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15. 불씨들
반갑다고 해야 할 일을 미뤄 놓을 수는 없다. 지호에게 당면한 과제는 단연 휴식이었다. 최신형으로 개량된 치료기에 누운 채 죽은 듯이 잠에 빠져든 지호는 그러고도 꼬박 하루를 잠들어 있었다. 눈을 뜨자마자 협회 본부로 가서 상황 보고해야 한다고, 준비하라는 이야기부터 들으며 정신을 차렸다. 머리가 멍했다.
그나마 회복세에 접어들 수 있었던 건 지호 본인의 치유력과 신형기기의 놀라운 성능, 그리고 신체 계열 능력자 특유의 튼튼함 덕분이었을 것이다. 더운 물줄기를 맞으며 머리를 좀 비워 내자 기분이 썩 괜찮아졌다.
협회 본부에서는 지호의 기상 소식을 듣기 무섭게 그를 재촉했다. 실종자들 소식을 들고 왔으니 사방에서 협회를 두드려 댔을 것이다.
승찬이 들려준 이야기는 생각보다 본격적이었다.
“실종자 수색을 찬성하는 쪽이건 반대하는 쪽이건 우선 지호 씨 이야기를 들어야 뭐라도 할 수 있는 셈이라 매일 싸워 대던 사람들이 오랜만에 싸움을 멈췄다더군요. 길거리에도 일인 시위며 대자보며 싹 없어졌어요. 그리고 협회 브리핑 동시 접속자 수가 이십만 명을 넘었고요.”
“이십만 명이요?”
“임시 채널 최대 입장 수가 이십만 명밖에 안 돼서 그럴 겁니다. 그 채널을 중계하는 해적 채널들까지 하면 수를 집계하기는 어려울 거고요.”
“좋은 소식이 아닌데 어떻게 하죠?”
“희비 여부를 판단하는 건 들은 사람들이 아닐까요?”
아니다. 어떻게 들어도 나쁜 소식이다. 살아만 있어 달라고 비는 사람들조차 그들이 살아 있을 거라고 온전히 믿고 있지는 않을 터.
저들이 바라는 건 괴물이 되어 버린 실종자들이 아니라, 그들의 시체였을 것이다. 그리움과 기다림을 끝내 줄 마지막 소식들.
협회 본부로 가기 전 승찬에게 동행을 청한 지호는 크게 심호흡했다. 사방에 해당 소식에 대해 먼저 알아내서 정치적으로든 다른 쪽으로든 이용하려는 이익 집단들뿐이었다.
심지어 보현조차 그랬다. 자신을 내던져 가며 지호의 길을 막으려는 행동들. 설령 그를 걱정하는 일이어도 아닌 건 아닌 거였다. 고마움과 별개로 지호는 보현과 거리를 두어야 함을 깨달았다. 여전히 보현을 아꼈고 그에게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가득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호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승찬은 멀지 않은 곳에서 지호 쪽을 흘끔거리는 사람들을 보며 한 걸음 옮겨 그들의 시선에서 지호를 가렸다. 저쪽에선 끽해야 승찬의 어깨 위로 삐쭉 나온 지호 머리카락 정도나 보일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소식이 아녜요.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주목하고 있다니, 더 못 말하겠어요.”
“실종자 무리를 만났다고 했잖습니까. 실종자들의 시신을 마주했다고 한 게 아니라. 그것만으로 다들 기대할 만하죠.”
“아저씨. 차라리 시체를 만나는 쪽이 좀 더 좋은 소식이었을 것 같다고 하면 믿겠어요?”
단단히 팔짱 끼고 있던 승찬의 팔이 스르륵 풀렸다. 그는 코를 문지르며 지호 쪽으로 몸을 숙였다.
“예전에 말하는 괴물들이 있다고 했었죠? 실종자들이 그렇게 된 겁니까?”
지호는 휘둥그레 눈을 떴다. 승찬은 씁쓸히 웃으며 도로 상체를 세웠다.
“지호 씨가 사라진 동안 이쪽 채널에서 온갖 추측과 이론이 난무했습니다. 그런 이야기도 없지는 않았었죠. 물론 생각만 하는 것과 실제로 관측되는 차이야 있겠지만, 그보다 더 최악의 사태들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진 마요. 그리고 지호 씨가 가져온 소식 덕분에 잃어버린 가족을 붙들고 있던 자신과 이별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승찬은 눈뜨자마자 자기를 불러 준 지호에게 여러 복잡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가져온 소식 때문에 더 그랬다. 다른 이들 시선을 신경 쓰면서 꿋꿋이 그들의 시야에서 지호를 가리는 위치에 선 그는 헛기침하며 속삭였다.
“실은 무슨 소식일지 제일 궁금한 게 저일 거예요. 제 동생은 진작 죽었을 게 분명해서 체념하고 있긴 했는데, 그래도 혹시나 싶은 마음도 있고요.”
“동생이요?”
“몇 년도 더 전에 균열에 휘말렸거든요. 그때 저도 꽤 크게 다쳤고……. 그래도 군 면제는 안 해 주더군요. 그땐 진짜 억울했어요.”
누군가 이쪽으로 플래시를 터뜨려 가며 사진을 찍었다. 혀 차는 소리가 들린다. 지호가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승찬은 그쪽으로 사나운 시선을 던지면서도 목소리만큼은 다정히 말을 이었다.
“제가 예전에 철없는 소리 했던 적 있죠. 저도 각성자가 되고 싶다고. 왜 그랬는지 말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때 안 어울리게 좀 떼쓰셨었죠.”
초등학교에 갇힌 아이들 앞에서였다. 승찬은 지호의 나이와 자기 나이를 가늠하더니 이마를 긁적였다.
“흠, 살아 있었으면 지호 씨보다 두 살 어린 나이였을 거예요. 저랑 띠동갑인 늦둥이였거든요.”
“업어서 키웠겠는데요.”
“그럼요. 얼마나 착한 녀석이었는데요. 쓰레기도 꼬박꼬박 잘 줍고, 무단 횡단하는 형을 혼내면서 차 한 대 안 지나가는 빈 도로에서도 신호 지키는 착한 어린이였죠. 그때는 훨씬 어렸어요. 혼란기 즈음이었나.”
2세대 각성자들이 나타나던 시기였다. 초능력자니 뭐니 하던 용어들이 사라지고 각성자와 헌터라는 이름으로 슬슬 통일되어 갈 즈음이었을까. 지호는 그때 고작 중학생이었다. 승찬의 동생은 고작해야 열두어 살 남짓 되었겠지.
“저는 그 녀석을 데리고 도망치지 못했어요. 살고 싶었고, 무서웠거든요. 걜 두고 도망친 저는 사회에서도 도망쳤어요. 군대는 그런 도망자를 받아 주는 좋은 도피처였죠.”
뒷이야기는 했죠? 하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는 승찬의 등이 허전하게 느껴졌다. 일부러 뒤를 돌아선 것 같은 모습이기까지 해서, 지호는 굳이 그를 돌려세우지 않았다.
“가족을 구하지 못했다고 아저씨를 비난하거나 원망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럼요.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사람들을 구하고 할 수 있었겠어요. 저는 지호 씨가 왼손으로만 살짝 밀어도 쓰러질 만큼 연약한 민간인이잖아요.”
“연약이요? 안 어울리는 소리 하시네요. 아저씨가 연약하면 세상 연약한 사람들 다 억울해서 어째.”
“토 달지 말고요, 헌터님. 저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균열에서 괴물 마주치면 도망가기 바빠요. 이걸로 괴로워할 순 없죠. 사는 게 먼저니까. 후회 정도는 하더라도, 그때로 돌아간다 한들 몸을 던져 동생을 구할 거라고 생각하긴 어렵더군요. 남을 위해 그렇게 될 때 각성자가 된다는 걸 아는 지금도요.”
“그거야 뭐. 저라고 또 각성자 될 수 있겠어요? 어떨지 아무도 모르지.”
승찬은 짧게 웃곤 몸을 돌렸다. 지호를 찍으려던 집요한 기자들이 보안 요원의 통제를 받아 쫓겨나는 걸 끝까지 지켜본 후의 일이었다.
“아무리 과거로 돌아간다 한들 동생을 구할 수 없을 머저리가 말하는 거라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지호 씨가 가지고 온 정보는 그 무엇보다 중요할 거예요. 설령 그들이 괴물이 되었다고 해도요.”
지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이 알고 지낸 시간이 꽤 됐다. 그중 절반은 보현이 없는 시간들이었다. 실질적 보호자의 자리를 메꾸어 온 사람답게, 승찬은 지호가 말하지 않은 것을 예리하게 잡아낸 뒤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게 사실이라면 좀 더 중요한 논의가 시작되겠죠. 그러니 그냥 말해 버려요. 사실을 듣고 고민하는 걸 그들의 몫으로 넘겨 버리라고요”
“중요한 논의요?”
“괴물이 된 실종자들은 여전히 구할 필요 있는 사람들인가 말이죠.”
방송 준비 끝났다며 스태프가 달려와 지연을 사과했다. 본래 협회 보고는 공식 브리핑이어도 이렇게 공개적으로 하진 않는다. 그러나 사안이 사안이고, 급성 균열로 인한 피해가 심각해 사람들의 눈을 돌릴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호는 도무지 실감할 수 없는 시청자 수를 다시금 상기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승찬은 여기까지만 함께한다. 시선이 마주치자 가벼운 미소가 돌아왔다. 여느 때의 승찬이다. 지호 역시 마주 웃을 수 있었다.
괜찮을 것이다.
승찬의 말대로 지호가 고민할 일은 아니었다. 준비된 회의실에 들어서자 문 열리는 소리와 동시에 모든 말소리가 뚝 끊겼다. 괜히 남들 대화를 방해한 기분이라 머쓱했다.
아는 얼굴보다 모르는 얼굴이 훨씬 많다. 성 팀장을 보고는 약간 웃을 수 있었지만 양 박사를 보고는 눈 흘기는 시간조차 아까워 얼른 고개를 돌려야 했다. 금 박사는 양 박사보다 약간 뒤편에 앉은 채 팔짱을 끼고 있었다. 말할 테면 해 보라는 태도. 사실 대부분은 지호가 할 말에 그렇게까지 관심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귀환을 환영한다, 이지호 헌터. 협회 서부 사령관 남선일이다. 이 보고를 직접 받고 싶어서 자리를 마련했네. 나 말고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 균열 소멸에 휘말렸다가 돌아온 첫 번째 생환자니까.”
헌터 협회 책임자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간혹 얼굴 마주 보는 임원급 팀장들은 지나가는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 같아서 썩 높은 사람이란 느낌이 들지를 않았는데, 남선일은 헌터보다는 군인 같았고 확연히 상급자처럼 보였다. 지호는 자세를 바로 했다.
“감사합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균열을 넘어갈 방법도 알고 있다고 들었는데.”
“제 방식은 괴물의 것을 모방한 것이라 위험합니다. 실제로 그걸 따라 했다가 사고에 휘말렸던 거라, 넘어갈 수는 있어도 돌아올 수 없다는 문제가 있어서요. 제 기술보다는 임보현 헌터의 기술을 카피하는 쪽이 훨씬 안전할 것 같습니다.”
“임보현의 피보호자라고 보고받았네. 은퇴한 헌터지만 노련한 경험자야. 설득해서 복귀하도록 할 생각은 없나?”
“균열에 오래 노출된 헌터의 몸은 약해집니다. 임보현 헌터는 오랫동안 봉사했습니다. 그에게 약속된 휴식을 허락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런가? 일단 앉게. 세워 놓고 말할 생각은 없어.”
사령관과 대면하는 자리 뒤편에 온갖 책임자들이 다 앉아 있다. 모두의 시선이 지호 쪽을 향해 있었다. 괴물을 마주할 때보단 덜한 긴장감이라 지호는 편하게 가슴을 펴고 앉았다.
사령관은 이지호 헌터라는 가십거리에 휘말리지 않았다. 오기 전에 기록을 쭉 열람한 모양인지 손때 탄 서류를 몇 장 훑어 넘긴 그는 포스트잇 붙은 위치에서 넘기기를 멈추었다.
“본격적인 질문에 앞서 묻고 싶은 게 있네. 균열 경계 뒤편으로 넘어가면서 시간 차이를 느꼈다고 들었어. 처음에는 일주일가량이었지.”
“두 번째는 이 주였습니다. 균열에 머무른 시간 자체는 두 번째가 훨씬 길었는데도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봐서 경계면을 지날 때 시간 흐름의 차이가 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자네 보고로 보면 그렇지. 하지만 자네 외에 다른 팀. 그러니까 시흥 게이트를 통해 경계 저쪽으로 넘어갔다 온 자들은 그렇지 않았어. 그들은 정직하게 그쪽에서 이 주나 되는 시간을 낭비했거든. 괴물을 물리치지 못해서 말이야. 마찬가지로 균열 경계를 통과해 저쪽으로 넘어갔던 것 아닌가?”
게이트라니. 균열과 통하는 인공 문을 그렇게 부르기로 한 모양이다.
선발대원들은 지호가 처음에 질문했을 때도 시간의 흐름이 어쩌네 하는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들이었다. 구조된 후에 확인해 보니 이쪽과 시간 차이를 느끼지 못했던 모양이다. 잠시 고민하던 지호는 그가 생각했던 또 다른 가설을 꺼내 놓았다.
“저와 그 그룹의 차이점이라면 균열 진입 장소뿐이겠군요. 주안 공단 균열은 다른 균열들과 달리 커지기 직전에 충돌로 에너지 방향을 선회해 확장을 막은 곳이었습니다. 다른 곳보다 에너지 밀도가 훨씬 높았고요. 모든 균열 경계가 시간차를 만들어 내는지 주안 균열이 특이한 경우인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표본으로 삼을 경우가 더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흥 균열 입구, 그러니까 게이트를 이용한 사람들의 경우로 본다면 주안이 좀 특이했을 것 같습니다.”
사령관은 이해 못 한 얼굴로 보좌관을 돌아보았다. 연구 보직일 보좌관 역시 잠시 당황하여 근처 박사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게 가능해? 하는 작은 속삭임이 사방에서 튀어나왔다. 지호는 눈을 굴리다가 슬며시 덧붙였다.
“저도 운이 좋았습니다. 균열이 생기는 순간 그 중심부에 가까워서요. 이쪽은 분석 의뢰했던 자료가 있으니 연수 센터 성여진 팀장에게 관련 자료를 받아 보십시오. 중심에서 터져 나온 에너지는 갈수록 가속도가 붙는 것 같았습니다. 저와 비슷한 시기에 다른 균열에서 그 확장을 막으려던 다른 각성자는 고통스럽게 죽었습니다. 같은 방법을 권할 생각은 없습니다.”
“자네도 죽을 수 있었던 거 아닌가?”
“다시 말씀드리지만, 운이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