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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3. 나와 혼인해 주겠습니까? (44/47)

외전 3. 나와 혼인해 주겠습니까?

「……무엇이 필요한가.」

소녀는 고개를 들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아무도 없는 방이었다.

‘이상하네.’

고개를 갸웃하는 소녀는 사랑스러운 얼굴이었다. 붉은 머리칼을 가진 그녀는 올해로 막 열 살이 된 레베카 아일린 아벤타였다.

‘분명 목소리가 들렸는데.’

언제부터인가 레베카의 귀로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목소리는 시시때때로 나타났다. 그녀는 제 머리카락을 빗어 내리며 생각했다.

‘대체 뭐가 필요하냐고 묻는 거지?’

낯선 목소리는 어린 레베카의 호기심을 부추겼다. 어디서 나온 걸까? 때때로 귀 기울여 들어 보려 했지만 집중할수록 흐릿해지고 멀어졌다. 마치 아주 먼 곳에서 외치는 것처럼 말이다.

달칵.

“피피오, 준비되셨습니까?”

시종이 고개를 조아렸다. 레베카는 아벤타 공작의 하나밖에 없는 귀한 외동딸이었다.

“기다려. 나갈 테니까.”

레베카는 중정을 바라봤다. 흰 대리석은 빛을 머금은 유백색이었는데, 벽에는 검의 신이 아꼈다는 신성한 검 ‘엔시스’가 새겨져 있었다. 이 저택은 신전과 같은 구조였다.

‘아버지가 대신관이니까.’

레베카는 중정 한가운데 서 있는 동상을 보았다. 검을 들고 갑주를 찬 여성은 검의 신이었다.

챙-

아득히 먼 곳에서 새된 날붙이 소리가 들려왔다. 검의 신전이기에 들려오는 소리. 검 소리다. 레베카의 눈이 천천히 모로 기울었다. 그녀에겐 너무나 익숙한 소리였다.

그런데 왜 녹슨 쇠 냄새가 나는 걸까? 착각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째서 이 냄새가 나는 걸까? 그녀의 방에는 검의 형태를 한 것은 들여올 수 없었고 쇠의 냄새가 날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레베카가 검에 관심 갖는 것을 무척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검은 현숙한 숙녀에겐 어울리지 않는 거란다.>

레베카는 곧 흥미를 잃고 일어났다. 사뿐사뿐 걸어간 그녀가 우아하게 천을 들어 올렸다. 어린 나이였으나 타고난 고귀함이 얼굴에서부터 흘러넘쳤다.

“가자.”

“예.”

어찌 됐든 검이란 그녀와 상관없는 먼 얘기였다.

* * *

아벤타 공작가의 가주는 대대로 검의 대신관직을 겸했다. 아벤타의 이름을 단 사람은 대부분 신실한 신자였다. 그러나 사실 이들은 칼타니아스 땅에 살았던 이들이 아니다.

<항복한 이민족 왕들은 들으라!>

오래전 초대 황제 칼타니아스가 서쪽 대륙을 정벌할 때, 초기에 정복한 세 나라의 왕에게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 봉작을 내렸다. 그 이름을 받은 이는 디볼로, 아벤타, 솔레트디언으로 이들은 영토를 잃었으나 명예로운 공작 위를 받게 되었다.

이후 아벤타는 검의 신의 선택을, 디볼로는 고대 짐승의 선택을, 솔레트디언은 바람의 신의 선택을 받아 각기 신관이 되었다. 이처럼 이민족 출신에도 불구하고 신관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다졌다.

「검의 은혜가 대대로 전승되리. 진정한 검은 기술에 있지 않다.」

검의 신이 내린 교리는 매우 단순했다.

「마음에 검을 품은 자, 권능을 받으리라.」

검의 신이 내린 힘은 ‘재능’이었다. 검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검을 전혀 모르던 사람이라도 상관없다. 신의 선택을 받는 순간 이치를 깨닫게 됐다. 주신의 힘처럼 유전되는 건 아니었지만 아벤타 가문이 가진 신실함이나 올바른 눈은 항상 신의 선택을 받았다. 그들은 검의 신관이 되는 조건을 남들보다 쉽게 충족했다.

레베카의 아버지 또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아가.”

제 딸을 바라보며 반긴 공작이 땀을 닦았다.

“어딜 다녀오는 길이더냐.”

늦은 나이에 어렵사리 얻은 딸이 어여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아버지에게 똘망똘망한 눈으로 응시한 레베카가 입을 열었다.

“어린 귀족들이 모이는 작은 연회에 다녀왔습니다.”

레베카가 똑 부러지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좀처럼 변화 없는 표정이 어딘가 모르게 뚱했는데, 공작은 한눈에 알아보았다.

“저런. 레베카, 무슨 일 있었던 것이냐? 표정이 좋지 않구나.”

레베카가 고개를 기울였다.

“실은…… 오늘 귀족만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6황자님과 7황자님께서 오셨어요.”

“그런데?”

잠시 말을 멈췄던 레베카가 답변했다.

“황자님께서 제게 ‘자신이 진짜 존귀하다고 생각하냐’라고 물으셨어요.”

“…….”

레베카는 그 순간을 떠올렸다.

<존귀한 황자님을 뵙습니다.>

<……존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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