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저무는 태양은 부옇고 탁한 색이다. 균열 안에서 보는 해는 언제나 그랬다.
헌터가 되기를 포기했다는 말은 균열에 대한 공포를 이겨 내기 어려웠단 말과 일맥상통하는 편인데, 그 때문에 그들은 신체적인 피로와 고통보다는 정신적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머리 위에 떠오른 태양이 더는 따스하지 않고 생존이라는 단어가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지는 그 순간을 버텨 낸 사람들은 그제야 무너질 수 있었다. 이제는 그래도 괜찮았다.
폭약이나 도구를 써서 무너트려야 했던 통로도 있었다. 부평 지하상가엔 워낙 출입구가 많았고, 사방으로 쳐들어오는 괴물들을 모두 막기엔 인력도 무기도 모자랐을 것이다.
지호는 뚫려 있는 유일한 방어선 앞에 앉은 채 부서진 것들을 보수하기 시작했다. 형질을 변이시켜 부서진 조각들을 벽으로 환원시키고, 파편이 된 것들은 새로 쓸 수 있을 만한 크기의 재료로 되돌린다. 그 모든 작업은 반쯤 무의식중에 진행되고 있었다.
작업 도중에도 감지 파장을 넓게 펼쳐 놓았기에, 지호의 감각에는 일정 범위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괴물들의 움직임이 명확히 잡혔다.
지호를 위협할 만한 개체는 아직 없었다. 하지만 균열 경계를 지나 넘어올 수 있는 것들 중에는 분명 위협적인 괴물이 있고, 그것들이 이 균열로 오지 않는 동안에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게 최선일 터.
균열 어플에 뜨는 생존자 표시는 처음보다 많이 줄었다. 그러나 구조대가 투입되지 않은 곳에서 꺼진 신호들이 말하는 바는 명백하다. 사망자 수가 가파르게 치솟고 있었다.
“왜 괴물이 안 올까요?”
내부를 점검하고 필요한 일에 도움을 주고 온 김서영 헌터가 지호 옆으로 돌아왔다. 임시의 임시 파트너였지만 그럭저럭 합이 잘 맞아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다. 지호는 옆자리의 먼지들을 비로 쓴 것처럼 밀어 내고는 탁탁 두드렸다.
“앉아요. 보초 서야죠, 우리가.”
“경계 저편은 어땠어요?”
서영은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훅 질문부터 날리며 옆자리에 털푸덕 앉았다. 지호는 짧게 웃었다.
“지옥이죠.”
“실종자들이 살아 있을까요?”
“모르겠어요. 보진 못했거든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넓었고, 특이한 환경이라 둘러보기도 어려웠어요.”
“나도 그렇고 요즘 헌터들 다 이지호 헌터가 보고 올리는 거 바로바로 읽어요. 이만큼 최신 자료가 더 있을 리 없고, 이렇게 현장에 가까운 정보가 또 있지 않으니까.”
“그렇게 특별한 게 있었던 것 같지는 않은데…….”
지호가 말끝을 흐리자 서영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뱉었다.
“실종자들 찾겠답시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던 사람들이 수상하다는 건 심정적인 이야기였을 뿐, 근거가 있던 게 아니었어요. 뭐 수상한 짓을 하긴 하지. 그냥 거기까지였다고요. 좀 고가이긴 해도 백화점이나 특수 매장 가면 살 수 있는 마정석 필터 같은 걸로 세상에 재앙을 일으킬 마음 먹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어요.”
서영의 말은 왜곡이 심했다. 지호는 자기가 올린 정보가 각자의 방식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저었다.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닐 거예요. 선량한 의도 가진 사람들이 있죠. 극단적인 방법을 쓴 사람들이 잘했다고 하는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꼴을 불러일으킨 게 그놈들이잖아요. 모든 사람이 테러범은 아니지만, 다들 그럴 수 있다는 전제하에 조사를 받고 비행기에 오른다고요. 가뜩이나 위태로운 사회를 누덕누덕 기워 살아가는 판에 내 곁의 이웃이 균열을 열어 남들을 죽여 버리는 싸이코패스라니.”
지호는 대답할 수 없었다. 본인부터 뭐가 옳은지 그른지 파악할 수 없었던 탓이었다.
괴물의 습격이 없을 거란 말을 누구에게 해야 믿어 줄까.
차라리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들이 훨씬 체력 보존이 되어 있었다. 싸울 일보다는 긴장하고 두려워할 일뿐이라 그랬을 것이다.
“마실 것 좀 드릴까요, 헌터님들?”
도망치다 무릎이 깨졌는지 패션으로 보이지는 않는 찢어진 바지의 꼬마가 용감하게 다가왔다. 꼬질꼬질한 얼굴에 지저분한 옷. 고작 며칠 사이에 이 꼴이 되었으리라곤 상상하기 어려웠다. 아이들은 잘 뛰어다니지. 지호는 멋대로 중간 과정을 추측해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주면 고맙겠어요.”
아이는 헌터님이 존댓말로 말을 돌려 주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뒤로 달려갔다. 수도나 전기가 끊기지는 않았기에 물 정도는 충분히 마실 수 있었다. 괴물이 물러가기 전까지는 수도가 언제 끊길지 몰라 물을 함부로 쓰기 어려운 분위기이긴 했을 것이다. 어디나 균열에 휘말린 곳들은 그렇게 되기 마련이니까.
문득 처음으로 갇혔던 남동구 균열의 작은 마사지 가게가 떠올랐다. 지호는 물병을 들고 열심히 달려오는 작은 아이를 보며 미소 지었다.
“일찍 도착해서 다행이에요. 여기 뚫렸으면 정말 말로 표현 못할 일들이 벌어졌을 것 같죠. 저를 던진 건 이쯤에서 용서하도록 할게요.”
“또 던져도 돼요?”
서영은 질겁했고 지호는 큰 소리로 웃었다. 웃음소리가 너무 컸는지 입구 주변에서 숨을 돌리고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지호는 주변에 사과하며 헛기침했다.
“애들이 살아서 좋네요. 생존 비율이 낮던데.”
서영은 지호의 작은 속삭임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십여 년 전에는 옷 가게니 장신구 가게니 자잘하고 많은 지하상가로 가득 차 있던 부평이다. 지금은 그 위치가 지상으로 바뀌었다뿐이지, 여전히 사람들이 손쉽게 지갑을 여는 다분히 상업적인 거리.
운이 좋다고 할 수도 있었다. 다른 동네였다면 진짜 재앙의 도래였을 테지. 사람들은 균열이 열렸을 때 발 빠르게 도망칠 수 있었다. 각성자 연합 사람들은 도망쳐 오는 사람들의 희망이었고, 그들을 외면할 수 없어 입구를 다 막지 못했겠지.
부서진 출입구를 어느 정도 복구하고 난 뒤에는 완전히 해가 졌다.
괴물들의 울음소리조차 멀리 느껴지던 밤. 아파트 단지의 생존자 수색을 마친 군부대로부터 연락이 닿았다. 이쪽으로 이동해 오는 걸 도와줄 수 있겠느냐는 물음이었다.
“한 번 더 던져도 돼요?”
“가만 안 둬요.”
“그렇다고 제가 움직일 순 없는데. 아니면 입구를 잠깐 닫아 두는 건 어때요? 시멘트 같은 거로 들 수 있게 좀 얹어서……. 저 말고 다른 각성자들도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요.”
“괴물도 못 뚫을 정도로요? 글쎄요…….”
“김서영 헌터 혼자 막을 수 있겠어요?”
지호가 두 사람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다른 능력 없이 순수하게 신체 계열 능력뿐인 헌터가 올라운더의 뒤를 대신할 수 있을 턱이 없다.
“어떻게 하죠?”
“못 간다고 해야죠. 급한 일이 아니라면 밤에 이동할 이유도 없고…….”
“아냐. 밤에 이동해야 해. 군인들을 데려와 주겠나, 이지호 헌터?”
지호와 서영은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덩치는 산만 하지만, 인상은 순박한 남자가 어깨를 수그리며 틈을 비집고 나왔다. 뒤편에도 바리케이드용으로 쌓아 놓은 것이 많아 통로가 좁았다.
“덕팔 아저씨. 다쳤어요?”
“쉬면 나아. 지금 이 균열에 괴물을 사냥하는 괴물이 돌아다니고 있다. 해가 저문 동안에는 한숨 돌릴 수 있어. 하지만 해가 뜨면 괴물들이 몇 배는 난폭해지니 오히려 위험할 거다. 지금 다녀오는 게 나을 거야.”
“그런 보고는 없었던 것 같은데요.”
“여기 어디에 헌터가 있어 보이나? 보고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어. 바깥 중계기가 망가졌는지 통신이 영 엉망이다. 그래서 일부러 말하러 나온 거야.”
덕팔은 작은 가방을 두 사람에게 건넸다. 무게가 꽤 나갔다. 신체 계열 능력자들이 들기에도 무게가 좀 있게 느껴진다면 다른 사람들은 쉽사리 옮기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이게 뭐예요?”
“이형 에너지를 빛의 세기로 잡아내는 계측기 같은 거야. 켜 보면 반경 일 킬로 이내까지는 잡힐 거고. 아직 에너지 문제를 해결 못 했는데, 이형 에너지 계열 각성자는 본인이 힘을 불어넣어서 쓸 수는 있다. 에너지 저장 방식 문제로 문제가 좀 있어서 일반인은 못 쓰는 물건이야.”
“이걸 들고 갔다 오라고요?”
“없는 것보다는 나을 거야. 어둠 속을 돌아다니던 놈은 이형 에너지를 쓰는 각성자를 습격했었어. 그러니 너보다는 이 헌터가 다녀오는 게 나을 거다.”
“저는 한 개 중대를 보호할 능력은 없는데요. 그리고 신체 계열 능력밖에 없어요. 일반인은 못 쓴다면서요.”
“그럼 이건 누가 다 다듬었어?”
지호는 말없이 들고 있던 울퉁불퉁한 돌을 매끈한 모양으로 다듬어 내려놓으며 일어났다.
“둘 다 나가죠. 김서영 헌터는 군인들을 엄호하고 저는 한쪽으로 빠져서 유인책을 맡을게요.”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거 알죠?”
“상대해 본 놈들 수준이 다 비슷했어요. 크게 위험할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리고 밤이면 이형 에너지를 쫓아 돌아다닌다는 괴이쩍은 놈이 있다면, 제가 여기 있는 것도 위험할 것 같거든요.”
그런 의미로 했던 말은 아니었기에 덕팔은 완전히 당황해 버렸다. 해명이나 설명할 시간이 충분치 않다. 어둠이 완전히 내리 깔리기 전 두 헌터는 이동에 동의하곤 입구 앞에 버스 한 대를 통째로 가져다 놓았다.
“어둠 속을 돌아다니는 에너지 추적자라니, 듣기만 해도 섬뜩하네요.”
“아까 그 칼 얼마나 더 쓰실 수 있어요?”
서영은 마정석의 크기를 가늠해 에너지 소모량을 확인했다. 얼추 이십여 분가량. 어마어마한 돈을 바닥에 뿌리는 것과 다름없는 출력이었다. 지호는 자기가 챙겼던 마정석들을 서영에게 건넸다.
“혹시 모르니까 이것도 갖고 있어요. 만약에 쓸 일 없으면 다시 주셔야 돼요.”
“써서 없어졌다고 해 버려야겠는데요? 이렇게 투명하고 커다란 건 진짜 처음 본다. 나중에 할 일 없으면 각성자 연합 들어가요. 다들 엄청 좋아할 거야.”
“저 헌터 된 지 며칠 되지도 않았어요!”
두 사람은 실없는 대화를 나누며 군인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지호가 연합을 빠져나오기 무섭게 괴물들이 근방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좋지 않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으면 그러는 편이 좋았으나, 가로등 불도 여기저기 꺼져 있어 가시거리가 지나치게 좁았다.
짙은 어둠.
보통의 어둠보다 더 밀도 높은 검정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렸다.
지호는 반사적으로 덕팔이 주었던 기기에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화면에 억 소리 날 정도로 밝은 빛이 하나 있다. 위치를 보니 정중앙. 즉 본인이었다.
“이거 제가 너무 밝아서 쓸모가 없는데요? 다른 게 가려서 보이질 않아…….”
지호는 혀를 차며 기계를 도로 껐다. 일순간 어둠을 가르며 사방으로 빛이 퍼졌던 터라 차라리 손전등 대용으로 쓴다 치면 유용할 것 같았다.
“다시 한 번만 켜 봐요.”
“뭐 있었어요?”
“한 번만 더요.”
서영의 시선이 한쪽에 고정되어 있다. 지호는 이상하단 생각을 하면서도 원반 형태의 레이더망 비슷한 기기에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다시금 터져 나오는 빛.
하마터면 비명이 튀어나올 뻔했다. 지호는 창백해진 얼굴로 기계에 불어넣던 에너지를 뚝 끊어 버렸다. 얼굴이 뒤집힌 채 벽에 비스듬히 매달린 각다귀 같은 뭔가가 있었다. 균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용적인 형태의 괴물 신체와는 조금 달랐다. 분명 형태 자체는 기본형이 사람에 가깝다. 단지 머리가 백팔십 도 돌아가고 관절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였다는 차이가 있을 뿐…….
사실 어마어마한 차이였다. 공포 영화에서나 볼 법한 모양새. 서영이 긴장해서 침을 삼키는 소리가 선명했다.
“좀 전에 불 켰을 때, 처음 봤을 때보다 가까웠어요.”
한 번 더 불을 켜자고 말할 수 없었기에 서영은 지호의 손에서 그 기계를 빼앗아 가방에 도로 집어넣었다. 다행스럽게도 두 사람 모두 어둠 속에서 일반인들보다는 조금 나은 시야를 갖고 있었으니.
“불 안 켰고 확인해 볼까요?”
“감지 능력 닿아서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해요.”
지호는 해쓱한 얼굴로 동의했다. 공포 영화에나 나올 법한 모습이라 괴물보다 더 섬뜩했다. 지호는 저런 종류의 모양새에 약한 편이었다. 차라리 괴물이 낫지. 저건 꼭 귀신 같아서…….
팔을 타고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이상한 불길함. 지호는 저도 모르게 팔을 몸 쪽으로 잡아당겼다.
딱! 뭔가 맞부딪는 소리. 방금 팔이 있던 자리에 아까 그것이 와 있었다. 눈이 마주친다. 벌어지는 입 안이 붉다. 히이이, 하고 숨을 들이마신 놈의 눈이 히죽 째졌다. 놈이 사람처럼 속삭였다.
“너, 먹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