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남선일 사령관은 허, 하는 소리와 함께 잠시 입을 다물었다. 지호를 찍고 있는 카메라에서 붉은빛이 몇 번 깜빡였다. 이윽고 다른 카메라에 들어오는 붉은색.
그쪽을 쳐다보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도 신경이 쏠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호는 최대한 남선일 사령관만 쳐다보려고 애썼다. 화면 저편에서 그를 보고 있을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대부분 웃고 있을 것 같았다.
성여진 팀장이 발언권을 얻어 마이크를 켰다.
“해당 사안에 관해선 정확히 밝혀진 게 없는 상태라 상세 사항 보고 올리지 않았습니다. 각성자 연합과 함께 연구 중이고, 균열 확장 시 충돌 엄금 지시를 내리는 쪽이 현명할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해 가는 참입니다. 균열 중심에서 가까워야 하고, 그 에너지를 막을 뛰어난 이형 에너지 조정 능력이 있어야 하고요. 거기에 튼튼한 신체 능력도 필요한데 그거 다 갖추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마이크가 꺼지기 무섭게 주변의 술렁임이 더 커졌다. 지호는 자기 이름이 몇 번이나 들리는 걸 모른 척하려고 눈을 질끈 감았다. 턱을 문지르던 남선일 사령관은 다시 질문을 시작했다.
“귀관은 인간과 다르지 않은 지능의 괴물과 마주했다. 인터뷰 자료는 이미 보고 왔어. 흥미롭더군. 그것을 믿는지 아닌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모두가 경악할 만한 거였어. 코드레드 투 말이야.”
도훈의 이야기다. 지호는 카메라 너머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사람들 때문에 사령관의 말이 적당히 걸러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예. 해당 괴물로부터 얻은 정보가 유용하게 쓰였습니다. 일부에겐 신뢰를 얻었겠죠.”
지호를 포함한 일부였다. 사령관은 코를 찡그리며 질문했다.
“경계 뒤편엔 놈과 같은 것들이 더 있던가?”
본격적인 질문이었다. 도훈과 촬영된 영상 속에선 경계 뒤를 응시하는 둘의 모습이 나왔을 것이다. 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더 위협적이고, 생각보다 더 많았습니다. 그들 중 하나로부터 경고받은 바 있습니다. 사람 중에 괴물과 내통하는 자가 있고, 그들이 자꾸 균열을 열려고 한다는 거요.”
“균열을 열려는 이유라도 있겠나? 거주민들의 퇴거를 손쉽게 해서 재개발이라도 하려고?”
사령관이 웃기지도 않는 농담을 끼워 넣었다. 지호는 어깨를 으쓱이며 받아쳤다.
“아뇨. 실종자들을 찾으러 가려면 일단 균열이 열려 있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아쉽게 됐습니다. 그 사람들 속았거든요.”
윗사람이 하는 웃기지도 않는 개그에 있는 힘껏 웃을 줄 아는 한국인답게 좌중에 퍼져 있던 즐거운 척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무슨 말이지?”
“제가 실종자들을 만났다는 보고를 올려서 지금 이 자리가 마련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괴물과 뒤로 내통하는 어떤 분들, 이 화면을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지호의 시선이 처음으로 카메라 렌즈로 향했다. 붉은 불 들어온 카메라. 지호는 무표정하게 사실을 읊었다.
“보고드립니다. 경계 너머에서 실종자 그룹 중 하나와 접촉. 해당 실종자들은 코드 레드 원의 농장에서 사육되고 있었고, 운 좋게 코드레드 원과 마주치지 않고 해당 건물을 빠져나와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실종자 중 마주쳤던 이들은 이미 대부분 괴물이 된 상태였으며, 이지를 유지하고 있는 이가 대다수. 즉, 죽지는 않았으나 괴물이 되었고, 여전히 자신이 누구인지 자각하고 있는 상태로 보였습니다.”
누군가 회의실에 폭탄을 떨어뜨린 것 같았다.
사실상 그 폭탄을 투하한 장본인이 된 지호는 카메라에서 눈을 돌려 사령관을 응시했다. 당황이 여실히 드러나는 눈.
긍정적인 소식을 기다리던 사람들에겐 미안한 일이다. 그러나 숨긴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었고, 승찬의 말처럼 이건 지호의 고민일 문제도 아니었다.
“전부를 확인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농장이 몇 군데 있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격전이 있었고, 대화보다는 전투로 다져진 사이라 해당 실종자의 신원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차후 게이트를 통해 임보현 헌터와 같은 기술을 가지지 않은 헌터도 저쪽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된다고 해도, 그들이 마주칠 당사자들이 사람이 아닌 셈인데, 그들을 구해서 이쪽으로 데려와도 괜찮은 겁니까?”
사령관에게 던진 질문이다. 그러나 모두에게 던져진 질문이기도 했다. 남선일 사령관은 앓는 소리를 내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이 정도 결정권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까 서부 사령관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걸 보니 총 지휘부가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여기서 결정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군. 추가로 보고할 중요 사항이 있나?”
“없습니다. 현명한 판단 부탁드립니다.”
“좋아. 물러가기 전에, 근래 귀관의 전투 기록들을 검토했네. 흥미롭더군. 왜 사방에서들 자네 이름을 입에 올리는지 알 것 같았어.”
지호는 아는 얼굴들로 시선을 옮겼다. 다들 영문을 모른다는 표정이다. 금 박사 한 사람만 웃고 있었다.
남선일 사령관은 들고 있던 자료철을 내려놓으며 한숨 쉬었다. 그의 피로는 하루 이틀로는 설명하기 어렵게 켜켜이 쌓인 것처럼 보였다.
“자네, 죽고 싶은가?”
“그럴 리가요?”
저도 모르게 엉뚱하게 반문했다. 보현과 대화할 때의 습관이었다. 지호는 아차 싶어 눈치를 살폈다. 어린 헌터의 당돌한 대답이 사령관을 웃게 했다.
“아니란 건 알아. 하지만 본인의 행동을 돌아보게나.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는 순간마다 위험한 선택을 했어. 운이 좋지 않았다면, 혹은 실력이 뒷받침되어 주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을 걸세.”
다른 사람들이 무수히 많이 했던 말이었다. 그러나 남선일 사령관이 하려 한 말은 그런 일차원적인 염려와 걱정이 아니었다.
“그러니 묻는 걸세. 죽고 싶지 않은데도 죽기 위해 자꾸만 뛰어드는 자신의 행동에 이상을 느낀 적은 없었나?”
이상한 질문이었다. 어느새 카메라는 꺼졌다. 아마 추가 보고가 없다는 말이 나왔을 때 껐을 것 같았다. 지호는 주변에서 짐을 정리하는 부산스러운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되물었다.
“그게 중요한 건가요?”
“실례. 대단히 중요합니다.”
어느새 사령관 곁으로 다가온 금 박사가 말을 받았다. 남선일 사령관은 턱짓으로 옆자리를 가리켜 그를 앉게 했다. 나머지 사람 중 절반은 나가고 절반은 이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촬영하지는 않는, 예컨대 비공식 브리핑 같았다.
배포된 자료 아닌 자료집을 척 내민 금 박사의 얼굴은 양 박사와 꽤 비슷했다. 두 사람이 사실 비슷한 타입은 아니겠지, 하는 불안감과 함께 그걸 받아 든 지호는 첫 장부터 자기 프로필이 걸려 있는 걸 보고 이게 뭐냔 표정을 지었다.
“맨 처음 각성자 등록할 때 기억합니까? 공인 각성 지원부 말입니다.”
당시 지호가 기억하는 건 보현과 박 팀장이 투닥거리는 상황 정도가 다였다. 어떻게든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려고 제대로 읽지도 않고 빈칸을 메웠던 것 같다. 보험 약정서 사인하고 빈칸 채우듯 이름 쓰는 자리마다 대충 서명했던 것도 생각났다.
“인천지부 총괄은 부천 센터장을 겸임하고 있는 박 팀장이죠. 사실 그 사람 직책상 팀장이라고 부르긴 좀 그런데, 본인이 지원 팀장을 겸임하고 있으니 부득불 그렇게 불러 달라고 해서 팀장이라고 칭하고 있거든요.”
시답잖은 이야기였다. 지호는 사령관과 금 박사를 살피며 자기 프로필이 여기 왜 있는지 궁금해했다. 남선일 사령관이 입을 열었다.
“박찬민 팀장의 보고에 따르면 귀관은 가장 위험한 현장에 지나칠 정도로 빨리 뛰어들어 온 헌터 중 하나더군. 쉴 새도 없고, 트라우마 치료 센터 출입 기록도 거의 없어. 원래부터 이런 성격이었나 싶어 찾아보니 옛 학생부 기록들엔 좀 다른 것들이 쓰여 있더군. 겁이 많고 소심한 편이라고?”
“지나치게 사적인 과거사를 들추고 계시는데요, 사령관님.”
고등학생이 느끼는 중학생 시절이 얼마나 까마득한 옛일인가. 지호 역시 자기가 많이 변했다는 걸 느끼고는 있었다. 그러나 사람은 살며 변하기 마련이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지나칠 정도로 변해 버렸으니 그 성격 그대로 살아가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을 터.
사령관은 테이블을 툭툭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그 팀의 존재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 제일 중요한 게 이거지. 각성자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변동 사항을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것. 자네를 비롯한 몇 사람이 이 팀에 주로 오르내리네. 각성하기 전의 기록과 지나칠 정도로 달라진 사람들 말이야.”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요?”
“그렇게 생각하나?”
사령관이 미소 지었다. 지호의 프로필 뒤로 몇 사람의 자료가 더 있었다. 금 박사가 해당자들의 문서를 쭉 펼치며 설명했다.
“이 파일에 있는 헌터들은 공통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모두 가족을 잃고 헌터가 되었으며, 그 빈자리를 헌터 일에 집중하는 것으로 채우고 있거든요. 그리고 하나같이 위험한 임무에들 자원하죠. 더는 소중히 여길 사람이 없으므로 그런 선택을 하는 걸까요?”
“음, 지금 그런 거냐고 질문하시는 건가요?”
“저는 숭고한 희생과 개인의 영웅화를 신봉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지호 헌터가 이미 양 솔 박사와 친분이 있어 저를 비슷한 부류로 오해하실까 봐 미리 말씀드리지만, 그 정도의 이타심을 갖는 건 정상이 아닙니다. 여기 목록에 있는 분들 공통점이 또 뭔 줄 아십니까? 트라우마 치료를 부정하거나 거부함! 본인 상태를 정상으로 인지하지만, 실상은 당장 죽어도 거리낄 것 없다는 것처럼 행동함. 아니라고 말한다는 것도 같습니다.”
“오.”
경인 지역은 양 박사 입김이 센 곳이라 금 박사 같은 의견을 내는 사람은 일선에서 요직을 맡기가 어려웠다. 지호가 금 박사를 이제야 만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같다. 그는 자기 소관인 헌터 자료를 잘 내놓는 일 없는 사람이었다.
“금 박사가 자네의 공개 브리핑을 요청했고, 내가 수락했지. 그러지 않았으면 따로 자리를 마련하기는 어려웠을 걸세.”
“이 자리가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건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금 박사가 말한 것처럼 자네와 같이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보이는 헌터들을 조사 중일세. 본래는 따로 밝히지는 않았었는데, 그중 몇 사람이 이번 사태 때 죽었어. 여태 문제가 되었던 바로 그 행동들 때문이었지. 의논 끝에 상부에서는 이들에게 사실을 전달하고 주의할 것을 요구하기로 했네. 양 박사는 아마 그 말을 자기 좋을 대로 곡해해서 받아들이거나 전달하지 않았을 테지.”
심지어 제대로 전달한다 해도 지호가 꼬아 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는 박사와의 좋지 못한 사이를 고백하는 대신 잠자코 미소만 지었다.
“저도 제 목숨 소중한 줄은 잘 압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다고? 언젠가 위험한 순간이 왔을 때 이 순간을 떠올려 줬으면 좋겠군. 죽어도 어쩔 수 없다든가, 죽을 상황을 그냥 받아들여 버리게 되는 어떤 순간에 말이야.”
“돌아가신 분들이 그랬나 보네요.”
“목격자들의 발언에 따르자면, 그랬지. 이상할 정도로 차분하게 죽음을 받아들였다고 했거든. 각성하던 순간조차 그러지는 않았을 것 같더군. 헌터 생활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진 않았을 것 같네. 모두가 그러지는 않았지 않나. 그랬다면 헌터들이 지금 다들 살아서 헌터 생활들을 할 수 있었을 리가 없으니까.”
“정말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지도 모르잖아요.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다 죽어서라던가.”
“그래. 바로 그거 말일세. 자네들은 이미 타인을 위해 목숨을 던졌어. 그걸로 충분하고도 넘친단 말이지. 각성자 아닌 일반 직원들도 협회에 많이 있지 않나? 만약 환경이 사람을 바꾸는 거라면 그들 역시 같은 행동을 해야 해. 하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어. 각성 자체에 정확히 밝혀진 게 없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니, 나는 거기서부터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짐작하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