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균 중의 균 마세균, 잠복기만 15년-4화 (4/17)

4장.

네 살 때, 한국에 잠시 들어왔다가 이잎새를 만났다. 아니, 만났다고는 하는데 안타깝게도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한 일주일도 못 있다 돌아갔으니까. 열 살이 되어 영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완전히 귀국했을 때, 공항 게이트에서 이잎새를 만났다. 그게 한국에서의 내 첫 기억이다.

“이잎새, 너 세준이한테 인사 안 해? 어머, 얘 좀 봐. 얘가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잎새 너 세준이, 세준이 노래를 불렀잖아. 세상에, 진짜 얘 부끄럼이라도 타나 봐.”

아주머니는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뒤로 반쯤 꺾어 이잎새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그때 나는 ‘잎새’가 무슨 뜻인지도 알지 못했다. 입새? 입세? 그게 사람 이름인가? 조금 이상한데.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때 이잎새는 제 이름처럼 초록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연두색 머리핀을 꽂은 머리카락은 산발이라는 말도 갖다 붙이기 민망할 만큼 마구 헤집어져 있었고, 다리에는 까진 흉터가 한둘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저 보통내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짐작만 어렴풋이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주머니 뒤로 숨어들던 얼굴이 꽤 심술궂어 보였다. 으레 그런 행동은 수줍음이나 낯가림 따위와 어울리는 것이지, 심술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나는 경계를 풀지 않은 채, 틈이 날 때마다 이잎새를 쳐다봤다. 그것은, 말하자면, 원초적인 호기심에 가까웠다. 내 좁디좁은 데이터 안에, 지금껏 저런 유형의 인간은 없었다.

우리 부모님과 이잎새네 부모님은 재회 인사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름 모를 사람들은 쉴 새 없이 우리를 지나쳐 갔다. 장내 방송이 이따금 울리던 그 소란스러운 공항 한구석에서, 몇 번 정도 이잎새와 눈이 마주쳤다. 마지막으로 눈이 마주쳤을 때는, 빼꼼 얼굴을 빼든 이잎새가 내게 혀를 내밀었다. 그러고는 히죽히죽 웃었다. 쟤 아무래도 영 이상한데. 그게 이잎새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잎새, 일어나. 다 왔어.”

집 근처에 다다라 아주머니가 이잎새를 깨웠을 때, 이잎새는 입을 벌린 채로 잠을 자고 있었다. 이잎새는 그 소리에 번뜩 눈을 뜨더니, 언제 잤냐는 듯, 이상한 입 모양으로 눈을 문지르고는 곧 댕그랗게 눈을 떴다.

우리 가족은 이잎새네 옆 동에 짐을 풀었다. 얼마 안 가 우리 부모님은 카페를 열었고, 그 뒤로는 별일이 없는 한 이잎새네 집에 나를 맡겼다. 나는 거의 매일 이잎새를 만났다.

어색함은 짧았다. 이잎새 덕이었다. 이잎새는 내게 다정하게 대해 주었다. ‘세준아, 너 이거 가질래?’ 그러면서 미니카나 딱지 같은 장난감을 곰살맞게 내 손에 쥐여 주기도 했다. 대부분은 낡디낡은 것이었다. 그만큼 아끼는 것이었겠거니,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며 그것을 받아 들었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부터는 줄곧 이잎새와 같이 하교했다. 함께 저녁을 먹고, 부모님이 밤늦게 나를 데리러 올 때까지 이잎새와 놀았다. 그 무렵부터 이잎새는 종종 이상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눈이 예쁘다며 내 얼굴을 들여보다가도 갑자기 날 밀치는가 하면, 어느 날엔가는 ‘야! 너 정말로 나 기억 안 나? 어?’ 팔짱을 끼고 나를 노려보기도 했다.

이잎새의 주관하에 첫 번째 받아쓰기를 한 날이었다. ‘이잎새 써 봐. 내 이름 말이야.’ 내가 어설픈 필체로 ‘이입세’라고 쓰자, 이잎새는 도끼눈을 뜨고는 나를 노려봤다. ‘너는! 세균이야! 마세균!’ 그 이후로, 이잎새는 화가 날 때마다 나를 세균이라고 불렀다.

이잎새는 내가 어설픈 한국말을 할 때면 유독 씩씩거리며 화를 냈다. ‘선생님이가 말고! 선생님이,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해야지. 세준이 너 이거 오늘 다 읽고 나한테 검사받아.’ 그렇게 동화책을 던져 주곤 했다.

어느 날은 허리춤에 손을 얹고는 ‘소리 내서 읽어 봐, 어서.’ 그러기도 했다. 아무래도 선생님 놀이에 맛을 들인 것 같아, 나는 대충 장단을 맞춰 주었다. 가끔은 ‘잘했어, 세준아. 선생님이 백 점을 줄게요.’ 그러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이따금 빨간 하트 모양 스티커를 내 손등에 붙여 주곤 했는데, 그건 최상급의 칭찬이었다.

어느 날엔가는 애기 놀이를 하자더니 나를 침대에 눕히고는, 그 옆에 앉아 내 가슴팍을 두드리며 자장가를 불러 주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수없이 들었지만, 어이없게도 가끔은 정말 잠에 빠지기도 했다. 눈을 뜨면 침대맡에 엎드려 쌕쌕거리며 잠을 자는 이잎새가 보였다.

또 다른 어느 날은, ‘이거 어떻게 읽어?’ 어디서 났는지 영어 동화책을 가져와서는 그렇게 물었다. 이잎새는 연이어 수십 개의 단어를 물음으로써, 결국 내 입에서 ‘읽어 줄까?’라는 말이 나오게 했다. 이잎새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가 책을 읽는 내내 그 앞에 엎드려 손으로 꽃받침을 괴고는, 내 입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가끔은 그런 평화로운 순간이 있기도 했다. 그러니까, 가끔.

5학년이 되면서 나는 이잎새와 같은 반이 되었다. 그때부터 이잎새는 좀 더 속을 알 수 없는 인간이 되어 갔다.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도 울면서 내 욕을 했다. 길 가다 넘어져도 내게 화를 냈다. 왜 자기를 안 잡아 줬느냐고, 다 마세균 너 때문이라고. 그렇게 부득불 자기 설움을 다 내 탓으로 돌렸다. 종래에는 완벽하게 세뇌당해, 모든 게 정말 내 탓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학교에 가서는 또 내 자랑을 했다. ‘야, 너네 그거 알지? 얘 영어 진짜 잘한다? 장난해? 당연하지, 김동현보다 훨씬 잘하지. 얘는 원어민 선생님이랑도 막 말하거든?’ 나는 이잎새 앞에서 누군가와 영어로 대화한 적이 없지만, 이잎새는 틈만 나면 그렇게 내 면을 세우기 바빴다.

5학년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부터는 ‘내가 훨씬 더 많이 먹는데 왜 네가 나보다 큰 건데!’ 하고 소리치며 바득바득 이를 갈기도 했다. 그 이후로 이잎새는 내가 먹고 있는 건 그것이 무엇이든 뺏어 가서 제 입에 넣어야 성이 풀렸다. 내 국어 성적이 제 성적을 뛰어넘었다는 것이 분노의 진짜 이유였다. 아마도, 더는 선생님 놀이를 못 하게 된 것에 대한 공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왜 우리 엄마는 너만 예뻐하냐’며 빽 소리를 지른 적도 한두 번은 아니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괜히 미안해서 초콜릿이나 사탕을 쥐여 줬다. 그러면 나를 노려보면서도 야금야금 그것을 먹는다. 어느 날은, 그게, 그렇게 귀여웠다. 자꾸 봐도 변함없이 그랬다. 왜인지 좀처럼 그 이유를 몰라, 몇 날 며칠을 의아해하기도 했다.

* * *

의외로, 의문은 아주 쉽게 풀렸다.

그날은 이잎새가 하도 번데기를 먹고 싶다고 조르는 통에, 나는 먹지도 않는 번데기를 함께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게 분식점에 간다고 있는 것도 아니고, 가끔 길가에서 본 것 같았는데, 막상 찾으려니 어딜 가야 할지도 감이 안 잡혔다. 찾다 찾다 결국 허탕을 치고 집에 돌아가려는데,

“맞다! 도서관!”

이잎새가 손뼉을 치며 도서관을 생각해 냈다. 도서관 앞에 가끔 토스트와 번데기를 파는 아저씨가 오시는데, 그게 떠오른 모양이었다. 말 그대로 가끔이지만, 나는 이잎새의 단호한 손에 별수 없이 끌려갔다.

불행히도 도서관 앞에는 트럭 한 대 없었다. 이잎새는 잔뜩 풀이 죽어서는 입술이 댓 발 튀어나와 있었다. 도서관을 벗어나는 내내 쿵쿵 소리가 났다.

“잎새야, 내일 또 와 보자. 내일은 오실 수도 있잖아.”

지금 생각하면 낯이 다 뜨거워지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잎새에게 제법 살갑게 대하고는 했다.

“내일은 아무 소용 없어! 오늘, 지금 먹고 싶단 말이야!”

“그래. 내가 미안해.”

져 주는 것도 다반사였다. 그때, 어디선가 삐약삐약 소리가 났다. 눈이 마주친 우리는 곧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다가갔다. 원체 동물을 좋아하는 이잎새는 거의 뛸 듯이 걷고 있었다. 본관 후미에 작은 관리사무소가 있었는데, 그 문 옆에 놓인 파란색 이삿짐 상자에서 소리가 나는 듯했다.

“세상에, 병아리가 아니라 야옹이잖아?”

커다란 상자 속에는, 밖으로 나오겠다고 아등바등하고 있는 어린 고양이가 보였다. 플라스틱 그릇에는 사료와 물이 담겨 있었고, 저 구석에 배변 패드도 놓여 있었다. 이잎새는 좀처럼 고양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상자 속으로 팔을 넣더니, 거품이라도 만지는 사람처럼 조심조심 고양이를 어루만졌다.

“아, 부드러워. 애기야, 너 진짜 귀엽다. 너 몇 살이야?”

딱 봐도 아까 태어난 애한테 나이를 왜 묻는 건지 모르겠다. 많이 봐 줘야 삼사 개월 됐을까 싶은 아기 고양이였다.

“애기야, 엄마는? 엄마는 어디 가셨어? 왜 여기 혼자 있어?”

이잎새는 처음 듣는 다정한 목소리로 아기 고양이를 쉴 새 없이 불러 댔다.

끼익 소리와 함께 관리사무소 문이 열린 것은 그때였다. 한 손에 스텐 컵과 칫솔을 든 관리인 아저씨는 사람 좋게 웃으며 이잎새를 쳐다보았다.

“학상, 괭이가 귀여운감?”

“네, 너무 귀여워요. 얘 여기에서 살아요?”

이잎새는 아저씨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려, 지난주에 어미가 죽어 불고 혼자 된 겨. 딱하긴 헌디, 내가 키울 상황은 못 디야. 털 알레르기가 있어 놔서.”

“그러면, 계속 밖에서 살아야 해요?”

“아 굶는 것보다야 이것이 나불재. 좌우지간 고얀 구석이 있는 놈이여. 개 사료를 좀 얻어다 먹였는디, 잘 먹들도 않어.”

아저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쯧쯧- 혀를 찼다.

“아저씨, 제가 이 냥이 데려가면 안 돼요?”

“잉?”

“우리 엄마 아빠랑 얘도 고양이 진짜 좋아해요. 우리는 털 알레르기도 없어요. 그리고 저 세뱃돈이랑 용돈도 많이 모아 놨고요! 병원도 맨날 데려갈 수 있어요!”

“뭐, 나야 관계 없는디. 부모님헌티 허락도 안 받고 홀랑 데려간단 말여? 그럼 쓰나.”

“지금 물어볼게요!”

이잎새는 신나서 몸을 일으키더니, 대뜸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아, 핸드폰 달라고. 엄마한테 물어봐야지.”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이잎새는 비밀번호를 순식간에 누르더니, 아주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속전속결로 마무리되었다.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응가 치우고, 모든 일을 이잎새와 내가 도맡아 한다는 조건하에 협상이 체결되었다. 나는 동의한 적이 없지만 말이다.

“아저씨! 엄마가 이리로 온대요!”

이잎새는 너무 들떠 얼굴이 다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방방 뛰며 그렇게 말하고는, 또 고양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애기야, 누나네 집에 가자? 누나가 맘마도 주고, 목욕도 시켜 주고, 자장가도 불러 줄게.”

“냐아-”

고양이는 꼭 알아듣기라도 했다는 듯 한 번 울었고, 이잎새는 ‘들었어? 애기가 대답한 거 들었어?’ 그러면서 또 귀여워 죽겠다는 듯 발을 굴렀다.

머지않아 아주머니가 오셨고, 우리는 고양이를 담요에 감싸 병원으로 데려갔다. 충분히 먹지 않아 몸이 조금 마른 것을 제외하고는, 다행히 아픈 곳은 없었다. 기본적인 검사를 마친 뒤 우리는 바리바리 짐을 들고 이잎새네 집으로 향했다.

커다란 플라스틱 화장실에 모래를 부어 주고, 새로 산 밥그릇에 사료와 물도 담아 주었다. 고양이는 집에 온 직후에는 캐리어에서 꼼짝을 안 하더니, 우리가 가만히 모른 체하며 기다리자 슬금슬금 거실로 기어 나왔다.

그러고는 얼마 안 가 내 다리를 타고 놀기 시작했다. 꼬물꼬물 움직이는 게 귀엽기는 했다. 토끼 같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피식 웃으며 몸을 쓰다듬었다. 고양이는 기어코 내 어깨까지 타고 올라와서는 크릉크릉- 코 고는 듯한 소리를 내며 내게 몸을 비볐다.

이잎새는 뚱한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왜 너만 좋아해? 이상해. 내가 말도 더 많이 걸고, 더 예뻐해 주는데!”

“잎새 네가 화나 있어서 그런 거 아니야?”

“내가 언제!”

이잎새가 대뜸 언성을 높이자, 나는 쉿- 조용히 하라는 듯 내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이잎새는 반문은 하지 못하고, 한숨을 쉬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애기야, 누나한테 오면 안 돼? 저 형아보다 누나가 더 착한데 너는 왜 형아만 좋아해?”

그러더니 철퍼덕, 앉아 있는 내 옆으로 누워 고양이 꼬랑지만 간신히 만져 댔다. 아직도 내 턱에 얼굴을 비비고 있는 고양이를 살며시 잡아다, 이잎새의 곁에 놓아주었다.

이잎새는 헤죽헤죽 웃었다. 고양이는 손쉽게 이잎새의 몸 위로 오르더니, 발장난을 좀 하다가 곧 이잎새 품에 누웠다.

“야, 얼른 봐 봐. 애기 자.”

이잎새는 내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소리도 없이 그렇게 속삭이고는, 고양이를 살금살금 만지다 눈을 감았다. 다른 한 손으로는 아직 내 옷자락을 쥐고 있었다.

나는 꼼짝 없이 앉아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큰일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귀엽다는 아기 고양이보다 백배는 커다란 이잎새가, 그보다 백배는 더 귀여워 보였다.

의문은 그렇게 풀렸다.

* * *

내 마음을 자각하게 된 뒤로는 이잎새를 보기가 부쩍 껄끄러웠다. 그건 부끄러움과는 달랐다. 나는 다만, 이잎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덕분에 이잎새는 화가 늘었다. 왜 대답을 안 하느냐, 왜 나랑 안 놀아 주느냐, 재수 없다, 너 이제 산초 안 보여 준다. 그런 투정과 귀여운 겁박을 매일같이 퍼부었다.

어려웠다. 어떤 목소리로 이잎새를 불러야 할지, 이잎새를 바라볼 때는 어떤 눈을 해야 할지. 하나도 모를 노릇이었다.

예전처럼 한 우산을 쓰고 나란히 걷느니 차라리 혼자 비를 맞는 게 속 편했고, 같이 어설픈 레슬링을 하는 건 이제 꿈도 못 꿨다. 뭔가가 먹고 싶어진 이잎새가 빨리 가자며 행여나 내 허리춤을 껴안고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날에는, ‘알았다고, 간다고.’ 하며 휑하니 그 손을 풀어내기 바빴다.

숱하게 불러 온 이잎새의 이름을 입술에 담을 때마다 번번이 가슴이 뻐근해지기 일쑤였다. 나는 성을 붙여 이잎새를 부르기 시작했다. ‘잎새야.’ 그렇게 불렀다가는 내 마음이 순식간에 탄로 날 것 같았다. ‘이잎새.’ 되도록 건조하게, 그렇게 부르는 것만도 충분히 고역이었다.

그러니 이잎새가 뚱한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볼라치면 괜히 속이 찔려 시선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고는 무마한답시고 툴툴거렸다. 결국, 나는 이잎새가 내게 그러하듯 틱틱대거나 공연히 심술을 부리게 되었다.

그럴수록 이잎새는 내게 더 자주 화를 냈다. 상관없었다. 눈 끝을 치켜들며 나를 노려보는 얼굴도 마냥 예뻤다. ‘아,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니까.’ 그러면서 색연필을 앗아 가는 손길에도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야 마세준, 떡볶이 먹고 가자. 어? 떡볶이이이.’ 하고 손목을 덥석 붙잡거나 목을 조르며 몸을 붙여 오기라도 하는 날에는, 내 얼굴은 가관이 되었다.

가끔은 이잎새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기 어려웠다. 보는 줄도 모르고 보고 있는 날이 파다했다. ‘뭘 봐?’ 하고 날 선 시선을 보내는 이잎새와 눈이 마주치면, 그제야 간신히 눈을 돌릴 수 있었다.

* * *

[야 나한태ㅐ 문자보애봐]

엉성한 문자를 받자마자 피식 웃음이 터졌다. 처음 본 번호였지만 누군지는 뻔히 알고 있었다. 뒷자리가 이잎새 생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며칠 전부터 ‘나도 이제 휴대폰 생긴다.’라며 자랑을 자랑을 하더니, 기어이 거머쥔 모양이었다. 볼 때마다 신나서 웃고 있는 것도 좋았지만, 이렇게 연락이 오는 건 더 좋았다. 베개와 머리카락 틈으로 손을 괴어 넣고 휴대폰 화면을 멀거니 바라보다 답장을 보냈다.

{누구}

또 뭐라고 성을 낼까 궁금해서 괜히 모르는 척을 했더니,

[ㅗㅗㅗㅗㅗㅗ]

잽싸게 욕설이 날아왔다. 이잎새, 꼭 이런 건 오타도 안 내지. 더 기다릴 것도 없이 얼른 전화를 걸었다. 밋밋한 통화 연결음이 몇 번 이어지는 동안 얼굴이 홧홧해졌다.

-야! 너 죽을래? 딱 보면 몰라?

다짜고짜 따지듯 묻는 목소리에 등신같이 웃음이 나왔다.

“몰랐는데, 너인 줄.”

-뒤에 번호 내 생일이잖아!

수화기 너머 목소리를 처음 듣는 것도 아니었는데, 괜히 가슴이 부풀었다. 이제 언제든 이잎새 목소리를 듣고 싶을 때마다 전화할 수 있었다. 잘 받아 줄지는 미지수였지만.

“그랬나.”

-이 씨……. 까먹을 걸 까먹어라. 아무튼, 저장해 놔. 공주님이라고 저장해. 알았어?

대번에 전화가 뚝 끊겼다. 나는 웃으며 이잎새 전화번호를 0번에 저장해 두었다. 단축 번호라고는 이잎새가 전부였다. 혼잣말로 이잎새 번호를 여러 번 읊었다. 흔하디흔한 전화번호가 이토록 특별하게 느껴질 줄은 나도 몰랐다. ‘잎새’ 그렇게 저장된 걸 보기만 해도 자꾸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다 욕심이 났다. ‘우리 잎새’ 그렇게 이잎새 이름을 바꾸어 두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잎새는 나를 뭐라고 저장했으려나. ‘ㅗ마세균ㅗ’ 그런 정도만 아니면 감지덕지겠는데. 신세가 처량한 것도 모르고 휴대폰을 보면서 혼자 몇 번을 웃었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마음은 더 분명하고 묵직한 것으로 변모해 갔다. 마치 정해진 수순처럼, 이잎새와 함께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잎새를 향한 내 감정도 무섭게 덩치를 키워 나가고 있었다. 우리의 관계에 어떠한 변화가 있기는 했느냐고 묻는다면, 애석하게도 그렇지는 못했다. 다만 우리는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든 말이다.

“세준아, 세준이는 아무래도 이 사이즈가 낫겠다. 벌써 그리 꼭 맞으면 못 써. 그건 두고, 와서 이거 입어 봐. 응?”

“네.”

아이돌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은 교복 매장 안은 중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학생들과 학부형들로 바글거렸다. 이잎새가 탈의실에서 교복을 갈아입는 동안, 아주머니는 내 어깨에 재킷을 다시 걸쳐 주셨다.

“이잎새, 얘가 왜 이렇게 못 나와? 여기 줄줄이 학생들 기다려. 아직 멀었어? 얼른 나와.”

“어. 다 입었어.”

새로 걸쳐 본 재킷 소매가 역시나 좀 짧은 것 같아 끄트머리를 잡아 살짝 당겨 보는데, 탈의실에서 한참을 미적거리던 이잎새가 드디어 문을 열고 나왔다. 이잎새는 신발을 아무렇게나 구겨 신고 서서, 눈가가 발갛게 익어서는 땅에 뭐 맡겨 놓은 사람처럼 바닥만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이잎새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야, 우리 딸 다 컸네. 벌써 이렇게 교복을 다 입고. 응? 어디 한번 봐 봐. 엄마 보여 줘 봐. 왜 그래? 뭐가 쑥스러워서.”

아주머니가 다정하게 말을 걸어도 이잎새는 통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입술을 맞물리며 고개를 조금 들더니, 치마에 제 손을 문지르며 쭈뼛쭈뼛 거울 앞으로 갔다. 잠시 몸을 틀어 가며 옷을 살피고는 이내 살짝 입꼬리를 올리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나도 몰래 이잎새를 따라 미소 지었다가 거울 속으로 이잎새와 눈이 마주쳤다. 홱 하니 돌아가는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리는 딱딱하게 표정을 굳혔다.

“편하게 잘 맞아? 불편한 데는 없어?”

“아니, 괜찮아.”

“아니기는, 블라우스 하나 큰 거 해야겠구만. 아무래도 가슴 쪽이 좀 끼네. 치마는 또 왜 이렇게 짧게 나온다니. 세준아, 잎새 괜찮은 것 같아? 요샌 다 이렇게 입니?”

“네? 네, 뭐.”

갑작스러운 물음에 화들짝 놀라 목을 매만지며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나한테 물어서는 안 될 걸 물으시는 것 같다. ‘엄마, 왜 쟤한테 그런 걸 물어봐!’ 하고 칭얼대는 이잎새의 목소리가 들렸다. 피식 웃음이 새서 주먹으로 입가를 가리며 뒤를 돌았다.

“어머? 얘들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싱겁게 굴어? 나 참, 웃겨 죽겠다. 중학생 된다고 내외하니?”

아주머니는 기분 좋게 웃으면서 나와 이잎새의 옷매무새를 꼼꼼히 살펴 주셨다. 이잎새는 거울을 보느라 내게는 시선조차 잘 주지 않았다. 그날, 혼자 잠을 설쳤다.

* * *

-마세준, 뭐 하는데?

휴대폰을 선물 받은 이후로 이잎새는 종종 이렇게 전화를 걸어왔다. 옆집 친구 창문 두드리듯이 아주 평이한 목소리였다. 주로 라면 먹게 좀 와 보라든가, 산초랑 좀 놀아 달라든가, 난 먹지도 않는 번데기를 먹으러 가자든가. 그런 구실이었다.

나는 목줄이라도 매인 사람처럼 책을 덮거나 농구공을 던지고 쏜살같이 달려 나가기 바빴다. ‘야 마세준! 큰일 났어, 빨리 와 봐!’ 기겁을 하며 전화를 하기에 달려가 보면, ‘마세준, 나 심심해.’ 하고 빈둥대며 말하기도 했다. 오늘은 배고파 죽겠다는 목소리였다.

“공부하고 있었어.”

한참 보고 있던 문제집을 아무렇게나 덮고서는 겉옷을 손에 쥐고 일어섰다.

-징그럽다 진짜. 또 공부해? 너 좀 재수 없어.

“넌 뭐 하는데.”

-나? 나야…….

망설이는 듯한 그 짧은 여백이 숨 막히게 귀여웠다. 어떤 말을 해서 내 기분을 긁을지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아니면 뭐라도 하는 척을 하려 한다거나.

-체육 공부 중이었는데?

“……수영 중계 봐? 또 마틴 하워드?”

이잎새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어. 오늘따라 더 잘생겼어.’ 하는 말에 기분이 곤죽이 됐다. 그런 아저씨 나부랭이가 뭐가 잘생겼다고.

-마세준, 라면 먹으러 와.

그건 곧, 와서 라면 좀 끓여 달라는 뜻이었다. 전화는 이미 끊긴 뒤였다. 한숨을 징하게 쉬다가 기계처럼 현관문을 열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꼼짝을 않기에 계단을 뛸 듯이 내려갔다.

“라면은?”

문을 열어 주는 이잎새가 오늘따라 괜히 더 말가니 예뻐 보여서 당황스러운 마음에 아무 말이나 던졌다. 사 오라고 시키지나 않으면 다행인 건데.

“네가 끓여야지. 먹으러 오랬지 끓여 준다고 한 적 없는데? 한번 맛있게 끓여 봐. 난 꼬들꼬들. 알지?”

이잎새는 문만 열어 준 채 거실로 잽싸게 달려갔다. 그러고는 TV화면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아직도 수영 중계가 한창이었다. 얌전히 냄비를 꺼내려다가, 오늘따라 마틴 하워드가 더 잘생겼다던 이잎새의 말이 떠올라 이를 악물었다. 조리대에 몸을 기대어 서 있다가 거실로 가서 이잎새 팔꿈치 옆에 놓인 리모컨을 뺏어 들었다. 그러고는 채널을 아무렇게나 돌리기 시작했다.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이잎새의 팔을 털어 내는 건 일도 아니었다.

“뭐야! 나 텔레비전 보고 있는 거 안 보여? 빨랑 줘. 아 빨리, 마틴 봐야 된다고! 이제 시상식 할 거란 말이야. 야!”

“바둑 봐야 돼.”

“뭐?”

이잎새는 인상을 있는 대로 구기며 나를 올려다봤다. 고쟁이 차림에 머리는 까치집을 하고 있는데, 왜 저 샴푸 광고 속 여자보다 더 예쁠까. 그러고서는 마틴 하워드 같은 거나 좋아하고. 나는 기를 쓰고 채널을 바둑 채널로 맞춰 놓았다. 부엌으로 가 리모컨을 냉장고 위에 올려놓고 냄비에 물을 받았다. 그 내내 이잎새가 내 뒤를 따라붙었다.

“네가 언제부터 바둑을 봤는데? 어? 너 지금 나 열 받으라고 이러지? 빨리 안 내놔?”

내가 묵묵부답 라면을 끓이는 데 열중하자, 이잎새는 식탁 의자를 달랑 들어서 냉장고 앞으로 가져갔다. 의자를 밟고 올라서더니 리모컨을 낚아채 쏜살같이 다시 텔레비전 앞으로 달려가는 뒷모습을, 나는 쓴 얼굴로 바라만 봤다. 끓는 물에 면을 빠뜨리는데 산초가 무릎으로 엉겨 왔다.

“이산초.”

“냐.”

덜렁 안아 올려 귀를 쓰다듬으며 이마에 입을 맞춰 주었다.

“너네 누나 너무한 거 아니냐.”

산초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거실로 시선을 던지자, 이잎새는 마틴 나부랭이가 금메달을 목에 거는 걸 보며 거의 반쯤 울고 있었다. 진짜 울고 싶은 게 누군데.

* * *

“야, 너 태 좋다?”

처음 교복을 입고 등교하던 예비소집일, 이잎새가 내게 건넨 말이었다. 나는 이잎새 교복 입은 모습에 그날 잠도 못 잤는데, 이잎새는 참 빨리도 내게 눈길을 줬다. 그 가벼운 장난에도 혼자 낯이 뜨거워져서, 나는 볼품없이 기침이나 해 댔다.

그러더니 오후에는 웬 바람이 불었는지 내게 사탕 꾸러미를 줬다. 사람 속 뒤집는 데는 뭐 있다. 오전 내내 나랑 같은 반 된 것도 모르고 있었으면서 이런 걸 주면 어쩌자는 거야.

“야, 너 내가 뭐 이 정도 의리도 없을 줄 알았냐? 너한테 받아먹은 게 얼만데. 나도 양심이라는 게 있어. 그러지 말고 넣어 둬. 밸런타인데이에 혼자 궁상떨지 말고.”

의리다, 양심이다, 오만 부록을 다 갖다 붙였지만 사탕은 사탕이었다. 이게 내게 무슨 의미가 되는지, 이잎새는 하등 모르는 눈치였지만.

“뭐냐. 기껏 주니까.”

“뭐가.”

“줘도 띠껍냐고. 김새게.”

“내가 언제.”

줘 놓고 빼앗으려 들기에 얼른 가방에 넣었다.

안 그래도 그럴 거였는데, 아무도 주지 말고 혼자 먹으랬다. 이걸 누굴 주냐, 내가.

버스에서 그 짧은 새 혼자 사귀고 손잡고 내친김에 결혼까지 했다. 자꾸 웃음이 터질 것 같아서 입술을 몇 번을 씹었는지 모르겠다.

예뻐 죽겠어서 피자라도 사 준 댔는데, 이잎새는 당연히 집에서 시켜 먹자고 알아들은 것 같았다. 가서 먹자니까 귀찮다고 했다. 허구한 날 집구석에서 붙어 있다가는 정말로 아무런 진전이 없을까 봐서 겨우 운을 떼 본 건데, 귀찮단다.

“너 원하는 대로 해, 그럼.”

혼자 속 좁게 먼저 가 버리자 저 멀리서 콜라 백천 개 사 주겠다며 따라붙는다. 그날은 정말 속이 뒤집히는 줄 알았다. 이잎새가 나한테 넘어오는 날이 오기나 할는지 그저 까마득하기만 했다.

“내가 널 데리고 뭘 하냐.”

내 나름 힌트를 줘 봐도 끄떡도 안 했다. 매정한 이잎새는 ‘뭐래.’ 그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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