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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11화 (11/142)

괴물 공작의 후처가 되었다 11화

“레온, 저기 저건 뭐지?”

“나무요!”

“맞아! 저건 라이네아 나무라고 하는데, 사계절 내내 저 모습이래. 그래서 수도에서도 유령나무라고 불러. 다른 나무들이 봄과 여름을 맞아 새잎을 피울 때 저 나무만 저렇게 앙상한 모습이라서 말이야.”

“정말요?”

겨울이라 둘러볼 것이라고는 어제 내려 쌓인 눈과 그 밑에 파묻힌 성마른 나무들뿐이었지만 그래도 두 사람은 마치 처음 보는 풍경인 양 신기해하고 재미있어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정원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소리에 레온이 고개를 돌리더니 소리쳤다.

“앗, 형님!”

레온의 목소리를 따라 돌아본 그곳에는 검은 가면을 쓴 아서가 있었다.

평소에 입던 제복이 아닌 다소 편안한 차림을 한 아서는 자신을 부르는 레온의 목소리에 어색하게 손을 한 번 들어 올렸다.

그레이스는 그런 아서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그의 시선이 자신에게 돌아오자 어색하게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 밤, 산책 중 자신에게 ‘친근하게 다가오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헤어진 후 처음으로 마주한 그였다. 서로 주고받은 배려 없는 말들에 대한 앙금을 품은 채 아서와 마주하게 되자, 어째 처음 만났던 그때보다 더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레이스를 보고 있던 아서의 입매가 어색하게 굳어졌지만, 곧 그레이스의 손을 놓고 제게 달려오는 레온의 모습에 그는 평소처럼 표정을 풀었다.

“집무는 다 끝나신 거예요, 형님?”

“그래. 급한 건 어느 정도 마무리했다.”

“그럼 저랑 형수님이랑 같이 산책해요, 형님!”

잔뜩 들뜬 목소리로 아서의 망토자락을 쥐고 재잘거리는 레온에게 아서는 다정히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그 다정한 형제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느슨한 표정을 지으며 보고 있던 그레이스는 이어진 레온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또한 레온의 제안에 놀란 것은 아서 또한 마찬가지인지, 레온의 말을 들은 순간 가면 아래 그의 오드아이가 묘한 빛을 띠었다.

그러더니 아서는 느릿하게 고개를 돌려 그레이스를 바라보았고 두 사람은 또다시 시선이 마주쳤다.

그레이스는 조금 전보다 더 짙고 깊어진 아서의 오드아이를 정면으로 마주하자, 또다시 표정이 어색하게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 그녀의 표정에 아서 또한 어색하게 입매를 굳혔다. 그러더니 조금 전과 달리 먼저 시선을 피한 아서는 자신에게 매달린 레온을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제안은 고맙지만, 레온…….”

“……안 되나요?”

부드럽게 거절을 말하려는 듯한 아서의 모습에 레온의 얼굴이 대번 울상이 되었다.

레온은 아서의 망토 자락이 구겨질 만큼 꽉 움켜쥐며 조르듯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 모습에 아서는 난처한 듯 입꼬리를 내리며 대답했다.

“나는 괜찮지만, 부인께서 불편해하실 거다.”

“……그런가.”

“그래.”

“형님과 함께 산책하는 게 불편하세요? 형수님?”

그러자 이번에는 간절한 레온의 시선이 그레이스에게로 돌아왔다.

그레이스는 난처한 얼굴로 어느새 자신의 곁으로 다가와 드레스 자락에 매달린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레온을 응시했다.

아서의 말처럼 그와의 산책이 불편한 것은 맞는데, 그렇다고 거절하자니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어리광을 부리는 레온의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아, 어떡하지.’

무뚝뚝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서와 드레스 자락에 매달려 자신을 올려다보는 레온을 번갈아 바라보며 잠깐 고민하던 그레이스는 곧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자신에게 매달린 레온을 향해 몸을 숙여 대답했다.

“아니야, 레온. 불편하지 않아.”

“그럼 형님이랑 형수님이랑 같이 산책할 수 있어요?”

“……응? 그, 그래. 하자. 산책.”

“우와! 감사합니다!”

머뭇거리며 터져 나온 그레이스의 승낙에 찡그려져 있던 레온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레이스는 활짝 웃으며 제자리에서 방방 뛰는 레온의 모습에 표정을 풀고 마주 웃어 주었다.

저렇게 좋아하다니, 어리광을 들어 주길 잘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레이스가 레온의 머리를 쓰다듬자, 레온은 더욱 활짝 웃더니 곧 고개를 돌려 맞은편에 선 아서를 향해 소리쳤다.

“형님! 이제 이쪽으로 오세요! 같이 걸어요!”

그러자 그 말에 아서가 순간 멈칫하더니, 곧 느릿하게 그레이스와 레온의 곁으로 걸어왔다.

천천히 가까워진 아서가 그레이스와 한 발짝 정도의 거리를 두고 멈춰 서자, 레온은 잔뜩 들뜬 얼굴로 아서와 그레이스의 사이에 서더니 양옆으로 작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손! 손잡고 걸어요! 네?”

그러더니 아서와 그레이스가 뭐라 대답할 새도 없이 레온이 두 사람의 손을 꽉 붙잡았다.

그러고는 동그랗고 큰 눈으로 제 양옆에 선 아서와 그레이스를 재촉하듯 바라보았다. 마치 이대로 함께 걷자는 듯이.

졸지에 레온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게 된 아서와 그레이스는 어색하게 시선을 마주했다.

“……그럼 갈까요, 부인.”

“……아, 네.”

머뭇거리며 권유하는 아서의 말에 그레이스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자 아서가 먼저 한 발짝 뗐고, 레온 또한 기다렸다는 듯 아서를 따라 걸으며 쥐고 있는 그레이스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 모습에 그레이스 또한 조심스럽게 발을 움직여 제 곁에서 걷는 아서를 따랐다.

“헤헤.”

그렇게 두 사람만 숨 막히게 어색한 산책이 시작되었다.

아무 말 없이 느릿하게 눈 쌓인 정원을 걷는 아서와 그레이스의 사이, 레온은 홀로 소리 내어 웃으며 쥔 두 사람의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안 그래도 하루 중 가장 기다리는 좋아하는 형수님과의 산책 시간에 가장 좋아하는 형님이 함께하니 레온으로서는 이보다 더 즐거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웃음이 끊이지 않는 레온의 모습에 그레이스가 저도 모르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렇게 좋아, 레온?”

“네! 정말 좋아요! 꼭 꿈만 같아요!”

“정말?”

“네!”

그레이스의 물음에 레온은 이가 드러나도록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진심으로 행복해 보이는 그 모습에 살포시 웃던 그레이스는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 아서와 딱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레이스는 또다시 깜짝 놀랐다. 그가 처음 보는 얼굴로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은 가면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아서의 부드럽게 휘어진 입매와 보석처럼 반짝이는 붉고 푸른 눈에 그레이스는 걷는 것도 멈출 만큼 멍하니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으앗!”

그때, 그레이스가 걸음을 멈춘 것을 모르고 신나게 앞으로 걷던 레온이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다. 그레이스는 바로 옆에서 들려온 아이의 외마디 소리에 깜짝 놀라 소리쳤다.

“어머! 레온!”

“이런!”

그레이스는 당장 넘어질 것처럼 비틀거리는 레온을 받아 내려 몸을 틀어 먼저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아이가 엉덩방아를 찧기 전 자신이 먼저 바닥으로 주저앉아 레온을 받아 낼 생각이었다. 설령 그로 인해 눈이 군데군데 녹은 바닥에 드레스가 좀 더럽혀지고 자신이 엉덩방아를 찧는다 해도 상관없었다.

“……!”

그런데 당연히 몸에 가해져야 할 충격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레이스는 채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멍한 얼굴을 한 채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자신의 품에 반쯤 안긴 레온과, 그런 레온과 자신의 허리를 꽉 끌어안은 억센 아서의 팔이 보였다.

그 순간 그레이스는 순식간에 볼이 확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꺅!”

“……잠깐 그대로 계십시오. 버둥거리면 넘어질지도 모릅니다.”

그 비명에 뒤에서 레온과 자신의 허리를 꽉 끌어안은 아서가 그레이스를 향해 달래듯 말했다.

그러더니 아서가 양팔로 그레이스와 레온을 단단히 안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살짝 뒤로 물러났다. 그 후 꽉 안고 있던 그레이스와 레온을 놓아준 아서가 그 두 사람을 살피듯 바라보며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부인? 어디 다친 곳은 없습니까? 레온도, 어디 다친 곳은 없고?”

“네, 전 괜찮아요, 형님.”

“…….”

“……부인?”

그레이스의 품에 안긴 채 의젓하게 대답하는 레온과 달리, 멍한 표정의 그레이스에게선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 모습에 아서가 또다시 묻자, 그제야 정신이 확 든 그레이스가 허둥거리며 대답했다.

“……네? 아, 네. 저는 괜찮아요.”

“정말 괜찮으십니까? 얼굴이 많이 붉습니다. 혹여 좋지 않으신 거라면 당장 의사를―.”

“아, 아뇨! 괘, 괜찮, 괜찮아요. 볼은 그냥, 그냥 갑자기 안겨, 아니 붙잡아 주시는 바람에 놀라서……!”

여전히 걱정스러운 듯한 시선으로 묻는 아서의 모습에 그레이스는 더욱 얼굴이 붉어진 채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러자 아서가 어색하게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함부로 제가 부인의 몸에 손을 댄 것 때문에 놀라셨다면 사과하겠습니다.”

“……아니에요. 어쩔 수 없었잖아요.”

“그래도…….”

“정말, 정말 괜찮아요.”

아서의 정중한 사과에 그레이스는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그래도 이어지는 사과를 그레이스가 받길 거부하자, 아서는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

그 후 두 사람 사이에서 또다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레이스는 시선을 내리깔며 품에 안은 레온의 정수리를 응시했고, 아서는 딱딱하게 굳은 입매를 한 채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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