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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108화 (109/260)

108화

부평 균열에 비명이 울려 퍼졌다. 놈이 괴물이고, 그걸 상대할 수 있느냐는 다음 문제다. 원초적인 공포가 생각을 마비시켰다. 필사적으로 냉정함을 되찾으려 노력했지만 같은 방향으로 자꾸 돌아가는 그것의 머리와 눈을 마주하고 있으면 나던 생각마저 연기처럼 픽 꺼졌다.

놈은 관절이 없는 것처럼 움직였다. 일반적인 사람의 무릎이 뒤로 꺾일 뿐이라면, 그 방향이 완전히 반대로 움직인다는 의미였다. 민첩하고 재빠르게 지호의 다리를 물어뜯으려던 놈은 서영에게 걷어차였다.

“정신 차려요!”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비현실적이었다. 계속된 중얼거림이 너무 선명하게 들린다. 지호는 그의 감각이 놈에게 지나칠 정도로 집중되어 있음을 알고 급히 땅을 박찼다.

놈이 곧장 뒤따랐으나 체공 시간이 길지 않다. 그것은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며 이를 딱딱 부딪쳤다. 고양이가 새 보며 채터링 하는 것도 아니고, 모양새가 더할 나위 없이 기괴했다.

“김서영 헌터님은 쳐다보지도 않는데요?”

“이놈이 그거 같죠? 이형 에너지 가진 것을 쫓는다는 어둠 속의…….”

대놓고 목소리를 키워 대화해도 저쪽에 신경 쓰는 기색 하나 없다. 놈의 시선은 하늘에 뜬 지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불쾌하고 섬뜩했다.

어둠 속에서 그토록 은밀하게 숨어 있을 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지호는 그 괴물을 똑바로 보고 있었지만, 주변을 느끼는 감각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이런 느낌을 이전에도 받은 적이 있었다.

놈의 입 안에서 붉은 것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본 지호는 비위가 다 상하는 걸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이걸 제가 잡는 동안 아파트 단지로 가실래요? 다른 쪽으로 유인할게요.”

“혼자서요?”

“날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최대한 거리 유지를 해 볼게요. 조심해요.”

서영은 괴물과 지호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몇 차례의 도약은 건물 삼 층가량을 가뿐히 뛰어넘을 높이였지만, 유사시에 삼십 층 이상 날아오를 수 있는 염동력 보유자에게 큰 문제 되는 수준은 아닐 터였다.

“빨리 돌아올게요.”

서영이 어둠 너머로 사라졌다. 떨림이 가라앉지 않는 건 아까와 같았지만, 이렇게까지 공포와 직면하자 차라리 무서움이 덜했다. 감지 파장에 잡히지 않는 놈이라는 것을 알고 감지 능력을 거둬들이자 안정적으로 정신 방벽이 작동했다. 두 가지를 동시에 쓰는 건 아무리 훈련해도 마음처럼 되질 않았다.

‘남동구 균열에서 봤던 놈하고 비슷해…….’

생긴 것에선 물론 같은 점을 찾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의 감지 능력을 비롯한 다른 감각에 잡히지 않는다는 점, 입 안이 이상하게 붉다는 것, 인간과 유사한 생김새라는 것에 맹목적인 목적을 가졌다는 사실까지 비슷했다.

놈을 잡을 수 있다면 좋을 테지만, 지금 상황에선 닿는 것조차 불쾌하다. 접촉을 피하면서 관찰하는 게 최선이었다. 정 안 되면 균열 위쪽으로 빠져나가는 방법도 있었다.

위험하지 않다. 적어도 지금 상태로는.

“목이 그 방향으로 계속 돌아가면 언젠가 끊어지는 거 아니야?”

지호는 공포를 떨쳐 내기 위해 비아냥거리며 놈에게 말을 걸었다. 미친 짓 같았지만, 고요 속에서 대치하는 것보다는 나아 보였다.

놈은 머리를 한쪽으로만 돌리다가 뚝 멈췄다. 지능이 있는 놈인 것 같더니, 진짜로 말을 이해한 건가?

먹을래, 먹을래를 연신 중얼거리던 놈의 목이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해한 것 같긴 한데, 이해하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목 뒤가 잔뜩 꼬인 고무줄처럼 빠르게 감기더니 이내 툭툭 핏줄이 불거지며 꼬이기 시작했다.

“아니, 아니 미친!”

지호는 아는 욕이란 욕은 다 뱉으며 사방으로 염동력을 내뻗었다. 힘닿는 거리마다 돌이며 차며 간판 같은 것들이 험악하게 날아갔다. 놈은 머리에서 줄줄 피를 흘리면서도 지호 쪽으로 헤죽헤죽 웃으며 계속 중얼거렸다. 섬뜩했다. 자기조차 돌보지 않는 맹목적인 한 가지.

그러고 보면 그때도 그랬다. 그 상가 건물에서 수희를 부르며 죽이겠다고 중얼거렸던 남자 역시도.

지호는 떨며 놈을 촬영했다. 그냥 핸드폰이라 야간 모드로 얼마나 어떻게 찍히고 있는지까진 잘 모르겠다. 긴장과 떨림으로 손이 흔들리는 탓에 화면도 일정치 않을 것이다. 나중에 화면 분석하는 연구 팀이 촬영자를 욕하겠지.

그러나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화면 저편에서 공포 영화 CG라고 해도 믿지 않을 기괴한 괴물이 몸을 뒤틀었다. 계속 중얼대는 소리는 먹을래, 먹을래 따위였으니 이걸 그대로 웹에 게시하면 싸구려 공포 영화 취급을 받기 딱 좋을 것이다.

“너 내 말 알아듣지?”

괴물은 으르렁거리거나 킁킁거리고, 가끔 언어로 표현하기 난해한 울음소리를 내며 바닥을 박박 긁었다. 동물에 가깝다. 모양새만 사람 모양이 아니었다면 동물이 혹시 이형 에너지의 영향을 받아 변하거나 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의심했을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가만히 있어.”

물론 말을 들을 턱은 없다. 그것은 지호가 뭐라고 말할 때마다 뛸 듯이 기뻐했다. 정확히는 뛰면서 기뻐했다고 말해야 옳았다. 도대체 왜 저렇게 좋아하는지 알 턱이 없었다. 지호가 숨을 토할 때마다 이형 에너지라도 나오지 않는 한은 그러기가…….

그럴 수도 있지 않나?

여긴 균열이었다. 어떤 이상한 일이 일어나도 이상치 않은 동네. 지호는 눈에 감각을 집중했다. 시퍼런 이형 에너지의 일렁임이 희미하게 잡혔다.

지호는 영상 촬영을 중단하고 카메라를 셀카 모드로 바꿨다. 다크서클로 눈 아래가 움푹 패고 피로감에 찌든 자기 얼굴이 휙 화면에 떠올랐다. 플래시를 아래에서 받아 기이하게 그림자 진 얼굴은 아래에서 펄쩍펄쩍 뛰며 지호를 먹겠다고 외쳐 대는 괴물과 비교해도 공포 영화 출연진으로는 크게 부족하지 않을 것 같았다.

“에너지를 보는 것 같지는 않은…….”

쾅, 하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뒤쪽에서 빛이 반짝였다.

어디서 반사광이 비칠 리는 없었다. 광원이라곤 지호가 든 핸드폰 플래시가 전부니까. 밤이 내려앉은 균열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햇빛조차 어두운 곳이니 별도 달도 숨을 죽일 수밖에.

심지어 카메라에 비친 건 건물 옥상이었다.

지호는 고개를 돌렸다. 제대로 보지 않았던 곳. 피뢰침 달린 고층 건물 옥상에 눈물범벅 된 사람이 있었다. 손에 든 것이 번쩍인다.

눈에 이형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었기에 지호 눈엔 다른 것도 같이 보였다. 제어되지 않고 흘러넘치는 이형 에너지.

미등록 각성자다.

지호와 거의 동시에, 반응한 건 아래에 있던 괴물이었다. 그것은 내내 지호만 쳐다보며 먹을래를 반복하다가 고개를 휙 꺾었다. 척추뼈가 없는 놈 같았다.

놈의 입이 쩌억 열린다.

“먹을 거.”

속삭임이 천둥처럼 크게 느껴졌다. 괴물이 바닥을 지네처럼 기어 건물 벽을 오르기 시작했고, 외벽에 팔을 박아 넣는 놈의 힘과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지호 역시 인지하기 무섭게 미등록 각성자를 향해 몸을 날렸다.

느리다. 지호는 괴물이 미등록 각성자에게 닿는 시간이 더 빠를 거란 사실을 알고 이를 악물었다. 구할 수 없으면 시선이라도 돌려야 했다.

“아래로 내려가!”

소리가 닿을지 모르겠다. 새 각성자는 밑에서 뭐가 기어 올라오는지도 모른 채 자기를 구해 달라고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소리를 인식하는 것 같지도 않다. 살려 주세요! 하고 양손을 붕붕 흔드는 모양새가 천적의 아가리로 뛰어드는 날짐승 같다.

놈이 옥상에 거의 도착했다. 지호는 아직 멀었는데! 분명 속도가 빨라졌는데도 이 모양이었다. 차라리 이동 능력이라도 개화했다면 좋았을 것을!

놈이 먼저 옥상에 기어 올라갔다. 먹을래! 하는 외침과 각성자의 비명. 지호는 얼굴이 찢어질 것같이 속도를 내 괴물의 뒤를 후려쳤다. 각성자를 붙잡으려던 손이 옥상을 할퀴어 길게 자국이 남았다.

“빨리 내려가!”

놈의 힘이 어지간한 대형종 못지않았다. 각성자는 주저앉아 어쩔 줄 몰라 하며 오히려 이형 에너지를 내뿜기 시작했다. 지호가 짓누르고 있던 괴물의 바둥거림이 심해졌다. 빌어먹을! 갓 각성한 각성자는 자기 능력을 통제할 줄 모른다. 모양새를 보니 죽었다가 이제 막 깨어난 모양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몇 번의 밤을 넘기며 생존해 있을 턱이 없었을 테니!

지호 밑에서 발버둥 치며 이형 에너지를 향해 턱을 딱딱거리던 괴물의 머리가 갑자기 휙 돌았다. 놈의 눈이 빙그르 돌더니 다시 지호를 본다.

“너, 먹을래.”

“얌전히 굶어, 이 새끼야!”

분명 등을 내리찍고 있는데 놈의 등은 배처럼 접혔다. 지호는 질겁하며 물러났고, 그걸 노린 것처럼 괴물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함정이었다. 지호는 다급히 놈의 발목을 움켜잡았다. 물컹거리며 미끌거리는 몸이라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입에서 쉴 새 없이 욕설이 터져 나왔다. 지호는 다시 놈의 등을 누르며 움직임을 막으려 애썼다.

넋 빼고 있던 각성자가 정신을 차린 건 그쯤이었다. 앞에서 자기를 향해 아가리를 벌려 대는 괴물과 그걸 막고 있는 헌터.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허겁지겁 일어나 옥상 문으로 달려갔다. 처음 들었던 쾅,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저 소리였나 보다.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옥상에 올라왔겠지만 만난 게 이런 재앙이라니.

그때까지도 옥상 문을 향해 허우적거리던 괴물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놈은 머리를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하며 위아래로 상체를 흔들었다. 지호를 떨어뜨리고 싶은 것 같았다.

“왜 방해?”

놈이 처음으로 다른 말을 꺼냈다. 아까 지호를 속일 때도 느꼈지만, 지능이 낮은 놈이 아니다. 그것은 이형 에너지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따라 몸을 움직이며 빠른 속도로 중얼거렸다.

“왜 방해? 왜 방해? 먹지도 않을 거면 왜 방해? 못 먹게 하면 왜 방해? 살아 있는 것도 어차피 죽을 것 왜 방해? 먹는 것 사는 것이야 먹히는 것도 사는 것.”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너도 먹혀서 살았잖아.”

빙글빙글 꼬여 있던 놈의 목이 계속 같은 방향으로 돌며 점점 더 심하게 꼬여 갔다. 그것은 말하기조차 힘들어하면서 계속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한 방향으로 머리를 돌렸다는 의미다.

“먹게 해 주든가 나를 먹어.”

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괴물을 더 사냥하지 말라고 했었으나 이걸 내버려 둘 순 없었다. 꽤 오랫동안 그 괴물의 발버둥을 내려다보던 지호는 어쩔 수 없이 잔뜩 꼬인 놈의 목을 발로 밟았다.

“너, 사람이었어?”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끄륵, 끄르륵 숨 넘어가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계속 돌아가던 목에서 뚝, 하는 소리가 났다. 그렇게 꺾이고 돌아가고도 멀쩡해 보이던 목이 마침내 부러진 것이다. 놈은 혀를 길게 빼물고 죽었지만, 지호의 찜찜함은 가시지 않았다. 온몸이 긴장과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살아온 삶 내내 겁쟁이였던 기억뿐인데, 그나마 침착하게 놈과 대치할 수 있었던 건 정신 방벽 덕분일 터였다. 앞으로 감지 파장과 방벽을 동시에 쓸 방법을 찾지 못하면 어려울 텐데도 도통 둘을 함께 쓸 수가 없다.

이마의 땀을 훔친 지호는 거기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다행히 이 한 놈 잡는다고 균열이 사라지기 시작하진 않았다. 그랬다면 자책으로 괴로움에 몸부림쳐야 했을 텐데.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자마자 도망친 각성자와 마주쳤다. 문 앞에서 덜덜 떨고 있던 그는 돌아보곤 헌터가 서 있자 울음을 터뜨렸다.

“죽는, 죽, 죽는 줄 알았어요…….”

“어떻게 된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그는 옷소매로 얼굴을 벅벅 문지르며 울음을 멈추려고 애썼다. 하지만 계속 나오는 딸꾹질에 울음이 섞여선 대화할 상황이 아니었다. 지호는 그를 울게 내버려 두곤 아래쪽으로 감지 파장을 쭉 뻗었다. 괴물이 한두 마리 느껴졌다. 그의 힘과 닿는데도 반응이 없는 걸 보니 감지 파장을 느끼는 놈들이 아니다.

지호는 우선 이형 에너지를 사방에 폴폴 풍기며 주변 괴물을 불러 모으고 있는 새 각성자에게 방벽부터 씌웠다. 그가 데리고 다녀야 할 것 같았다. 자리 이동에 앞서, 지호는 박 팀장에게 연락했다.

“여기는 부평 균열. 미등록 각성자 확인. 이동 능력자 파견 바랍니다.”

각성자가 울음 그치기를 기다리며 조용한 균열의 어둠을 쳐다보고 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한때 보현이 그를 이렇게 구해 주었다. 이보다 좀 더 능숙하고 멋지게 나타나긴 했었지만.

“이제 좀 괜찮아요?”

“네, 저는…….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짜로요.”

상념에 빠져 있던 지호는 애써 미소 지었다. 불안한 것이 당연한 새 각성자를 안심시키는 건 헌터의 일이었다. 보현이 그랬던 것처럼, 지호는 능숙한 듯 행동했다.

“금방 구조 팀이 올 겁니다. 그때까지 지켜 드리죠.”

그렇게 말하고 나자 어쩐지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밖으로 나온 각성자는 눈물을 꾹 참는 얼굴로 죽은 괴물 시체 부근에 멈췄다.

“세상이 망한 건가요?”

“아닙니다. 균열이 열린 거예요.”

“사방에 생겼대요. 헌터들도 거의 오질 않고, 구해 줄 사람도 없다고 했어요. 전기 끊긴 지역도 여기저기 있고, 사실 여기도 어제 전기가 끊어졌어요. 그래서 경비도 해제되고, 열린 문으로 괴물들도 들어오고…….”

그는 몇 번씩 얼굴을 쓸어내리며 안정을 찾으려고 애썼다. 처음 봤을 때부터 떨고 있었는데, 아직까지도 그랬다. 지호처럼 정신 방벽이 발현되는 경우가 드문 것이니 이게 정상일 터였다.

“괜찮아요. 헌터가 왔으니 안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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