아니, 이건 이 와중에도 맛있지. 케이크 말고 지동민. 재수 없어. 이중인격자야. 쓰레...”
가만히 두면 더 한 욕이 나올 것 같아 손을 저었다.
이소희도 이곳이 지청 근처라는 것을 깨닫고 입을 닫았다.
다행히 주변에 사람은 없었고 그녀의 목소리도 크지 않았다.
서진이 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성격 잘 몰랐을 때는 조용조용한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까 욕쟁이 할머니네?”
“욕쟁이?”
“쏘리.”
“뭐, 괜찮아. 마찬가지니까. 나도 네 성격 몰랐을 때는 양아치인 줄 알았어. 저런 양아치가 검사를 해도 되나 생각할 정도로.”
“양아치?”
“쏘리.”
과거의 서진이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모른다.
하지만 주변의 평가를 들어보고 읽고 있던 책과 신문을 보면 대략적으로 그 성격을 예상할 수 있었다.
-신중한 놈.
그런데, 양아치라니...
이해할 수 없는 평가였다.
“혹시 양아치라는 이유가 신종승이랑 어울려서?”
“무슨 생각하나 했더니, 그거 생각했어? 기분 나빴다면 미안. 진짜로.”
“아냐. 괜찮아. 그런데, 내가 생각한 이유가 맞아? 양아치라 평가된 이유가 신종승?”
“뭐, 그렇지. 왜 어울렸대?”
그건 서진도 궁금했다.
왜 신종승 그리고 김윤환과 어울렸을까, 성향이 맞지도 않은데...
그 이유가 있을 것 같지만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뭐, 어쨌든. 오늘 밤 브리핑은 어떻게 하지?”
어느새 케이크를 다 먹은 이소희가 티슈로 입술을 닦으며 물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빠졌던 서진이 입을 열었다.
“어차피 위준상의 입을 통해서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박상영이나 지동민의 귀에 들어갔을 거야.”
“그렇겠지?”
“그러니까 오늘은 조용히 지동민의 말을 들어보자. 뭔 이야기를 하는지.”
“그게 끝?”
“아마.”
***
“박상영 부장이 위준상 의원에게 돈을 건넨 정황은 포착했습니다. 그런데, 이걸 뇌물로 보기 어렵습니다. 정식으로 신고했고...”
그날 밤, 김관용 부장 검사의 사무실이었다.
지동민 검사의 발언에 김관용 부장 검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정식으로 신고를 했다고?”
“네, 정당한 후원입니다.”
그때, 이소희가 손을 들었다.
“지동민 검사님?”
이소희는 서진의 말을 듣고 조용히 있으려 했다.
하지만 지동민 검사의 말과 행동을 듣고 있으니 가만있을 수 없었다.
지동민 검사가 박상영 부장의 변호사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피할 수 있고 저렇게 하면 무혐의고.
만약 저 말에 김관용 부장 검사가 설득된다면 박상영이 흔적을 지우고 도망칠 때까지 아무것도 못할 수도 있다.
이소희는 그것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소희가 서류를 넘기며 입을 열었다.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50만 원대 백화점 상품권을 받은 공무원이 다수 있습니다. 고향 친구한테 받았다고 말하는데, 따져 보면 모두 제형 건설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김영란 법에 따...”
지동민 검사가 이소희의 말을 끊으며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뱉었다.
그리고 비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소희 검사, 김영란 법이 뭐지?”
-김영란 법 : 법안 대상자들이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1회 100만 원, 연간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수수하면 형사처벌을 받는다.
“바꿔 생각해봐. 직무 또는 대가성과 관련이 없다면 50만 원짜리 상품권은 여섯 번까지 받을 수 있어. 내가 이런 것까지 알려줘야 해?”
“그래도...”
이번에도 지동민 검사는 이소희의 말을 끊어버렸다.
“상품권을 받은 공무원을 다 조사했어?”
“......”
“난 했어. 그중에는 제형 건설에 다니는 친구에게 20% 할인받아 구매한 사람도 있지. 이것도 김영란 법인가? 아니면 알뜰한 것인가? 이것도 죄면 공무원이 상품권 할인 받아 사는 것은 모두 죄겠네?”
이소희는 입을 다물었고 지동민 검사의 시선은 김관용 부장 검사를 향해 틀어졌다.
“부장 검사님, 상품권을 받은 공무원의 신상은 이미 파악했습니다. 하지만 사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 배치된 사람들입니다.”
“이것도 상관없고 저것도 상관없다?”
“네, 이번 공사로 제형 건설의 직원 다수가 동남군에 자리 잡았습니다. 제형 건설에서 이 직원들을 위로하기 위해 상품권을 뿌렸고 그게 친구들에게 넘어간 모양입니다. 그 친구들이 공무원이었던 것이고요.”
“복잡하게 돌아가네.”
김관용 부장 검사가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고 지동민 검사의 눈동자는 서진과 이소희에게 향했다.
‘새끼들...’
두 사람은 이제 수습 꼬리표를 뜯어 낸 신임 검사다.
아직은 어리바리하고 멍청하기 때문에 아무리 똑똑하고 잘났어도 한계가 존재한다.
조금만 다그치면 입 다물고 고개 숙일 놈들, 경험을 쌓으려면 몇 년은 더 있어야 할 거다.
그렇게 생각했다.
“저도 조사한 게 있는데요.”
그런데, 지금껏 조용히, 볼펜만 돌리고 있던 서진이 갑자기 튀어 나왔다.
지동민 검사의 눈이 찌푸려졌다.
‘이 새끼는 뭐야?’
지동민 검사는 서진을 그저 운 좋은 놈으로 생각했고 럭키 가이라 부른 것은 진심이었다.
몇 달 전만 해도 서진은 신종승과 어울려 다녔고 부모 잘 만나 검사가 된 금수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매 살인 사건과 유아성 살인 사건은 실력이 아니라 운이 맞아 해결했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볼펜 돌리던 것을 멈춘 서진의 눈빛이 싹 바뀌었다.
신임 검사의 어리숙한 표정이 아니라 이 바닥에 찌들어 있는 사람처럼 싸늘한 눈빛이다.
그리고 그 눈으로 지동민 검사를 쏘아보며 느릿하니 입을 열었다.
“상품권을 받은 공무원, 지금은 관련 없는 곳에 있지만 그 전에는 각각 도시개발, 도시재생, 생활환경, 관광개발 등에 근무했었습니다. 일반 행정직 직렬로 들어와서 이곳저곳 옮겨 다닌 거죠.”
“어쨌든 지금 업무 연관성은 없잖아?”
“한 마디는 할 수 있겠죠.”
“한 마디?”
“눈 한번만 감아줘. 이 정도는 괜찮잖아? 유도리 있게 하자. 이런 한 마디요. 이건 대가성에 포함될까요, 안 될까요? 그런데, 조사도 안 하고 대가성이니 관련성이니 따지는 것은 웃기지 않나요?”
지동민 검사의 얼굴이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이 새끼가...’
사나운 눈으로 서진을 노려보며 주먹까지 말아 쥐고 있다.
하지만 서진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했다.
“그리고... 방금 후원금을 말씀하셨는데요? 최근 위준상 의원의 이름으로 국회의원 6명에게 500만원씩 후원된 일이 있습니다. 총 3천만 원의 후원금. 이 돈이 어디서 났는지, 그 출처를 찾아보면 답이 나올 것 같지 않나요?”
지동민 검사가 입술을 물어뜯었다.
“후원금의 출처를 캐자고? 그것은 대한당을 상대로 싸우자고 선언하는 거야. 그럼, 시작도 못하고 사건 종료될 거야. 그러니까 애초에 잡은 타깃에 집중해.”
서진이 웃으며 말했다.
“당이 성역도 아니고 조사하면 안 되는 겁니까? 의심될 일이 있으면 수사하고 잘못한 게 있으면 기소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의심될 일은 없어! 이 모든 것은 강원 도시 공사가 사업을 포기하며 벌어진 일이야!”
지동민 검사가 서류를 쾅 내려뒀다.
많은 글자를 요약하면 두 가지로 압축된다.
-강원 도시 공사는 부채 축소를 우선으로 손실이 불가피한 사업장은 정리 수순을 밟았다.
-제형 건설은 손실보다 브랜드의 가치를 생각하며 과감히 투자를 벌였다.
“이게 팩트고 끝이야. 다른 것은 없어!”
“종합적으로 해프닝이었다는 겁니까?”
“그래.”
서진이 고개를 저었다.
“지동민 검사님, 아버지가 건설사를 운영하셔서 조금 알아봤는데, 해양 공원 사업은 건설사에게 부담되는 일이 전혀 없다고 들었습니다. 건설만 할 뿐, 운영은 군에서 하니까요. 죄송하지만 돈이라도 받으셨습니까?”
“야, 김서진!”
지동민 검사가 손바닥으로 쾅! 쾅! 쾅! 테이블 내리쳤다.
그리고 벼락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돈을 받아? 할 소리가 있고 못 할 소리가 있어!”
“그럼, 단지 탈출하고 싶었던 겁니까?”
“...뭐?”
“그래서 사건을 흐지부지 만들고 있던 겁니까? 단지, 탈출을 위해?”
“뭐라는 거야!”
거칠고 분노한 목소리, 하지만 그럴수록 서진의 표정은 냉랭했고 목소리는 차가웠다.
서진이 휴대폰을 꺼냈다.
“아시잖아요?”
“뭐?”
서진은 휴대폰에서 녹음 파일 하나를 찾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지동민 검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원 도시 공사가 갑자기 사업을 반납했어. 그리고 너희가 드라마틱하게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됐지. 어떻게 된 거야? 누구한테 뭘 먹였어?
지동민 검사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부릅뜬 눈으로 서진의 휴대폰만 보고 있다.
입술이 파들파들 떨리는 것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멈춰 있던 지동민 검사의 눈동자가 벌게지더니 서서히 김관용 부장 검사를 향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더듬거리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부, 부장 검사님...”
김관영 부장 검사가 무서운 눈으로 지동민 검사를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