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사제님.”
옷 좀 갈아입게 그만 나가달라는 의미로 이름 모를 사제를 불렀지만, 그녀는 열린 문 앞에 버티고 선 채 미동이 없었다.
“사제님?”
드레스 목 부근의 매듭을 풀려다 말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밖에 뭐가 있길래 저리 굳은 옆모습이란 말인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움직이지 않는 사제의 시선을 따라 문밖으로 살짝 고개를 내밀자.
“큭, 크륵.”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바닥에 고꾸라진 남자의 등이었다.
“베젤?”
사제가 남자의 이름으로 추정되는 단어를 내뱉었다.
엎어진 뒷모습만으로도 누구인지 예상이 간다는 건 꽤 친한 사이라는 말인데.
그런데 저 남자 상태가 조금….
“우웩.”
등을 돌리고 엎드린 상태라 남자의 얼굴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그는 연달아 속에서 무언가를 게워내는 중이었다.
“베젤입니까? 괜찮아요?”
남자가 게워낸 흰 거품과 토사물이 주변 바닥을 적셨다.
그 광경에 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는지 사제가 남자에게 다가가려 손을 뻗었을 때였다.
“잠깐만요. 사제님.”
“네?”
“이대로 조금만 더 지켜보죠. 아는 사람인가요?”
막아서는 내 손길에 한 발 내디딘 걸음을 멈춰 선 사제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얼굴 위에도 불안이 서려 있었다.
“저 자는 베젤이라는 동부기지 소속 병사입니다. 신전에 자주 왔던 자라 안면이 있었는데 이 방 입구를 지키고 있던 것으로 보였….”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레 말을 이어나가던 사제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갑자기 몸을 뒤집은 남자가 괴성을 내지르며 사지를 비틀었기 때문이었다.
괴성을 듣고 놀란 병사들이 복도의 앞뒤로 모여들었다.
“방금 무슨 소리야? 헉.”
“뭐야 저거, 베젤이야?”
상체와 하체를 각각 반대 방향으로 비트는 모습이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그곳에 모인 모두가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처음 보는 장면에 누구 하나 나서질 못 하고 있었다.
“뒤로….”
“??”
“뒤로 물러나요.”
내 외침에 모두가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 했으면서 물러나라 외친 건, 희번득 까뒤집어서 흰자위만 보이던 남자의 눈에 눈동자가 제자리로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제자리를 찾은 눈동자가 파충류의 눈처럼 길게 찢어져 있었다.
‘뭐지, 왜 익숙한 거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처음 겪는 그 순간이 마치 전에 겪었던 일인 듯 익숙해, 온몸에 소름이 돋았을 때였다.
‘그때 그 괴물의 눈이야.’
5월 축제가 시작됐던 그 날, 황자궁의 튤립정원을 가로질렀던 악어 머리를 한 괴물.
기시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변해버린 남자의 눈은 정확히 그 괴물의 눈을 닮아 있었다.
“뒤로 오십시오.”
병사 몇 명이 나와 사제를 뒤로 감추며 앞으로 나섰다.
동부기지 소속 병사들과는 약간 다른 디자인의 군복을 입은 자들이었다.
넋이 나간 동부 병사들과는 다르게 그들은 재빨리 대형을 갖춰나갔다.
“크아아아악.”
다시 한번 고막이 찢겨나갈 듯한 괴성이었다.
“경험이 없는 동부군은 물러나라. 중앙군이 처리하겠다.”
내게 뒤로 오라 말하며 앞에 선 금발 병사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럼 중앙군은 저런 괴물을 처리하는 일에 익숙한 자들이란 말인가?
황자궁에서 보았던 괴물과 그 괴물로 변해가는 눈앞의 사람.
이 모든 일이 친숙해 보이는 그들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많았지만 한가롭게 질의응답이나 하고 있을 여유는 없어 보였다.
- 스릉
“완전히 마물로 변해 날뛰기 전에 벤다.”
우두머리 격으로 보이는 금발 병사가 롱소드를 뽑아 들자, 주위 병사들이 따라서 검을 꺼내 들었다.
“자, 잠깐만요!”
“….”
“저 자가 베젤이란 걸 모르시나요? 지금 동료를 베겠다는 말씀이세요? 아직 아무것도 해보지 않았….”
“사제님.”
다급하게 소리친 사제의 말이 차분한 금발 병사의 목소리에 잡아먹혔다.
그런 의문을 가진 건 비단 사제뿐만이 아닌 듯, 동부군 병사들의 얼굴은 혼란스러움으로 경악실색이었다.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지금 베지 않으면 한 명 잃을 동료를 더 많이 잃게 될 겁니다.”
그 말과 함께 휘두른 장검이 이미 인간인지 괴물인지 알 수 없는 그 남자의 가슴을 위에서 찌르고 들어갔고.
천장을 바라보며 남자가 입에서 핏덩이를 한 움큼 토해냈다.
이미 각질화가 진행되어 단단해진 팔다리가 부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
사제가 힘이 빠진 듯 내게 몸을 기대왔다.
인간과 괴물의 경계에서 몸을 떨던 자의 죽음을 바라보며 모두가 말을 잃은 순간이었다.
두꺼워져 칼이 박히지도 않을 것 같이 변한 팔다리에 비해, 롱소드가 한 번에 쑥 들어간 것을 보면 가슴 부근은 아직 변하기 전이었겠지.
눈앞에서 동료의 변이와 죽음을 연달아 경험한 동부기지 소속 병사들이 시체에서 고개를 돌렸다.
“저기.”
시체 수습을 지휘하는 병사에게 말을 걸자, 돌아선 그의 얼굴은 미처 신경 쓰지 못해 미안하다는 얼굴이었다.
“아, 괜찮으십니까? 란셀롯 영애시죠? 놀라셨을 텐데 편히 쉴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병사님, 방금 같은 일을 여러 번 겪으신 건가요? 저는 난생처음 보는 일이라.”
사람이 괴물로 변하다니.
일 자체도 기이했지만, 하필 이 타이밍에 일어났다는 점이 거슬렸다.
“네. 그렇지 않아도 이와 같은 현상이 얼마 전 제국 변두리 마을에서 일어나서. 그 일을 처리하고 수도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참이었습니다.”
“원인이 뭔가요?”
병사가 답답하다는 듯 미간을 구겼다.
“원인은 끝내 밝혀내지 못 했습니다. 처음엔 단순히 마물의 습격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마을 사람들이 변한 것이었고… 다시 사람으로 되돌리려고 시도했습니다만….”
말을 줄이는 병사의 어두운 표정이 결과를 짐작하게 했다.
“지금까지 그 마을 외엔 이런 현상이 발생한 곳이 없었는데 갑자기 수도에, 그것도 기지 내에서 일어나다니.”
“….”
전염병 같은 것인가?
아니, 전염병에 의한 것이라면 동제국의 변두리 마을에서 시작해 수도까지 차근차근 범위가 확장됐어야 했다.
병사의 말에 따르면 1차는 마을에서 일어났고,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수도에서 2차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니 전염성이라고 보긴 어렵지.
만약 그렇다 해도 동부기지의 병사가 아닌 마을에 다녀왔던 중앙군 중에서 증상이 나타났어야 했다.
그러니까 전염은 아니야.
‘그럼 도대체 원인이.’
도대체 왜 이 일이 하필 서제국이 테러를 가하려 하는 지금 일어난 것인지가 너무나 찜찜했다.
어떻게든 원인을 알아내야만 할 것 같은데…. 잠깐만.
“병사님!”
“예?”
“변두리 마을이면 혹시 서제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곳인가요?”
“네, 그걸 어떻게.”
누군가가 뒤통수를 세게 후려친 느낌이었다.
이 멍청아, 소설은 이미 뒤틀렸어.
많은 설정들이 원작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고.
곧바로 내가 머물렀던 방 안으로 들어가 독약이 든 유리병을 집어 들었다.
“이거 본 사람 있나요?”
시체를 수습하던 병사들의 시선이 높게 뻗은 손끝에 몰렸다.
잘 알지도 못 하는 귀족 여자가 얌전히 방에 들어가 쉬기나 하지 왜 귀찮게 하냐는 표정의 병사가 하나.
소리가 들리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흥미를 잃고 다시 하던 일을 하는 병사가 둘.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병사가 하나.
그 중 병사 한 명에게서 타박하는 말투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보세요. 귀족 아가씨들 철없는 건 익히 알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먹거리 이야기를 꺼내는 게 말이 됩니까? 여기 병사들 방금 동료를 잃었다고요.”
그의 말을 들으며 손에 힘이 풀려 들고 있던 약병을 놓칠 뻔했다.
나를 생각 없는 여자 취급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그가 이 독약을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바로 먹거리로.
“먹거리라뇨?”
“황궁 앞 무대 근처에서 나눠주던… 그 뭐냐, 장미 차? 그거 아닙니까.”
“장미 차라뇨? 이걸 나눠줬단 말입니까? 확실해요?”
심각한 표정으로 추궁하자, 각자의 일에 몰두해 있던 병사들이 하나둘 내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맞는 것 같은데.”
“마셨습니까? 누가요? 얼마나요!?”
“….”
처음 보는 여자가 제게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제 동료들을 바라보며 그는 입을 다물었다.
대답이 들려온 것은 다른 쪽이었다.
“중요한 일입니까? 저도 마셨으니 제가 확인해드릴 수 있습니다.”
다가온 남자가 내게 허락을 구하고 약병의 마개를 열었다.
입구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던 남자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마신 것과 향이 같네요.”
“….”
아마 내 표정이 싸하게 굳었겠지.
“혹시 방금 안타까운 일을 겪은 베젤이라는 병사도 함께 마셨습니까?”
“그렇습니다. 노점상에서 무료로 나눠줬어요.”
하얗게 질린 내게서 별다른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남자가 하던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등을 돌리려 했다.
“괜찮아요?”
“네?”
“몸에 이상한… 느낌 들지 않아요?”
“아뇨.”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남자가 등을 돌렸다.
“몸에 이상한 느낌이 든다니?”
“….”
저 쪽에서 나타난 로건이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 내렸다.
복도 바닥에서 닦여나가는 피를 본 그가 아까의 상황을 지휘한 금발 병사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저쪽에서도 변이체가 발견됐다. 방금 처리하고 오는 길이야. 여긴 누구였지?”
“동부기지 소속 베젤이라는 병사입니다. 완전히 변이하기 전에 처리해 부상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변이 양상은? 마을에서와 똑같았나?”
“예. 같은 모습을 보였….”
“황궁이 위험해요.”
내 말에 대화 중이던 둘을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모였다.
“황궁이 위험해요. 아니, 수도가 모두 위험합니다.”
아무 말 없이 나를 지켜보는 로건 옆에서, 금발 병사는 내가 방금 겪은 일 때문에 공포에 질려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는지 나를 진정시키려 들었다.
“영애, 역시 방에 가서 좀 쉬는 편이 좋겠습니다. 위험하다는 건 저희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
“아뇨. 모릅니다. 수도에 병사가 얼마나 있죠? 지금 축제 때문에 수도에 몰려있는 사람들이 다 괴물로 변한다 해도 막을 수 있는 정도인가요?”
“예? 그게 무슨.”
“아니, 그 전에 병사들마저 괴물로 변하면 어떻게 되는 거죠?”
그때, 병사 몇이 다급한 얼굴로 뛰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