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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70화 (71/260)

70화

“그마저 더는 못 버티니까 도망치라고 이야기해 준 덕분에 다들 튀었지, 우리 때문에 죽으러 뛰어든 사람 놓고 어떻게 도망갔겠어요. 방해되니까 꺼지라고 소리 지른 게 그분의 마지막이었죠. 다쳐서 도망 못 간 사람 중에 수풀 틈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나중에 진술했더군요. 엄마를 부르면서 자기는 최선을 다했다고. 못 돌아가서 미안하다고 하며 괴물의 먹이가 되었다나.”

승찬은 마른세수하며 잠시 말을 골랐다. 당시의 기억은 그에게나 생존자들에게나 끔찍하고 미안한 기억일 뿐이다.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평생 그 뒷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 구조대가 됐습니다. 그분은 다른 사람들을 구했고 모두가 그를 영웅으로 기려요. 하지만 두 번째 찾아온 죽음의 순간에 과연 기뻤을까요? 웃은 건지 운 건지 모르겠다고 하던데, 거기서 소대원들을 구해 기뻐했다고 하더라도 저는 내내 괴로웠는데요.”

그의 희생으로 건진 목숨이라 절대 함부로 할 수 없다며 승찬은 담담히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그에게 빚진 목숨을 함부로 던질 수도 없다고.

“지호 씨에게 한 번 혼이 났고, 각성자가 되겠다느니 하는 이야길 지금도 어쩌다 꺼내긴 하지만 그 상황 앞에서 제가 그 선임이나 지호 씨처럼 남들을 위해서 저를 내던질 수 있을까요? 아직도 확신할 수가 없어요. 알면서도 그렇죠. 그러니 그걸 모르고 목숨을 던진 분들을 존경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리고 타인의 희생으로 생존한 이의 심경을 전할 수 있는 건 저 같은 사람 정도죠. 그 선임분 가족들을 지금도 종종 뵈러 가요. 요즘은 여기저기 다니면서 자원봉사를 하시는데…….”

아, 하고 지금 생각난 듯 말을 멈춘 승찬은 슬쩍 질문했다.

“어차피 현장도 안 가고 훈련하러도 안 가죠?”

사실은 못 가는 거지만 지호는 고개만 끄덕였다. 날짜를 확인한 승찬은 마침 잘됐다며 말을 덧붙였다.

“마침 오늘 쉬어서 다녀올 참이었는데, 같이 가요.”

“어디를요?”

“균열 피해자 지원 센터요.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좀 더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싶네요.”

괜찮다고 말할까 하다가 지호는 그냥 고개만 계속 끄덕이기로 했다. 어차피 집에 돌아가서도 할 일 없어 TV채널만 돌려 가며 멍청하게 앉아 있을 테니.

뜻밖에도 가까운 곳에 지원 센터가 있었다. 한때 큰 교회가 있었던, 그러나 균열에 휘말린 후 부서져 버린 위치에 세워진 간이 복지 센터였다. 채 복구되지 않아 얼기설기 나무판자로 막아 놓은 모양새가 흉흉했다.

센터로 가는 길목부터 폐허에 가까운 꼴이다. 본래 살던 동네보다 더 심각한 풍경을 본 지호의 입은 다물어질 줄 몰랐다. 직접 피해를 본 곳이 아니라 살 곳을 찾아온 사람들이 모여든 곳이라 당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머리로는 아는데도 받아들이는 건 다를 수밖에 없다. 교회 부근에는 좌판을 깐 사람들이 많았다. 잡다한 물건들을 내놓는 사람도 있었고, 직접 만든 것들을 파는 사람도 있다. 개중에 과일이나 채소를 파는 사람은 그래도 양반이었다.

어떤 이의 판매 품목은 동물이다. 꼬물거리며 품으로 기어들어 오는 개를 떼어 내 지호에게 보여 주는 눈이 슬펐다.

“여기는…….”

“균열 피해 지역이에요. 복구가 덜 된 곳 중 하나죠. 다른 곳들처럼 재건축 기준이 충족되질 않았거든요.”

가난한 동네라 그런 까닭도 있었다. 큰 도로를 따라 달릴 때는 보이지 않는 좁은 골목길의 불행.

“우리가 철거 다 한 지역들은 벌써 재건축 들어갔는데…….”

“건축업자들만 신났죠. 부숴야 다시 짓는다는 걸 생각해 봐요. 그쪽은 피해가 좀 심한 곳이라 당연히 건물을 허물어야 하는데, 이쪽은 보수해서 다시 쓸 수 있는 건물이 많아요. 업자들이 좋아하지 않는 동네죠.”

“구월동에서 멀지도 않잖아요.”

“그나마 반파 상태에서 좀 사람 살 모양새가 된 건 자원봉사자들 덕분이에요. 문학동은 거의 흔적도 없어졌고요. 몇 년 전에 거기 있던 큰 경기장이 대형 괴물에게 부서지고도 아직 복구가 안 됐잖아요. 그건 자원봉사의 영역도 아닌데, 당장 시에서 예산 분배할 상황도 아니었으니까.”

“이렇게 심각한 곳이 있는 줄 몰랐어요.”

“죽은 사람들의 자리인 셈이죠. 그들이 살아갈 곳은 더는 없어도 되니까.”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다. 죽어 가고 있고, 죽을 것이다. 지호는 신이 아니었다. 그가 가진 힘으로 구할 수 있는 건 가까운 소수뿐이다.

몇 군데에서 비치는 불빛을 제외하면 실내등이 제대로 켜진 곳도 얼마 보이지 않았다. 낮이라 그렇겠지. 워낙 일찍 일어나 오전부터 그 난리를 친 다음이라 아직 한낮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다. 그러니 굳이 불을 켤 필요가 없어서라고 믿고 싶어 지호는 연신 건물들을 살폈다.

그 좋아진 시력으로도 멀쩡한 건물을 몇 찾기 어려웠고, 개중에는 유리창조차 없어 종이나 나무로 창을 막아 놓은 곳도 있었다.

“여기 치안은 괜찮아요?”

“그래도 경찰들이 수시로 순찰 돌아요. 생각보다 위험하진 않고요. 자원봉사자 중에 근방에 거주하면서 자경단 자처하시는 분도 더러 있고……. 나와 있군요. 점심때네요.”

교회 입구에 처진 천막 앞으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지호는 습관적으로 사람들을 훑었다. 이형 에너지 파장이 쓸고 간 자리 뒤로 일부가 비틀거린다. 아차 싶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도 균열 피해자라면 당연히 후유증이 있을 텐데.

환부의 저릿함을 느낀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하며 주변을 살피는 게 보였다. 승찬은 이제 말하지 않아도 지호가 뭔가 잘못했다는 것을 알 정도였다. 어느새 또 시무룩해져 있는 그의 어깨를 토닥인 승찬은 한쪽을 가리켰다.

“이쪽은 비교적 상태가 괜찮은 사람들이 좀 더 상황 나쁜 사람들을 돕는 모임이라서요. 사실 봉사자나 도움받는 쪽이나 다들 균열 피해자예요. 일단 뭐라도 먹을래요? 밥도 안 먹었잖아요.”

먹어도 될까 싶은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는 지호를 일단 데려와 한쪽에 앉힌 승찬은 거기 있는 사람들과 익숙하게 인사했다.

연기 모락모락 나는 국밥 한 그릇이 앞에 놓였다. 지호는 수저를 어색하게 쥐며 그릇을 들여다보았다가 속삭였다.

“밥 먹자고 오자고 한 건 아니죠? 막 해장해야겠다 이런 맘이 들었다든가.”

“먹고 일해야 하니까 얼른 배 채워 놔요. 있다가 배고파서 못하겠다 뭐 그런 소리 하면 안 돼요.”

어떤 방면에서는 승찬만큼 지호를 일하게 할 방법에 통달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오면서 본 주변 정경이 워낙 충격적이었던 터라 지호는 군말 없이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승찬 역시 그때까지도 영 좋지 않던 속을 뜨끈한 국물로 달래며 그제야 한시름 돌렸다.

굳어 있거나 긴장해 있고, 가끔은 시무룩하거나 미안해하지만 결국 또 결심한 얼굴로 단호해지곤 하는 지호의 얼굴에 처음으로 호기심이 서려 있었다. 그거 하나로 승찬이 지호를 이곳에 데려온 소기의 목적은 이미 달성되었다고 봐도 좋다.

“제가 여기서 뭘 할 수 있어요? 건물 부수고 그러면 안 될 것 같은데.”

“부수면 안 되죠. 지호 씨가 도울 일은 그 반대예요.”

“어, 복구 작업요? 그치만 그건…….”

“여긴 뭐 복잡하게 얽힌 어른들의 사정 같은 거 신경 안 써도 되니까 괜찮아요.”

균열에 휘말린 구역 중 철거가 필요한 현장에선 지호가 큰 힘이 된다. 그러나 반대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기초를 세우고 건물을 올리는 일에는 지호가 알지 못하는 여러 지식이 필요했고, 여기저기서 방해만 되는 까닭에 지호는 내내 건물만 부수곤 했다. 자재를 나르거나 땅을 고르는 정도까진 도울 수 있었는데 그 이상은 영 소질이 없단 생각이 들기까지 했으니.

그러나 승찬은 그 부분을 단호히 지적했다. 사실 지호의 힘이 필요한 부분은 얼마든지 있었다. 단지 거기에서 헌터의 힘이 들어가면 돈을 벌 다른 건덕지를 잃을 이들이 발을 구를 뿐이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달란 무리한 요구는 안 할 테니까, 금 가거나 낡은 것들을 좀 보수해 줄 수 있나요? 아마 다들 좋아할 거예요.”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들은 후에야 지호는 허겁지겁 식사를 마쳤다. 승찬은 지호를 새 자원봉사자라고 소개한 뒤 교회 안으로 데려갔다.

스테인드글라스 비슷한 색유리로 꾸며진 한쪽 벽면과 대조적으로 반대편은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빈 창틀이다. 나무를 대강 덧대 놓았는데 말 그대로 대강 처리해 둔 터라 바깥이 훤히 보일 지경이었다.

“집 없고 보호자 없는 애들이 이 교회에서 생활해요. 여기부터 고칠 수 있을까요?”

“얼마든지요. 어, 근데 어떻게 해야 될까요?”

“저한테……. 요령 물어보시려는 거 아니죠?”

둘은 서로를 마주 보며 침묵했다. 지호는 결국 몇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다. 물건 변형과 관련된 능력을 사용하는 헌터들은 대부분 친절하게 장문의 답변을 주었고, 일부는 지금 지호가 왜 그걸 궁금해하는지를 도로 궁금해했다. 근신 소식을 들었다며 안부를 묻는 사람도 있었다.

소식이 빨라도 너무 빠른 것 아닌가 생각했던 지호는 임시 헌터부터 열람할 수 있는 게시판에 아예 공지로 근신령이 박혀 있는 걸 보고 기겁했다.

“아니, 어디 나돌아 다니면 당장 이를 기센데요.”

“왜요?”

“저, 음, 사실 박 팀장님이 근신하라고 그러셨는데 여기 온 거라서요. 근데 근신하면 뭐 해요? 집에 앉아서 명상?”

“균열에 출동하지 말고, 비상사태에 뛰어나가지 말고, 괜히 분란 일으키지 말고 뭐 그러면 돼요. 집에만 있으란 이야기는 아니니 괜찮을 거고요.”

“제가 그렇게 큰 잘못 한 것도…….”

“지호 씨.”

“어, 그쵸. 좀 잘못하긴 했지만…….”

다행히 건너건너 요령을 배운 지호는 조심스럽게 깨진 채 방치된 유리 조각에 손을 펼쳤다. 손을 베이진 않을까 염려하던 승찬은 지호의 손이 지나가는 자리 아래로 거짓말처럼 달라붙는 유리 조각들을 발견했다.

“마법 같네요.”

“말 걸면 집중 안 돼요.”

승찬은 미안하다는 말조차 삼키고 물러섰다. 모은 유리 조각을 큰 조각으로 바꾼 지호는 큰 힘 들이지 않고 유리를 틀에 끼웠다. 약간 모자란다. 없는 걸 만들 순 없고 유리를 더 얇게 펴면 약해질 것 같았기에 그냥 새 조각들을 모아 오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어, 언니.”

멀지 않은 곳에서 지호의 마술 같은 작업을 구경하던 아이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주워 온 유리 조각을 내밀었다. 지호는 화들짝 놀라 아이의 손부터 살폈다.

“얘, 손 다쳐!”

“언니가 유리 고쳐 주는 거야? 목사님이 기도 열심히 하면 좋아질 거라고 했는데. 내가 어젯밤에 기도했어. 들었어?”

짧은 순간, 지호는 승찬의 눈치를 살피며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샛별이 또래의 어린아이. 제대로 씻기는 하는 건지 머리가 비뚤게 묶여 있고 옷도 청결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거리 부랑자들처럼 지저분하지만도 않았다. 그저 관리받지 못해 이렇게 방치되고 있을 뿐이겠지.

지호는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어 앉으며 유리를 공중으로 띄웠다. 반짝이는 유리 조각이 허공을 난다. 이런 것들을 맨손으로 주워 오면 당연히 다칠 수밖에.

“그건 못 들었어. 언니는 천사가 아니고 헌터라서 기도를 엿듣는 능력은 없거든. 대신 유리는 고쳐 줄 수 있어. 근데 이렇게 맨손으로 가지고 오면 안 돼. 발로 차면서 갖고 와도 되니까, 손으로 만지지 마렴.”

아이는 지호를 물끄러미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손으로 가져와야 빠른데.”

생각보다 논리적인 답변이라 지호는 잠시 머뭇거렸다.

“어, 음. 그럼 이 아저씨랑 같이 유리 조각 주워 올래? 언니가 이거 고치고 있을게. 가져다주면 도움이 될 것 같아.”

“다른 애들이랑 같이 모아 올게!”

“다치지 말고.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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