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미술관이 살아 있다
눈이 오면 항상 남들보다 먼저 맞곤 했다.
어딜 가든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공공장소에서 머리를 쿵 찍어 당황한 적도 종종 있었다.
남들보다 키가 크다는 건 분명 불편한 점도 있지만, 오늘 같은 날엔 꽤나 쓸만했다.
더 높기에 더 넓은 시야가 확보된다는 점은 분명 유리했다.
사실 질래를 쫓던 중 사인해 달라는 팬의 요청에 그만 그녀를 시선에서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
저 바보, 저길 들어갔어?
보통 사람이라면 정원에서 잘 안 보이는 미술관 1층 창가 안.
은우는 그 안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각상 하나를 포착했다.
다만, 따라붙은 기자들을 의식해서 그들을 따돌린 후 시간차를 두고 들어갔을 뿐이었다.
물론 그 결과는 너무도 황홀했다.
로댕에게 괜히 천재 조각가라는 수식어가 붙는 게 아니었다.
로댕의 작품에는 여체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경외심이 담겨 있다더니 은우는 지금 그 말을 실감하는 중이다.
창가로 내리쬐는 햇살만이 조명이 되는 고요한 미술관 안.
원피스에서 어깨를 드러낸, 살구색 브래지어보다 고운 피부를 가진 예쁜 조각상이 제 밑에서 색색거리며 아기처럼 숨 쉬고 있었다.
모아 붙인 무릎 밑, 곧게 벌어진 종아리가 흐느적흐느적, 뾰족한 하이힐이 여자의 발끝에서 헐떡이고 있었다.
“못 참겠어, 나.”
“안 돼, 여기선… 으누야, 흐흣.”
미술관이어서 그런가? 나체가 전혀 외설적이지 않았다. 원시적인 아름다움이랄까. 몸이 참 예뻤다. 남자가 가질 수 없는 선, 색정적인 몸짓이 은우를 강렬하게 유혹했다.
그 고귀한 예술품에 경외심을 담아 손목부터 쪽, 쪽. 여체 앞에 무릎 꿇은 채로 키스를 퍼부었다.
“자, 잠깐만!”
“싫어?”
질문해 놓고선 여자의 희고 가녀린 살을 혀로 간질간질하며 입술로 집요하게 농락하는 남자 때문에 질래는 그만 잘게 떨고 말았다. 꾹 말아 문 입술 새로 흐르는 가쁜 숨이 남자의 살결을 도리어 자극했다.
초옥, 춥. 수줍게 드러난 질래의 어깨에 남자가 입술을 뭉갰다. 제 팔로 여자의 등을 받힌 후 어깻죽지까지 소중하게 핥아 내렸다.
예술품을 예열하듯 꾹꾹, 여자의 열점을 찾아 온기를 더하자 그 따스한 손길에, 그 농밀한 입술에 질래의 심장은 터질 것만 같았다. 닭발집보다 더 은밀한 곳에서의 접점이 그녀를 흥분케 했다. 혹 이러다 길거리에서 스트립쇼라도 할 지경이었다.
스릴을 가미한 욕망은 무섭게도 중독성이 있었다.
“차갑지, 잠시만.”
더군다나 이 남자, 매너까지 갖췄다. 친절하게 제 와이셔츠를 질래의 어깨에 둘러주니 이걸 어떻게 거부할 수 있겠는가.
덕분에 마주하게 된 말도 안 되게 눈부신 뽀얀 피부와 동양인이라 믿기 힘들 정도로 입체감 있는 가슴 근육은 이 미술관 어느 조각품보다도 아름다웠다. 귀여운 젖꼭지마저 빨고 싶게 만드는 묘한 마력을 가졌으니, 이쯤 되면 돌은 게 확실했다.
“너어! 왜 자꾸 날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내가?”
“말이 돼?”
“안 될 건 뭔데?”
“흐응, 이런 데서 어떻게… 이러고 있어, 사람이. 읍.”
초옥초옥, 은우가 질래의 쇄골을 흡입했다. 목선을 타고 올라와 귓불에서 지분대던 입술이 나지막한 중저음을 흘렸다.
“싫냐고 물었는데?”
“…….”
“하지 마?”
미치겠다. 고개를 젓다니.
아래위로 흔들어야 할 얼굴이 절레절레 가로로 흔들렸다. 솔직히 그래…. 좋아! 치명적인 쾌감을 저버리기엔 본능 앞에 나약한 인간임을 인정했다.
그것도 막 무대에서 내려온 따끈따끈한 초신성 아닌가. 부드럽고 탄탄한 피부를 가졌으면서도 성적 매력만큼은 어리지 않은 섹시한 수컷.
여러 여자가 안기고 싶어 하는 스페셜한 남자가 저를 핥으며 구애해 오는데 그 희열을, 그 특권을 어떻게 저버릴 수 있을까.
“가질래, 가끔 한 번쯤 미쳐도 돼. 끌리는 대로, 원하는 대로….”
“여기 CCTV가….”
“사각지대야, 확인했어.”
“읏.”
빳빳하게 굳어 있던 여자의 등이 드디어 수려하게 휘었다. 벌어진 여자의 입술에서 살짝 혀끝이 노출됐다.
저만큼 하얀 피부에 청순한 이목구비가 매혹적인 가질래. 생각이 많은 게 유일한 흠인, 그래서 더 남자를 애달프게 만드는 여자였다. 없던 식욕도 돋게 만드는 마법을 갖고 있었다. 그녀에게 굶주린 까닭에 은우는 아까부터 브래지어 속 열매가 보고 싶었다. 그 핑크빛 비밀을 입안에서 이리저리 굴리고 싶었다.
“내가 로댕을 좀 알아. 이번 쇼 주제여서 공부 좀 했거든.”
“으으흐.”
통통한 젖무덤을 남자의 손이 유려하게 등반하더니 유륜 쪽으로 쓰윽 브래지어 사이를 갈랐다. 꽉 찬 속옷 안에 그의 손이 터질 듯 더해졌다.
“하앗!”
“로댕이 작업실에서 섹스를 즐겼대. 오감으로 느끼면서 조각 한 거지. 우리처럼.”
브래지어가 밀리고 이내 후크가 풀렸다. 고운 천에 갇혀있던 가슴이 탈옥했다. 출렁, 모여 있던 유방이 물결치듯 요동쳤다. 그 위에 핀 곱살스러운 젖꼭지. 꼿꼿하게 발기된 유두가 남자의 입술을 자연스레 불렀다.
“하아, 어떻게….”
“로댕을 위한 헌정이니까.”
“흐으읏.”
“죄책감은 버려.”
허스키하면서도 섹시한 음색으로 여자를 매료시키더니 끝내 제멋대로 유방을 조각하는 남자였다. 혀로 꾸욱 누르다가도 부드럽게 마사지하며 가슴골에 봄꽃을 새겨 갔다.
그의 악력대로 뭉개지는 동그란 젖가슴이 타액으로 범벅된 지도 오래였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남자를 몰랐던 유두가 제법 여물었다. 은우의 집요함으로 점점 여체는 매혹적으로 농익어 갔다. 탱글탱글 젤리 같은 젖꼭지는 온전히 그의 입술이 빚은 완벽한 작품이었다.
“하으읏.”
이번엔 음부 저 밑, 은우의 손이 가장 예민한 곳을 지그시 눌렀다. 이내 부욱, 그가 여자의 스타킹을 거침없이 찢었다.
“어쩌려고 그래?”
“하나 사줄게.”
“그런 뜻이 아니잖아.”
아예 스타킹을 발끝까지 끌어내자 뽀얀 발꿈치가 드러났다.
“가질랜, 맨다리가 더 예뻐.”
초옥 쫍, 초옥! 발목부터 다시 그의 입술이 할짝할짝 핥으며 올라왔다. 한 손으로는 볼록하게 살 오른 클리토리스를 꾹 누르면서도 입술은 사타구니까지 쉴 새가 없이 빨아댔다.
허벅지가 부르르르 떨리더니, 스타킹에서 자유를 찾은 발끝이 요란해졌다. 움찔대던 음부가 애액을 토해낸다. 그 끈적한 윤활유를 잔뜩 묻힌 손이 팬티 위 갈라진 틈새를 유연하게 비비는데 팔딱대던 음부가 끝끝내 훌쩍훌쩍 울음을 터뜨렸다.
그 말도 안 되는 전율에 질래가 입을 틀어막았다. 신음의 데시벨이 솟구칠까 봐 그의 단단한 팔뚝에 손톱자국까지 내버렸다.
“하아, 어떡하지. 아프겠다.”
“괜찮아. 더 한 것 돼.”
“흐흣, 아픈 거 싫어. 너가. 읏.”
차라리 꿈이었으면, 싶다. 미술관에서 이렇게까지 음란해졌다는 사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어서 그의 가슴에 얼굴을 기댔다. 쿵쾅대는 심장 위로 수치를 묻었다.
그러면서도 제 몸을 물레 돌리듯 어루만지는 남자의 손길 따라 음탕한 다리가 쫙 벌어졌다.
“으누야, 우린….”
조각상도 아닌데, 왜 여기서 예술을 하고 있을까.
낭만이 깃든 예술의 도시 파리라서?
그럼에도 사정없이 반응하는 몸이 야속했다. 매몰차게 빨아대는 소리가 방탕했다. 그 되바라짐이 마치 둘만의 비밀인 것 같아서 질래는 이제 다 내려놓고, 즐겨보기로 했다.
한 손으론 젖꼭지를 잡고 빙글빙글, 한 손으론 클리토리스 위에서 빙빙. 남자의 손의 알 수 없는 예술 타령이 질래를 뜨겁게 만들었다.
발끝부터 얼굴까지 홧홧한 열기가 전신으로 솟구쳤다. 그의 입술이 닿는 족족, 그의 손길이 스치는 족족 벌어진 입에선 참을 수 없는 교성이 야하게 쏟아졌다. 젖은 팬티는 커피콩 모양으로 빚어져 음부에 쫙 달라붙어 있었다. 그에게 안달 나서 매달린 등이 색스럽게 휘어갔다.
“하자.”
그가 축축해진 여자의 팬티를 벗겨냈다. 허리에 걸쳐진 원피스만 제외하면 이제 위아래는 적나라한 나신이었다.
가랑이를 제 손길 따라 벌리면서도 수줍어하는 여자의 표정이 흥분한 남자의 입매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돌연 은우가 질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제 여자가 장해서 그녀의 머리칼에 키스를 퍼부었다.
질래는 그 순간이 제일 좋았다. 욕정에 찬 눈빛도 섹시했지만 돌연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눈빛으로 저를 예뻐해 줄 때, 그게 30여 년간 꽉 닫혀 있던 질래의 속살을 여는 비법이기도 했다.
원피스를 벗었다. 미술관엔 벌거벗은 여인이 누워 있다. 완벽한 성적 일탈. 그녀는 여타 다른 조각상들과 달리 가슴이 뛰고 부드러운 살결을 지닌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헝클어진 머리 사이로 드러난 얼굴은 지금껏 본 작품 중에서 가장 신비로웠다. 다리를 넓게 벌릴수록 그녀는 남자도 헐벗게 만들었다.
그의 페니스는 우뚝 선 각도마저도 여기 수많은 조각들 중 단연 우등생이었다. 로댕도 만들지 못한, 조각보다 더 조각 같은 남자가 바로 이은우였다.
어느새 둘은 <입맞춤> 조각상의 커플보다 더 완벽한 나신으로 바닥에서 뒤엉켰다.
물고 빨고 어느 정도 서로를 충분히 음미한 후 은우가 제 옷을 돗자리 삼아 그녀를 조심스레 눕혔다. 그리고 질래의 가랑이 사이, 욕망의 미로를 서서히 연다.
제 귀두로 여자의 질구와 클리토리스 사이를 맞대어 쓱쓱 문질렀다.
“으, 으누야.”
여자가 저렇게 이름 불러 줄 때가 남자를 가장 짐승처럼 만드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미간을 잔뜩 좁힌 그때 하필이면 질래는 저를 농락하던 태윤의 모습이 떠올랐다.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는 불쾌한 기억.
은우가 저에게 들어오기 전 이걸 말해야만 나쁜 년이 안 될 것 같단 생각이 드는 건 왜인지.
질래가 한없이 무거워진 입술을 열었다.
“나, 실은 고백할 게 있어.”
“다. 하고 나가서. 그때.”
은우가 지레짐작하건대 왠지 듣고 싶지 않은 내용일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의 가슴을 빤 후 질구 속으로 제 페니스를 박으려 허리를 뒤로 물렀다.
“잠깐만 들어줘.”
벌거벗은 여자 위에서 굵고 긴 우윳빛 성기를 세운 남자가 그대로 멈춰 섰다. 미술관이라서 그런지 그 장면마저도 한 폭의 명화가 됐다.
“나, 윤태윤 집에서 쓰러졌는데, 기억이 없어, 은우야.”
“다친 덴, 없고?”
“…없어.”
“그럼 됐네.”
남자는 알고 싶지 않았다. 그저 빨리 여자와 하나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여자는 끝내 정과 망치로 제 가슴에 대못을 쾅쾅 박아댈 모양이다.
그래서 그 십자가를 은우는 대신 지기로 했다. 질래의 떨리는 눈동자가 안타까워서라도 그 짐을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운 상체를 내린 후 그녀를 꼭 안아 주었다.
“말해.”
“혹시라도 윤태윤이….”
질래가 꺼낸 ‘혹시라도’란 가정은 은우에게 잔혹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녀를 사랑하기에 재빨리 다음 말을 가로챘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었다면, 그건 내 탓이야.”
“응?”
“못 지켜줬으니까. 더 사랑해줄게.”
“미안해.”
“아니, 기억도 안 난다면서. 왜 사과를 해?”
“그래도 혹시나….”
그녀를 안은 채로 은우가 제 것을 여체에 바싹 갖다 댔다.
“그냥 나 좀 받아주라.”
“…….”
“불안할 땐, 나로 채워.”
그의 품에 있는 여자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저만 알고픈, 좁디좁은 미로가 순식간에 열렸다.
“아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