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 (19/25)

 낚시꾼고기

 한 번 손길이 닿자 솟구쳐 오르는 욕망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12년 전 그 밤의 기억은 꿈같이 늘 흐릿했다. 

잊을 순 없었지만 현실에서 있었던 일인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너무 엄청나고 벅찬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억을 붙잡고 12년을 버텼다. 12년이 아니라 어쩌면 일생을 바쳐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수연을 드디어 품에 안게 된 것이다. 얼떨떨함과 다시 놓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속에서 기쁨과 격정이 파도처럼 덮쳐왔다.

지환은 한 손으로 수연의 머리를 잡고 깊게 키스를 하면서 가운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손에 닿는 매끄러운 피부의 감촉이 지환의 이성을 날려버렸다. 떨림은 12년 전을 고스란히 상기시켰지만 느낌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넌 너무 부드러워."

 "오빠……."

 "어떤 것도 너처럼 날 흔들어놓지는 않았어."

 "아……."

풍만한 가슴에 손이 닿자 수연은 헐떡이며 지환에게 매달렸다. 

지환은 도톰하게 부풀어 오른 수연의 입술을 빨며 민감하게 반응하는 수연의 가슴을 부드럽게 주물렀다.

 "여기…… 키스해도 될까?"

수연은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환의 키스에 넋을 잃고 달뜬 수연은 미친 듯이 지환의 목에 매달려 다시 키스를 졸랐다. 

지환은 열기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수연의 입술을 탐하고 뒤이어 벌어진 입술 속을 파고들었다. 

수연의 부드러운 혀를 지환의 혀가 휘감아 올렸다. 몇 번이고 감아올리며 수연의 타액을 거침없이 빨아들였다. 

수연이 흐느끼는 소리를 내며 흥분하는 순간 축축한 소리를 내며 입술을 뗐다.

 "흐…… 흐읏……."

가쁜 숨을 내쉬는 수연의 눈에 암시를 하고는 천천히 가운을 열었다. 환한 불빛 속에 그보다 더 뽀얀 젖가슴이 드러났다. 

지환의 어깨를 잡은 수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자신의 가슴을 이글이글 타오르는 지환의 눈에 보인 것만으로도 수연의 

몸은 핑크빛으로 물들어버렸다.

 지환은 머리를 내려 수연의 가슴에 키스했다.

 "아…… 응……."

신음하는 수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가슴에 입술을 밀착시키고 부드러운 키스를 퍼부었다. 

혀끝으로 간질이다가 참지 못하고 쓰윽 핥았다. 풍만한 가슴이 지환의 타액으로 젖어갔다. 

지환은 가슴을 손으로 주무르고 다른 쪽의 가슴에도 키스를 했다. 똑같이 핥아주고는 빨갛게 곤두선 유두를 머금었다. 

입 안에 넣고서 혀로 핥자 수연의 허리가 들썩하고 흔들렸다.

 "아…… 오빠……."

수연은 황홀한 탄성을 내지르며 지환의 머릿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지환은 눈을 들어 쾌락에 잠긴 수연의 표정을 보며 유두를 빨았다. 

입 안에 넣고 깊게 빨아올리자 수연은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몸을 비틀어댔다. 그 음란한 몸짓에 지환은 허리 아래가 뻐근하게 

저려오는 걸 느꼈다.

단숨에 안아 올려 침대에 눕혔다. 수연의 가운이 벌어지면서 매끈한 허벅지가 드러났다. 그러자 수연이 얼굴을 붉히며 다리를 오므렸다.

 "오빠, 불……."

지환은 더 보고 싶은 걸 참고 불을 껐다. 푸르스름한 어둠 속에 세찬 빗소리와 섞인 두 사람의 뜨거운 호흡 소리가 흘렀다. 

지환은 어둠 속에서 옷을 벗고 수연에게로 갔다. 옆에 누워 천천히 가운을 벗기자 수연이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우, 우리 괜찮을까?"

 "왜, 무섭니?"

 "무서워. 하지만 이젠 후회하지 않을 거야. 어떤 일이 일어나도 후회하지는 않을 거야."

 "무서워하지 마. 벌이라면 이미 충분히 받았으니까."

수연이 얼굴을 돌리며 보았다. 어둠에 익숙해진 지환의 눈에 수연의 촉촉하게 젖은 눈이 들어왔다. 

열에 들뜬 두 쌍의 눈동자가 짙게 얽혀들었다.

수연은 눈을 감고서 지환의 턱에 떨리는 입술을 댔다. 지환은 처음으로 받는 수연의 키스에 호흡이 흐트러질 정도로 자극 당했다.

 다급한 마음을 억누르며 부드러운 손길로 수연의 몸을 어루만졌다. 수연은 다시 쾌락에 빠질 준비를 하며 지환의 목을 끌어안았다. 

12년 전 그날 밤처럼 천천히 다가온 지환의 손이 수연의 사타구니 사이를 더듬어갔다.

 "그, 그만……."

수연이 움찔움찔 떨면서 지환의 손목을 잡아 제지했다. 하지만 이미 터진 지환의 욕망을 막을 수는 없었다. 

지환은 고집스럽게 손가락을 밀어 넣어 이미 촉촉하게 젖어 있는 수연의 몸속으로 침입했다.

 "오빠!"

 "걱정 마. 우리 둘뿐이야."

그때는 누군가 보지 않을까, 누군가 듣지 않을까 두려워했었다. 어머니가 올라와 소리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수연은 지환의 손길에 숨도 못 쉬고 꼼짝도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들을 방해할 수 없었다. 그들을 보고 있는 건 

창밖에서 장미를 유린하고 있는 난폭한 빗줄기뿐이었다.

 "자, 잠깐만……."

 "겁내지 마."

 "우, 우리…… 다시 벌 받겠지?"

 "동생으로 보아온 여자를 안으려고 하는 게 아니야."

지환은 젖어 있는 수연의 눈을 보며 더 깊게 손가락을 밀어 넣으며 말했다.

 "처음부터 내 거였던 여자를 이제야 되찾는 거다."

 "아……."

지환은 손가락을 빼고 충격과 쾌감에 파르르 떠는 수연의 몸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정신이 아릿아릿해질 정도로 진

한 키스를 쉴 새 없이 퍼부었다. 저항할 의지도 매달릴 기력도 잃고 흐트러진 수연의 몸을 조금씩 점령해 갔다. 점점 

아래로 입술을 내리며 부푼 가슴에 키스를 퍼붓고 빳빳하게 솟은 유두를 빨았다. 날씬한 복부를 탐하며 더 아래로 내려간 지환은

 이윽고 수연의 은밀한 곳에 혀를 밀어 넣었다.

 "아! 하아…… 응……."

 쾌감에 젖은 수연의 입에서 자지러지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수연의 음탕한 신음소리는 지환의 욕정을 더 부추겼고 이미 이성을 

잃은 지환을 더욱 거칠게 만들었다. 지환은 자신의 타액과 수연의 애액으로 젖은 그곳을 항해 허리를 내렸다. 두 손으로

 수연의 다리를 더 깊게 벌리며 커다랗게 팽창한 자신의 것을 대었다.

 "오, 오빠……."

 "쉬…… 괜찮아."

 지환은 불안해하는 수연의 손가락에 깍지를 끼고서는 천천히 자신의 것을 밀어 넣었다.

 "아!"

 수연이 비명을 지르며 통증을 호소하는 눈으로 보았다. 지환은 신음을 삼키며 죄어오는 수연의 안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학! 아…… 핫……."

 깊이 안착한 지환은 거의 숨조차 쉴 수 없었다. 팽팽하게 조여 오는 느낌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심장이 튀어오를 듯이 거칠게 뛰고 등줄기

를 타고 진한 땀이 흘러내렸다. 수연이 흠칫흠칫 떨 때마다 끊어질 듯이 조여져서 통증과 함께 엄청난 쾌감이 몰려왔다. 지환은 고

통스러워하는 수연을 보며 이를 악물고 움직이고 싶은 걸 참았다.

 "날 잡아."

 수연이 팔을 들어올려 지환의 어깨를 잡았다.

 "꽉 잡아. 놓치면 안 돼."

 젖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수연을 보고 지환은 다정히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수연이 홀린 눈을 하며 꼭 매달려왔다. 그걸 시점

으로 지환은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넣었던 것을 살짝 뺐다가 곧 더 깊이 찔러 넣었다.

 "아…… 응…… 아아아아…… 오빠……."

 고통의 신음과 음란한 호흡 소리가 어두운 방 안을 채웠다. 두 사람의 살이 젖은 소리를 내며 마찰하는 동안 빗소리는 더욱더 사나워졌다

. 하지만 방 안의 공기는 뜨거운 열기에 습기를 잃고 더욱더 팽창되어 갔다.

 "오빠…… 오빠……."

 지환은 격한 신음소리를 내며 허리를 움직였다. 깊이 밀어 넣을 때마다 수연은 좌우로 머리를 흔들며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헐떡거렸다. 

두 손으로 수연의 엉덩이를 잡고 좀더 높이 들어올렸다. 빠르게 움직이며 격렬한 욕정에 불을 지폈다. 

이성은 재가 되고 감정은 최고조로 솟구쳤으며 감각은 무섭도록 예민하게 타올랐다. 무릎을 세우고 더 깊이 파고들자 수연이 

비명을 지르며 가슴에 매달려왔다. 그 순간 지환은 수연이 절정에 도달했다는 것을 알았다. 환희에 떨며 산산이 부서져가는 

수연을 보고서 지환도 자신의 욕정을 풀어놓았다.

속도를 높이며 중간 중간 키스를 퍼부었지만 수연은 이미 느끼지 못할 만큼 폭발해 있었다. 지환은 파르르 떨고 있는 수연의 엉덩이를

 붙잡고 격렬히 허리를 흔들었다. 이마 위로 흘러내린 앞머리에서 땀방울이 떨어지고 눈앞의 하얀 입자들이 폭죽처럼 흩어질 때까지…….

 "아…… 으윽……."

 잠시 무아지경에 빠졌던 수연은 듣기 좋은 소리에 눈을 떴다. 자신의 다리 사이로 뭔가 끈적끈적한 것이 흘러내린다고 생각했다. 

지환이 자신의 위에서 땀을 흘리며 헐떡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듣기 좋은 소리는 지환의 소리였던 모양이다. 

수연은 자신의 가슴 위로 무너져 내리는 지환을 보고서 굉장한 충족감을 느꼈다. 자신이 행복했던 것처럼 지환도 기뻐하고 행복해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12년 만에 열린 문이 통증을 전해 온 순간 곧 그걸 앞지를 만큼 거센 쾌감에 휩쓸려 버렸다. 몸 안에서 지환의 것이 빠져나갈 때는 

쓰라린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허전한 기분이 더했다. 몸에선 땀이 나고, 시큼한 냄새도 나는 것 같고, 

다리의것을 닦아내야 할 것도 같지만, 평온하고 나른한 기분에 빠져 손가락 하나도 꼼짝하고 싶지가 않았다.

 지난날 누구도 할 수 없었던 건 지환의 주술 때문이었을 것이다. 휘문도 그 이전의 남자들도 수연의 몸을 탐할 수는 없었다. 

남자의 손이 가슴으로 접근해 오면 머릿속에서 경보가 울리며 수연의 몸을 경직시켰다. 그 경보를 풀 수 있는 건 지환뿐이라는 

걸 잠재의식으로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성인이 된 지환을 처음 보았을 때 이미 자신의 몸이 흥분하여 반응하는 걸 느꼈었다. 

살아서 천국을 맛보는, 이토록 황홀한 쾌감을 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지만 말이다.

 빗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아무래도……."

 수연은 잔뜩 쉬어 있는 자신의 목소리에 얼굴을 붉혔다. 자신이 얼마나 지환을 외쳐 불렀는지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헛기침을 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내가 오빠 시트를 버린 것 같아."

 "괜찮아."

 "더불어서 내 몸도……."

 "씻겨줄게."

 지환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수연이 말릴 사이도 없이 수연을 번쩍 안아 올렸다. 말릴 기운도 없는 수연으로선 지

환이 자신을 들 기운이 남아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었다.

 지환은 어두운 욕실을 불도 켜지 않고 들어가 수연을 욕조 가장자리에 앉혔다. 그리고는 일어서 샤워 호스를 끌어내려 수온을 

확인했다. 수연은 아직은 알몸을 보이기가 부끄러웠고 지환의 몸을 보는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지환을 

보고서 용기를 냈다.

 "불 켜도 괜찮아."

 수연은 고개도 들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있던 지환이 일어나 불을 켰다. 수연은 지환이 처음 내려놓은 그 자리에 

앉은 채로 시선을 들었다. 지환의 건장한 몸이 눈앞에 들어왔다.

 굵은 목덜미에 매달린 상아의 펜던트, 그 아래로 자신이 미친 듯이 매달려도 끄떡도 않던 강한 어깨와 넓은 가슴 근육이 보였다.

 그리고 검은 유두를 보았다. 탄탄한 배를 따라 점점 시선을 내려 그 아래 검은 음모를 따라 또 그 아래의…….

 수연은 목덜미까지 빨갛게 달아오르고 숨결이 흐트러졌다. 열기가 번진 눈빛에 탐심이 다 드러났는데도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지환에게 턱이 잡혀 들어올려지기 전까지 수연은 거의 넋을 잃고 있었다.

 수연의 탐하는 시선에 지환의 눈빛도 흐려졌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랬잖아."

 "보면 어떻게 되는데?"

 수연의 노골적인 유혹에 지환의 입술이 사르르 말려 올려가며 미소를 만들었다. 하지만 웃고 있는 건 입술뿐, 눈에는 다시금 뜨거운 

욕정이 차오르고 있었다.

 "겁 없는 아가씨네."

 지환은 그대로 내려앉아 수연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더니 수연의 무릎을 잡고 다리를 벌리게 했다. 닫혀 있던 곳이 다시 열려 쓰라렸다.

 수연은 당황한 손길로 지환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뭐하려고?"

 그러나 지환은 대답 없이 천천히 머리를 숙였다. 수연은 화들짝 놀라 지환의 어깨를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지환은 끝까지 들어와 

수연의 다리 사이를 핥았다. 동물적인 그 행위에 수연은 어쩔 줄을 몰랐다.

 "오, 오빠…… 더러워."

 거기엔 격렬한 사랑이 남긴 흔적들이 남아 있을 것이었다. 수연은 더 깊숙이 파고드는 지환의 어깨를 밀쳐내려 애를 썼다. 

하지만 부드럽고 촉촉한 혀의 움직임에 점점 기운이 빠졌다. 쓰라린 부위에 따뜻한 혀끝이 닿으니 아픈 느낌은 사라지고 몽롱하고

 나른해졌다. 수연은 엷은 신음소리를 내며 지환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할짝거리는 젖은 소리가 욕실 벽의 타일을 타고 흘렀다.

 잠시 후 머리를 든 지환의 눈은 열정이 서려 흐릿해져 있었다. 수연은 손으로 지환의 입술을 닦아주었다.

 "더럽다니까……."

 "네 건 어떤 것도 놓치고 싶지 않아."

 두 사람은 잠시 서로의 눈을 보며 아무 말도 못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깊은 시선에서 영혼에 담긴 사랑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먼저 눈을 떼고 움직인 건 지환이었다.

 "씻기부터 하자."

 수연은 욕조 가장자리에 앉은 채 지환이 샤워 호스를 가져오는 걸 보았다. 따뜻하게 느껴지는 물이 다리 사이로 들어왔다. 수

연은 허벅지를 타고 흐른 물이 타일 위로 떨어지는 걸 보았다. 살짝 붉었다.

 "아프니?"

 "아니."

 "미안하다. 그때…… 돌봐주지 못했어."

 수연은 지환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알았다. 12년 전 그날 밤, 지환이 방을 나간 뒤 수연은 몰래 일어나 피 묻은 시트를 빨았었다. 

뭔가 슬프고 허무해서 눈물이 나왔었다. 하지만 그 뒤에 흘린 눈물과 공포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수연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지환을 위로했다.

 "괜찮아. 오빠도 어렸잖아. 그때 나처럼 오빠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을 거야. 우리 참 무모했지만 그만큼 순수했어. 그지?"

 "내 욕심에 널 힘들게 했어. 많이 후회했었다."

 "나도 후회했어. 하지만 가해자처럼 말하지 마. 어려서 뭔지도 몰랐고 감당도 할 수 없었지만 나도 원했던 일이었어."

 수연은 물과 함께 들어오는 지환의 손을 막지 않았다. 수연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지환은 한 손으로 샤워 호스를 갖다대고선 다른 

손을 미끄러뜨려 수연의 사타구니를 만졌다. 수연은 지환의 손이 자신의 은밀한 부위를 씻기는 걸 보고서 숨을 들이켰다.

 그 야한 그림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도 뿌리치질 못했다.

 "으응……."

 지환의 혀로 이미 한 차례 달아오른 그곳은 씻으려고 쓰다듬는 손길에도 움찔움찔하며 반응했다. 수연은 욕망으로 흐릿해진 눈을 들어 

지환을 보았다. 지환의 얼굴 역시 다시 번진 색욕으로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그때 문득 밑을 본 수연은 검붉은 색을 띠며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는 지환의 것을 보고야 말았다. 수연의 시선을 느낀 지환은 들고 있던 

샤워 호스를 놓고 수연의 뒷머리를 잡고 끌어당겼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니까……."

 다시 시작된 키스는 끝도 없이 깊어지고 뜨거워져 수연의 몸을 마비시켜 갔다. 두 사람은 더 말할 것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 시각 이후 부닥칠 거대한 일들에 대해 짐작하고 있었다. 괴롭고 슬프고 두려운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고 있

었다. 하지만 이 순간에는 그 모든 걸 잊고 서로를 탐했다. 순수하게 행복할, 무조건적인 욕망에 빠져 있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수연은 처음보다 더 황홀하고 격렬한 쾌감을 느꼈다. 자신의 몸속에는 다시 뜨겁고 단단한 지환의 것이 있었다. 수연은 희열의 무게에

 눌린 눈을 억지로 뜨고서 절정으로 내달리는 지환의 비상을 보았다. 자신의 몸에서, 자신으로 인해 지환이 쾌감을 얻는다고 생각하니까 

죽어도 좋을 만큼 행복했다. 수연은 흐트러진 지환의 머리를 꼭 안고서 땀에 젖은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그러나 잠시 후에는 수연이 지환의 품에 작은 인형처럼 안겨 있었다.

 "집에 데려다줄게."

 수연은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했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좀더, 조금만 더 지환과 행복하고 싶었다. 며칠만이라도 부모님을 잊고, 

세상 그 무엇도 잊어버리고 둘만 생각하고 싶었다.

 "나중에 말씀드리면 안 될까?"

 "무섭구나."

 "그게 아니라……, 며칠만이라도 오빠만 생각하고 싶어서 그래."

 수연은 어리광부리는 아이처럼 지환의 가슴에 얼굴을 부비며 졸랐다.

 "응? 며칠만…… 안 될까?"

 "속이는 건 싫다. 어차피 헤쳐 나가야 할 관문이야."

 "속이자는 게 아니라 그냥 며칠간만 말하지 말자구. 응, 오빠?"

 수연은 파묻었던 머리를 들고서 지환의 입가에 키스를 했다. 그러자 곧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3일 만이다."

 "좀더 쓰지?"

 "흥정할 생각이냐?"

 "치, 알았어."

 수연이 삐치며 돌아눕자 지환의 팔이 몸을 감아왔다. 싫지 않아서 밀어내지 않았다. 수연은 피로감을 느끼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지환이 이불을 덮어 주었다. 잠시 후 이불 속에서 자신의 가슴을 만지는 지환의 손길이 느껴졌다. 한 번도 누군가와 침대를 같이 쓴 

적이 없는데도, 누구에게도 자신의 가슴을 만지게 한 적이 없는데도, 이상하게도 편안했다. 점점 더 압박을 가하며 가슴을 주무르는

 느낌에도 수연은 아무렇지도 않게 곤한 잠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잠결에 수연이 물었다.

 "그렇게 내 가슴이 좋아?"

 "그 여자…… 한 번이라도 내게 젖을 물렸을까."

 대답을 바라지 않는 공허한 물음이 돌아왔다. 무슨 뜻인지 묻고 싶었다. 생모를 생각하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잠의 포로가 

된 수연은 내일 물어봐야지 생각하며 끌려갔다. 잠의 나락으로…….

 목표했던 것을 가진 성취감과 허탈감,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에 빠진 지환은 결국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말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3시 30분에 침대에서 빠져나와 조깅을 했다.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수연이 좋아하는 크림치즈가 듬뿍 발린 베이글을 사고 여성용 로션을 사고 스프와 샐러드를 포장해 왔다. 

수연은 아직 곤하게 잠들어 있었다.

따뜻하고 포근해 보이는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수연의 유혹을 뿌리치고 냉수 샤워를 했다. 

커피와 냉장고의 샌드위치로 아침을 대신하고 어제 쓰다 만 리포트를 작성했다. 

5시가 넘고 출근할 시간이 가까워 오는데 수연은 아직도 꿈나라였다. 포스트잇에 메모를 해두고 노트북과 열쇠를 챙겼다. 

지환은 망설이다가 침대로 다가갔다.

그냥 두면 언제까지 잘지도 모르고, 뭐 그래도 상관은 없겠지만, 아무튼 지환은 아침키스를 받고 싶었다. 

그래도 차마 깨우지 못하고 가만히 침대 위에 앉아 숨소리도 없이 잠들어 있는 수연의 뺨을 어루만졌다. 

수연이 살짝 뒤척이자 이불이 내려와 유두가 살짝 보였다. 흰 피부에 유난히 도드라진 붉은 돌기가 성욕을 불러일으켰다. 

수연의 곁으로 기어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불같이 일었다. 상아처럼 희고 부드러운 허벅지에 자신의 하체를 묻고 깊이 잠들고 싶었다.

 숨이 흩어진 지환은 떨리는 손으로 머리칼을 쓰다듬고 보드라운 뺨을 쓸어내렸다. 유혹을 참으며 수연의 손가락을 잡고 입을 맞추었다.

 "으응……."

수연이 움직였다. 지환은 손을 잡은 채 가만히 기다렸다. 자신의 천사가 깜박깜박 속눈썹을 움직이다가 천천히 눈을 뜨는 걸 지켜보았다. 

그리고 자신을 알아보고서 나른하게 미소 짓는 걸 보았다.

 "굿모닝."

 "잘 잤니?"

 "응. 누가 업어 가도 모르게 아주 푹 잤어. 아~ 훔~"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켜던 수연은 지환이 이미 출근할 준비를 마친 걸 보았다.

 "몇 시야?"

 "5시 5분."

 "뭐? 이렇게 일찍 나가는 거야? 아침은?"

 "먹었어. 깨우지 않으려고 했는데 참을 수가 없었어."

 "아……."

수연은 다 알겠다는 듯이 눈을 찡긋하더니 벌떡 몸을 일으켰다. 지환의 목을 끌어안고는 양복 어깨에 뺨을 비비며 개구쟁이처럼 키득거렸다.

 "내 냄새 잔뜩 묻혀놔야지. 다른 여자들 절대 접근 못 하게."

지환은 장난치는 수연의 뺨을 감싸고는 가볍게 입을 맞추고 속삭였다.

 "그런 불필요한 걱정을 왜 해."

수연은 웃으며 다시 침대에 벌렁 누웠다. 지환이 드러난 가슴에 시선을 주자 약 올리듯이 이불을 좀더 끌어내렸다.

 "휴가 내면 안 돼?"

 "약속된 일이 너무 많아."

 "그럼 뭐야? 내가 여기 이렇게 있는데도 출근을 하겠단 말야?"

지환은 조금씩 드러나는 가슴을 주시하며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너도 출근해야지. 안 할 거야?"

 "꼭 직장상사처럼 말하네. 지금 난 오빠 연인이지 부하직원이 아니라구. 아, 연인……, 이 말 정말 좋은 느낌이네. 그지?"

 "너니까 그래. 일어나서 아침 먹어. 스프랑 샐러드 사놨어."

 "일찍 일어나서 오빠 아침밥 해주려고 했는데, 오빤 너무 부지런해. 아침형 인간에 맞출 수 있을까. 걱정이네."

수연은 미간을 찡그리며 이불을 끌어당겨 몸에 휘두르고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아차, 그런데 나 화장품 같은 거 하나도 안 챙겨왔는데 어떡하지? 지갑도 안 가지고 나왔어."

 "지금이라도 집에 갈래? 데려다 줄까?"

 "아냐, 귀찮아. 그냥 맨얼굴로 가지 뭐. 회사 탈의실에 화장품 사둔 거 있으니까 그거 바르면 돼."

낙천적인 수연은 금세 혼자서 해결을 보고는 다시 생기 띤 표정을 했다. 

검은 실크의 이불을 질질 끌며 맨발로 걷는 수연의 모습은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지환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벌떡 몸을 일으켜 노트북을 들었다.

 "어머! 베이글이네? 음…… 맛있어."

지환은 홑겹의 이불로 간신히 몸을 가린 채 서서 베이글을 먹고 있는 수연을 두고 현관으로 걸어갔다. 

슬리퍼를 벗고 구두를 신으며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여기서 바로 출근할 거니?"

 "그래야지."

 "집엔 뭐라고 할 거야?"

 "내가 알아서 할게."

 "저녁에 모임 약속이 하나 있는데 같이 갈래?"

 "무슨 모임인데?"

 "대학 동창회."

 "뉴욕의?"

 "응. 워커힐호텔 7신데, 갈래?"

 "어머? 그럼 드레스 입어야겠네?"

현관에 서 있던 지환은 수연이 흥분해서 조르르 달려오는 걸 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럴 것까진 없지만……."

 "아, 쇼핑해야겠다. 퇴근하고 쇼핑하려면 바쁘겠어. 내가 예쁜 드레스 입고 오빠 기 팍팍 살려줄게."

수연이 기를 살려줘야 될 정도로 인정 못 받는 건 아니지만 수연이 하는 행동이 귀여서 그저 끄덕끄덕 해주었다.

 "참, 택시비 줘."

지환은 귀엽게 내민 손을 보며 지갑을 열었다.

 "살 게 있으면……."

 "만 원이면 돼. 기본요금밖에 안 나오던데 뭘. 그럼 회사에서 봐. 운전 조심하고."

수연은 만 원을 받고 뒤꿈치를 들고서 뺨에 키스해 주고는 또 조르르 부엌으로 달려갔다. 

지환은 치즈크림이 묻은 뺨을 손수건으로 닦아내고는 오피스텔을 나왔다.

좀더 진지한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수연은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다시 통통 튀게 밝은 수연으로 돌아온 건 보기 좋은 일이지만 

할 일을 밀쳐둔 거 같아 불안하고 찜찜했다. 하지만 수연의 말대로 둘만의 시간은 필요했다. 

앞으로 닥칠 험난한 일들을 이겨내려면 분명 위안이 되는 추억이 필요할 것이다. 

행복할 시간이 있다면 앞으로의 3일이 전부일지도 모르니까…….

 "엄마? 걱정할 것 같아서 전화했어. ……아, 아니 회사야. 급한 일이 생겨서 일찍 출근해야 했는데, 미리 얘기한다는 게 깜박했어.

 ……응, 먹었어. 아빤? ……나 오늘 좀 늦을 거니까 기다리지 말고 자. ……약속 있어. ……아니, 친구들이랑. ……응. 끊을게."

어렸을 때부터 닦아온 능숙한 거짓말 솜씨가 진가를 발휘했다. 하지만 수연은 죄책감에 괴로웠다. 

당분간 머리 아픈 건 뒷전으로 미루기로 한 걸 다시 다짐하고 오디오의 볼륨을 높였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흥얼거리며 샤워를 하고 지환이 깨끗이 세탁해 말려둔 속옷과 원피스를 입었다. 

오피스텔을 나올 즈음엔 평소보다 1시간이나 빠른 출근길이었다. 그래선지 차도 덜 막히고 공기도 상쾌한 것 같았다.

택시에서 내리려던 수연은 부엌 식탁에 지환에게 받은 만 원을 두고 온 것을 알았다. 

하는 수 없이 경비아저씨에게 2천 원을 꾸어 택시비를 냈다. 자신의 건망증에 실소하며 사무실로 가 탈의실에서 화장을 하고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꼭 닫힌 지환의 방문을 엿보고 싶어서 시선이 자꾸만 갔다.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는 직원들과 인사를 하는데 뒤이어 들어오는 휘문과 눈이 마주쳤다. 들떠 있던 기분이 착 가라앉아 버렸다.

수연은 후닥닥 눈을 피했다. 그러다 지환의 책상 위에서 발견한 사진을 떠올리곤 자신만이 죄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휘문을 추궁할 생각은 없었다. 휘문이 자신과 지환에 대하여 캐는 것이 싫듯이 휘문도 그럴 것이다. 

자신이 그러하듯 휘문 역시 자신의 실수나 잘못은 외면하고 달아나고 싶을 거였다. 

수연은 처음부터 휘문이 자신과 비슷한 성향을 지닌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실수를 했다면 자신이 훨씬 많을 것이다. 지환을 다시 만나고서야 휘문을 포함하여 예전에 사귀었던 남자들에 대한 감정이 얼마나 

얕은 것이었는지 깨닫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지환에게 느끼는 감정이 바다라면 그들은 인공의 연못이었다. 

지환을 거부하기를 포기하고, 자신의 마음을 인정한 뒤에야 그걸 깨닫게 된 것이다.

수연은 새삼 지환을 향한 자신의 마음에 전율을 느꼈다. 지환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애정으로 가슴이 벅차고 혈관으로 욕망이 내달렸다. 

지난밤의 황홀한 기억이 다시금 되살아나 눈빛이 몽롱해져 버렸다. 당황한 수연은 어지럽지도 않은 책상을 정리하며 바쁘게 손을 놀렸다.

 아, 뭔가에 홀린 것 같다. 사랑이란 이런 거였을까. 한 남자를 가슴으로 받아들인다는 건 이렇게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일까.

 오빠의 눈을 보고 있으면 그 안으로 빨려들어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숨 쉬는 것도 잊어버린 채 헤어날 수가 없게 된다. 

한 남자의 여자가 된다는 건 한없이 안락하고 자유로우며 충만한 느낌이다. 강하고 안전하고 넓은 울타리에 둘러싸인 기분, 

갇혀도 갇힌 기분을 전혀 느낄 수 없지만 갇혀 있다고 해도 벗어나고 싶지 않은 기분, 정신적인 편안함과 육체적인 쾌감이 

어우러져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게 되는 상태. 그의 세계가 지옥이라고 해도 거기서 나오고 싶지 않다.

 수연은 자신의 생각이 무섭다고 생각하면서도 행복한 미소를 거두지 못했다.

수연은 대체로 평온한 하루를 보냈지만 점심시간에조차 지환의 얼굴을 보지 못해 초조해졌다. 그래서 대직을 해줘서 고맙다는 

지환의 비서에게 콜라를 사달래놓고 지환이 어디 갔는지 슬쩍 물어보았다.

 "SPF 본사 들어가셨어요. 근데 왜요?"

 "아니, 하루 종일 안 보이기에……."

 "거기서 오늘 세미나가 있어요. 5시쯤 끝나니까 바로 퇴근하겠다고 그러시더라구요."

저녁 모임 때까지 지환은 못 보는 건가 보다. 바쁜 연인은 좋지 않다.

수연은 투덜거리며 일에 열중하려고 애썼다. 윤 대리가 공부 좀 하라며 차트 분석에 관한 두꺼운 책자를 몇 권이나 줬다. 

한 권도 보기 힘든데…….

 퇴근 시간 무렵 지환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내 전화여서 사무적으로 받았는데 지환이었다. 

목소리를 듣고서 흥분한 수연은 금세 들뜬 목소리가 되었다.

 "어디야?"

 "회사 앞에 있어. 내려올래?"

 "응."

수연은 보고 있던 책을 덮고 퇴근 준비를 했다.

 "벌써 퇴근하게요? 아직 팀장님도 안 가셨는데……."

 "하루 씨가 대충 둘러줘. 누가 찾으면 화장실 갔다고 그래."

그런 면에서 오늘은 둘러대기 좋았다. 핸드백도 없고 차도 없으니까 전혀 퇴근하는 거 같지 않았다. 

그대로 사무실을 나오려던 수연은 문득 휘문과 하루의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궁금했다. 

처음엔 두 사람에게 배신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분한 느낌도 있었지만 지환을 얻은 지금에는 두 사람이 잘되기를 바랐다. 

휘문이 양다리를 걸쳤는지, 언제부터 하루와 그렇게 가까워졌는지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되지도 않았다. 

다만 휘문에게 미안했던 마음이 다시 가벼워진 것에 오히려 안심이 된 쪽이었다.

 "저…… 요즘 어때?"

 "뭐가요?"

"아, 그러니까…… 휘, 휘문 씨와……. 아, 아무튼 잘해 봐."

수연은 결국 하루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것으로 두 사람에게서 신경을 끊기로 했다. 

자신이 관여하면 본격적으로 가까워지려는 두 사람에게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거기에는 이대로 조용히 휘문과 정리하고 싶은 얄팍한 계산이 있기도 했다. 하루와 잘된 뒤에는 휘문과 화해하기도 쉬워질 것이다.

수연은 나는 듯 복도를 걸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로비에 도착했다. 제복을 입은 경비아저씨가 아는 체를 해왔다. 

수연은 아차! 하고서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잠깐만요, 아저씨. 지금 갚을게요."

하고 회전문을 열고 나와 지환의 차를 찾았다. 발견하고서는 곧장 달려가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오빠, 2천 원만."

지환은 묻지 않고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만 원짜리밖에 없는데."

했다. 수연은 그거라도 달라고 해서 만원을 받아들고는 경비아저씨에게 갚았다. 나머지는 다음번을 대비해서 예탁해 두겠다고 했다. 

말괄량이처럼 웃으며 지환의 옆자리에 앉은 수연은 만 원을 두고 나온 얘기와 휴대폰이 없으니까 하루 종일 불안하더란 얘기, 

윤 대리가 어려운 책을 잔뜩 줘서 골치 아프다는 얘기를 조잘조잘했다.

 "골든크로스(golden cross)란 거 말야, 단기이동선이 중장기이동선을 이렇게 돌파하는 거 맞지? 

그리고 골든크로스가 나타나면 강세 시장으로 전환 신호니까 매수해야 되는 거지?"

 "보통은 그렇지."

 "보통이 아니면?"

 "하락 추세에 골든크로스가 발생하면 대폭락의 징조이기도 하지. 골든크로스 발생 후에 대량으로 거래가 되는 때 보면 개미군단들이

 대거 매수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어. 큰손들이 골든크로스를 이용해서 물량을 매도하고 장을 폭락시키거든."

 "어머, 그럼 어떡해? 큰손들이 팔려고 그러는지 진짜 상승 신혼지 어떻게 알아봐?"

 "실전 경험이 중요하지. 차트를 보면서 시장을 분석하다보면 감각을 익히게 돼. 증시 격언에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란 말이 있어.

 종목 하나를 사더라도 전체 시장의 흐름은 계속 주시하란 얘기지. 하락장인지 강세장인지, 종합주가지수 모습을 잘 파악해

 두면 도움이 될 거다."

 "아…… 뭐가 그렇게 어려워."

수연은 미간을 찡그리며 입술을 삐죽였다. 그때 사거리에서 빨간 신호등에 걸려 차가 정지했고 갑자기 지환의 손이 수연의 목덜미로 

뻗어왔다. 불시에 끌려간 수연은 그대로 키스를 당했다. 놀랐지만 곧 지환의 따뜻한 입술을 받아들였다. 입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온 혀가 깊이 파고들며 입 안을 유린했다. 수연은 이 저돌적인 혀가 얼마나 강렬한 쾌감을 주었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격렬해진 키스에 아랫도리가 흐물흐물해져 버렸다.

 "하아……."

갑자기 또 키스는 끝이 났다. 수연은 숨을 몰아쉬며 얼얼한 입술에 손가락을 대보았다.

 "입술 터지는 줄 알았네."

지환은 웃지도 않고 차를 출발시켰다. 수연은 흥분이 가시지 않아 아직도 가슴이 파닥파닥 뛰었다. 심호흡으로 가슴을 좀 진정시키고는 

운전을 하고 있는 지환을 보았다. 입술에 자신의 립스틱 자국이 묻은 게 보였다. 수연은 티슈를 빼 립스틱 자국을 닦아주며 놀렸다.

 "오빠가 이렇게 색정광인지 아무도 모를 거야."

 "자극하지 마. 진짜 색정광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지니까."

 "오빠 약속만 아니라면 난 굳이 사양하지 않겠어."

수연의 도전적인 말에 지환이 음, 하고 신음을 토했다. 수연은 키득키득 웃으며 자신의 입술도 닦았다.

 "취소한다는 소리 안 하는 거 보니까 중요한 약속인가 보네?"

 "정제계 실력자들이 모일 거야. 만나야 할 사람도 있고, 빠질 수가 없어."

 "난 괜찮아. 예쁜 드레스 입고 맛있는 거 먹는 거 좋아."

사실 수연은 하루 종일 지환과 단둘이만 있고 싶은 마음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지환의 모임에 가는 것도 지환의 것이 되는 공식적인 

확인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 좋은 기분에 수연은 신나는 쇼핑을 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