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균 중의 균 마세균, 잠복기만 15년-13화 (13/17)

13장.

가끔은 불운한 날이 있다는 걸 나도 안다. 자꾸만 일이 꼬이고, 그 때문에 도통 기운을 내보려야 낼 수가 없는 그런 날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하지만 그런 날이 여행 중에 찾아오길 바라는 사람은 없을 거다.

분명 오늘 아침만 하더라도 모든 것이 완벽했다. 순조로운 하루가 이어질 거란 산뜻한 예감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믿기 어려울 만큼 형편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부러 찾아간 음식점의 맛은 엉망이었고, 박물관은 휴관일이었다. 마세준은 틈틈이 디저트를 먹이며 내 기분을 풀어 주려 노력했지만, 번번이 속상한 일이 벌어지는 탓에 도무지 기분이 나질 않았다.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연신 괜찮다며 웃어 주는 마세준이 고마워서, 나 역시 그저 억지로 웃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쯤 되니 억지웃음을 짓는 것마저 어렵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뮤지컬까지 전석 매진이었다. 평일 애매한 시간대 공연이 매진될 리 없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 뒤통수를 때린 것이다. 공연장 입구를 등지고 서서, 나는 굳은 표정을 좀처럼 풀지 못하고 있었다. 억울할 것도 없었다. 다 내 부주의 때문이었으니까.

“이잎새, 왜 이렇게 풀이 죽어 있어. 속상해?”

마세준은 다정하게 내 볼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내가 계획 짤 테니까 손도 대지 말라고 그랬는데, 나 때문에 다 엉망이잖아. 시간 가는 것도 아까워 죽겠는데 아무것도 못 했어.”

“무슨 말이 그래. 이게 왜 너 때문이야.”

“……너 보기 민망하고 미안해.”

“난 종일 네 얼굴만 봐도 재미있는데.”

마세준은 내 볼을 꾹 누르며 붕어 얼굴을 만들어 놓더니, 내 꼴이 우스운지 헤벌쭉 웃었다. 볼이며 이마에 입술이 내려앉았다.

“나도 너랑 있는 건 좋은데…….”

한참이 지난 뒤에 우물쭈물하며 말하자, 마세준은 내 손을 잡아 걷기 시작했다.

“한국 가서 또 보면 되지. 이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그제야 굳은 얼굴을 풀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이마 위로 차가운 빗방울이 떨어졌다. 놀라 손바닥을 눈높이께로 뻗어 보자, 토독토독 하고 물방울이 맺혀 미끄러졌다.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마세준과 눈을 맞추기 무섭게, 금세 시야를 확보하기 어려울 만큼 억센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워낙 순식간이었다.

마세준은 재빠르게 겉옷을 벗어 내 머리 위를 가려 주었지만, 불행히도 대찬 물줄기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마땅히 당장 비를 피할 곳조차 없었다. 그새 부지런히도 걸었던 모양인지 이미 공연장은 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 우리는 신호 건너에 자리한 꽃집의 붉은 어닝 아래로 뛰어 들어갔다.

물먹은 어깨 위로 마세준의 옷이 툭 내려앉았다. 굵은 빗방울이 땅을 때리는 소리가 귓가를 가득 메웠다. 턱이며 목으로 물줄기가 조르르 흘러내렸다. 우리는 가련한 생쥐 꼴로 멀거니 서 있었다. 마세준의 스웨터는 흠뻑 젖어 몸에 달라붙어 있었고, 비는 좀처럼 그칠 기미가 없어 보였다. 으슬으슬 몸이 떨려 왔다.

“안 되겠다. 근처에 카페라도 있나 좀 보고 올게. 잎새야, 잠시만 여기 있어. 금방 올게.”

마세준은 내 어깨에 걸쳐진 제 겉옷을 몇 번이고 여미어 주더니, 뒤를 돌려 했다.

“마세준.”

“응?”

나는 마세준의 소매 깃을 당기며 눈을 마주했다.

“그러지 말고 우리 저기 들어가자.”

미적지근한 내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긴 마세준은, 곧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시선이 요동치는 게 웃겨서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나 추워. 열도 나는 것 같아.”

아주 없는 소리는 아니었다. 추웠고, 이대로 있으면 열이 오를 것도 같았다. 어떻게 하루가 이렇게까지 엉망일 수 있나 싶어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쉬고만 싶었다. 마세준은 심각한 얼굴로 내 이마에 손을 올려다보더니,

“잠시만 기다려.”

내가 겉옷을 돌려주기도 전에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얼마 안 가 커다란 우산을 가지고 돌아왔다. 단단한 팔이 내 몸을 제 품으로 끌어갔다. 다 젖은 몸에 기대어, 호텔 이름이 쓰인 커다란 우산을 함께 쓰고 천천히 걸었다.

로비 한편에서 으슬으슬 떨고 있는데, 마세준이 카드키를 받아와 내 앞에 와 섰다. 그러고는 축축하게 젖은 제 머리를 대충 쓸어 넘기더니 내 손을 잡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카펫이 깔린 복도에서 마세준이 문을 열기를 기다리는 동안, 신발 주변으로 속절없이 물이 고여 들었다.

* * *

철컥하고 호텔 문이 닫히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몸을 굳혔다. 슬쩍 뒤를 돌자, 걸쇠를 잠근 마세준이 나를 보며 걸어오고 있었다.

“따뜻한 물로 씻어.”

마세준이 겉옷 두 벌을 벗겨 주는 동안, 나는 괜히 마세준 가슴팍만 바라봤다.

“어…….”

욕실로 들어가 질척이는 옷을 힘겹게 벗고는 샤워기 아래 섰다. 마세준 말대로 따뜻한 물로 몸을 녹이고는 커다란 타월로 물기를 닦았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입을 게 하나도 없었다. 말 그대로 팬티 한 장 없었다. 급한 대로 수건을 몸에 감고는 그 위로 가운을 걸쳤다. 리본을 두 번이나 묶고 심호흡까지 한 뒤 문을 열고 나가자, 고요한 객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세준이 없었다. 황망한 얼굴로 방구석 구석을 살피는 것은 물론 옷장까지 열어 보았지만, 당연히 마세준은 보이지 않았다.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쥐었을 때, 다행히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

[약이랑 걸칠 것 좀 사 올게. 머리 잘 말리고 쉬고 있어. 금방 올게.]

자기도 다 젖은 꼴을 해서는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괜히 춥다, 열난다 떼를 써서 마세준만 고생시키는 것 같아 미안했다. 행여나 내가 문자를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티테이블 위에 놓인 메모지에도 같은 내용이 남겨져 있었다. 나는 수건으로 머리칼을 설렁설렁 흔들다가, 이내 창밖만 바라보며 마세준을 기다렸다.

마세준은 삼십 분이 더 지난 뒤에야 방으로 돌아왔다. 손에는 비에 젖은 비닐봉지가 몇 개나 쥐어져 있었다. 나는 퉁퉁 부은 얼굴로 달려가 마세준 앞에 섰다. 곁에 서 있기만 해도 냉기가 느껴졌다.

“어디 갔었어. 놀랐단 말이야.”

“미안해. 옷 살 곳이 여의치 않아서 기념품점까지 가느라 좀 오래 걸렸어. 몸은 괜찮아?”

“……응.”

뭉근히 풍겨 오는 비 냄새에 코끝이 찡했다. 나는 마세준의 머리칼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을 쓱 닦아 주었다.

“춥겠다. 얼른 씻고 와.”

“응.”

차가운 마세준을 욕실로 들여보내고, 나는 물에 젖은 봉지 앞에 무릎을 껴안고 앉아 한참 동안 그걸 바라봤다.

곧 따뜻한 기운을 몰고 나온 마세준은 가타부타 않고 비닐봉지를 뒤적였다. 그동안, 나는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을 것 같은 옆모습에서 한시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일단 옷 말릴 동안 이거라도 입고 있어. 밥 먹고 약 먹자.”

빨간 하트가 그려진 얇은 기념 티셔츠, 물에 젖은 눅눅한 약 상자, 아마도 따끈한 국물이 들어 있을 하얀색 포장 용기, 요란한 패턴의 찜질 주머니. 그런 것들을 번갈아 보던 나는 곧 마세준 뒤로 가 허리춤을 끌어안았다.

“……이잎새.”

“응.”

“많이 무서웠어? 미안해. 내가 무심했어.”

마세준의 커다란 손이 다가와 내 손등을 쓰다듬었다. 나는 잠시 생각을 고른 뒤 천천히 입술을 뗐다.

“……응, 무서웠어. 나, 네 문자 확인하기 전까지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 다 했어. 내가 자꾸 짜증 내서 네가 나한테 정떨어진 건 아닌가 하고. 화가 나서 어디 가 버린 건 아닌가 하고.”

“내가 어떻…….”

“그런데 네 얼굴 보니까, 다 허튼 생각이었어. 그런 생각한 것도 미안하더라.”

“…….”

마세준은 조심스레 내 손을 풀어내더니, 뒤를 돌아 나를 안아 주었다.

“정이 왜 떨어져. 죽을 때까지 그럴 일 없어. 아프지만 마.”

“나 하나도 안 아파. 멀쩡해.”

“열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이마를 짚는 가지런한 손을 쥐고 끌어 내렸다.

살면서 이렇게 용기 낼 일이 또 있을까. 아마 없을 거다.

“마세준, 우리…… 할까?”

숨을 뱉듯 말했다. 말을 하면서도 머리가 다 띵했다.

“뭐?”

“나 너랑 하고 싶어.”

나는 간신히 마세준의 볼 언저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 얼굴은 말할 것도 없고, 온몸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마세준의 잘 뻗은 목젖이 울컥거렸다. 이런 상황을 조금도 예측하지 못했던 것 같다.

마세준은 아무 말이 없었다. 천천히 시선을 올리자,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마세준과 눈이 마주쳤다. 마세준의 눈망울은 혼란에 젖어 있었다. 그래선 안 된다고 가까스로 자신을 다잡는 것 같기도, 동시에 당장에라도 나를 삼킬 것 같기도 한 눈빛이었다. 목이 바짝 탔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벌인 건지 모르겠다.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하며 혀로 입술을 축이는데, 순식간에 시야가 기울었다. 놀랄 틈도 없이 침대 위로 쓰러졌다.

“후회 안 해?”

마세준은 숨이 닿을 정도로 아주 가까운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더니, 새빨간 귀를 하고 물었다. 마세준의 시선은 내 입술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등에 닿은 침대의 감촉이 유독 낯설게 느껴졌다.

“후회 안 해.”

“…….”

“넌……?”

대답 대신 마세준의 입술이 찾아들었다.

부드럽게 맞닿은 입술 사이로 열기 어린 숨이 오고 갔다. 온몸을 맞붙여 오는 마세준이 낯설었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얇은 가운 너머로 마세준의 체온이 느껴졌다. 볼품없이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려 마세준의 어깨를 세게 그러쥐었다. 다정하고 따스한 키스는 금세 자취를 감췄다.

우리 둘은 뜨겁고 다급했다. 혀가 얽히고, 타액이 만들어 내는 젖은 소리가 빗소리를 누르고 귓가를 파고들었다. 계속해서 밀려들어 오는 마세준의 숨을 바쁘게 삼켜 냈다. 마세준은 내 혀를 앗아 가 제멋대로 머금더니 곧 윗입술을 깨물고 물러났다. 그러고는 곧장 내 목으로 고개를 묻었다. 촉촉한 숨결과 뜨거운 혀가 피부를 녹여 버릴 것만 같았다.

“하…….”

마세준은 여린 살갗을 살짝 깨무는가 싶더니, 이내 강하게 빨아 당기며 내 가운의 매듭을 풀기 시작했다. 긴장으로 온몸이 떨려 왔고, 손끝이 차게 식었다. 매듭은 아주 쉽게 풀려 나갔다. 아슬아슬하게 남아 있는 가슴께의 타월을 두 손으로 가리자, 마세준이 몸을 들어 눈을 맞춰 왔다.

“힘들면…… 불 끌까.”

그러고는 볼에 붙은 머리칼을 떼어 주며 물었다. 그렇게 다정하게 묻는 마세준의 눈빛은 뜨거웠고, 눈에 띄게 흐트러져 있었고, 짙은 기대감에 젖어 있었다.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

“싫어, 너 볼래.”

촉, 하고, 부드러운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마세준은 차게 식은 내 손을 잡아 이끌어 제 가운의 매듭으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어서 풀어 보라는 듯, 잠자코 내 눈을 내려다봤다. 마세준과 눈을 맞춘 채 부드러운 끈을 쥔 손에 아주 천천히 힘을 실었다. 천이 마찰하는 미세한 감각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느슨한 매듭이 풀리더니 단단한 가슴이 드러났다.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살며시 살갗을 쓸어 보았다. 뜨거웠다.

마세준은 곧 내게 입을 맞추며 입으나 마나 한 가운을 벗어 던졌다. 흘끔 시선을 던진 허리춤에는 아무것도 걸쳐져 있지 않았다. 당황스러울 만큼 커다란 것이 매서운 기세로 솟아올라 있었다. 다급한 손길은 곧 내 몸에 남은 타월마저 벗겨 냈다. 다리를 오므리려 했지만, 마세준이 버티고 있는 탓에 뜻처럼 되지 않았다. 훤히 드러난 가슴 위로 마세준의 시선이 끓는 게 느껴졌다.

“……너무 그렇게 보지 마.”

붉게 달아오른 눈가를 바라보고 있기가 힘겨워 고개를 모로 틀었다. 볼을 간질이는 베갯잇에 차라리 얼굴을 폭 묻고 싶었다.

“어떡하지.”

마세준은 내 골반을 쥔 손을 천천히 구슬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마세준이 손끝을 움직일 때마다 작은 전율이 일어 몸 깊은 곳에 쌓이기 시작했다.

“…….”

“너 너무 예뻐.”

마세준이 느릿느릿 다가와 턱을 쥐었다. 단단한 팔에 젖가슴이 짓눌려 입술 틈으로 숨을 끊어 뱉었다. 마세준의 손가락이 아랫입술을 쓸었다. 혀를 내밀어 핥았다가 힘을 주어 물었다. 타액이 묻은 손가락이 목을 훑고, 빗장뼈를 뭉근히 쓸었다가 아래로, 아래로 향했다. 가슴 둔덕 아래를 끈덕지게 쓰다듬던 손길이 이내 가슴을 가득 쥐어 올렸다.

“으읏…….”

당황한 틈을 타, 뜨거운 혀가 딱딱하게 솟은 젖꼭지를 달래듯 머금었다. 그러다가도 불현듯 요령 없이 강하게 빨아 당기는 통에 통제할 새도 없이 신음이 쏟아졌다. 단정한 잇새에 물린 가슴에 찌르르하니 소름이 일었다. 허리가 절로 움찔거렸다. 마세준은 끈질기게 내 가슴을 물고 늘어졌다. 살갗이 붉게 달아올랐고 멍울진 가슴이 아려 왔지만 멈추길 바라지는 않았다.

멍하니 천장을 보던 시선을 내려 내 가슴을 핥고 있는 마세준을 내려다보았다. 살갗과 타액이 얽히는 적나라한 소리가 객실을 울렸고, 나는 마세준의 머리칼을 가슴께로 더 내리누르며, 더한 것을 갈구하기 시작했다. 뭐든, 어떻게든 해 주었으면 했다.

“세준아…….”

애타는 목소리로 마세준을 불렀다. 마세준은 그제야 입술을 떼더니, 내 가슴골에 고개를 묻고는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타액이 흥건히 묻은 가슴이 찬 대기에 노출되자 추위에 몸이 떨렸다. 마세준은 그 내내 내 허벅지를 의도적으로 쓰다듬고 있었다. 그 손길을 따라 입술이 물먹은 길을 그리며 내려갔다. 제 어깨에 내 다리를 걸친 채, 마세준이 고개를 꺾어 무릎 안쪽에 입을 맞추었다. 입술을 짓이겨 물며 눈을 감았다. 자꾸 달뜬 숨이 새어 나왔다.

“하아…….”

어느덧 입술은 여체까지 다가와 있었다. 본능적으로 허리를 뒤틀며 벗어나려 했지만, 마세준은 어림없다는 듯 단번에 나를 저지시켰다. 그러고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한참을 그랬다. 몽롱한 눈을 뜨고 간신히 마세준을 내려다보자, 내 시선을 기다리고 있던 마세준과 눈이 마주쳤다.

따스한 숨이 비부로 퍼졌다. 마세준은 혼탁한 눈빛으로 나를 주시하며 부득불 내 음부에 제 입술을 댔다. 정점을 다독이는 마세준의 혀는 숨보다 뜨거웠다.

“으, 으읏…… 하, 아아, 앗!”

신음을 쏟으며 거칠게 몸을 들썩였다. 마세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쉴 새 없이 나를 마셨다. 간신히 눈을 뜰 때마다 마세준과 눈이 마주쳤다. 마세준이 정점 위로 혀를 놀릴 때마다 무언가가 배어 나왔고, 마세준은 그걸 없애는 게 제 임무라도 된다는 듯 새어 나온 것들을 샅샅이 삼켜 냈다. 내 숨이 가빠지는 곳에서는 더욱 집요하게 매달렸다.

“세준, 아…….”

그 짧은 말을 하는데도 숨이 끊겨 나왔다. 땀과 눈물에 젖어 엉망이 된 얼굴로 눈을 떠 마세준을 내려다보았다. 내 가슴이 부풀었다 내려앉는 것을 홀린 듯 바라보던 마세준은, 더 깊숙이 고개를 묻었다. 날 선 코끝이 비부에 닿았다. 급기야 뜨거운 틈으로 파고든 혀 때문에 몸을 떨며 숨을 멈추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미약하게 붙들고 있던 이성이 끊기며 시야가 점멸되었다.

눈을 감았다. 얼굴이 일그러졌다.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누구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단지 몸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 어떻게든 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할 즈음, 마세준이 올라와 내 얼굴을 쥐었다.

“잎새야.”

“…….”

눈물을 머금은 속눈썹을 들어 올리는 것마저 버거웠다. 뿌연 시야 틈으로 마세준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세준은 베개 옆에 늘어져 있는 내 손에 깍지를 끼며 입을 맞춰 왔다. 전해져 오는 내 향기가 낯설기만 했다. 점막과 점막이 닿았다. 불쑥 파고든 혀가 여린 살갗을 핥았다. 아쉽다는 듯 멀어진 입술에서 가느다랗게 얽혀 나온 타액이 궤를 그리다 사라졌다. 땀에 젖은 이마와 턱으로 입술이 내려앉았다 떨어졌다.

내 무릎 사이에 단단히 자리를 잡은 채로, 마세준이 콘돔을 꺼냈다. 나는 하얗게 바랜 머릿속으로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봤다. 이미 진이 빠져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커다란 손이 내 턱을 쥔 채 눈을 맞춰 왔다. 열에 젖은 얼굴이 낯설었다. 달아오른 눈가를 쓸어 보았다. 마세준과 닿은 몸 곳곳이 뜨겁고도 따스했다. 마세준이 다정한 입술을 내려 셀 수 없이 입을 맞춰 주었다. 왠지 눈물이 날 것 같다고 생각할 무렵, 거대한 끄트머리가 나를 가르고 들어섰다. 나는 마세준의 팔을 힘주어 잡은 채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버겁고 아팠다. 억눌린 소리를 내며 얼굴을 찡그렸다. 이제 더 들어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할 때마다 마세준은 기어이 더 깊이 파고들었다. 결국, 너른 가슴을 마구 두드리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마세준은 움직임을 멈추고는 내 눈물을 핥아 올리며 여체를 문질러 달래었다.

온몸을 관통하는 것은 아픔이었고, 경이로움이었다. 우리는 초점을 놓은 눈을 계속해서 마주하고 있었다. 마세준과 온전히 닿아 있는 이 순간이 가슴 저리도록 좋았다.

“잎새야, 미안해.”

“…….”

“아프게 해서 미안.”

마세준은 그렇게 내 귓가에 속삭이고는 턱에, 볼에, 입술을 내리눌렀다.

“키스해 줘.”

다시 멀어지려는 목을 껴안아 당기며 속삭였다.

“……나 안아 줘.”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매달렸다. 마세준은 내 입술을 가로막은 채 서서히 허리를 놀리기 시작했다. 정처 없이 흔들리는 몸 때문에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마세준은 어딘가 핀트가 나간 사람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부드럽게 다가오는가 하면 너무하다 싶게 몰아세울 때가 있었다. 내 안에 제 것을 쏟아 낼 때는 내 얼굴을 꼭 쥐고 눈을 맞춰 왔다. 내가 눈을 감으면 귓불을 깨물며 ‘잎새야, 나 봐 줘.’ 하고 속삭였다. 마세준은 내 다리를 벌려 쥔 채 빈틈없이 나를 삼키다가, 긴 손가락으로 아래를 메워 나를 울게 했다가, 결국에는 또 제 것을 박아 대며 내 이름을 끊임없이 불러 댔다. 나는 하얗게 번진 시야로 마세준을 응시하며 열에 단 몸을 들썩였다.

모로 누워 있는 내 뒤에서 마세준이 몸을 치받는 동안, 등 뒤로 손을 뻗어 마세준의 팔에 손톱을 세웠다. 우리는 밤이 저무는 것도 모르고 몸을 맞대고 있었다. 도무지 아침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콘돔이 모두 동나고 나서야, 나는 마세준의 품에 안긴 채 눈을 감을 수 있었다. 남들도 다 이런 섹스를 하는 걸까, 땀과 체액으로 젖은 시트가 온통 축축했다.

* * *

낯선 목소리에 어렵사리 눈을 뜨자, 가운 차림으로 문가에 서 있는 마세준의 뒷모습이 보였다. 객실 문은 살짝 열려 있었다. 마세준은 갓 씻고 나온 모양인지 젖은 머리칼을 뒤로 넘긴 채였다.

나는 그런 마세준의 뒷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봤다. 잠이 깨일수록 지난밤 일들이 뇌리를 스치며 내 낯을 뜨겁게 달궜다. 그런 짓을 벌였으니, 이제 마세준 얼굴을 어떻게 봐? 엄마 얼굴은? 느닷없이 현실감이 덮쳐 오자, 긴장감에 침이 절로 꼴깍 넘어갔다.

한편 마세준은 어젯밤 엉망으로 방치해 둔 옷가지들을 누군가에게 건네더니 조곤조곤 대화를 이어 나갔다. 짙은 피로감이 느껴지는 낮은 음성이 못내 야했다. 가슴이 고장 난 듯 뛰었다. 이불은 턱 바로 아래까지 야무지게 덮여 있었지만, 나는 괜히 이불 속에서 몸을 한 번 끌어안았다. 몸 구석구석 진한 근육통과 미열이 남아 있는 탓에, 그 작은 몸짓에도 몸이 비명을 질러 댔다.

어제는 매 순간이 충동과 변수의 연속이었다. 갑작스레 떠난 여행, 줄줄이 뒤를 돌아야 했던 와중에 한결같았던 마세준의 미소, 커다랗고 까만 우산, 마세준이 차가운 몸을 녹이는 소리, 빗방울이 묻은 비닐봉지, 그 속에 켜켜이 쌓여 있는 마세준의 마음.

어젯밤, 나는 저 노란색 소파에 앉아서 끊임없이 생각했다. 마세준이랑 이 세상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른 건 아무래도 좋다고. 가장 큰 충동과 변수는 바로 그거였다. 언젠가 마세준과 밤을 보내게 된다면, 그건 까마득한 미래의 일이 될 거라고 막연히 짐작했었는데. 그나저나 쟨 도대체 콘돔을 몇 개씩 들고 다니는 거야. 비죽 웃음이 샜다.

나는 곧 이불 속으로 고개를 파묻었다. 다시 어제로 돌아간대도 나는 한사코 마세준과 손을 잡고 집을 나서서 비를 맞았을 것 같다. 마세준을 제대로 쳐다도 보지 못하는 주제에 ‘너랑 하고 싶어.’ 하고 말할 것 같다. 그리고 또다시 마세준과 이 세상 가장 가까이 닿는 벅찬 순간을 누릴 것 같다. 후회는, 조금도 되지 않았다.

대화는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었다. 나는 이불 밖으로 빼꼼 고개를 빼 들고 창으로 시선을 틀었다. 정직하게 쳐져 있는 커튼 탓에 시간을 짐작하기가 어려웠지만, 최소한 비는 완전히 멎은 듯했다.

협탁 위에 놓인 시곗바늘은 오전 10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제시간에 체크아웃하려면 당장에라도 일어나 씻어야 했다. 하지만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마세준의 뒷모습만 멀거니 보는데, 별안간 문이 닫혔다. 세상에. 나는 잽싸게 눈을 닫아걸었다.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눈을 너무 꽉 감아서도 안 됐고, 그렇다고 어설프게 감아서도 안 됐다.

딱딱한 호텔 슬리퍼가 바닥에 쓸리는 소리, 깨어 있는 거 다 안다는 듯 옅게 웃는 소리가 났다. 마음이 불시에 간질거렸다. 가슴속에서 따뜻한 구름이 팽창하는 것 같았다. 곧 침대가 기울더니 마세준이 이불을 젖히고 들어왔다. 아니나 다를까 마세준은 벌거벗은 내 몸을 터져라 껴안았고, 나는 결국 마세준의 품에서 얼굴이 눌린 채 눈을 떴다.

“잘 잤어?”

마세준은 전에 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 서늘하고 단단한 몸이 왜 이렇게 따뜻하게 느껴질까. 마세준은 내 머리 위에 대고 턱을 천천히 비비면서, 그만 일어나라는 듯 아양을 떨었다.

“응…….”

까끌거리는 목소리로 마지못해 대답하자, 마세준은 작게 웃으며 내 머리카락을 쓸어 주었다.

“몸은 괜찮아?”

“……두들겨 맞은 것 같아.”

나도 모르게 툴툴거리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공연한 투정도 조금은 묻어 있었던 것 같다. 살짝 과장된 말이긴 했지만, 전혀 없는 소리도 아니었다. 정말로 몸 곳곳이 아팠다. 마세준은 몸을 물리더니, 자상하게 내 볼을 쥐고 자못 진지한 얼굴로 날 살폈다. 마세준의 걱정스러운 눈길을 그대로 따라가다가 곧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지난밤의 전경이 다시금 벼락처럼 뇌리를 스쳤다. 미쳤어, 정말 미쳤었나 봐. 어떻게 그런 짓을 했지.

“…….”

“미안해, 어제는 내가 어떻게 됐던 것 같다.”

마세준은 내 마음도 모르고, 내 눈을 바라보며 사과를 하고 있었다. 정신을 놓은 채 가장 깊숙한 것들을 꺼내 나눴을 때보다 지금이 더 부끄러웠다. 볼 근육이 경직되고, 귀 어딘가에서 빠르게 심장 박동이 울렸다. 하지만 낯이 뜨거운 건 뜨거운 거고, 마세준이 어제의 내 감정을 오해하는 건 정말 싫었다. 나는 마세준의 눈빛을 피해 눈을 슬쩍 내리깔았다. 눈두덩이로 따갑게 내려앉는 시선을 모른 체하며 천천히 입술을 뗐다.

“그래도…….”

“…….”

“진짜 좋았어.”

아주 작게 말하자, 마세준은 내 턱을 살짝 틀어서 저와 눈을 맞추게 했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이럴 땐 어련히 좀 놔둬 주면 좋겠건만.

“잎새야.”

“…….”

“내가 더 잘할게.”

조금만 더 잘했다가는 아주 사람 잡을 판이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도망치듯 다감한 품으로 파고들었다. 뻔뻔하게 고개를 든 마세준의 분신을 모른 척하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 * *

그렇게 누운 채로 꽤 긴 단잠을 잤다. 깨끗하게 세탁된 옷을 입고 늦은 체크아웃까지 마친 우리가 향한 곳은, 근방의 식당이었다. 호텔 직원에게 추천받은 건 다 먹어 봐야지 않겠느냐며, 마세준은 메뉴를 네 개나 주문했다. 음식은 아주 맛있었다. 어제 힘깨나 쓴 마세준도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접시를 비워 나갔다.

“자.”

나는 작게 썰린 토마토를 포크로 찍어 건넸다. 사태 파악을 마친 마세준은 얼른 내 손목을 낚아채 갔다.

“이잎새.”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맞추자, 마세준은 얼굴에 좋아 죽겠다고 써 붙인 채 작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마세준이 재촉할 때마다 나는 몇 번이고 토마토를 대령했다. 이게 뭐라고 저렇게 좋아할까 싶어서, 기꺼이 그렇게 했다. 마세준을 웃게 하는 거라면 무엇이든 해 주고 싶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나란히 손을 잡은 채 기차에 올랐다. 나는 마세준의 오른팔을 껴안은 채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늦잠을 잔 탓에 출발이 늦어졌다. 아무래도 오늘은 조금 늦은 저녁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실 텐데 죄송해서 어쩌지. 그나저나, 할아버지한테는 제대로 말씀드렸을까.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입이 바짝 타들어 갔다.

“마세준, 어제…… 할아버지한테 따로 연락 드렸어?”

“응, 걱정하지 마.”

“뭐라고 말씀드렸어?”

“사실대로 말씀드렸어. 비가 너무 많이 오는 데다 옷이 젖어서 아무래도 하루 자고 가야 할 것 같다고.”

나는 낯을 굳히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걱정돼?”

마세준은 내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며 물었다.

“그런 게 아니고……. 할아버지는 일 년 내내 너만 기다리고 계시는데, 괜히 나 때문에 손주 얼굴도 제대로 못 보시는 것 같아서.”

“이번에는 꽤 갑작스레 온 거라 할아버지도 일하느라 바쁘셔. 왜 그런 생각을 해. 너 봐서 마냥 반갑고 좋다고 하시던데.”

“…….”

“마음 써 줘서 고마운데, 그런 걱정은 하지 마.”

“……알았어.”

마세준은 내 머리칼을 가만히 넘겨 주면서, 그 내내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얼굴 닳아, 왜 그렇게 봐.”

내가 가볍게 웃음을 흘리며 묻자,

“안 듣는 게 나을걸.”

마세준이 씩 웃으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참나, 이제 때도 장소도 안 가린다 이거지. 나도 평소 같았으면 샐쭉 눈꼬리가 올라갔을 텐데, 오늘은 눈치도 없이 입꼬리가 스멀스멀 올라갔다. 창밖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마세준이 낮게 웃는 소리에 가슴이 지랄발광을 했다. 코 제대로 꿰였다 싶었다. 이제 마세준이 뭔 개소리를 해도 화를 못 낼 것 같다. 변태성이 전염도 되던가……. 환한 대낮에 내 머릿속도 난리가 아니었다. 이게 다 마세준 때문이다.

한참이 지난 후에 흘끔 돌아보자, 마세준은 도저히 미워하지 못할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코 옆에 앉아 있는데 또 뭐가 저렇게 애틋해? 나는 얼굴을 붉히며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옆얼굴로 마세준의 시선이 고스란히 와 박히는 게 느껴졌다. 아무렇게나 화면을 누르는데, 마세준이 불쑥 내 휴대폰으로 손을 뻗었다.

“왜?”

나는 당황해 마세준을 바라봤고, 마세준은 말없이 내 휴대폰을 상하로 뒤집어 주었다. 그러고는 내 눈가에 담백하게 입을 맞췄다.

“귀여워.”

“……별게 다 귀엽네.”

그러고 보니 귀엽다는 말은 처음 들어 본다. 그런데 그게 꼭, 잡아먹고 싶다는 말로 들리는 건 왜일까.

* * *

할아버지와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우리는 각자의 방에 몸을 뉘었다. 마세준이 먼저 그렇게 하자고 제안했고,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지은 죄가 있으니 몸을 사리는 게 맞았다. 그런데 인간이 참 간사했다. 고작 며칠 끌어안고 있었다고 어찌나 침대가 허전하던지,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비가 그쳐 달빛이 어린 밤하늘도 지나치게 낭만적이었고, 그리고, 나는 마세준의 온기가 그리웠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 베개 밑에 놓아둔 휴대폰을 꺼냈다.

{마세준, 자?}

화면이 눈부셔 오만상을 찌푸리고는 문자를 보냈다. 옆방에서 알림이 울리는 게 그대로 들려왔다.

[아직]

[잠 안 와?]

몇 초도 되지 않아서 연달아 답장이 왔다.

{어}

답장을 보내고 잠시 멀뚱히 있자니, 이번에는 전화가 걸려 왔다. 아니, 꼴랑 벽 하나 사이에 두고……. 이건 좀 염병 천병이 아닌가 싶었다. 게다가 이런 무의미한 전력 낭비는 반인류애적 행위에 가까웠다. 나는 전화를 받는 대신 침대에서 일어나 마세준 방을 박차고 들어갔다.

“됐어, 그냥 같이 잘래.”

노크도 없이 문을 열었다. 침대에 누워 있던 마세준이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고, 나는 문을 걸어 잠근 뒤 마세준 옆에 엎드려 누웠다.

“안 건드릴 테니까, 너도 나 건드리지 마. 딱 손만 잡아. 알겠지?”

“…….”

“대답 안 해?”

마세준은 끝끝내 대답을 안 했다. 그러고는 황당하다는 듯 웃어 댔다. 내가 뚫어져라 바라보자, 마세준은 곧 큰 결심을 한 사람처럼 모로 누워 내 등을 토닥여 주기 시작했다.

“얼른 자.”

마세준 잠옷 끄트머리를 손에 쥐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눈꺼풀이 점차 무거워질수록 눈을 뜨는 빈도도 뜸해졌다. 그러다 세상 말똥말똥한 눈으로 나를 보는 마세준과 눈이 마주쳤다. 나 좀 잘 자겠다고 마세준을 괴롭게 하는 게 미안했지만, 다시 일어나 방을 건너가기에는 너무나도, 너무나도 졸렸다. 어젯밤 모자랐던 잠까지 배로 쏟아져 내렸다.

“잎새야.”

“…….”

“이잎새.”

속삭이듯 퍼지는 목소리에 단추 구멍만 하게 눈을 뜨자, 마세준이 나를 바라보며 머리칼을 넘겨주고 있었다.

“잘 자, 우리 잎새.”

“…….”

마세준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나를 안아 주었다. 기대어 있는 너른 가슴 어딘가에서 심장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 선명한 울음이 내 가슴을 더 바삐 뛰게 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마세준 품에 꼼짝없이 갇혀 있었다. 해는 중천에 떠 있었고, 마세준의 품은 더없이 따뜻했다. 다만, 아랫배에 와 닿는 그게……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숨통을 좀 터 보려고 마세준의 가슴팍을 밀어내자, 마세준이 곱게 감겨 있던 눈을 떴다.

“야아, 좀 일어나 봐. 왜 아침부터 이게…….”

“으음.”

마세준은 졸음이 묻은 얼굴로 나른하게 웅얼거렸다. 낮게 갈라지는 목소리에 괜히 가슴이 설렜다. 내가 복부 즈음에서 손을 주억거리자, 마세준은 감을 잡았는지 뒤늦게 피식 웃었다.

“꿈에 너 나왔거든.”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러니까, 그제 그 난리를 하고 또 그렇고 그런 꿈을 꾸셨다.

“이것 좀 어떻게 해 봐, 자꾸 닿아.”

“아침부터 너 보니까 좋은가 봐.”

“…….”

“그렇게 꼼지락대면 더 서, 잎새야.”

마세준은 덜컥 내 손을 잡아채더니 능글맞게도 웃어 댔다. 그러고는 씩 웃으며 내 몸 위로 올라탔다. 내가 영문도 모른 채 놀란 눈을 깜빡이는 동안, 제 옷을 벗어 던진 마세준이 내 잠옷 단추를 끄르기 시작했다.

“잎새야, 몇 시야?”

“……아홉 시.”

느닷없는 물음에, 나는 벽에 걸린 시계로 잠시 시선을 돌려 답했다. 그 짧은 새 단추를 모두 풀어낸 마세준이 내 턱을 쥐고 자신을 보게 했다.

“그거 무슨 뜻인지 알아?”

“…….”

“여기, 우리밖에 없다는 뜻.”

탄탄하게 근육이 올라붙은 몸을 보며 속으로 감탄을 쏟아 내는 와중에, 살짝 트인 목 언저리로 마세준의 숨결이 닿았다. 벌써 발끝이 저릴 정도로 좋았다. 하지만 분위기를 타 유야무야 일을 치를 수는 없었다. 나는 머뭇거리며 입술을 뗐다.

“……콘돔도 없잖아.”

“응, 안 넣을게.”

세상에. 딱히 외설적인 말도 아닌데 별안간 얼굴이 불탔다. 입술이 다가왔다. 뜨겁게 젖은 숨을 나누었다. 마세준의 손이 어느새 드러난 내 가슴을 망설임 없이 그러쥐었다. 따끈하고 부드럽게 녹아 있던 정점이 빳빳이 고개를 들자, 마세준은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내 가슴으로 입술을 옮겨갔다.

“흐읏…….”

매끈한 점막이 젖꼭지 위를 스쳤다. 끈적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너 엄청 젖었어. 알아?”

마세준은 내 허벅지 안쪽으로 코를 박으며 그렇게 말했다. 비부를 벌리며 살며시 구슬리는 손길에 또 어김없이 몸이 덜덜 떨려 왔다. 안 넣겠다는 건 딱 그것뿐이었는지, 뻔뻔한 마세준의 손가락이 곧 나를 가르고 들어섰다. 젖어 질척이는 소리에 뺨이 달아올랐다. 마세준은 곧 내 무릎 사이로 고개를 파묻었다. 어떡해. 대낮도 아니고, 이 아침에. 나는 두 손으로 입을 막고, 자꾸만 들썩이는 허리를 어쩔 줄 몰라 하며 반쯤 울었다. 어지러운 시야 속에서 천장이 멋대로 이지러졌다.

한참이 지나 마세준이 제 입가를 쓱 닦아 내며 마침내 위로 올라왔을 때, 나는 마세준의 고개를 다급히 끌어안아 입을 맞췄다. 땀이 오른 살갗이 마주 닿는 게 왜 그렇게 벅차도록 좋은 건지 모르겠다. 그저, 마세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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