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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71화 (72/260)

71화

지호의 손이 아이의 손을 한 차례 쓸어내렸다. 유리 조각처럼 보이는 것들을 떼어 내며 혹시 몰라 치유력을 불어넣는다. 희미한 빛이 손바닥을 쓸어내렸지만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유리 많은 곳을 안다고 금방 돌아올 거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승찬은 아이에게 붙들려 함께 유리를 주우러 갔다. 본래 같으면 폐자재로 분류되어 버려졌을 것들이지만, 이 동네엔 그런 쓰레기를 청소할 인력조차 부족해 보였다. 구석에 밀어 놓고 덮어 두면 그만인 척, 정리한 척하고 살 수밖에 없는 현실.

지호는 운이 좋았다.

각성했고, 보현에게 구조되었으며, 보호자를 비롯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그중 한 가지라도 그의 삶에 없는 날을 상상한다면 우울해질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아무것도 없다. 힘도, 좋은 보호자도, 따뜻한 집과 좋은 동료들도. 뭐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어떤 것도.

애석하게도 보현과 달리 이 아이들의 좋은 보호자가 되어 줄 수는 없는 지호였기에, 그는 묵묵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다.

염동력으로 유리를 고정하고 구현화 능력을 충분히 발휘해 유리를 녹였다가 본래 형질로 돌리기를 반복했다. 자세히 보면 울퉁불퉁하거나 투과율이 썩 높질 않거나 이물질이 들어가 있지만, 적어도 바람이 샐 일은 없을 것이다.

“애들이 좋아하겠네요. 헌터분이 왔다고 벌써들 시끄러워요.”

유리창 하나를 완성해 끼운 뒤 이마의 땀을 훔치던 지호는 뒤에 서 있던 이가 드디어 말을 꺼내자 약간 안도했다. 주변이 워낙 엉망이라 혹시 앞뒤 없는 범죄자도 같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운 마음도 약간은 있었던 까닭이다.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중년 여성이 희끗희끗해진 머리를 곱게 묶고 뒤편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이 제법 경건해 보이기까지 해, 지호는 그가 아이들이 말하던 목사님이구나 하고 추측했다.

“아는 분이 여기에 가끔 온다고 그러셔서요.”

“승찬이 말이지요? 착한 친구예요. 몇 년째 꼬박꼬박 들르고 있고요. 여자 친구라고 보긴 좀 어려 보이는데.”

“그냥 친구예요. 여기 와 봐야 할 것 같다고 그러시더라고요.”

목사는 물 한 병을 옆에 내려놓았다. 지호를 위해 일부러 챙겨 온 모양이었다.

“이유 맞춰 볼까요? 아마, 과잉 구조?”

지호의 눈이 동그래지자 목사가 낮게 웃었다. 차분하고 듣기 좋은 음성이 부드러운 어조와 잘 어울렸다.

“그럴 것 같았어요. 그런 사람들을 종종 데리고 오더군요. 자기를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알아보나 봐요. 승찬이도 한참 그러다 요샌 좀 철이 들었답니다.”

구조 행위 앞에 과잉이라는 단어가 적합한가. 잠시 스쳐 간 고민을 뒤로하고 중년의 목사는 지호 곁에 앉았다.

“남들을 구하면서 자신을 해치는 행위로 아직 크게 다치지는 않은 모양이에요. 헌터님이라 그런가.”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만 그렇게 하는걸요.”

“여태까지는 그랬겠죠. 하지만 아마 꽤 무리했던 모양인데요. 그러지 않고서야 승찬이가 자기를 보는 것 같다고 여길 데려올 리가 없거든요.”

“매번 그런 용도로 사람들을 데리고 왔었나 봐요?”

“용도라. 그렇게 부르자면 맞아요. 그렇지요. 이 동네 사람들은 다들 그런 희생자 덕분에 살아남은 사람들이거든요.”

채 복구되지 않은 다른 창문 너머에서 아이들이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담을 거 가지고 이쪽으로 와! 하는 희망찬 외침을 들으며 지호는 들고 있던 유리 조각 일부를 다른 창틀에 내려놓았다.

“저는 틀리지 않았어요.”

“여태까지는요.”

잔잔한 미소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기에 지호는 곁의 목사를 한참 쳐다만 보았다. 피차 자신의 의견 굽힐 줄 모르는 사람들끼리 앉아 있었다.

“언니! 이거 봐. 더 가지고 올 거야!”

아까 뛰어나간 아이였다. 어디서 주웠는지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스티로폼 상자에 유리 조각을 담아 왔다. 아이가 달려올 때마다 잘그락 잘그락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지호는 웃으며 고맙다고 상자를 받았고, 아이는 더 가지고 올 거라며 기운차게 교회를 뛰쳐나갔다.

창틀에 일부를 쏟아 두고 형질 변화에 집중한 지호는 밋밋한 벽에서 투박한 머그 컵 뽑아낼 때와 별반 차이가 없는 자기 구현화 능력에 좌절했다. 유리는 모양새만 그럴싸했지, 사실 창유리라고 보기는 대단히 어려운 감이 있었다. 그냥 바람만 안 통하는 거로 감사하면 좋겠는데. 두 개째의 창문을 복구한 지호의 표정은 더 안 좋아졌다. 괜히 한다고 했나.

“괜찮다면 헌터님 이야기를 좀 들을 수 있을까요?”

“어……. 별로 다를 건 없는데요.”

“다른 사람들이 요구할 법한 그런 가십거리들이 궁금한 건 아니에요. 그냥, 각성자로서 살아가는 건 어떤 기분일지. 그래서 더 약한 사람들을 구하려고 위험에 뛰어드는 사람들의 삶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지호는 비뚤비뚤한 유리 표면을 조금 더 매끄럽게 다듬는 데 집중하며 무심히 답했다.

“바로 그게 많은 사람이 제게 궁금해하는 건데요. 저도 뭐 다른 사람들하고 크게 다르지 않아요. 밥 잘 먹고 변비는 없고요.”

“어떻게 사람들을 구하겠단 맘이 드나요? 헌터로서 살아가겠단 다짐을 했을 때는 다시 균열에 들어가 괴물과 싸울 결심을 했단 뜻이었잖아요.”

“제가 안 하면 사람들이 죽어서요.”

“헌터님도 위험할 수 있는데.”

“저보단 다른 사람들이 백배는 더 위험하죠. 저는 뭐 대처라도 할 수 있지, 평범한 사람들은…….”

아무 힘 없는 사람들은 너무 쉽게 고깃덩이가 된다.

계양 균열 북부 지역의 시산혈해를 떠올리면 지금도 속이 좋지 않았다. 지호는 그 이상 말하지 않고 세 번째 창문 복구에 착수했다. 뒤편에서 지호에게 필요한 유리 조각들을 집어 건네주는 역할을 자진한 목사는 작은 목소리로 연신 질문했다.

“헌터님이 죽으면 가족들이 얼마나 슬퍼하겠어요.”

“다 죽어서 없어요.”

질문이 잠시 멈추었다. 해서는 안 될 답이었을까. 하지만 사실인걸. 지호는 고개는 창틀에 고정한 채 스티로폼 상자에서 유리 조각을 꺼내려다 손을 베였다. 따끔한 통증.

“어, 이런. 미안해요. 내가 꺼내 준다고 있었으면서.”

“아녜요. 치료할 수 있어요. 괜찮아요.”

다행히 베이기만 한 터라 별다른 처치는 안 해도 괜찮았다. 지호는 치유력이 주요 능력인 헌터들이 받는 의학과 해부학 및 인체 관련된 수업들을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아직 거기까지 공부하진 않았지만, 지호 역시도 치유력을 가지고 있기에 언젠가는 익혀야 할 분야라고 했다.

어쩐지 치유력 가진 각성자들이 다 병원에서 일하고 있더라. 헌터들이 경찰 시험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의료계 각성자들은 의학 관련 시험을 따로 본다고 했었다.

그런 공부에 비하면 이런 베인 상처쯤 그냥 치유력만 흘려 보내 주면 끝나는 아주 간단한 처치다. 유리 조각이 박힌 상태로 치료되면 아주 골치가 아파지기에 지호는 감지력으로 상처 부근을 한 번 훑었다. 미량의 조각이 확인되어 염동력으로 상처를 훑는다.

섬뜩한 감각이지만 이형 에너지로 상처를 살피는 거라 별다른 소독 작업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매력적이다. 다른 도구로 상처를 헤집으면 난리가 났을 텐데.

“크게 다친 것 같은데…….”

“금방 나아요. 괜찮아요.”

“미안해요. 자식 생각이 나서 자꾸 이것저것 물어보게 되네. 우리 애 살아 있을 때는 헌터 같은 것도 없었거든요. 그런 때도 각성자들은 남들을 도우려고들 했었어요. 저도 애 후임들 통해서나 들은 이야기라 여전히 믿기질 않아서 항상 질문을 품고 다니게 되네요.”

승찬이 해 줬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이야기를 마치자마자 여기로 오자고 했었지.

지호의 손이 잠시 멈추었다. 연관점을 떠올리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할 것이다. 손을 쑥 내밀어 상처가 금방 아물었음을 보여 준 그는 어물어물 이야기했다.

“아저씨를 살려 준 분 이야긴 저도 들었어요. 정말 대단한 분이셨더라고요. 저는 헌터 교육을 받았는데도 아직 제 몫을 다 못 하고 있는데…….”

“헌터님 몫이라는 게 뭔가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걸 하기 위해 자꾸만 무리해서 사람들을 구하려고 하시는 거겠죠?”

“다른 헌터님들만큼 능숙하게 뭔가를 하려면 아직 멀었거든요.”

같은 각성자인 지호를 보며 이제는 볼 수 없는 자식을 떠올리는 부모 마음이라니. 지호는 직전까지 그를 귀찮아하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남은 사람들을 생각하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홀로 남으셨다니 마음이 좀 안 좋네요. 어려 보이시는데.”

“각성자는 원래 나이를 천천히 먹는대요.”

“그런가요? 하지만 헌터님은 최근에 헌터가 되셨죠?”

이것이 어른의 통찰력인가? 지호가 창에서 시선을 돌린 얼굴이 너무 깜짝 놀란 표정이었는지 목사는 웃으며 얼른 말을 덧붙였다.

“승찬이가 최근에 구조대 일을 도와주는 임시 헌터님이 있다고 이야기해 준 적이 있거든요. 최근에 헌터가 된 어린 친군데, 매사에 열심이라고. 그래서 다른 어른들도 어른다운 모범을 보이려고들 열심히 일한 덕분에 시너지 효과가 있다나.”

“그냥 할 수 있는 걸 했어요. 별건 아니고……. 아저씨가 과장이 심하네.”

“각성자를 몇 번 본 적은 있었는데 이렇게 이야기할 기회가 있진 않았어요.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거든요. 근데 어떤 방식으로 물어봐도 뭐라고 대답할지 알 것 같네요. 그렇게 할 수 있었으니까……. 라고 하겠죠?”

지호는 어정쩡하게 웃으며 목사가 건네는 유리 조각을 받았다. 세 번째 창은 처음이나 두 번째 것보다는 조금 평평하고 투명도가 높았다.

사실 말이 좋아서 유리창을 만든다고 하지, 김 반장 같은 성격 안 좋은 사람들이 보면 이걸 작업이라고 하냐고 훈련 다 부질없다면서 한탄을 늘어놓고 갔을 것이다.

할 수 있는 말이 없었기에 지호는 할 수 있는 일만 열심히 했다. 손바닥 아래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이형 에너지를 신기한 듯이 바라보던 목사는 조금 큰 조각을 조심스레 건네며 말했다.

“할 수 있으니 사람들을 돕고, 그럴 수 있으니 사람들을 구하시겠죠. 그러니 자신을 지키는 일 역시도 그 범주에 넣어 줄 수 있나요?”

“저 아픈 거 엄청 못 참아요. 당연히 제가 중요하죠.”

“위험에 뛰어들면서 뒤에 남은 사람들을 잊지 말고요. 돌이킬 수 없는 순간에 남을 사람들에게 사과하는 불행한 결말도 맞이하지 말고.”

넋두리처럼 속삭인 목사는 희미한 미소를 지은 뒤에 이만 가 보겠다며 자리를 떠났다.

홀로 남은 교회 예배당에는 먼지만 떠다녔다. 반투명한 유리 너머로 보이는 아이들의 활기찬 모습이 보기 좋았다.

혼자 힘으로 긴 판자를 치우려 시도하던 어떤 아이가 손을 다치자 다른 일을 하던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와 그 일을 돕는다. 작은 힘이 모여 이루어지는 소박한 성공. 가슴 한편이 짠해졌다.

이토록 사소한 일상생활을 한 걸음 떨어져 지켜보며, 그 너머에 있는 것들을 생각한다. 목사와 마찬가지로 타인의 희생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

살아나 기뻤을까. 승찬의 말처럼 내내 죄책감만 느낄까.

승찬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가 각성의 조건 운운하며 자기도 그렇게 되겠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을 했을 때 지호는 분명 이야기할 줄 알았다. 그게 잘못된 일이라고.

하지만 그동안 너무 많은 일을 겪었다.

균열에 너무 오래 드나든 보현. 이형 에너지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버린 보현. 신체 구조가 언제라도 붕괴할 수 있을 만큼 위태로워, 집에 마석 치료기를 상비하지 않으면 안 될 환자였던 보현.

그런 아슬아슬한 삶을 살아온 보현의 자취를 쫓다 보니 어느새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온전히 그와 같은 삶을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생의 끝에 한 사람만 있는 것처럼 보이는 보현과 달리, 지호에게는 그러한 닻이 없었으니.

보현은 필요하다면 얼마건 무정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한편으로는 현실적이고, 한편으로는 대단히 이기적인.

그러나 지호는 여전히 현실과 유리된 채 부표처럼 삶을 떠돌았다. 보편적 기준으로 본다면 그는 선량하다. 많은 각성자가 그러하듯, 타인을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선택을 했기에 선한 사람으로 분류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선함은 결과적으로 남들의 기대를 배반할 수 없기에 강제되는 선함인지라, 지호는 때때로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단 생각을 했다. 그를 알고 그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당연히 상정하는 점이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건 당연히 선한 선택을 하리라는 믿음.

지호는 그 굳건해 보이는 믿음을 배반하지 못해 선량하다. 그러니 사실은 착한 사람이 아니지 않나. 그냥 거절할 줄 모르는 바보 멍청이에 불과하지.

언제까지 좋은 사람일 수 있을까.

언제쯤 못 견디겠다고 도망치게 될까.

견딜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생각해 왔다. 할 수 있기에 남을 돕고, 그럴 수 있기에 누군가를 구한다. 그러나 사람이기에 지치겠지. 당연한 것은 사실 어디에도 없다. 알면서도 기만적인 대답을 주워섬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직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까닭이다.

다들 보현이 일어나면 지호를 혼내 주라고 전해 줄 거란 이야기를 한 보따리씩 가지고 있다. 그것들을 별것 아닌 일화인 양 도란도란 털어놓으며 천천히 저물어 가는 밤을 볼 날을 위해, 지호는 자신을 좀 더 소중히 할 필요가 있기는 했다.

스티로폼 박스에 각자의 재료들을 잔뜩 들고 들어온 아이들이 앞다투어 교회로 뛰어 들어왔다. 요령을 알게 된 지호는 깨지고 갈라진 유리를 깨끗한 것으로 교체하곤 짜잔, 하고 박수를 유도하는 여유까지 되찾을 수 있었다.

교회 뒤편에서 승찬과 함께 서 있는 목사가 보였다. 팬 주름에는 근심보다 평안이 서려 있다. 그것이 다행스러우면서도 못내 미안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상한 일이다. 그저 그렇게 해야 했다고밖에 이야기할 수 없어 미안해야 했던 것 같았다.

아이들이 잔뜩 쌓아 놓은 온갖 폐자재 중에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지호는 창을 새로 끼우는 작업을 마친 뒤에 또 쓸 만한 게 뭐가 있을까 뒤적이다 그걸 발견했다.

푸르스름한 가루.

심장이 철렁했다. 미약한 이형 에너지 반응이 남아 있었다. 최근에 이걸 본 적이 있다. 지호는 아이들에게 이걸 어디서 가지고 왔냐고 질문했고, 든든한 헌터님의 질문이니 아이들은 당연히 각자 이것을 본 장소를 언급했다. 제각기 달랐으나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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