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침대가 진리인 이유
오랜만에 은우와 질래의 음부가 만났다. 은우가 질래의 아주 깊은 곳, 그 쾌락의 원천을 퍽퍽 두드리며 그녀에게 진심을 전했다.
“그냥 가질래는.”
“으흣.”
바스락거리던 질래의 몸이 다시 음탕한 포즈를 취했다. 남자를 느끼는 여자의 내벽 따라 페니스가 죄어왔다. 애액이 막대기에 착 감겼다.
“이 세 글자만 기억해. 이은우.”
치대던 남자의 페니스가 갑자기 질래의 내벽에 그대로 머물렀다.
저만을 기억하라며 제 안에 들어와 있는 은우 때문에 질래는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치유 받는 것 같았다. 진정으로 힐링 됐다.
은우에게도 질래는 평안함이었다. 그녀 안에 갇혀있을 때 온전히 저를 알았고 오랜 방황 끝에 진정한 자유를 되찾은 기분이었다.
정욕으로 일그러진 얼굴 속엔 하나가 된 기쁨이 깃들여져 있었다.
파리는 아직 쌀쌀한 날씨임에도 미술관은 둘에게 찜질방처럼 한없이 뜨거웠다. 후끈후끈, 마치 온열기라도 틀어놓은 것처럼 여기저기서 열감이 치솟았다.
그의 치댐에, 그의 진심에 온몸이 녹아버린 질래 역시 입에서 비명을 쏟아냈다.
“아악! 으으읏. 윽. 좋아! 으누.”
“나도, 흐흡.”
로댕미술관, 수많은 나신 조각상 사이에는 분명 살아 있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아무도 모르는 은우와 질래만의 비밀.
발끝이 찌르르하고 허리에 잔뜩 힘이 들어가는, 절정으로 향해가는 행위 예술.
은우가 질래의 생식기를 점령하며 거세게 피스톤 운동의 피치를 올리던 그때였다.
끼이이익, 철컹.
저 멀리서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흐응, 설마 미술관 닫는 거야?”
패션쇼 때문인가? 왜 폐쇄하지? 아직 닫을 시간 아닌데. 갑자기 질래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갇히긴 싫어.”
“나가고 싶어?”
질래가 이번에는 제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와서 이 하루를 미술관에 갇힌 채로 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낯선 외도가 처음에나 설렜지 절정으로 향할수록 차디찬 바닥에 몸이 배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결국은 클래식한 게 가장 좋다고, 침대가 진리였다.
“알겠어, 호텔 가야겠다. 그럼 옷 입고 있어.”
쓰으윽, 거대한 그의 분신이 제 속에서 빠져나가는 촉감이 생생했다.
은우가 빛의 속도로 바지를 입더니 휘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후 프랑스어로 정중하게 무언가를 대화하는 게 언뜻언뜻 들려왔다.
저 아이, 어릴 때부터 언어 능력 하난 남다르다 싶었는데, 프랑스어까지 할 줄이야.
그의 혀 굴리는 소리가 너무도 섹시했다. 역시 핏줄이 남달라서 그런가, 알면 알수록 능력자였다.
어쨌든 예술은 여기까지.
한순간 나신으로 전시됐던 남녀는 사랑을 다 못 이룬 채 조각상이기를 포기했다.
탈출이었다.
살아 있던 미술관도 그들의 퇴장으로 다시 죽은 전시장이 돼버렸다.
“이제 뭐 해?”
질래가 은우를 올려다보며 태연하게 물었다.
“못해 봐서 아쉽다던 그 데이트, 오늘 해보지 뭐. 파리에서. 어때?”
연인의 은밀한 사랑놀이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누가 보든 말든, 사진을 찍히든 말든 은우는 그녀의 손을 절대 놓지 않았다.
패션 위크로 더더욱 사람들이 즐비한 문화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둘은 체면 따위는 모두 잊어버렸다.
거리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미술관에서 잔뜩 적신 몸을 식혀 주던 찰나 둘은 뭘 봤는지 눈이 동그래지고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마치 두 사람이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우뚝 서 있는 한 사람 때문에 연인은 매우 당황했다. 죽은 조각상처럼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고 말았다.
***
“남 실장님.”
“꽤 오래 있다 나오시네요? 옷도 엉망이고.”
“아… 그게.”
예상치 못한 남 실장과의 조우였다. 질래는 겨우겨우 식혀낸 몸의 열기가 일순간에 확 달아올랐다. 분명 은우로부터 최선을 다해 도망쳤지만 결과가 좀 남사스러웠을 뿐, 죄지은 것도 아닌데 괜히 어깨가 잔뜩 움츠러들었다. 마치 미술관에서 한 일들을 들켜버린 기분이었다.
‘설마….’
“기다리신 건 아니죠?”
은우였다. 한쪽 눈썹을 추켜세운 채 앞머리를 쓸어 올리는 그의 얼굴엔 짜증 반, 궁금증 반이 엉성하게 뒤엉켰다.
다만 이상했던 건 남 실장의 태도였다. 저 알 수 없는 당당함. 뭔가 상대의 약점을 잡은 적군의 자세였다.
“네, 기다렸습니다. 두 분 다 미술관으로 들어가시길래 기자라도 들어갈까 봐, 티 안 나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네?”
어디선가 칼바람이 폐부를 찌르고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온몸에 도톨도톨 닭살이 돋는 게 괜히 남 실장에게 스타 제조기란 말이 붙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질래는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인 반면 은우는 남 실장에게 이기지도 못할 객기를 부렸다.
“아까 문 닫는 거 못 보셨어요? 우리 갇힐 뻔했는데.”
“그렇지 않아도 안에 사람 있다고 이야기하러 가는 도중이었는데 이사님께서 총알처럼 튀어나오시더라고요.”
“아… 이럴 줄 알았음 사정이라도 하고 나올걸.”
은우는 분명 속으로 이야기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눈가에 굵게 주름진 남 실장의 얼굴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지금 사정이랬습니까?”
남 실장과 함께 지낸 이래로 저렇게 대놓고 정색하는 표정을 처음 본 것 같았다. 남 실장의 사정 공격에 은우가 넉 다운된 사이, 방관자로만 있던 질래가 다급하게 중재에 나섰다.
“그게, 저희가 미술관 관리하시는 분한테 사정사정했거든요, 통제구역에 있어서 죄송하다고.”
“아아, 그 사정이요?”
“그, 그럼요, 남 실장님 무슨 사정을 생각하셨길래.”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일시에 로댕미술관 정원에선 출처 모를 웃음파티가 벌어졌다. 민망함이 그 이유인 듯, 은우도 질래도 억지로 웃느라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제길. 예술의 끝이 부끄러움이라니.
그 와중에도 남 실장의 시선은 계속 딱 달라붙어 있는 남녀의 손으로 향해 있었다.
“그렇게 대놓고 손잡고 다닐 거면 굳이 미술관까진 왜 들어갔습니까. 아유. 제가 별의별 케이스 다 지켜봤지만 파리까지 와서 이게 뭡니까? 미술관이라니, 어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남 실장을 보며 도리어 더 당황한 듯 은우가 꼬인 스텝을 좀처럼 풀어내질 못했다. 입이 서서히 벌어지는 게 엉거주춤하며 아예 뒤로 넘어질 판국이다.
“뭐, 뭐가요? 파리까지 와서 미술관 데이트가 뭐, 못 할 짓입니까?”
남 실장과 대화 내내 세상 당당하던 은우의 말투가 흔들리더니 심지어 더듬기까지 했다. 은우의 판정패가 확정될 때쯤, 질래가 잡고 있던 손을 뒤늦게나마 빼보려 했지만 도통 놔줄 줄을 모르는 남자였다. 한마디로 이은우는 이럴 땐 고집불통이었다.
문제는 그 한결같음이 오히려 남 실장의 화를 돋우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말았다.
“아주 대놓고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광고를 하고 다니시죠? 초기엔 그래도 여자 친구 공개 안 하는 게 더 좋으니까….”
남 실장의 말에 은우가 대놓고 반감을 드러냈다. 그 뜨거운 레이저 눈빛을 정면으로 쬔 남 실장이 자포자기한 듯 뒷말을 이었다.
“아 몰라, 몰라! 이 커플 포기입니다. 어차피 곧 감방 갈 처지에 뭔 오지랖을 부린다고.”
갑자기 감방이라니. 질래는 반문하듯 저도 모르게 질문하고 말았다.
“감방이요? 진짜 교도소 말하는 거예요?”
“…네.”
뭐? 맞다고? 아직 갱년기가 올 나이도 아닌데 갑자기 체열이 상승하는 게 오늘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질래의 얼굴에 안면홍조가 옵션처럼 따라붙었다.
혹, 그 구속 문제가 남 실장 개인사와 관련된 문제일까 봐 괜스레 손 부채질을 하며 그의 눈길을 피하던 그때였다.
“차차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지나 씨가 내일 한국으로 간답니다.”
“네? 지나요?”
순간 잘 못들은 줄 알았다. 질래의 양 눈썹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출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