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96)

<2화>

그의 얼굴이 삽시간에 경직되었다가 이내 허물어지듯 일그러졌다.

그러나 아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소파에 느슨한 자세로 누워 있는 성현의 하체로 재차 자연스럽게 시선을 옮겼다. 이왕 충동적인 일탈을 벌일 거라면, 잃는 것보다 얻는 게 커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 아닌가.

겉으로 보기엔 권성현의 몸에 붙어 있는 그 무엇이든 크지 않은 게 없는 것 같았다. 남들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붙은 것처럼 커다란 키에 대문짝만한 어깨, 앞뒤로 두꺼운 몸통까지.

그는 대체로 다 컸지만, 성급한 일반화는 위험한 법.

아연에게는 확신이 필요했다.

다른 건 다 무식할 정도로 커다란 주제에 어이없게도 정작 중요한 그거 하나만 작은 거라면, 굳이 이제껏 잘 지내 온 소꿉친구 하나를 희생하면서까지 정신 나간 짓을 이어 갈 필요는 없을 테니까.

아연은 날카로운 눈길로 성현이 아무렇게나 벌리고 있는 다리 사이를 훑었다. 조심성 없이 반쯤 기대 누운 편안한 자세 덕분에 트레이닝팬츠 위로 숨길 수 없는 묵직한 부피감이 느껴졌다. 정확히는 왼쪽 방향으로 길게 누워 있는 굵직한 윤곽이.

“한아연. 너 취했어?”

아이씨, 어딜 쳐다봐.

성현은 신경질적으로 읊조리며 느슨하게 기대어 있던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그 때문에 위로 말려 올라가 있던 티셔츠가 스르르 흘러내리며 아쉽게도 고간의 크기를 가늠할 만한 시야를 차단했다.

눈살을 있는 대로 찌푸린 성현이 경고하듯 말했다.

“취했으면 곱게 돌아가서 이 닦고 잠이나 자라.”

치과 의사인 누나를 뒀기 때문인지, 그는 양치질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 와중에도 무심코 튀어나오는 게 고작 양치 타령이라니. 집 안 곳곳 손만 뻗으면 닿는 자리에 멘톨이 있는 권성현다운 타박이었다. 아연의 입술 사이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술주정뱅이에게 단호한 퇴거 명령을 내린 성현은 소파 등받이에 걸려 있던 아연의 카디건을 홱 집어 들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만 제집에서 나가란 뜻이다.

잘생긴 미간이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아연은 순순히 카디건을 건네받는 대신 한껏 인상을 구긴 성현을 응시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안 취했어. 나 맥주로는 잘 안 취하는 거 알잖아.”

“취하지도 않고 그딴 소리 지껄이는 거면 더 심각하지.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너네 집에 가라.”

“이거 아직 덜 마셨는데.”

아연은 반쯤 남은 맥주가 찰랑거리는 캔을 흔들어 보였다. 하아, 성현이 인내심을 새기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씨근덕거리며 말했다.

“너 내가 친구로서 경고하는데, 어디 가서 다른 남자 새끼들 앞에서 그딴 소리 하지 마라. 아니, 애초에 다른 새끼들이랑은 웬만하면 술 마실 생각도 하지 마. 아무것도 모르는 게 진짜 큰일 나려고 어디서 겁도 없이…….”

“그냥 물어본 건데 뭘 그렇게 흥분해서 씩씩거려.”

“네가 흥분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은 안 들고?”

아연은 눈을 내리깔고 맥주를 홀짝거리며 중얼거렸다.

“너 혹시 작아서 그래? 그런 거라면 괜히 아픈 데 찔러서 미안하고.”

“뭐? 하. 어처구니가 없네.”

성현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손에 움켜쥐고 있던 카디건을 내려놓는 손길에 가까스로 억누른 짜증이 배어났다.

뭘 저렇게까지 짜증을 내? 진짜 작은 거 아냐? 그럼 저 바지 위로 채 숨겨지지도 않는 두툼한 실루엣은 뭐지? 설마 고환만 잔뜩…….

찰나의 침울한 의심이 아연의 뇌리를 스쳤다. 당당하지 못하니까 저렇게 성이 난 게 아닌가 하는 의혹으로 그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마치 그런 아연의 생각이 빤히 보인다는 듯 발끈한 성현은 신경질적인 손길로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혼란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와중에도, 작다는 오해는 또 싫은 모양이었다.

“한아연. 네가 무슨 생각 하는지 다 보이는데, 그런 거 아니거든.”

“아니면 다행이고…….”

한아연이 갑자기 미친 게 아닐까?

황당한 짜증과 약간의 걱정이 뒤섞인 눈빛이 허공을 어지러이 배회했다. 커다란 손으로 연거푸 마른세수를 하다가 재차 머리를 쓸어 올리며 혼자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성현은 이윽고 동작을 멈췄다.

시선이 붙었다 떨어졌다. 주변을 둘러싼 공기에 잔뜩 날이 선 것처럼 은밀한 긴장감이 서리기 시작했다.

아연은 아무렇지 않은 척 맥주 캔에 입만 대었다 떼기를 반복했다. 그런 아연을 바라보던 성현이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크면, 어쩔 건데.”

낮게 가라앉은 음성엔 이유 모를 불안감이 스며 있었다. 그래. 불안할 만도 하지.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연 역시 권성현을 남자로 생각하지 않았으니, 그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아연은 구슬리듯 친절하고 상냥해진 목소리로, 어렵지 않은 간단한 부탁 하나를 건네는 것처럼 여상하게 말했다.

“한 번만 보면 안 돼?”

성현은 어울리지 않게 얼이 빠진 표정으로 잠시 동안 입술만 달싹거렸다.

한아연이 지금 날 놀리는 건가?

평소에 주로 놀리는 건 성현 쪽이고, 아연은 그의 놀림을 적당히 받아 주는 쪽이었는데 반대의 상황에 처하고 보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내가 그동안 너무 짓궂게 굴었나? 맞선이니 결혼이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쓸데없이 진지하게 늘어놓기에 신랄하게 대꾸했더니, 그게 마음에 안 들어서 한아연이 나한테 복수라도 하려는 걸까.

정말 단순히 자신을 놀리는 거라면, 이건 몹시 질 나쁜 장난이 아닐 수 없었다. 대뜸 좆이 크냐느니 하는 헛소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자기 앞에서 바지를 내려 보라니. 황당한 걸 넘어, 도무지 한아연이 할 법한 말이라곤 믿기 어려운 종류의 발언이었다.

겉보기에만 멀쩡하지, 실은 만취한 거 아냐?

성현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아연을 살폈다. 그녀의 얼굴과 헐렁한 티셔츠 아래로 드러난 목덜미 따위를 훑어보았지만, 동그랗게 뜬 두 눈은 더없이 초롱초롱했고 선이 가는 목덜미도 평소와 다름없이 새하얬다.

두 뺨에 발그레하게 열이 올라 있긴 했지만, 거실 테이블 위에 일렬로 줄지어 놓은 맥주 캔의 개수는 평소 그녀의 주량에는 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응?”

아연이 엉덩이를 한 칸 옮겨 가까이 붙어 앉으며 재촉하듯 물었다. 그녀가 한층 가까워진 만큼 뒤로 훌쩍 물러나려던 성현의 시도는 소파 팔걸이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음주의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말간 얼굴이 불쑥 다가왔다. 정말 취한 게 아니라면 한아연이 대체 왜…….

“보기만 하자. 어?”

“싫…….”

그녀의 다그침에 짜증스럽게 대꾸를 하던 성현의 말꼬리가 불현듯 잦아들었다.

괜히 냉정하게 단칼에 거절했다가는, 혹여라도 울컥한 한아연이 속 시커먼 다른 놈들한테 가서 제게 한 것처럼 맹랑하게 굴기라도 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안 그렇게 생겨선 은근히 막 나가는 구석이 있는 걸 보면,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불안한 가능성이 피어오른 것이다.

저렇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한 얼굴을 한 주제에 한 번만 보여 달라느니 하는 위험천만한 소리를 지껄이게 두었다간, 상대가 누구든 좆을 꺼내서 보여 주는 것뿐만 아니라 어떻게든 휘두르려고 들 게 뻔했다.

그런 불상사를 일으키느니, 차라리 그냥 한 번 보여 주고 마는 게 훨씬 안전하지 않나……?

한껏 구겨져 있던 성현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리고는 이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았다.

보여 주기만 하는 거라면 사실 뭐 닳는 것도 아니고, 한아연이 부탁하는 건데 못 들어줄 것도 없다는 꽤나 관대한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고작 그 부탁이란 게 다름 아닌 좆을 보여 달라는 거라니 황당하긴 하지만.

성현은 길게 심호흡을 한 뒤 소파에 기대고 있던 상체를 세웠다.

“징그럽다고 소리 지르지나 마.”

“……응.”

아연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성현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꼴깍 삼키곤 천천히 손을 내렸다.

‘하,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한아연 앞에서 바지를 내리게 될 줄은 몰랐는데.’

커다란 손이 트레이닝팬츠에 닿았다. 엄지가 바지의 허릿단 속으로 스윽 파고들었다. 바지와 속옷을 한꺼번에 손가락에 건 성현은 소리 없이 깊은 숨을 들이켰다.

두 사람을 둘러싼 공기엔 팽팽하게 당겨진 줄처럼 아찔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날 선 정적 속에서 숨 쉬는 것마저 잊혀졌다.

이윽고 그가 거침없이 손을 끌어내렸다. 짓누르고 있던 천이 벗겨지자, 그 안에 자리한 거대한 성기가 퉁 하고 튕겨져 나왔다.

‘씨발. 이건 또 왜 이래. 눈치도 없이 서고 지랄이야.’

성현은 밀려드는 쪽팔림에 인상을 급속도로 구겼다. 발기한 물건과 함께 튀어나올 뻔한 욕설을 가까스로 씹어 삼켰다. 아연이 순진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응?” 하고 재촉할 때부터 바지 속에서 심상치 않게 꿈틀거리던 좆이 기어코 대가리를 쳐들고 만 것이었다.

보여 달란다고 대뜸 좆부터 세우다니. 뭐 이런…….

쪽팔린 건 둘째 치고, 징그럽다고 벌벌 떠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성현은 슬쩍 시선을 옮겨 아연의 반응을 살폈다.

그렇지 않아도 커다란 아연의 눈이 더욱 동그랗게 커져 있었다. 바지를 까 내린 쪽보다 어째 자기가 더 긴장해서는 사뭇 비장해 보이기까지 한 얼굴이었다. 꽉 다물고 있던 도톰한 입술이 저절로 벌어지고, 나지막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엄청 크다.”

쪽팔림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제 물건이 큰 편에 속한다는 것쯤은 그도 알고 있었다. 수영장이나 사우나에 가면 여지없이 그의 하체를 힐끔거리는 시선을 여간 혐오했던 게 아니었으니까.

종종 예의 없이 뚫어지게 그곳만 응시하는 뻔뻔한 인간들을 경멸했으며, 주변의 사내새끼들이 부럽다는 식으로 그를 추켜세울 때는 오히려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대물이라는 둥 노골적으로 언급될 때면 경매 시장에 오른 종마라도 된 듯 기분이 더러울 따름이었다.

바지 속에 점잖게 정리해 넣기 성가시기나 한 것을.

겨우 성기 크기에 같잖은 자존감을 채우는 유치한 종자들을 한심하게 여기며 상종도 안 해 왔던 그로서는 몹시 생경한 느낌에 휩싸였다.

내가 지금 고작 크다는 말에 우쭐해진 건가?

그런 스스로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부정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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