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권-Chapter 6. (7/23)

Chapter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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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신전.

그곳엔 20대 중반이 된 한나가 있었다.

연분홍색의 긴 곱슬머리를 느슨하게 하나로 묶어 올린 한나는 전보다 훨씬 성숙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물론 나이가 들어서이기도 했지만, 그녀가 입은 하얗고 단정한 신관복이 주는 절제된 이미지가 더해져 더욱 그랬다.

중앙 신전에 입성한 지 6년차, 한나는 이제 어엿한 한 명의 신관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솥을 닦고 있었다.

“이거 사기 취업인 거 아시죠?”

오늘도 중앙 신전이 양아치라는 것에 대한 한나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주 40시간 이상 일하지 않겠다던 조건은 정말 잘 수행되고 있었다.

다만, 문제라면 일하는 동안 박박 긁어 착취당한 성력 때문에 한나는 하루에 12시간도 넘게 잠을 자야 했다.

중간중간 쓰러져 자는 시간을 포함하자면, 거의 24시간 풀근무나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이번엔 뭐 때문인데요!”

오늘도 한나는 엄청난 양의 성수를 만들고 있었다.

한나가 없던 시절의 성수가 그냥 물이지만 기분상 성스러운 것이었다면, 지금의 성수는 정말 치료와 축복의 효과가 있었다.

보통 치유계열 사제들은 직접적으로 성력을 전해야 했는데, 한나의 경우에는 물로 된 어느 것에나 그 힘이 녹아들었다.

물론 성력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보통의 치유력도 사용할 수는 있었지만, 하나의 개체에게 힘을 쓰는 것보다 성수를 만드는 것이 훨씬 신전의 입장에선 이익이었다.

그리고 한나에겐 치유력을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조금, 문제가 있었다. 그녀의 치유력은 직접 받으면, 아주 아프다는 것이 이유였다.

오죽하면 차라리 뼈가 부러진 고통이 치유력보다 덜 아프다며 치료 거부가 있었던 적도 있었다.

한마디로, 직접 치유의 섬세한 작업에는 소질이 없었다.

오늘은 또 어떤 이유에서인지 어마어마한 양의 성수를 제작해야 한다는 신전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래서 한나는 안 그래도 골골거리는 몸을 이끌고 물을 데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막으로 보낼 치료용 성수라던데?”

유피르는 손에 든 서류를 훑어보며 답했다.

“사막?”

한나는 직속 상관인 유피르 대신관의 입에서 나온 ‘사막’이라는 단어에 깜짝 놀랐다.

“그곳에 문제가 있나요?”

사막이라면 세자르와 커티스, 모이세이가 있는 곳이었다. 당연히 그 일행에는 여러 명의 치유계열 신관이 동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그곳으로 가는 성수를 만든다니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수밖에.

“다친 사람들이 있어요? 혹시 사상자가 많은 건 아니죠?”

그곳이 하루하루 피비린내가 가실 날이 없다는 흉흉한 소문은 들었다. 그래서 한나는 잠들기 전에는 항상 그들을 위해 기도하곤 했다.

“아아. 그런 건 아니야. 아무래도 곧 대규모 전투를 앞두고 있어서 미리 준비하는 차원인가 봐.”

“그거 위험한 거 아니에요?”

“이렇게 질질 끄는 것보다는 낫지. 애초에 6년이 다 되도록 그렇게 마기가 강한 곳에서 버티는 게 더 위험한 일이니까. 이번엔 잘돼야 할 텐데 말이야.”

한나는 솥에 찻잎을 넣으며 기도를 통해 성력을 불어넣었다.

처음에는 헤매기도 많이 했으나 세자르가 천천히 알려 주던 그날을 떠올리며 실력을 쌓다 보니, 이제 성력을 발현하는 것이 제법 익숙해져 있었다.

“그놈의 마물들 얼른 소탕해 버리고 올 것이지.”

솥의 물을 휘휘 저으며, 다소 툴툴거리는 말투로 한나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들의 걱정을 했다.

“그러고 보니 세자르와 같은 신전에 있었다고 했나?”

유피르는 세자르와 잘 아는 사이였다.

세자르보다 나이가 두 배는 많은 유피르가 처음 중앙 신전으로 발을 디딘 세자르를 자식처럼 업어 키웠기 때문이었다.

“벌써 그 질문 열 번은 더 하셨거든요?”

그리고 그는 건망증이 심했다.

“허허. 나이가 들면 다 그래.”

“더 나이가 많은 교황님은 안 그러시거든요. 오히려 젊은 사람들보다 더 멀쩡하신데.”

“그분을 인간이랑 비교하면 안 되지.”

“참 나.”

어쩜. 대충대충, 건성건성인 게 세자르랑 똑같은지.

한나는 유피르의 이런 성격이 세자르의 성격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유피르를 겪다 보면 세자르가 했던 말이나 행동과 비슷한 부분이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대신관님은 사막에 있는 신관들, 걱정되지 않으세요?”

“누가? 내가? 그 녀석들을?”

유피르가 주름진 눈가를 접으며 미소 지었다.

“신전에서 가장 유능한 신관들이야. 그들이 속수무책이라면 제국이 날아갈 텐데. 그 녀석들을 걱정하는 건 내 걱정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난 살면서 내 걱정을 해 본 적이 없어. 고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

무슨 논리지.

어떻게 저런 의식의 흐름이 있을 수 있는 거지.

한나는 어이가 없어졌다.

“한마디로, 믿는다는 거지.”

“그냥 다음부터는 바로 그렇게 말하세요. 못 알아들을 뻔했잖아요.”

“이미 못 알아들었잖아?”

한나는 더 이상 말씨름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세자르를 키운 사람 아니랄까 봐, 유피르를 말로 이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 이제 녹초가 됐어요.”

한나는 솥의 물을 젓던 국자를 내려놓으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요 며칠 제국 이곳저곳에 말썽이 많았다. 병도 병이지만 흑마법이 기승하는 바람에 사람들은 성수를 구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성수를 재어 놓으니 신전에서 푸는 성수가 부족하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한나는 매일같이 성수 작업을 하게 되었다.

“어디 가서 낮잠이라도 자야겠어요.”

“그래. 또 정원 바닥에서 자지 말고. 방으로 가.”

옛날, 그 시절 세자르가 그랬던 것처럼 요즘은 잠자리를 가릴 처리가 아니었다.

밥을 먹다가도 꾸벅꾸벅, 산책을 하다가도 꾸벅꾸벅, 심지어 큰일을 보다가도 잠들어 버리니 말 다 했지.

이러다 정말 과로사하겠는데?

“저 혹시 과로사하면 생명수당 같은 거 나오나요.”

“남겨 줄 사람도 없으면서.”

“……그건 그렇네요.”

서러워서 얼른 결혼을 하든지 해야지.

“저 갑니다.”

“그래, 그래.”

유피르는 만들어진 성수를 병에 옮겨 담으며 한나에게 인사했다.

“휴, 오늘따라 더 어질어질한데.”

터벅터벅, 힘없는 발걸음이 복도를 가르고 있었다.

중앙 신전은 한나가 있던 레미아 신전과 비교도 되지 않게 웅장했다. 규모는 말할 것도 없었고, 돔 형태의 커다란 천장, 벽이나 기둥에 순금 장식을 봤을 땐 눈이 팽팽 돌 지경이었다.

심지어 창문 하나하나가 유명한 예술가의 작품이라 하니, 창문 한 짝만 떼어 가도 평생 쓸 돈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도대체 신전에 얼마나 돈을 퍼붓는 건가!

하지만 그 화려한 장식도 매일같이 보니 흙으로 빚은 집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냥 쓸데없이 긴 복도와, 작업실에서 한참을 걸어야 하는 숙소나 좀 어떻게 해 줬으면.

“안녕하세요.”

“오늘도 다크서클이 턱 끝까지 내려왔군.”

“그럼 일거리를 좀 주지 마세요.”

“허허허.”

지나가는 익숙한 얼굴의 대신관에게 앓는 소리를 해 보아도 돌아오는 것은 허허허, 같은 웃음소리뿐이었다.

또 다른 신관 무리와 마주쳤다.

“좋은 오후입니다. 식사는 하셨나요?”

“포크 들 힘도 없네요.”

“하하하. 운동 부족입니다. 운동 부족.”

또 하하하, 거리며 자신을 스쳐가는 신관들을 보며 한나는 이를 바득 갈았다.

운동? 그래. 운동 좋지! 그럼 운동할 시간을 달란 말이다!

아무에게도 전해지지 않는 울분을 삼키며 한나는 평소 자주 낮잠을 청하던 쉼터로 향했다. 실내 온실이라 따뜻하니 잠이 솔솔 오는 곳이었다.

“하암.”

온실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향기에 자동 반사처럼 하품이 나왔다. 한나는 곧장 전용 낮잠 포인트인 온실 깊숙한 곳의 평상으로 향했다.

심지어 이 평상은 한나가 직접 제작해서 온실에 놓은 것이었다.

한날은 좁은 벤치에서 자다가 굴러떨어지는 바람에 돌에 이마를 찧고 말았는데, 어찌나 서러운지 그날로 바로 북부의 강철처럼 단단하다는 강철목으로 평상을 주문 제작했다.

그것은 아직까지도 신전에 온 뒤로 가장 잘한 일 1순위로 꼽히고 있었다.

“침대보다 여기가 편하단 말이야.”

한나가 평상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적당한 온도와 습도 덕에 이불도 필요 없었다. 평상에 머리를 대는 것과 동시에 한나의 의식이 점멸했다.

* * *

사르륵, 사르륵.

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한나의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고 있었다.

한나는 여전히 죽은 듯이 잠에 빠져 있었는데, 딱딱한 평상에 눕혀 있던 머리가 탄력 있는 무언가에 올려져 있었다.

“잠은 방에서 자라니까.”

그녀의 이런 모습이 익숙한 듯, 머리를 쓸고 있는 이는 제레미였다. 제레미는 어느덧 훤칠하게 자란 청년이 되어 있었다.

어릴 적 개구쟁이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검은 옷 아래로도 느껴지는 탄탄한 근육과 날카로운 이목구비는 뭇사람들이 다가서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음…….”

한나는 머리카락이 간질거리는 느낌에 몸을 뒤척였다. 그에 제레미가 한나의 단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숨을 죽였다.

그는 한나의 머리를 쓰다듬는 이 행복한 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한참을 고른 숨소리를 듣고 있던 제레미가 살짝 자세를 바꾸려다 몸을 굳혔다.

그의 팔에는 칼에 베인 상처가 있었다. 붕대로 압박해 두었지만 피가 흥건히 젖어 붕대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으음……. 응?”

그 순간, 그의 움찔거림을 느낀 한나가 눈을 비비며 정신을 차렸다.

“제레미?”

눈앞을 가득 메우고 있는 제레미의 얼굴을 본 한나는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또 어디 다쳤어?”

제레미가 그녀를 찾아오는 날은 대개 다치거나, 아플 때였기 때문에 한나는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놀라서 일어난 것이었다.

“조금요.”

조금이라고 말하면서 표정은 어찌나 불쌍하게 짓는지 한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딘데? 또 검술 연습하다가 그런 거야?”

제레미의 기사 학교는 신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래서 종종 오가곤 했는데 툭하면 다쳐서 붕대를 감고 있기 일쑤라 한나는 다친 제레미를 치료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아.”

한나가 제레미의 몸을 살피려 팔을 잡자, 그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팔이야? 으이그! 왜 이렇게 자주 다치는 거야?”

한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놈의 기사 학교는 사람을 잡는 건지 학생들이 다치는 것에 왜 이리 관심이 없단 말인가?

제레미가 이렇게 다쳐서 올 때마다 한나는 제레미가 다른 학생들보다 실력이 많이 없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원래 다들 이래요. 그래도 난 선생님이 있으니까.”

얼굴과 몸은 사납게 큰 주제에 선생님, 선생님 하며 아프다고 봐 달라는 모습은 어릴 적과 꼭 닮아 있었다. 한나는 혀를 끌끌 찼다.

“어디 봐. 정말 못 살아.”

제레미는 순순히 상의를 풀어 상처를 보였다. 근육으로 탄탄한 맨몸에는 자상이 가득했다.

채 아물지 못한 상처, 이미 아물었지만 흉이 남은 것까지.

누가 보면 기사가 아니라 뒷골목 칼잡이로 알 법한 흉터들이었다.

“휴, 기사가 체질이 아닌 것 아니야? 이렇게 매일 다칠 수도 있나?”

한나는 손끝에 성력을 집중시켰다. 말은 툴툴거리면서도 혹여 상처에 손이 닿을까 조심스럽게 치유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그런 한나를 보며 제레미가 진하게 웃었다.

“그러게요.”

제레미의 대수롭지 않은 반응에 한나는 한숨이 나왔다.

“또 그렇게 웃어넘기지. 조심하라고 몇 번을 말해?”

“전 다치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요.”

“뭐가 나쁘지 않아? 네 몸을 봐. 이게 사람 몸이야, 도화지야?”

남들이라면 제레미의 조각 같은 몸매에 눈을 빛냈겠지만 한나는 그 몸에 있는 흉터와 상처만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키운 내 새끼인데, 이렇게 매일 다쳐서 오면 속이 쓰릴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얼굴 한 번 더 봐서 좋잖아요.”

“으이그!”

성력으로 인해 아물어 가는 상처 옆을 한나가 찰싹 때렸다.

철이 없어도 적당히 없어야지!

“실없는 소리 하면 치료 안 해 준다!”

“내가 이렇게 살아 있다고 얼굴 비추지 않으면 걱정돼서 잠도 못 이룰 거면서.”

“참 나! 다쳐서 오는 건 사양이거든!”

한나가 펄쩍 뛰자, 제레미가 눈을 접으며 웃었다. 하지만 제레미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한나는 이따금 아이들이 잘 있는지 궁금하고 허전한 마음이 들곤 했는데, 그때마다 제레미가 찾아오는 것이 큰 위로가 되었다.

“하여튼, 열 살 어린아이랑 다를 게 없어.”

그녀의 말에 제레미는 웃음을 삼켜야 했다. 사실 길을 나서면 제레미를 보는 것만으로 벌벌 떠는 사람들이 지천에 깔려 있었다.

하지만 제 선생님은 여전히 자신을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여기니, 이것 참.

“그러니까 잘 보살펴 줘요.”

바라는 대로 아이처럼 굴어 줘야지.

제레미가 싱긋 웃었다.

“그런데 선생님.”

“응?”

“정말, 치료 실력은 전혀 늘지 않으시네요.”

“……아파?”

한나의 치유력은 엄밀히 말하자면 실력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치료가 잘되긴 했다.

특히 이런 외상 같은 경우에는 기가 막히게 아물게 할 수 있었다.

다만 문제라면, 한나의 치유력은 받는 입장에서 아주, 고통스럽다는 것이었다.

“어지간한 사람은 벌써 기절했을 것 같아요.”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하지. 네가 표정도 안 바뀌고 잘 치료 받으니까 안 아픈 줄 알았지!”

“나름 익숙해져서.”

제레미의 어색한 미소에 한나는 숙연해졌다.

어째서 자신의 치유는 이렇게 고통을 동반하는 건지. 이럴 거면 그냥 성수나 먹일 걸 그랬다.

“다음엔 성수 달라고 해. 참고 있지 말고.”

멀쩡한 사람 고문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한나는 자신의 치유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그간 다른 환자들을 보아서 알고 있었다.

일전에는, 화살에 맞았다며 치료를 받으러 온 환자가 당직 근무였던 자신의 얼굴을 보더니 깜짝 놀라, ‘하나도 안 아픕니다!’라며 화살을 제 손으로 빼고 도망갔던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너도 정말 이상해. 그렇게 아프면서 매번 나한테 치료받으러 오고.”

제레미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한나에게 제레미는 가끔 이렇듯 속을 알 수가 없었다.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건지, 관심을 받고 싶은 건지, 그냥 고통에 무딘 편인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치료가 끝났다.

“아물어도 흉터 남을 거야.”

“훈장 하나 새긴 걸로 하죠, 뭐.”

제레미의 상의를 다시 올려 주던 한나가 겨우 붙은 상처 부위를 또 찰싹 때렸다.

“아야. 또 터지라고 이러는 거예요?”

“고통도 못 느끼는 이상 체질 주제에.”

한나는 제레미가 통각이 제 기능을 못한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게 아니라면, 고통을 즐기는 변태라고밖에 설명이 안 된다.

“겨우 피로 좀 가시나 했더니, 또 어지럽다.”

한나가 중얼거렸다. 조금 잤다고 회복된 몸 상태가 다시 가라앉고 있었다.

“여기 누워요.”

제레미는 한나가 베고 자던 자신의 무릎을 톡톡 두드렸다. 한나는 눈을 좁히며 그런 제레미를 흘겨보았다.

‘아주, 병 주고 약 주는구만.’

그래. 누구 때문에 또 컨디션 난조가 됐는데.

하긴, 생각해보면 자신은 제레미 녀석의 무릎을 혹사시킬 권리가 있었다.

“그런데 정식 기사는 언제 되는 거야? 너 정도 능력이면 벌써 공주님 기사라도 됐어야 하는 거 아니야?”

“제국에 공주님 없어요.”

“그럼 황제?”

“기사 학교 나온다고 다 기사 되는 건 아닌데.”

한나가 제레미의 무릎에 다시 누웠다. 깨어나기 전처럼 편하게 머리를 눕히자, 제레미는 그녀의 볼 위로 흩어진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거둬 냈다.

거칠고 굵은 손가락이 퍽이나 섬세하게 움직였다.

“그럼 뭐가 되려고?”

“선생님 경호원?”

“월급 줄 돈 없어. 여기 신전이 얼마나 팍팍한지 너도 알잖아.”

어디서 슬쩍 숟가락을 얹으려고?

단호하게 고개를 젓자, 제레미의 무릎으로 진동이 느껴졌다. 그가 웃고 있었다.

한나는 그런 제레미의 반응을 겪는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기껏 기사 학교에 가서 기사 시험에는 응시하지 않는 제레미가 걱정이었다.

그러면서 매일 다치기는 어찌나 다쳐 오는지.

“나쁜 짓 하고 다니는 건 아니지?”

“어떤 종류의?”

“이럴 땐 그냥 아니라는 대답이 나와야지. 종류를 왜 물어?”

“사람이 어떻게 항상 착하게만 살아요. 선생님도 그건 못하지 않나.”

슥슥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길에 한나의 눈이 노곤하게 감겨들었다.

“괜히 나쁜 친구들이랑 어울리지 말고. 항상 정신을 바짝 차려.”

“선생님은 항상 내가 나쁜 사람이 될까 봐 노심초사인 것처럼 말하네.”

“성악설을 지지하거든.”

“흐음…….”

제레미는 비단 그런 이유만은 아닐 것이라고 추측했다.

자신의 선생님은 유독 저가 비뚤어질까, 나쁜 방향으로 빠지지 않을까, 늘 불안해했다.

처음엔 사춘기를 걱정하는 것이라 했지만 그 걱정이 보통의 기준을 넘어서곤 했다.

“선생님은 비밀이 많다니까. 미래라도 봐요?”

제레미는 넌지시 떠보았다.

“응. 여신님 말씀이 귀에 꽂혀 들어. 그러니까 선생님한테 거짓말하지 마.”

“아. 그렇구나.”

전혀 믿는 것 같지 않은 영혼 없는 대답이었다.

“오늘도 수업 땡땡이는 아니지?”

“오늘 주말인데요.”

그 말에 한나의 눈이 번쩍 뜨였다.

“와! 나 주말에는 일 안 하는데! 매일 혹사당하다 보니 날짜 감각이 없어졌어. 그런데 아무도 말을 안 해 줬단 말이야?”

한나의 뇌리에 유피르, 그리고 인사하며 지나쳤던 신관들의 얼굴이 스쳤다.

“혼내 줄까요?”

제레미의 낮은 목소리는 다른 이가 듣는다면 충분히 위협적인 빛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한나는 그런 제레미의 목소리나 행동에 익숙해 전혀 위협적으로 느끼지 못했다.

“하여튼, 땡땡이는 안 된다.”

마지막까지 근엄한 말투로 말하는 한나를 보며 제레미는 픽 웃었다. 자신의 나이가 이미 성년을 훌쩍 넘었다는 걸 선생님은 가끔씩 잊어버리는 것 같았다.

“네네. 선생님.”

죽었다 깨어나도 제 선생님은 코흘리개 자신의 선생님이겠지.

지난 6년은 그것을 뼈저리게 새긴 긴 시간이었다.

제레미의 손은 계속 느리게 움직였다. 그가 이렇게 부드러운 손길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주위 사람들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언제나 거친 사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사는 제레미였지만, 한나의 앞에서는 순한 양처럼 굴었다.

“나 잠들면 대충 버리고 가.”

“버리고 가다니.”

다소 괴팍한 표현에 제레미가 웃었다.

“대충 두고 가면 잘 자고 일어날 테니까, 다리에 쥐나면 기숙사로 돌아가. 여긴 안전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아무리 신전이라지만 제 선생님은 경각심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었다. 그런 한나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도 지겨웠던 제레미는 그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한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고른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

제레미는 그런 한나의 얼굴을 빤히 보고 있었다.

실핏줄이 비칠 만큼 투명한 피부, 만져 보고 싶은 동그란 이마, 앙증맞게 솟은 콧대, 툴툴거려도 귀여운 작은 입술.

대충 묶어 올린 머리카락은 마치 평소 한나의 성격처럼 잔머리가 허술하게 새어 나와 있었다.

누워 있어서 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 모습마저 미워 보이지 않았다. 10년을 보면 지겨울 법도 할 텐데.

어디를 보아도 사랑스럽지 않은 구석이 없으니, 제레미는 한나를 보면 언제나 즐거웠다.

그래서 그는 한참을 제 다리를 희생해 한나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천천히, 그리고 오래.

그저 보는 것만으로 번뇌가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그에겐 더없이 평화로운 한때였다.

* * *

“솔직히 말해 봐. 이거 뒤로 판돈으로 뭐해?”

한나는 아직 채워지지 않은 빈 병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한나와는 동기나 다름없는 신관인 핀체프는 한나의 말에 펄쩍 뛰었다. 누가 이런 말을 듣고 이상하게 소문이라도 낸다면 자신은 신관복을 벗어야 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렇잖아. 이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데 따박따박 받아 가서 뭐 하는지 궁금하잖아.”

그녀는 팔짱을 끼고 핀체프가 들고 온 상자를 발로 툭툭 차며 말했다. 그도 그럴 게, 그 상자엔 문제의 빈 병들이 가득했다.

빈 병들은 모두 한나가 성수를 만들어 채워야 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업무였다.

“하급 신관인 내가 뭘 알아. 위에서 까라면 까는 거지.”

“아니 나도 잘 까는 입장이긴 한데, 이유나 알고 까면 얼마나 좋아?”

물론 한나는 딱히 어리버리 핀체프에게서 답이 나올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너네 상관은 도대체 신관이야 사업가야? 아니지, 사기꾼인가.”

“그럼 난 사기꾼 부하냐.”

“졸개지. 졸개.”

핀체프의 직속 상관인 막시온 대신관은 성직자라기엔 조금 남다른 면이 있었다.

“툭 까놓고 말해 보자. 너한테 콩고물이라도 안 떨어져? 달라고 안 할게. 그냥 궁금증이야. 궁금증.”

“차라리 뭐라도 떨어지면 열과 성을 다해서 일하겠다.”

핀체프 역시 억울한 입장은 마찬가지였다.

사실 핀체프는 세자르처럼 공격형 능력을 가지고 있는 신관이었다. 그의 상관인 막시온 대신관 역시 황궁으로 치자면 기사단장 정도 되는 위치의 인물이었다.

신전은 크게 전투능력을 가진 신관, 치료계열의 신관, 기타 예지능력이나 자연계능력의 신관, 그리고 성기사로 나누어졌는데 성기사와 전투 신관은 언뜻 비슷하나 결이 달랐다.

전투 신관들이 신의 힘으로 악을 물리친다면, 성기사들은 무력을 사용하는 기사이며 신의 축복을 무기에 담을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보통 신관을 지키거나 보호하는 일을 했다.

여기서 문제는 성기사가 아니었다. 전투계열 신관의 윗선이 아주 뒤가 켕긴다는 것이었다.

“성기사들이야 이해하겠는데 매일 신전에서 놀고먹고 있는 전투 신관들이 왜 매번 이렇게 많은 양의 성수를 요구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단 말이지.”

사막으로 가는 성수는 따로 관리되니, 그것과는 무관하게 성기사들 조차 한 달에 다 사용하지 못하는 양의 성수가 따박따박 빠져나가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교황님께서 별말씀 없는 걸 보면 이상한 곳에 쓰진 않겠지.”

핀체프의 말에도 한나는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매일 이런 식으로 얼렁뚱땅 넘긴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그래. 어차피 죽어나는 건 네가 아니라 나다, 이거지? 우리 동기, 살벌한 전투 신관 아니랄까 봐, 정 없는 것 좀 봐.”

한나가 방긋 웃으며 말하자, 핀체프 역시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윗선에 갈려, 치유 신관한테 갈려, 성기사들한테 갈려, 나만큼 불쌍한 신관이 또 있을까? 너만큼 나도 힘들거든.”

사실 설움이라면 핀체프도 만만치 않았다.

이렇게 아쉬운 소리 하며 성수도 얻어야 해, 가져가 봐야 양이 적네, 늦네, 들들 볶이기 일쑤.

설움이라면 어디 가서 빠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여기가 신전이야 군대야.”

한나가 생각했던 신전이란, 자애롭고 상냥한 신관들과 참새 소리 들으며 아침기도나 하면서 신도들이나 맞이하는 생활이었다.

물론 그 꿈은 중앙 신전에 도착하자마자 와장창 깨졌지만.

“나 진짜 오늘 안에 못 가져가면 죽어.”

핀체프는 동정심을 자극하는 전략으로 노선을 틀었다.

“살인까지?”

“말이 그렇다는 거지!”

“어쩌니……. 우리 동기, 여신님을 만나거든 안부 전해 줘.”

한나가 안타깝다는 듯이 대답했다. 절대 오늘 안으로 끝낼 수 없다는 말이었다.

“아! 그러지 말고, 여기 볼라 빵집 쿠폰 다섯 장 어때?”

그가 꺼내든 비장의 무기는 한나가 가장 좋아하는 빵집의 쿠폰이었다.

“미쳤냐?”

“열 장?”

“참 나.”

열 장이라는 말에 살짝 주춤하는 한나의 반응을 핀체프는 놓치지 않았다.

“거기 쿠폰 구하기 힘든 거 알지? 내가 딱 있는 거 다 털어서 열한 장 줄게.”

“더 털어 보든가.”

“열두 장. 더는 없어. 여기서 세 장만 더 구하면 케이크 교환이라고.”

“흠.”

잠시 고민하던 한나가 슬쩍 손바닥을 내밀었다.

“물욕에 찌든 신관.”

“내가 정말 물욕에 찌들었다면 넌 쿠폰이 아니라 금화를 손바닥에 올려야 했을 거야.”

핀체프는 그 말에 대꾸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핀체프는 자신이 가진 모든 쿠폰을 탈탈 털어 한나에게 건넸다. 한나는 쿠폰을 제 품 속 주머니로 쏙 넣으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신님, 오늘도 제가 어린 양을 구합니다.”

사실, 한나는 정말 금화를 준대도 수명을 갈아서 일하고 싶지는 않았다. 요즘 몸 상태가 안 좋기도 했고.

하지만 핀체프의 말대로 그의 불쌍한 처지를 6년간 봐 온 터라 차마 외면할 수가 없었다.

쿠폰이야 겸사겸사 소소한 이득일 뿐.

“그 정도면 솥 세 개 양인데, 중간에 뻗어서 기력도 채워야 하고 밤늦게 끝나.”

“내일 아침까지만 해 주면 완전 감사.”

핀체프는 양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한나에게 초롱초롱 눈을 빛냈다.

이럴 때 보면 불쌍한 강아지 같아서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동기였다.

“내일 아침에 찾으러 와. 아마 난 여기 없을 거야. 알아서 챙겨가.”

아마 내일 아침이면 녹초가 되어서 어디 신전 기둥 붙잡고 쓰러져 있을 확률이 컸다.

새삼 이런 나약한 정신줄로 보자면, 옛날 세자르가 어마어마한 성력을 쓰면서도 그렇게 돌담이나 복도에서 머리통이 깨지지 않고 곱게 자고 있었던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운동을 해야 하나.”

한나가 힘없이 말했다.

운동할 틈이 어디 있어. 숟가락 들 힘도 없어서 밥도 접시에 코 박고 마시는데.

“인생…….”

씁쓸하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결국 오늘도 야근이었다.

* * *

“교대 시간입니다. 신관님.”

며칠 뒤 한나는 기도실 당번이 되었다.

신관들이 하루씩 돌아가며 기도실을 3교대로 관리하는데 오늘이 딱 한나의 차례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인사와 함께 기도실 관리 완장을 넘겨받았다. 기도실은 아직 신도들이 몰리지 않아 한산했다.

그중 두 명 정도가 조용히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특히 오늘은 따로 예배가 없는 날이라 특별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없었다.

아주 좋은 날 당번이 된 것이었다.

이제 한나는 기도실을 슬렁슬렁 배회하거나 준비된 의자에 앉아 함께 기도하는 척 하면서 조금 졸거나, 내지는 사람 구경이나 하면 될 일이었다.

‘그래도 귀찮은 건 귀찮은 거지만.’

중앙 신전의 기도실은 상당히 아름다운 곳이었다.

내로라하는 예술가들과 건축가들이 심혈을 기울여 창문 하나, 기둥의 각도 하나까지 공들여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날이 좋아 햇살이 비추면 그 채광이 천사가 강림할 듯 아름다웠고, 날이 궂으면 궂은 대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런 그림 같은 곳에서 무념무상으로 시간을 보낼 때 필요한 것은 바로……, 궁극의 명상 스킬이었다.

한나는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조용히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누군가 본다면 함께 기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건 한나가 지난 6년간 터득한 티나지 않게 조는 포즈였다.

‘흠, 오늘은 어쩐 일로 그다지 안 졸리네.’

하지만 오늘은 졸음이 쏟아지지 않았다. 보통은 깍지 낀 손에 이마를 붙이자마자 잠들곤 했는데.

그래서 한나는 이 시간을 조금 더 유용하게 써 보기로 했다.

바로, 힘들어 죽겠다며 징징거려 얻어낸 3일간의 휴일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는 것이었다.

‘볼라 빵집에 갔다가 외출복 한 벌 사고, 도톰한 로브도 사야지. 올해 겨울은 유독 추울 것 같아. 요즘은 마법으로 만든 난로가 그렇게 따뜻하다던데. 많이 비싸려나.’

예상대로 신관의 월급은 아주 빈약했다.

하지만 신관이 되면서 요구했던 제도의 집은 7년을 채우면 주어진다고 하니, 썩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리한 요구 같았던 면책권이 손에 들어왔다.

과거 교황은 그와 관련해 독대를 청했었다.

그것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한나는 차마 신관들에게 했던 것처럼 뻔뻔스럽게 넘길 수 없었다.

그녀가 마주한 교황의 첫인상은 어딘지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외양은 평범했고 풍기는 분위기도 날카로운 인상은 아니었으나, 신성한 힘에 압도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제 아이들을 위한 보험이에요.’

한나는 그저 진실을 이야기했고, 다행히도 교황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교황은 이미 자신에 대한 조사를 끝마친 것 같았다. 아이들의 과거에 대한 것도 파악해 놨는지 굳이 사족을 붙이지 않아도 이해를 하고 있었다.

아마 그는 면책권과 치유능력을 저울질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치유능력이 더 가치가 높았던 모양이었다.

교황은 오래 고민하지 않았고, 덕분에 한나는 신전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좋소.’

그렇게 얻어진 면책권만으로 신전에 충성을 다할 이유는 충분했다.

그랬던 것이 벌써 6년 전이라니. 쏜살같이 흐르는 시간이 무서울 지경이었다.

‘역시 월급이나 올려 달라고 할걸.’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더니.

7년 차가 되면 꼭 월급을 올리리라 다짐했다.

* * *

고요한 신전 조용히 기도실을 메우는 기도 소리.

잘 버티고 있던 한나의 의식이 점점 흐려졌다.

하필 오늘은 햇살도 따스하고 난리람.

어느새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래. 안 졸리는 게 이상하지.’

그렇게 현실과 꿈의 경계에 어중간하게 발을 걸치고 있던 한나는 그리운 옛꿈을 꾸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기 매미 좀 봐요!’

초록의 동산, 후텁지근한 바람이 불어오던 언덕.

하얀 침대보가 초록의 들판 위에 펄럭이던 그곳이 떠올랐다. 손만 뻗으면 잡힐 듯 선명한 순간들이었다.

‘내가 잡을 거야!’

‘꺅! 선생님! 제레미가 또 괴롭혀요!’

분명 고요한 신전이건만, 한나의 귓가에 귀여운 아이들의 목소리가 웅웅거렸다. 아니, 한나의 꿈속은 온통 아이들의 목소리로 시끌시끌했다.

‘한나 선생님! 배고파요.’

‘한나 선생님, 여기 봐요!’

‘한나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그래. 그래. 내가 너희 한나 선생님이란다.’

고작 이 이름이 뭐라고. 그리 애타게도 불러 주었는지.

“선생님.”

“우응…….”

그래. 선생님 맞다니까.

“선생님.”

과거의 단꿈에 젖어 있던 한나는 자신을 부르는 이 목소리가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하지만 꿈속 아이들의 목소리라기엔 이상하게 굵고 낮은 목소리였다.

“선생님, 침 흘러요.”

순간 초록의 풍경이 눈앞에서 접혀 들었다.

“아!”

한나는 놀라며 눈을 떴다.

“쓰읍.”

놀란 와중에 입가가 촉촉해 옷소매로 닦아 냈다. 시야가 그늘져 있었다. 고개를 들어 올리자, 제레미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레미?”

“당번이에요?”

“아, 응. 얼마나 졸았지…….”

정신을 차린 한나는 슬그머니 기도실을 둘러보았다. 잠시 눈만 감고 있는다는 게 꽤나 오래 잠든 모양이었다.

기도하는 신자들이 모두 바뀌어 있었고,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줄기도 붉게 변해 있었다.

“언제 왔어?”

“방금요. 많이 피곤해요?”

제레미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아냐. 그냥 너무 조용하고 아늑해서 졸았어. 덕분에 상쾌하네.”

“언제 끝나요?”

제레미는 한나가 앉아 있는 의자 앞에 다리를 굽혀 앉으며 눈을 맞추고 물었다. 그녀의 앞에 다소곳하게 자리한 제레미는 마치 주인을 따르는 대형견 같았다.

“뭐야. 놀고 싶어서 그래?”

“네. 내일 쉬는 날이잖아요.”

“네가 어떻게 알아?”

“제가 선생님 스토커인 거 몰라요?”

“엑?”

한나가 얼굴을 구기자, 제레미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농담이에요. 복도에서 만난 신관님이 말해 주던걸요. 선생님 내일부터 휴일인데 또 숙소에서 잠만 자게 두지 말고 데리고 나가라고.”

“참 나. 누가 잠만 잔다고…….”

잠시 지난 휴일들을 떠올려 보았는데, 맞는 말이었다. 한나에게 쉬는 날은 마음껏 자는 날이었으니까.

“그래서, 언제 끝나요?”

“지금 몇 신데?”

“다섯 시?”

“그럼 한 시간만 기다려.”

“네.”

“일단 좀 일어서고.”

한나는 기도실에 빼곡한 게 의자인데 굳이 앞에서 쪼그려 앉아서 자신을 보고 있는 제레미가 부담스러웠다.

“기도하고 있을게요.”

“응.”

제레미가 몸을 일으켜 저벅저벅 기도실의 긴 의자로 향했다. 신도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지만 역시나 존재 자체로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

검은 머리에 검은 옷을 입어서일까?

그는 마치 어둠을 한 자락 똑 떼어다 놓은 것 같았다. 밝은 기도실에 있으니 더욱 눈에 띄었다.

‘누구 작품인지 잘도 빚었네.’

물론 몹시 잘생겼다는 게 눈길이 가는 가장 큰 이유지만.

한나는 내심 뿌듯하게 제레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꾸었던 옛날을 회상했다.

제레미도 이렇게 잘 자랐는데,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컸을까.

하필 아이들과 헤어졌을 때가 한창 성장기였다는 걸 생각하면, 이제 길을 지나다 마주쳐도 이안과 마샤를 못 알아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얌전히 앉아 있는 제레미도 자신의 눈으로 직접 성장 과정을 보지 않았다면 저렇게 훤칠하게 자랄 거라곤 생각도 못 했을 테니까.

‘보고 싶네.’

유독 아이들이 보고 싶은 날이었다.

눈을 꼭 감고 한창 기도에 빠져 있는 제레미를 기도실에 들어선 사람들이 힐끗힐끗 곁눈질했다.

성스러운 기도실에 경건한 마음으로 들어섰다 해도 절로 눈길이 가는 외모였으니.

자신도 모르는 마음이 아니므로, 그저 애틋한 눈길로 앳된 얼굴의 신도들을 바라보았다.

‘오늘 기도는 다 했구만.’

눈을 감으면 여신님 대신 저 까맣고 아름다운 인간이 아른거릴 테지.

한나는 살며시 웃으며 기도실 구석에 있는 성수잔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기도실을 휘휘 걸으며 성수를 손가락 끝에 조금 묻혀 신도들 주위로 흩뿌렸다. 여태 실컷 자다가 퇴근이 가까워 오자 급히 일하는 전형적인 신관의 표본이었다.

“여신의 축복이 깃들길…….”

거기에 멘트도 깨알같이 보태 주었다.

* * *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신전에 왔어?”

“그냥, 선생님 생각이 나서요.”

“녀석. 그래도 선생님 챙기는 건 너밖에 없다!”

한나는 기도실 당번 교대를 하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신전 밖으로 나섰다. 이제는 나란히 서 있으면 한참을 올려다보아야 하는 제레미와 나란히 걸었다.

“안 그래도 내일은 빵집 갔다가 너 만나러 갈까 했거든.”

“저는 왜요?”

“짜잔.”

한나가 로브 주머니에서 볼라 빵집 쿠폰을 꺼내 펼쳐 보였다.

“열다섯 장!”

“케이크 바꾸겠네요.”

제레미는 그런 한나를 보며 웃었다.

“언제 다 모았어요?”

한나가 유독 좋아하는 빵집이라 제레미도 익히 알고 있는 곳이었다.

“어떻게 내가 다 모아? 내 동기 중에 핀체프라고 알지? 성수 좀 만들어 달라고 사정사정하길래 쿠폰 좀 뜯어냈지.”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한나를 보며 제레미의 보조개가 진하게 패였다.

그도 그럴 게, 제 선생님의 저런 면은 너무 귀엽지 않은가?

안 그래도 부족한 기력에 매일 픽픽 쓰러지곤 했으면서, 고작 빵집 쿠폰 때문에 성수를 만들었다니.

사실 그건 변명에 불과할 것이었다.

언제나처럼 물렁한 성격 때문에 동정심을 느껴 도와줬겠지.

“대단하네요.”

하지만 제레미는 그런 한나를 칭찬해 주었다. 스스로 잇속을 잘 챙긴다고 생각하는 모습이 그저 귀여웠다.

“네가 어릴 때부터 단 걸 좀 좋아했어? 지금도 빵집만 지나가면 네 생각나잖아. 매일 침대 밑에 과자를 잔뜩 숨겨 두고선 입가에 과자 부스러기는 잔뜩 묻혀 놓고 안 먹었다고 발뺌하는 게 얼마나 귀여웠는데.”

“그 얘기는 언제까지 우려먹을 생각이에요?”

날 선 것 같지만 여전히 부드러운 제레미의 어투는 한나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저 지금은 단 거 안 좋아해요.”

“에이, 설마.”

한나는 눈을 가늘게 접으며 제레미의 팔을 툭툭 쳤다. 안 좋아하는 녀석이 따박따박 자신이 사다 주는 간식을 다 챙겼을까.

“그런 건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 선생님도 간식 좋아한다고.”

저도 다 큰 남자라고 그게 부끄러운 건지. 

한나는 그런 제레미가 귀여웠다. 물론 귀여워하기엔 조금 징그럽게 크긴 했지만.

“이렇게 날 모른다니까.”

곧은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한나는 가까워진 시장을 신나게 구경하느라 그의 표정까지 살피지 못했다.

“오늘은 천천히 돌아다니다가 야시장 구경하자. 여기 야시장 너무 재미있는데 요즘 밤에 나온 적이 없어.”

“밤은 위험하죠.”

“오늘은 우리 기사님이 옆에 있으니, 걱정 없겠네!”

한나가 치렁거리는 머리를 끈으로 질끈 묶었다.

“선생님은 길거리 음식을 왜 그리 좋아해요?”

“응? 그게 이유가 있어? 맛있잖아. 우리 저기부터 가자. 저기 오리가 끝내주는데!”

한나가 단골 식당을 가리켰다. 바삭하게 화덕에서 구운 통오리 냄새가 코를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요.”

“포장해서 저기, 분수 옆에서 먹자. 사람 구경도 하고!”

“매일 하는 사람 구경은 안 지겨워요?”

한나가 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사람 구경’이라는 말이 제레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매일 보는 사람들이 뭐가 신기한 건지.

“넌 내 마음 절대 모를 거야.”

한나는 수년이 지나도록 이 세계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신전 안에서 만나는 인연들도 재미있었지만, 거리에서 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더욱 흥미로웠다. 여전히 한나는 이 세계의 이방인이었고, 관찰자였다.

그래서였다. 길거리 음식을 좋아하고, 야외에서 먹는 밥을 즐기는 것은.

“네가 자리를 잡아. 내가 포장해 올게. 아무래도 나보단 네 얼굴이 자리 지키기엔 좋잖아.”

“제 얼굴이 왜요?”

“……잘생겨서?”

사나워 보여서라고 할 수 없어 돌려 말했지만 제레미도 한나 말의 의미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얼른 와요.”

제레미의 손이 자연스럽게 한나의 정수리를 툭, 하고 스쳤다.

“기껏 묶었는데, 머리 헝클어진다니까.”

한나는 제레미의 손이 떨어져 나간 제 머리를 확인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저가 제레미의 머리를 쓰다듬는 대신 제레미가 자신의 머리를 툭툭 만진 것은.

아마 제레미의 키가 훌쩍 커져서 자신을 내려다보게 됐을 즈음이었을까?

“아이고! 신관님 오셨네요! 오늘은 뭘 드릴까요?”

한나를 발견한 오리구이집 주인이 뛰어나와 그녀를 반겼다.

“통오리 포장으로 주세요.”

* * *

“뜨거우니까 손 조심해.”

분수 옆에는 빵이나 간식을 즐기라고 설치된 테이블이 여러 개 있었다. 그중 아늑한 자리를 제레미가 차지하고 있었다.

역시 능력 있는 제자였다. 제레미는 테이블에 팔을 올리고 턱을 괴었다.

“신전 생활은 재미있어요?”

“재미로 하는가?”

“신전 그만두고 나오는 건 어때요?”

한나는 왜 제레미가 이런 말을 하는지 몰랐다.

“여기 나가 봐야 할 것도 없는데.”

오리 살을 쭉쭉 찢으며 한나가 대꾸했다.

“심지어 1년만 더 버티면 신전에서 집도 준다고. 제도에 집이라니. 성공한 인생이지!”

고개까지 흔들며 웃는 한나를 보며 제레미도 따라 웃었다.

“이야. 우리 선생님은 그럼 다 가졌네요.”

한나는 부러 으스대라고 추켜올려 주는 제레미의 말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럼. 그럼.”

“그럼, 저도 그 집에 살면 되나요?”

사르륵 접힌 눈꼬리 아래로 그림 같은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뭇 여인이라면 냉큼 ‘오냐, 내가 책임지마!’ 소리가 절로 나올 모습이었지만, 한나에겐 긴 세월 동안 면역력이 생겨 있었다.

“어림도 없어. 어디 다 큰 녀석이 얹혀살려고.”

아무래도 제레미를 너무 자립심 부족하게 키운 게 아닐까 생각할 뿐이었다.

“자! 이거나 먹어 봐.”

한나가 잘게 찢은 오리 살을 제레미의 입 앞에 흔들었다.

“여전히 애기 취급이라니까.”

제레미는 투덜거리면서도 입을 열어 그 살점을 받아먹었다.

“맛있지?”

한나가 활짝 웃으며 물었다.

저렇게 맑게 웃으며 말하는데, 어찌 아니라고 할까.

제 선생님은 항상 질문에 답을 정해 놓고 한다는 걸 알고 있을까.

“네.”

그러니 이 나이 먹도록 어리광이나 부리고 싶게 만들지.

“또 줘요.”

“기다려 봐.”

보통 다 큰 네가 들고 뜯으라고 해도 될 텐데 말이다.

고기를 나누어 먹는 사이 좋은 모습.

주위를 지나는 사람들이 본다면 흡사 보기 좋은 연인이라고 생각할 그림이었다.

“이러다 내가 다 먹겠네.”

그때, 제레미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한나의 손에 끼워진 장갑을 빼앗아 들었다.

“음?”

살을 고르는데 과하게 집중하고 있던 한나가 멀뚱멀뚱 제레미를 바라보았다.

제레미는 빠르게 오리 살을 발라냈다. 큰 손으로 북북 찢어 내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다른 남자랑 밥 먹을 땐 손 하나 까딱하지 마요.”

“왜?”

“가만히 앉아서 나이프로 곱게 자른 살점을 접시에 올려 주면, 그냥 한번 웃어 줘요.”

“뭐야. 손발 오그라든다.”

하지만 한나는 제레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됐다.

“네가 그런 남자들이랑 같아?”

그 말에 내포된 뜻이 넌 내가 키운 아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제레미는 그저 웃었다.

썩 유쾌하진 않지만 그리 나쁘지도 않았다. 적어도 자신은 특별한 취급을 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장담하건대, 그런 남자들은 안 될 거예요.”

“응? 뭐가?”

뒷말은 시끄러운 주위 소음과 함께 자동 생략되었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상점에 하나, 둘씩 마법구가 켜지고 있었다.

“바람이 차가워지네요.”

“야시장 시작하나 보다. 저기 생과일주스 팔기 시작하는데?”

“먹을래요?”

“완전 좋지!”

어느 정도 배가 찬 한나는 달달한 주스가 당겼다. 그에 눈치 빠른 제레미가 바로 일어나 음료를 사러 나섰다.

그가 지나는 길마다 행인들의 눈길이 쏟아졌고, 한나는 제레미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신전의 엄숙한 분위기를 벗어나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섞여 있는 것은 참 색다른 기분이었다.

신전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도 이렇게 활기찬데, 매일 신전에서 썩고 있다니!

“여긴 바람도 다르네.”

큰길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렸다.

“이야, 여기 예쁜 아가씨가 외롭게 있네.”

에이, 설마.

“응? 아가씨. 어디서 왔어?”

자신에게 하는 말은 아닐 거라 한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건들건들 불량스러워 보이는 세 명의 남자들이 한나가 앉은 테이블 옆에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랜만의 나들이라고 이렇게 이벤트까진 필요 없는데.”

한나는 난감하게 웃으며 혼잣말로 읊조렸다.

“뭐라고?”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귀도 영 부실하신 것 같고.”

한나는 남은 오리고기를 질겅 씹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주위의 시선이 그녀와 불량배들에게 닿았다. 대부분 걱정스러운 시선이었다.

“이 아가씨, 겁이 없네. 세상 물정이 어두운가?”

“모르긴 몰라도 그쪽도 세상 물정이 영 어두우시네요.”

“건방 그만 떨고 몸 걱정이나 하지 그래?”

불량배 중 하나가 제 허리춤의 칼을 만지며 위협했다. 자신들을 무서워하지 않는 한나의 태도에 신경이 긁힌 티가 역력했다.

“걱정이야 많이 하죠.”

“지금 우릴 놀려?”

“내 걱정이 아니라, 그쪽들 걱정.”

불량배들에게 닿았던 한나의 싸늘한 시선이 그들의 어깨 너머로 향했다.

“우리 기사님이 조금 난폭한 편이라.”

이건 진심 어린 걱정이었다.

어쩌다 이런 날, 자신에게 시비를 걸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운수가 썩 좋지 못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뒷감당해야 할 내 걱정도 조금?”

남자들의 어깨 너머로 불량배들을 발견한 제레미의 얼굴이 와락 구겨지는 게 실시간으로 보였다.

한나는 생각보다 더 시끄러워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나의 외양은 내로라하는 화려한 미인상은 아니었다. 꽃으로 치자면 들꽃처럼 소담하게 어여쁜 그런 분위기랄까.

장미처럼 가시가 있어 보이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그냥 팔자가 사나운 건지.

‘유독 이런 불유쾌한 경험이 많단 말이야.’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제레미의 반응이 어땠는지 이미 몇 차례 겪은 바 있었다. 한나는 성큼성큼 다가오는 제레미에게 어색한 웃음과 함께 손을 흔들었다.

“삼 초 정도 시간이 될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잽싸게 튀실래요?”

이건 불량배들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였다.

“이게 미쳤나!”

“뭐, 기대도 안 하긴 했다만.”

결국 그 3초는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성큼 다가온 제레미가 불량배들과 한나의 사이를 파고들었다.

툭.

그 와중에도 제레미는 생과일 음료를 한나의 앞에 곱게 놓았다.

“고마워. 제레미.”

“선생님도 참, 한시도 조용하질 않아.”

이 정도면 한나가 일부러 사건을 몰고 다니나 싶을 정도라고 제레미는 생각했다.

어째서 매번 귀찮은 벌레들이 꼬이는 건지.

“미인의 숙명이지.”

한나의 대답에 제레미는 어이가 없어서, 불량배들은 황당해서 헛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다들 웃으면 내가 민망하고.”

거참, 사람 머쓱하게.

한나는 태평하게 머리를 긁었다.

“…….”

불량배들은 제레미를 관찰했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머리 하나쯤 더 큰 건장한 사내의 등장에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하지만 3:1의 상황이지 않은가? 불리할 게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한 불량배 중 하나가 제 허리춤의 검을 팡팡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이 자식이 뭐 백마 탄 기사라도 되는 모양이지?”

“생긴 건 기생오라비처럼 생겨 가지고.”

사람 보는 눈이 저렇게 없어서야.

‘얼굴이 아니라 저 다부진 몸을 보라고!’

한나는 오늘 성력 한번 시원하게 쓰겠구나, 직감했다.

“먼저 검을 뺀다면, 나야 환영이지.”

제레미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이 제도 내에서, 그것도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먼저 칼을 빼 든다면 상대에게도 칼을 빼 들 수 있는 당위성을 제공해 주는 멍청한 짓이었다.

‘빼지 마라. 빼지 마! 그러다 목 날아가세요.’

그것은 곧 그들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는 뜻이었다.

특히나 제도의 법은 기사에게 관대했다. 기사가 레이디를 지키는 상황이라면 더 설명할 것도 없음이라.

“형님, 어떻게 할까요?”

불량배들은 완전 멍청하지는 않은지 제레미의 기세에 잠시 주춤했다.

“칼 쓰지 말고 적당히 손봐 주자고.”

세상에 제레미의 앞에서 ‘적당히’와 ‘손봐 준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그 봐준다는 손이, 손금 운세는 아닐 테고 말이야.’

한나는 제레미가 사다 준 음료를 마시며 그들이 얼마 만에 나뒹굴게 될지 가늠했다.

그 순간, 한 남자가 제레미에게 달려들었다.

“이얍!”

퍽.

소리와 함께 남자는 제레미의 다리에 걷어차여 바닥에 쓰러졌다.

“윽…….”

옆구리를 강타당한 그는 끙끙거리는 소리와 함께 데굴데굴 굴렀다.

“어디서 재주 좀 부리는 모양인데! 우리도 호락호락하진 않다고!”

남자들은 하나씩 덤벼서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셋이서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본 한나는 생각했다.

‘빨리 끝나겠네.’

그녀의 시선이 음료로 향했다.

마시고 있는 이 음료가 바닥을 보이는 게 빠를까, 저들이 다 나가떨어지는 게 빠를까.

꿀꺽.

음료가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그 와중에 옆에서는 퍽, 퍽, 퍽.

둔탁한 타격음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중간중간 뼈라도 부러지는 게 아닐까 싶은 괴기스러운 소리도 간간이 섞여 있었다.

음료를 반쯤 마셨을 때, 주위가 고요해졌다. 그리고 제레미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상태였다.

“맛은 어때요?”

“맛있어.”

결국 음료를 다 마시는 것보다 제레미가 빨랐다. 옆으로 시선을 돌리자, 불량배 삼인방은 길가의 낙엽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저런…….”

한나가 말끝을 흐렸다. 군데군데 피가 터지고, 잔뜩 부어오른 얼굴을 보니, 오늘 제레미가 제법 화가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적당히 하지 그랬어.”

“쓰레기들은 적당히 해선 절대 버릇 못 고쳐요.”

“그래. 그 말은 빼고, 제국의 치안을 위해서였다고 치안대에게 말해.”

“신경도 안 쓸걸요.”

한나는 폭력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건 누구라도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한나가 제레미의 행동을 막지 않은 건, 이 세계에 적응할수록 자신이 현대에서 가지고 있던 통념을 모두 적용시킬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어서였다.

저런 불량배들을 곱게 치안대에 인계했다가는 금화 몇 개 쥐여 주고 웃으며 빠져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 밤 당장 복수하겠다고 달려오지 않으면 다행이지.’

이곳에선 불합리한 상황을 겪게 된다면 직접 응징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저런 불량배들은 그냥 피하기만 했다가는 저가 아닌 누군가를 해코지할지도 모르니 이렇게 혼쭐을 내주는 것이 나았다.

‘그나마 검을 들지 않아서 다행이네.’

아마 그들이 칼을 꺼내 들었다면 제레미 역시 칼을 들었을 것이다.

“다친 곳은 없어?”

“치료해 주지 마요.”

“나 신관인 거 몰라?”

그리고 한나는 흠씬 두들겨 팬 불량배들을 치료해 줄 생각이었다. 병 주고 약 주는 상황이 따로 없었다.

“잘못은 아프게 새겨야죠.”

“그건 인간들 기준이지. 우리 여신님은 워낙 자비로운 분이시라.”

매번 같은 반응의 제레미의 말에 한나는 웃으며 널브러진 불량배들에게 다가갔다.

“내가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 짓고 있지?”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정확한 한나의 말에 제레미는 피식 웃었다.

실제로 그는 테이블에 기대 한나가 더러운 벌레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아니꼽게 보고 있었다.

차라리 성력을 쓸 수도 없게 죽여 버렸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제 선생님이 안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악당들은 오래 살아야지.”

“그 반대 아닌가요?”

“인간이 죗값을 치르고, 반성까지 하려면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하거든.”

“선생님은 악당에게도 관대하네요.”

그 말에 한나는 낮게 웃었다.

저가 제일 관대하게 대하는 악당들이 누구인지 알면, 까무러칠 텐데.

* * *

작은 소란이 있었지만, 즐겁게 야시장 구경을 끝낸 한나와 제레미가 신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휴일 동안 뭐할 거예요?”

“음. 일단 빵집 쿠폰을 쓰고, 옷도 좀 사고, 음……. 보통 사람들은 뭘하지?”

솔직히 한나는 중앙 신전으로 온 뒤로 휴일다운 휴일을 보낸 적이 없었다. 뭐, 3일 내도록 잠만 자는 것도 보람찬 휴일이라고 할 수 있다면 잘 보낸 거지만 말이다.

“친구를 만나겠죠.”

한나는 야시장에서 사 온 과일 사탕을 한입 베어 물며 답했다.

“난 친구 없는데?”

“너무 바로 없다고 대답하는 거 아니에요?”

“없는 걸 없다고 하지.”

한나가 어깨를 으쓱했다. 정말이었다. 그녀는 신관들을 제외하고는 친구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친구가 생길 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도들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을 수도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딱히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없었던 그녀였다.

“나한텐 네가 있잖아.”

이런 날에 함께해 줄 사람은 제레미로도 충분했다.

“거기다 넌 항상 한가하고.”

뭐 거의 백수처럼 한가한 것 같아서 걱정은 되지만 말이다.

“절 어떻게 보는 건가요.”

백수 놈팡이?

“전 선생님한테만 시간이 있는 건데요.”

“음…….”

한나는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애매한 표정을 지었고, 제레미는 그런 한나를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녀는 제레미가 잠잘 시간도 줄여 가며 자신을 보러 오는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네가 이렇게 외로운 날에 함께해 줘서 고맙지만, 얼른 정식 기사가 됐으면 좋겠다.”

“왜 그렇게 제가 기사가 되길 바라세요?”

“네 꿈 아니었어?”

“음…….”

한나의 물음에 제레미는 자신의 꿈이 기사였었던 마지막 기억을 떠올렸다.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도 나지 않을 지경이었지만, 한때는 그런 풋풋한 꿈을 꾼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런 귀여운 꿈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 그럼 지금은 달라졌어? 지금 꿈은 뭔데?”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거?”

제레미가 장난스레 미소 지었다.

“재미없는 어른이 됐네.”

한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선생님.”

“왜. 한량.”

“검사가 아무 생각 없이 살면, 뭐가 되는 줄 알아요?”

“글쎄. 건달이나 되려나.”

한나는 별생각 없이 가볍게 답했고, 그에 제레미의 웃음보가 터졌다.

“풋.”

“뭐야, 왜 그리 이상하게 웃어?”

“아니에요. 너무 맞는 말이라.”

제레미는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답지 않게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참 나.”

한나는 실없는 제레미를 바라보았다. 바보같이 웃어도 허우대가 멀끔하니, 그림 같았다.

이렇게 번듯하게 자란 아이가 기사가 된다면 얼마나 멋있을까.

“네 기사 서임식 구경하는 게 내 소원 중 하나야. 얼마나 늠름하고 멋있겠어. 넌 잘생기기까지 했으니, 서임식이 절경일 거야.”

“그래요?”

한나의 한마디에 제레미는 기사가 될 생각은 없어도 기사 서임식은 해 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기사가 좋아요?”

요즘 여성들 사이에서 잘생긴 기사들을 선망하는 게 유행이었다. 기사가 나오는 연애소설과 오페라가 성행했으며, 귀부인들이 몰래 기사 애인을 두는 일도 허다했다.

신전에 틀어박혀 있다고는 하나, 제 선생님도 그런 취미가 있었던 걸까.

“무슨 소리야. 제레미.”

하지만 한나는 제레미의 말에 무슨 그런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하냐며 혀를 내둘렀다.

“기사가 좋은 게 아니라, 잘생긴 기사가 좋은 거야.”

“네?”

“잘생긴 기사의 서임식이 보고 싶은 거라고.”

한나는 마지막 과일 사탕을 꼬치에서 쏙 빼서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얘는 왜 못 알아듣는담. 척하면 척 아닌가?

기사 서임식이야 뭐, 근사한 갑옷 입고, 무릎 꿇고, 그럴싸한 검으로 어깨나 두드리고…….

어, 생각하다 보니 멋있긴 하네.

“선생님도 참…….”

제레미는 커다란 손으로 입가의 얼굴을 반쯤 가리며 웃었다.

“외모지상주의라고 들어는 보았니. 잘생긴 건 최고야.”

“그거 좋은 기준이네요.”

“오, 네 생각도 그래?”

“네.”

어쩐 일로 두 사람의 의견이 맞아떨어졌다.

“내일은 수업하는 날이지?”

“……음.”

제레미는 사실, 수업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했다간 한나의 ‘너 또 땡땡이치고 다니는 거야!’ 같은 잔소리가 이어질 게 분명했다.

“수업 끝나고 케이크 먹자. 기사 학교로 갈게.”

“음…….”

제레미의 말꼬리가 흐릿하게 늘어졌다.

“알겠어요.”

하지만 이내 제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또 어디서 놀다 들어가지 말고. 바로 들어가. 밤길이 얼마나 무서운데. 요즘 제도에 흉흉한 소문도 많으니까 엄한 곳은 가지도 말고.”

“엄한 곳?”

“술집이나 투기장 같은 거. 요즘 그런 게 유행이라며.”

제도에서는 짐승들이 싸우는 것에 돈을 거는 투전판이 유행하고 있었다. 아니, 짐승뿐 아니라 사람끼리 싸우는 것도 유행이라 했다.

귀족이고 평민이고 열을 올린다는 소문이 신전에만 박혀 있는 한나의 귀에까지 들릴 정도였으니.

“호기심으로라도 가지 말고.”

한나가 말을 덧붙였다. 꼭 이런 잔소리를 할 때마다 할머니가 된 기분이다.

“알겠어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는 제레미를 보자 그제야 한나는 안심이 됐다. 그래도 자신의 말은 잘 듣는 제레미였다.

“도착.”

어느새 신전 앞에 닿은 두 사람은 정문 앞에 멈춰서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마주 보았다.

“곧장 기숙사로 가는 거야.”

“알겠어요. 얼른 들어가요.”

한나는 한참이나 높은 곳에 위치한 제레미의 머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그래요?”

“머리가 이제 너무 높이 있어서, 쓰다듬어 줄 수도 없네.”

“다리를 조금 잘라야 하나?”

“끔찍한 소리 말고, 얼른 가.”

언제 이렇게 자라서 올려보아야 겨우 얼굴을 볼 수 있게 된 건지.

“얼른 들어가요. 추워진다.”

제레미는 그 인사를 끝으로 몸을 돌렸고, 한나는 멀어지는 그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 * *

어두운 골목.

불빛 한 점 없는 그곳은 길이 잘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제레미는 그런 어둠 속을 익숙하게 걸었다.

“오셨습니까.”

그가 낡은 나무문 앞에 다다르자, 문 앞을 지키던 남자가 제레미를 보고 반응했다.

“별일은?”

제레미는 익숙한 듯 험상궂게 생긴 남자에게 말했다.

“소펜티아 남작이 낮에 잠시 소동을 일으키긴 했지만, 잘 돌려보냈습니다.”

“그 술주정뱅이는 아직도 말썽이야?”

“뭐, 늘 그렇듯 푼돈 때문이죠.”

제레미는 보고를 받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으슥한 골목 안, 낡은 문 안의 건물은 예상외로 화려한 조명이 빛나고 있었다. 흡사 으리으리한 저택과 비슷했다.

“내부 청소 좀 신경 쓰라니까.”

그의 시선이 복도에 널브러진 누구의 것인지 모를 옷과 술병에 닿아 있었다.

“신경 쓰겠습니다.”

남자가 그것들을 발로 밀어 버리며 답했다. 제레미는 1층 홀을 지나쳐 2층 계단을 올라갔다.

1층 홀은 광란의 파티라도 벌어졌던 것처럼 어지러운 모습이었다.

“주정뱅이들 상대로 하는 도박판은 접을 때가 됐어.”

쯧, 제레미가 혀를 찼다.

“오셨습니까!”

그가 2층으로 들어서자,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파르노테.”

그가 한 남자를 부르자, 복면인이 다가왔다.

“예.”

“이곳도 이제 정리할 때가 된 것 같지? 오는 길에 보니 황실의 끄나풀이 잠복해 있던데.”

“삼 일 전부터 지켜보고 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긋지긋한 것들.”

이곳은, 정기적으로 옮겨지는 암흑길드의 아지트였는데, 이번에도 장소를 옮길 때가 된 듯했다.

“도박장은 싹 정리하고, 술집으로 만들어. 언제 다시 쓰게 될지 모르니 짐은 최소한만 옮기고.”

“네.”

“내가 말한 장부는 필사해 뒀나?”

“네. 멜리안 후작의 차용증도 함께 집무실 책상에 올려 뒀습니다.”

“오늘은 할 일이 많겠어.”

제레미는 이 암흑길드의 수장이었다. 그가 이곳의 수장이 된 것은 고작 1년 전의 일이었다.

그를 귀찮게 하는 일은 많았지만, 특히 요즘은 그가 유행시킨 도박판이 말썽이었다. 제국의 황실도 제레미의 도박 사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정도였다.

그곳에는 있는 수 있는 범죄가 모두 일어나고 있었으니.

제레미는 선천적으로 돈을 끌어모으는 능력을 타고났다. 다 허물어져 가던 친부의 암흑길드를 이 정도로 일으킨 것은 순전히 그의 능력이었다.

손에 피나 묻히고 다니던, 뒷골목 잡배들이 이제는 돈 놀음을 하는 거대 길드가 되어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말이다.

“그 광산 광부는 찾았나?”

“예. 갈라티아 마을에 현재 보호 중입니다.”

“흐음.”

제레미는 이제 약이나 도박판으로 돈을 긁어모으는 것에서 손을 털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그의 구미가 당기는 아이템이 있었다.

“내일……. 아니, 모레 내가 직접 만나러 가지.”

내일을 말하려던 그는, 한 가지 약속이 떠올라 급히 일정을 바꾸었다.

“예.”

제레미가 복도를 지날 때마다 검은 옷의 사내들이 늘어났다. 하나, 둘, 늘어나던 인원은 빽빽하게 복도를 메우고 있었다.

“가서 일들 보라고.”

그가 부드럽게 손을 흔들자, 그의 뒤에 빼곡하게 서 있던 남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사라졌다.

제레미의 한마디에 등불 앞의 날벌레처럼 사라지는 그들은 제국에서 제일 악명 높은 암흑길드의 일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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