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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12화 (12/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12화

“……두 분 다 왜 그러세요?”

그야말로 숨 막히게 어색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침묵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레온이 의아해하며 두 사람을 불렀다.

그레이스는 그 부름에 대답하는 대신 괜히 더욱 꽉 레온을 품 안에 끌어안으며 생각했다. 제발 누가 이 침묵을 깨줬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마님! 마님! 어디 계신가요? ……올리버 경, 분명 여기에서 마님과 레온 공자님을 보았다고 하셨죠?”

“네. 그렇습니다.”

“그럼 저쪽에 계시려나요? 마님! 계시면 대답 좀 해 주세요!”

그렇게 어색한 침묵만이 이어지던 그때, 마침 정원 반대편에서 그레이스를 찾는 샐리와 올리버 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레이스는 눈에 띄게 밝아진 얼굴로 들려오는 그 목소리에 응답했다.

“샐리! 여기예요!”

“어머! 거기 계셨어요?”

그레이스의 외침을 들었는지, 바쁜 발소리와 함께 샐리와 올리버가 세 사람이 서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두 사람은 꽤 가까운 거리에 서 있는 아서와 그레이스를 보자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말했다.

“어머, 공작님도 함께 계셨군요. 공작님을 뵙습니다.”

“공작님을 뵙습니다.”

“오랜만이야, 샐리.”

무뚝뚝한 얼굴로 샐리의 인사를 받은 아서는 제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올리버를 향해 말했다.

“그런데 올리버 경,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나. 분명 난 레온의 곁을 떠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죄송합니다. 각하. 제 불찰입니다.”

“혼내지 마세요, 형님. 제가 형수님이랑 단둘이 산책하고 싶어서 그랬어요!”

서늘한 목소리로 올리버 경을 질책하는 아서의 모습에 레온이 얼른 그레이스의 품에서 버둥거리며 소리쳤다.

그 모습을 흘긋 곁눈질로 본 아서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그레이스의 품에 안긴 레온의 앞으로 가 말했다.

“다음부터는 부인과 단둘이 있고 싶다고 해도, 절대 올리버 경을 네게서 떠나게 하지 마라. 위험하잖니.”

“……네, 잘못했어요.”

“레온을 혼내지 마세요. 레온을 돌보겠다고 올리버 경에게 제가 먼저 말했어요.”

엄한 아서의 말에 레온이 주눅 든 채 대답하자, 그레이스는 슬쩍 레온의 편을 들듯 말했다. 그러자 무뚝뚝한 시선으로 고개를 돌린 아서가 그녀를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압니다. 그 말을 듣고, 내려온 거니까요.”

“……네? 아…….”

아서의 대답에 그레이스는 멍한 얼굴로 되묻다가 곧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고 보니 그날 밤, 이 정원의 바로 옆 건물이 그의 집무실이라고 했다. 아서는 지난번처럼 정원에서 자신과 레온의 대화를 듣고 있다 개입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는 건, 그동안 내가 이곳에서 산책하는 모습을 저 위에서 계속 지켜봤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자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혹시 혼자 산책하는 사이 말실수한 건 없었으려나? 탈출, 연기 같은 단어를 입 밖에 낸 적은 없었겠지?’

그레이스가 당황으로 머리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끼며 그동안 자신이 혼자 중얼거린 것은 없을까 기억을 더듬을 때였다.

“그런데 샐리, 무슨 일로 부인을 찾은 거지? 이 사람에게만 전해야 할 말이 있는 거라면, 난 이만 자리를 피하도록 하지.”

아서가 무뚝뚝한 목소리로 샐리에게 용건을 물어 왔다. 그 말에 샐리는 살짝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아닙니다. 이번에 마님께 고하고자 하는 것은 공작님께서도 아셔야 하는 일이랍니다.”

“나 또한 알아야 하는 일? 그게 뭐지?”

“어머, 그래요? 무슨 일인데요?”

아서는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고, 그레이스 또한 호기심에 가득한 목소리로 샐리에게 물었다.

그러자 샐리가 품속에서 붉은 비단에 쌓인 서신 한 장을 꺼내 아서의 앞에 내밀었다. 아서는 그것을 받아 들어 펼쳤고, 그레이스 또한 살짝 그의 곁에 다가가 그가 펼쳐 든 서신을 확인했다.

“……황실에서 열리는, 성혼 축하 파티?”

그리고 그 서신에 쓰인 글자를 중얼거리며 읽은 그레이스는 곧 표정을 굳혔다.

불과 며칠 전, 샐리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분명 펠릭스 공작과 맺어졌던 여자들은 전부, 성혼 축하 파티에서 ‘누군가’를 만난 후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었나?’

확실한 물증이나 정황 증거도 없고, 그렇다고 샐리가 명확히 말해 준 것은 아니었기는 했다.

하지만 홀로 생각을 거듭한 끝에 그레이스가 내린 결론은 그랬다. 아서 펠릭스 공작의 ‘저주’가 그가 가진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그를 모함하고자 건 것이라면, 그것을 사주한 자는 분명 그 ‘성혼 파티’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것.

그렇게 생각하자 그레이스는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홀로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던 그때, 그 곁에 서 있던 아서가 불쾌하다는 듯 서신을 접으며 올리버 경에게 말했다.

“……부인과의 결혼식 이후 벌써 일주일이 넘게 지났다. 그런데 이제 와서 축하 파티라니, 폐하께서 어떤 마음으로 이러시는 건지 모르겠군.”

“폐하께 각하는 각별한 신하이자 친척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번 결혼도 진심으로 축복해 주고 싶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축복이라. 과연 진심으로 내 결혼을 축복하고자 하는 자리인지 의문이로군. 분명 그곳에 참석한 황족과 귀족들은 나와 부인을 두고 뒤에서 신나게 떠들어 댈 텐데 말이지. 과연 앨버튼 경의 축복 주문이 이길까, 아니면 내 저주가 이길까 하면서.”

“……!”

“가, 각하! 그, 그런 말씀은!”

서늘한 목소리가 가시가 박힌 독설을 내뱉는 아서의 입매는 단단히 굳어 있었다.

그 말에 그레이스는 또다시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미 아서, 그도 ‘성혼 파티’에 참석하고 나면 자신의 신부나 약혼자가 죽거나 미친다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진 듯한 말투였다.

‘그렇다는 건, 이 사람은 자기한테 걸린 저주가 어디에서 기인한 건지 알고 있다는 건가? 정말로 성혼 파티에 뭔가 있는 거야?’

그레이스는 떨리는 시선으로 아서를 바라보았다.

그런 것이라면 자신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아서가 아니었다. 또한 자신이 세운 ‘계획’도 수정해야 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었다.

뭘까, 대체 이 ‘저주’에 얽힌 진실은 뭘까.

저주는 대체 누구에게 기인한 것이며, 만약 성혼 파티에 그동안 그에게 저주를 건 자가 있었다면 왜 그는 계속해서 파티에 참석한 걸까. 그리고 왜 적극적으로 ‘저주’는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해명하지 않은 걸까.

‘대체 진짜 진실은 뭐지? 알고 싶어. 뭐라도 좋으니까 실마리가 될 만한 말 좀 해 줬으면 좋을 텐데.’

그레이스는 마른침을 삼키며 아서를 응시했다. 또다시 그가 ‘진실의 실마리’에 대해 말해 주기를 바랐다.

“농담이라네, 올리버 경. 나 또한 폐하께서 이 불쌍한 신하이자 외사촌을 조롱하기 위해 그런 자리를 만드실 리 없다고 생각해.”

그러나 아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돌려 버렸다.

그레이스는 살짝 맥 빠진 표정을 지으며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올리버 경은 굳은 표정으로 아서의 말에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폐하께서 그러실 리 있겠습니까. 각하만큼 폐하께 충실한 신하가 어디 있다고요.”

“하지만 그 성심과는 별개로, 이 성혼 축하 파티는 썩 반갑지 않군. 지금이라도 거절하겠다는 서신을 쓸 순 없나, 샐리?”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공작님께서도 잘 알고 계시잖아요. 이미 서신에 일자까지 정해서 서신을 보내셨잖아요.”

“……이것 참 곤란하게 됐군. 꼭 성혼 파티를 해야겠다면 나 혼자 참석할 수는 없냐고 전해 줄 수는 없는 건가?”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혼자 참석하시겠다고요?”

샐리의 대답에 난처하다는 듯 입매를 굳히던 아서의 말에 그레이스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러자 아서가 무뚝뚝한 얼굴로 그녀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과연 이번 신부는 얼마나 미치지 않고 버틸까, 이번 펠릭스 공작 부인은 언제, 어떻게 죽게 될까.”

“……!”

“대놓고 입 밖에 내진 않겠지만, 아마 모두 부인을 저런 잔인한 호기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볼 겁니다. 그 시선들을 감당할 자신 있으십니까.”

“……아.”

“게다가 우리에게 축복을 내리는 사람이 앨버튼 공작이라는 걸, 이미 들어 알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전해 듣기로 부인께서는 앨버튼 공작은 물론이고 그 일족들과 불편한 관계라 들었습니다만.”

무뚝뚝하게 내뱉어진 아서의 말은 얼핏 듣기엔 차가웠지만, 그 안에는 희미한 배려가 깃들어 있었다.

그레이스는 스스로도 낯설고 어색했을 그의 배려에 또다시 얼굴이 붉어지려는 것을 느꼈다. 처음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 준 것은.

‘……아냐, 정신 차려. 마음이 흐트러지면 안 돼.’

그러나 그레이스는 곧 홀로 마음을 다잡았다. 조금 전 아서의 말에 깊게 생각해서는 안 되었다.

잊어서는 안 된다. 자신은 ‘그레이스 앨버튼’도, ‘그레이스 펠릭스 공작 부인’도 아닌 ‘그레이스’라는 한 사람으로서 살기 위해 죽음에서 되돌아왔다는 것을.

‘계획대로 무사히 ‘미쳐서’ 이곳을 나가기 위해서는 성혼 파티에 가야 해.’

물론 처음 계획을 세웠을 때와는 달리 레온과 정이 붙었고, 아서에게도 뭐라 이름을 붙이기 어려운 감정이 생긴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그래서 며칠 전 살짝 계획을 수정했다.

자신이 바로 이 ‘펠릭스 저택’에서 ‘마지막으로 미쳐서 나가는 공작 부인’이 되겠다고 말이었다.

‘더 이상 레온이 상처받고 자라지 않으려면, ‘죽거나 미치는 건’ 내가 마지막이 되어야 해.’

그를 위해서는 반드시 실체적인 진실에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그레이스는 제 품에 안겨 예쁜 오드아이로 빤히 자신을 올려다보는 레온을 한 번 바라보며 웃은 후 말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 또한 그런 시선들에 익숙하거든요.”

“……익숙하다고요?”

“네. 전해 듣기로 제가 앨버튼 가문 사람들과 불편한 관계라고 하셨죠? 맞아요. 불편한 관계. 좀 더 자세히 덧붙이자면 그분들이 절 일방적으로 멸시하셨지만요. ……그래서 익숙해요. 잔인한 호기심 가득한 눈은요.”

“…….”

“그러니 제 걱정은 마세요. 그리고 어차피, 황제 폐하의 명령은 거역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 당신과 결혼할 것을 거역했던 내가 결국 죽게 되었던 것처럼. 그레이스는 또다시 생생하게 떠오르는 ‘죽음’의 기억에 온몸이 떨리는 것을 느끼며 애써 태연히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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