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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101)화 (101/134)

101화

“각하! 마물입니다! 빅토사 마을에서 보았던 놈들이랑 똑같습니다!”

뛰어 들어온 병사가 전한 말은 일부 민가가 마물의 습격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마물 퇴치 경험이 있는 중앙군을 중심으로 동부군 인력을 재편성해라."

차분히 명령을 내리는 로건의 팔을 움켜쥐었다.

“제가 말했죠. 이거, 날 납치한 서제국 사람들이 가져온 독약이라고.”

독약이라는 말에, 분홍색 음료를 마셨다던 병사들의 안색이 빠르게 나빠졌다.

몇몇은 제 목을 만져대기도 했다.

“방금 여기서 괴물로 변한 병사도 이 독약을 마셨다 했습니다.”

“….”

“빅토사 마을 사람들이 마물로 변한 이유를 못 찾았다고 들었어요. 빅토사 마을은 서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지 않나요?”

“….”

“날 납치한 서제국 사람들이 이 독약을 귀한 음료로 가장해 수도 제국민들에게 마시게 했습니다. 그리고 마신 병사가 마물로 변해 죽었군요.”

목을 만져대던 병사 한 명이 제 목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꺽꺽거리는 모양새를 보니 어떻게든 마신 걸 토해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수도 제국민들이 이 액체를 마셨다니? 무슨 말이지?”

로건의 표정이 순식간에 험악해졌다.

병사들이 알고 있는 장미 꽃차를 로건은 모르는 걸 보니, 그도 아직은 독약이 들은 음료가 나눠진 사실을 모르는 눈치였다.

그의 물음에 병사가 재깍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영애의 말이 맞습니다. 축제 첫날, 가판대에서 저 분홍빛 액체가 든 음료를 장미 꽃차라며 나눠줬고… 마물로 변한 병사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마셨습니다.”

말끝에 가서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를 보아하니, 그 병사 역시 장미 차를 마신 듯 했다.

병사의 대답을 듣는 로건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차가워졌다.

더 기다릴 수 없는 마음에 빠르게 말을 보탰다.

“이 액체가 사람을 마물로 변이시키는 원인이 맞다면, 수도에서 지금 가장 위험한 곳이 어디라고 생각해요?”

“….”

로건은 답을 알고 있었다.

내 질문에 얼굴이 마치 얼음장 같이 굳었으니까.

수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린 곳, 그렇다면 가장 많은 마물들이 생겨나게 될 곳.

그곳은 황제와 황후, 수많은 귀족들과 그 귀족들을 보기 위한 제국민들, 그리고 나일이 있는 황궁 앞 무대가 설치된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말하지만 황궁이 위험해요. 날 그에게 가게 해줘요.”

“….”

파고들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가 내 손목을 낚아챘다.

“중앙군의 3중대는 나를 따라 황궁으로 간다. 나머지는 동부군과 협력해 민간인 보호에 힘써라.”

“예, 각하!”

로건이 나를 끌고 간 곳은 수십 마리의 말이 묶여 있는 마구간이었다.

묻지도 않고 그가 나부터 말 위에 태웠다.

그를 따라온 중앙군 병사들이 연달아 말 위에 올랐다.

제 상관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심각함을 모두 아는지, 짐을 챙길 시간을 달라거나 늦장 부리는 병사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불편하겠지만 상황이 급해서 마차로 갈 수 없어.”

“마차는 내가 사양이에요. 달리기나 해요.”

이미 고삐를 틀어쥐고 나서야 마차 얘기를 꺼내는 것도 웃겼지만.

예정대로 널 죽일 거라며 살인 예고를 한 주제에 이 무슨 배려하는 척이란 말인가.

닿기도 싫었지만 다른 말을 타겠다며 지체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하얀 제복이 입혀진 남자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황궁까지 얼마나 걸려요?”

“한 시간 반.”

현재 시각은 9시 정각.

예상대로 걸린다면 10시 30분쯤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도착하기 전까지 아무 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

그렇지는 않겠지.

아마 지금쯤 황궁 앞 무대는 막 열린 본선으로 북적이는 상황일 것이다.

도착했을 땐 5월의 여왕이 뽑혔을 쯤 이려나.

물론 아무 문제없이 본선이 진행됐을 때의 이야기지만.

6월을 코앞에 둔 늦봄의 봄바람이라기엔 볼에 스치는 바람결이 너무나 스산하게 느껴졌다.

손에 쥔 말고삐를 연신 내려치는 로건의 뒤에서 눈을 질끈 내려감았다.

*

귀족들이 여는 무도회를 일반 제국민들이 볼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화려한 의상과 비싼 장식품을 두른 귀족가 영애와 영식이 만나, 기품 있는 춤사위를 춰나가는 모습이 궁금했지만.

평민 신분은 보통 출입을 시켜주지 않았기에, 무도회를 구경하는 일은 꿈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 꿈같은 일이 벌어지는 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황궁 앞 야외무대는 화려한 조명들로 오색찬란하게 빛났다.

비록 평민신분으로 무대 위에 오를 수는 없었지만, 소년 소녀들은 저마다 황홀한 표정으로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귀족들을 따라했다.

귀족들의 문화와 춤을 훔쳐볼 수 있는 기회는 정말이지 흔치 않았으니까.

값싼 옷감으로 만들어진 옷이었지만, 오늘을 위해 준비한 새 옷을 뽐내며 소녀가 무대 위 귀족 아가씨처럼 빙그르르 돌자, 귀여운 얼굴의 소년이 소녀의 등을 얼른 받쳤다.

밤을 밝히는 조명이 소년의 붉어진 볼도 빼놓지 않고 밝혀주었다.

무대 위에선 귀족들이, 무대 아래에선 평민들이 저마다 행복한 얼굴로 깊어가는 밤을 즐기고 있었다. 

“로건에게서 온 소식은?”

“아직… 없습니다.”

그러나 무대 구석 기둥에 몸을 의지한 나일의 얼굴만은 시름이 가득했다.

사라진 둘을 찾아, 수도의 동쪽으로 간 로건에게서 아직도 소식이 없단 말에 나일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

“전하.”

“왜.”

“10분마다 물어보시는 건 텀이 너무 짧지 않습니까?”

“내가 10분마다 물어봤나?”

“예.”

로건에게 끌려갔다는 벤자민 대신 이곳에 따라온 시종의 꼬라지를 보아하니, 작작 좀 물어보라는 눈치였다.

“내가 질문을 너무 자주했군. 충분히 귀찮을만해.”

“귀찮다니요. 그게 아니라….”

“아 귀찮지 않아? 그럼 내가 물어보기 전에 알아서 5분마다 보고하도록.” 

“….”

알레나 멘데와 피비가 실종됐다는 걸 알게 된 오늘 오전.

군의 정보원이 그럴싸한 정보 한 가지를 물어왔다.

어젯밤, 축제 현장에서 괴한들에게 끌려가는 둘을 보았다는 자가 있다더라.

그에 의하면 둘 다 겉에 로브를 걸치고 있었지만, 로브 안쪽에서 팔락거리는 고급스러운 드레스 자락을 숨기지는 못 했다더라, 라는 정보였다.

끌려간 방향이 서쪽이라는 말에 나일은 뛰어나가 말에 올라탔다.

그러나 정보는 거짓된 것이었고 그는 허탕을 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나일이 빈손으로 황궁에 돌아왔을 때, 이미 로건은 또 다른 목격담을 듣고 동쪽으로 떠난 상태였다.

‘오늘 안에 돌아오지 않는 건가, 아직 찾고 있는 중인가.’

몸은 이곳, 황궁 야회무도회장 한 구석에 서 있었지만 나일의 마음은 수도의 동쪽 지역으로 날아가 있었다.

지금 오는 중이 아니라면 내가 가는 게 낫지 않을까.

그와의 춤을 원하는 영애들이 계속 눈빛을 보내고 있었지만 나일의 시야에 그녀들은 움직이는 물건이나 다름이 없었다.

‘역시 직접 가보는 게 낫겠어.’

엇갈릴 위험이 있으나 도저히 애가 타 가만 있기가 힘들었다.

무대 아래로 내려가려는 그를 누군가가 불러 세웠다.

“황자 전하.”

“?”

뒤를 돌아보니, 5월의 여왕에 뽑힌 영애와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한 남작가의 여식이었다.

티 한 점 없이 깨끗한 하얀 드레스 위로 은발을 길게 늘어트린 여자는 마치 눈의 여신 같은 모습이었다.

올해 출전자 중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들었지만 가문의 힘이 약해 밀렸다 했던가.

“무슨 일입니까?”

“저… 사실 제가 먼저 춤을 청하는 일이 예의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저 같은 스러져가는 남작가의 여식이 오늘이 아니면 황자 전하를 언제 뵐 수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춤을 춰주신다면 본선에 올랐으나 5월의 여왕엔 뽑히지 못 한 마음을 위로받고도 남을 것입니다.”

아우씨.

먼 지방의 한미한 남작가 출신의 이 영애가 가문 때문에 여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 했음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귀족들은 그녀의 가문의 힘이 미약함을 괄시했다.

지금도 용기를 내서 제게 다가온 영애를 저 멀리서 다른 영애들이 비웃고 있는 듯했다.

아마 자신이 거절하고 이 자리를 떠난다면 이 영애는 더 큰 비웃음을 사게 되겠지.

하지만 한 번 춤을 추기 시작하면 공평하게 모두와 춰야 할 게 뻔했다.

“어….”

어디 마땅한 영식이 보인다면 낚아채서 이 영애를 부탁하고 싶은데, 딱히 눈에 들어오는 자가 없었다.

매몰차게 거절하지도, 여자의 손을 잡아주지도 못한 상태에서 발만 동동 굴리는데.

그때 나일의 눈에 자신과 영애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한 남자가 보였다.

“폐하!”

“?”

“영애, 폐하께서 정말 춤을 잘 추신다는 것을 아십니까?”

황제에게 다가간 나일이 귓가로 입을 가져갔다.

“아버지, 한 곡만 부탁드립니다.”

“왜 안 춰. 엄청 미인인데?”

“예 미인이니까 한 곡 부탁드립니다.”

“너는?”

“제가….”

제가 추고 싶은 상대는 안타깝게도 여기 없어서.

이어질 나일의 말은 그것이었다.

“아들이 부탁한다는데 춤 한 곡이 뭐 어렵겠냐만은, 좀 이상한데.”

“예?”

“저기 봐.”

고개를 돌리니, 방금까지 멀쩡하게 서 있던 영애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부들부들 떠는 몸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던 나일의 시선이 이번엔 무대 아래로 옮겨갔다.

고막을 찢는 날선 비명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아악!!”

“살려줘!”

무대 아래가 아수라장이었다.

크고 검은 짐승 같은 외형을 한 것들을 피해 사람들이 죽기 살기로 달려나갔다.

갑자기 사람들 틈에서 튀어나온 검은 형체가 무대 위로 뛰어 오르자, 황제 황자의 시선이 그것에 쏠린 건 당연한 일이었다.

“뭐야 저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의 황제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내자 화염 덩어리가 검은 형체에게로 날아갔다.

- 끼에에엑!

마물이 불에 타죽으며 괴성을 내질렀다.

문제는 몸이 타들어가는 고통에 마물이 죽기 전까지 열심히 무대 위를 휘저었다는 사실이었다.

화염이 사람과 물건을 가리지 않고 옮겨 붙었다.

번지는 불길을 바라보며 황제가 무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빠한테 끄는 능력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붙이는 능력 밖에 없어서.”

“….”

“뭐 그건 됐고. 아들, 이건 무슨 상황일까?”

여기저기서 사람의 비명과 마물의 괴성이 섞여 분간이 되질 않았다.

“마물이 갑자기 수도 한가운데서 나타나? 이건 누군가가 만들어낸 상황이다.”

방금까지도 농담을 섞던 황제의 표정이 싸늘하리만치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어떤 새X가 내 나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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