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 김서진-21화 (21/250)

<친구. -(5)>

***

서진의 차를 타고 임정택 수사관에게 가는 길이었다.

이소희가 서진의 표정을 빤히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뭐가?”

“네 표정 이상해. 집에 가스 불 켜놓고 나온 얼굴이야. 뭐, 놓친 거 있는 것 같아? 찜찜해?”

서진의 표정이 좋지 않았나 보다.

이소희가 조용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나도 좀 그러네. 지금 지나치게 잘 풀리는 중이잖아? 그래서 내가 잘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워.”

그렇다.

모든 게 쉽게, 쉽게 풀리고 있다.

지동민 검사의 수사 방해도 없고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위준상 의원의 치부도 잡아냈다고 들었다.

분명 최고의 상황이다.

그런데, 이소희의 말처럼 찝찝하다.

흑백의 세상에서 봤던 것 때문이다.

바로 위준상 의원이 여성을 끌고 노래방에 간 장면.

그것은 분명 미래였다.

‘수사가 진행 중인데 여자를 끌고 노래방에 갔다고?’

그것도 갑질을 넘어선 권력형 성범죄를 저질렀다.

그것은 정말 미친 거다.

그래서 이상하다.

위준상 의원이 그 정도로 정신 빠진 사람은 아닌데...

‘뭐지?’

그럼, 답은 하나다.

위준상 의원은 곧 수사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다는 것.

그렇지 않고서는 그렇게 마음 놓고 활개를 칠 수 없다.

‘수사관이 찾은 증거가 별 게 아닌가? 아니면 지동민 검사가 뒤늦게 움직이며 훼방을 놓았나?’

앞으로의 미래,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수사가 망쳐질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 했다.

“저기 차 있다.”

이소희의 목소리를 들으며 서진은 핸들을 틀었다.

양 옆으로 논밭이 있는 좁은 길에 차량 두 대가 비상등을 켠 채 정차되어 있었다.

*

“이 사람이 여기서 불을 지폈어요.”

임정택 수사관의 앞에는 안경을 쓴 남자가 있었다.

겁에 질린 모습으로 바들바들 떠는 남자를 보며 서진이 부드럽게 물었다.

“뭘 태우려고 했어요?”

남자의 손에는 PC 하드디스크가 들려 있었고 설명은 임정택 수사관이 했다.

“위준상이 허겁지겁 집에 들어간 후...”

잠시 후에 이 남자가 나타나 위준상 의원의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10분 후에 다시 나왔죠.”

그런데, 남자의 표정이 이상했다.

들어갈 때와 달리 몹시 겁을 먹은 눈빛으로 주변을 눈치를 살피며 차에 올랐다.

임정택 수사관은 남자의 행동이 수상해서 뒤를 쫓았다.

“그래서 이곳까지 오게 됐고 하드디스크를 태우려 한 거죠.”

“죄송합니다.”

남자의 입에서 한숨이 푹 흘렀다.

서진이 남자의 손에서 하드 디스크를 넘겨받은 후 물었다.

“이거 위준상 의원 겁니까?”

“...네.”

남자의 이름은 구정기.

위준상의 말 한 마디에 목이 왔다 갔다 하는 계약직 공무원.

그에게 위준상은 떠받들어야 하는 존재였다.

“집에 있다가 위준상 의원의 전화를 받았어요. 집에 있는 컴퓨터에서 하드디스크를 떼서 가져 오라고...”

“바꾼 겁니까?”

“네.”

구정기는 위준상 의원의 하드디스크와 자신의 것을 교환했다.

뻔한 증거 인멸의 수법이다.

서진이 하드디스크를 흔들며 물었다.

“위준상 의원이 태우라고 했어요?”

“아, 아뇨.”

“그럼?”

구정기는 주저하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검찰 수사가 있을지 모르니까 끝날 때까지 잘 숨겨놓으라고... 만약에 걸릴 것 같으면 바다에 던지거나 태우라고 했어요.”

“그런데, 아직 수사도 시작 안했는데 왜 태우려 한 거예요?”

구정기는 위준상 의원처럼 담이 크지 않다.

검찰 수사라는 말에 잔뜩 겁을 먹었다.

“제가 위준상 의원 집에 다녀간 게 엘리베이터 CCTV에 잡혔잖아요. 그래서 저도 곧 조사 받을까봐... 그 전에 없애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죄송합니다.”

그래서 구정기는 위준상 의원의 집에서 나온 후 뭔가에 ㅤㅉㅗㅈ기 듯 하드 디스크를 태우려 했다.

서진이 몸을 틀며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이 하드디스크, 당분간 위준상 의원에게는 모른 척해주세요.”

“그, 그럼 저는 괜찮은 건가요? 그럼, 끝까지 비밀로 할 게요. 제가 잘 가지고 있다고 말할게요. 제발...”

“그래야죠.”

서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구정기는 무릎을 잡고 허리를 굽히더니 긴장된 숨을 토해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모양이다.

서진의 옆으로 이소희가 다가왔다.

그녀가 서진의 손에 들린 하드디스크를 보며 입을 열었다.

“탔네?”

“어.”

“복구 할 수 있을까?”

“글쎄.”

하드 디스크의 상태는 꽤 안 좋았다.

불에 잠깐 들어갔다 나온 게 꽤 타격이 있어 보였다.

심하게 그을렸고 탄내까지 난다.

“어쩐지 지금껏 잘 풀렸어. 이런 난관도 있어야 수사하는 맛이 나는 건데. 그런데, 이정도면 본청으로 넘겨야 하는 것 아냐?”

지청에는 하드디스크를 고치고 그 내용을 확인할 센터가 없다.

본청에 맡겨야 한다.

서진의 시선이 그녀에게 틀어졌다.

“...본청?”

“어. 우리가 직접 할 수는 없잖아? 그런데, 본청도 가능할지 모르겠네. 이정도면...”

서진은 턱을 매만지며 눈을 가늘게 떴다.

머릿속에 의심 병, 불신 병이 도지고 있다.

흑백의 세상에서 위준상 의원이 낄낄거리며 웃고 다닌 이유, 바로 이 하드디스크가 본청으로 넘어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는 중이다.

뭐, 지금은 뭐든 조심해야 한다.

“내가 해볼 게.”

“어? 할 수 있어?”

“난 못 하는데,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서진은 휴대폰을 귀에 대며 이소희의 옆을 스쳤다.

“정우야, 힘 좀 빌리자.”

***

“박 순경이 오늘 딱 당직이시네요. 서진아, 이 분이 우리 서 최고 실력자야.”

동남 경찰서, 서진과 이정우의 앞에 박 순경이 눈을 비비며 앉아 있었다.

책상에 놓인 하드디스크를 보던 박 순경이 중얼거렸다.

“해봐야 알겠는데...”

“가능할까요?”

“외관 오염이 심해도 물리적 손상만 심하지 않으면 가능은 해요. 아직 확답은 할 수 없지만요.”

박 순경이 이정우를 힐끗 보더니 말을 이었다.

“2시간 정도 걸릴 거고요. 나중에 치킨 쏘세요.”

“치킨요? 지금 당장 시킬까요?”

“콜.”

“그럼, 바로 반반 주문 들어갑니다.”

*

서진과 이정우는 건물 밖에 나와 있었다.

서진이 담배를 피우는 이정우의 등을 툭 쳤다.

“고맙다.”

정우는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었다.

퇴근 후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보다가 서진의 전화를 받고 곧장 나온 거다.

“고맙기는.”

이정우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서울 언제 갈 거야?”

“글쎄, 왜?”

“너 떨어졌던데, 같이 한번 가자. 혹시 알아? 나랑 있으면 뭔가 떠오를지.”

서준경에서 서진이 되었을 때, 처음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다.

아파트 5층에서 떨어졌다고 하는데, 당연히 서진에게 그 기억은 없다.

이유도 원인도 모른다.

“5층에서 너 집어 던진 새끼, 난 그 새끼 꼭 잡아야겠다.”

“혼자 떨어진 거면?”

이정우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천천히 서진을 바라봤다.

그리고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넌 자살할 애가 아니었어.”

그 목소리에 친구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듬뿍 느껴졌다.

괜히 미안해질 정도로...

그런데, 문득 서진의 머릿속을 스치는 게 있었다.

“아, 잠깐만...”

“왜? 뭔가 떠오르는 것 같아?”

이정우가 마른 입술을 핥으며 최대한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천천히, 천천히 생각해. 급할 것 없어. 떠오르는 장면, 아무거나 이야기해봐.”

“...썩미.”

“어? 썩 뭐?”

“채널명 이정우. 썩미. 벌써 30만 뷰더라?”

이정우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더니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미안. 난 네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어? 잠깐만 전화 왔다. 박 순경님? 백업 했다고요?”

이정우가 씩 웃으며 서진을 향해 말했다.

“이걸로 퉁 치자.”

“야...”

“미안. 흐흐.”

*

“삭제 됐던 것도 전부 복원했어요. 그리고 내용은 일부러 안 봤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박 순경이 하드디스크와 함께 백업 파일이 든 USB를 서진에게 건넸다.

삭제 된 것도 복원했다니, 정말 센스 넘치는 사람이다.

서진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

집으로 들어온 서진은 노트북을 열고 USB를 꽂았다.

이 파일, 저 파일 확인하던 서진이 액셀 파일 하나를 열었다.

이름이 ‘10월 6일’ 이런 식의 날짜로 된 파일이다.

화면에 엑셀이 채워졌고 서진은 자신도 모르게 끌끌끌 웃었다.

‘이거였어?’

수사가 멈추고 위준상 의원이 자유롭게 돌아다닌 이유.

그 이유가 노트북 화면 속에 있었다.

-이세문 강원 도지사.

-엄일섭 동남군 국회의원.

이세문 도지사는 강원도의 맹주라 불리는 사람이다.

그리고 엄일섭은 판사 출신 국회의원.

위준상 의원은 그 둘에게 뇌물을 바치고 있었다.

계좌부터 날짜 그리고 금액까지 적나라하게 적혀있다.

‘이 하드디스크가 본청으로 갔다면...’

이 내용물은 곧장 지검장실로 향했을 거다.

그리고 강원 지검장은 내용을 보며 고민했을 게 분명하다.

사건을 진행할지, 말지.

‘강원 지검장 조용준.’

그는 은퇴를 준비하며 정계를 기웃거리는 늙은 여우다.

조용준 지검장의 눈에 이 하드디스크는 공천으로 가는 패스포트로 보였을 거다.

그리고 뻔하다.

서진의 귓가에 늙은 여우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동남 지청에 연락해. 하드디스크가 심하게 망가져서 복원할 수 없다고. 그리고 동남 지청장 연결해봐.

그렇게 사건은 묻히고 서진은 닭 쫓던 개가 되었을 거다.

그런데, 그 더러운 뒷거래를 떠올리던 서진의 입에 조용한 미소가 걸렸다.

‘그랬다는 거지?’

서진은 잠시 서준경이었던 삶을 떠올렸다.

정의를 외치며 올곧게 살았지만 성범죄자라는 모함을 받았고 쓰레기라고 불렸으며 자살로 위장되어 살해당했다.

정말 최악이었다.

그래서 이번 삶에는 정의와 법, 인간미 같은 얄팍한 소리는 집어 던지고 돈과 권력, 모든 것을 다 가질 생각이다.

그래서 서진은 결심했다.

노트북에서 USB를 뽑아 강하게 쥐었다.

‘이번엔 내가 갖는다.’

이 USB의 내용만으로 이세문 강원 도지사와 엄일섭 의원을 잡아넣을 수는 없다.

그들은 괴물이고 이 세상의 강자다.

USB를 공개하는 순간 그들은 서진은 물론이고 동남 지청을 짓밟을 거다.

이제는 정의를 외치며 개죽음 당할 생각은 없다.

‘이 사건은 위준상 의원으로 마무리 짓는다. 그리고 이 USB는 내가 이용한다.’

강원 지검의 지검장은 이 내용을 공천의 패스포트로 이용했다.

하지만 서진은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관문의 첫 번째 열쇠로 사용할 생각이다.

서진이 서랍 안으로 툭 USB를 던져뒀다.

그리고 천천히 서랍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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