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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헌터는 임대 아파트에 산다-72화 (73/260)

72화

기민하게 지호의 표정을 읽어 낸 승찬이 아이들을 물렸다. 간식을 먹자는 목사님을 따라 우르르 나가는 아이들 뒤로 승찬이 질문했다.

“무슨 일이에요? 갑자기 표정이 엄청 안 좋아졌는데.”

“주안 공단 말이에요. 아까 아침에 균열 터진 동네. 아니지, 그것보다 좀 더 이전 이야기를 해야겠어요. 저 퇴원하고 나서 잠깐 살던 동네에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지호는 자초지종을 간략히 설명하며 그가 어떻게 뉴스에서 언급하던 이형 에너지 반응에 예민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야기했다. 이런 가루를 일반인들에게 나눠 주며 모종의 실험을 하던 괴집단 이야기를 들은 승찬의 표정 역시 지호와 비슷해졌다.

“놈들의 잔당이 여기에 있는 걸까요?”

“아니면 비슷한 실험을 여기서 했을 수도 있겠죠……. 이 동네에 균열이 열린 건 언제예요? 여기가 언제 이렇게 망가졌죠?”

“몇 년 안 됐습니다. 남동구하고 미추홀구, 연수구에 걸쳐서 균열이 좀 크게 열렸던 적 있잖아요. 축구 경기 크게 있던 날이었나, 그때 정말 난리였는데…….”

그건 정상적인 사이즈의 균열이었다. 그러나 급성 균열이긴 했다. 지호는 주안 공단의 이형 에너지 폭발을 막지 않았을 때 일어났었을 수 있을 참사에 관해 생각했다. 둘러만 봐도 보이는 폐허들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조사를 좀 해 보고 싶어요. 근신하란 말 들은 상황이라 이러면 안 된다는 거 아는데…….”

“조사 정도라면 저도 협조하죠. 대신 이번에는 위험한 상황이 와도 무작정 뛰어들면 안 됩니다. 절대로요.”

“명심할게요. 또 어기면 저 진짜 헌터 못 할지도 몰라요. 그럼 언니가, 아니지. 언니는 좋아하겠지만…….”

생각해 보면 보현은 지호가 헌터 일하는 걸 그다지 반기지 않았었다. 혼자 말하다 말고 말 꼬여 쩔쩔매는 지호를 보던 승찬은 아무렴 어떠냐며 알아서 상황을 정리했다.

“일단 수색만 하죠. 그리고 혼자 멀리 가지 말고요.”

“그럴게요.”

“아까 말했던 걸 들어 보면 이동 능력자를 제외하고는 각성자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고 했죠?”

“있었으면 저를 방해하거나 더 빨리 달아나거나 싸움을 걸었을 수도 있죠. 하지만 그냥 차를 타고 빨리 도망치기에만 급급했어요. 그래서 다 일반인일 거라 생각하곤 있는데, 아닐 수도 있죠. 정체를 숨기려고 능력을 쓰지 않았으면 더 모를 수도 있고요.”

“목사님은 각성자를 본 적은 없다고 했었어요. 하지만 힘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평범한 사람과 각성자의 차이가 겉으로 드러나진 않으니까 그런 힘을 쓰는 사람 자체가 목격된 적이 없다고만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각성자가 타고난 능력을 일부러 숨기는 건 꽤 힘들겠죠?”

“어, 음. 날 수 있는데 굳이 버스 타진 않으니까, 네. 일반적으로는 그럴 것 같아요.”

“사람이 많은 동네는 아니에요. 본 사람이 없다고 그런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는다고 할 순 없죠.”

“음, 그래도 협회 사람들이 하나같이 했던 말이 있어요. 대부분의 능력을 저만큼 다루는 사람을 찾기는 힘들 거라고. 그러니까 제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저한테 나는 게 편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나는 게 편할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거거든요.”

“그럼 그냥 평범한 사람들의 소행을 가정하고?”

“네. 그렇게 수색하는 편이 좋겠어요.”

해야 할 일을 찾은 지호의 얼굴만큼 생기 있는 것이 또 있을까. 승찬은 묘하게 기운찬 지호를 보기 좋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사람들 사는 구역부터 찾아보죠. 밝을 때는 주변 살펴도 덜 수상하잖아요.”

“저는 어두울 때 돌아다녀도 별로 안 수상할걸요? 아저씨가 문제야. 어깨 이만해서 얼굴 안 보면 무서운 사람인 줄 알 거라니까.”

“아니, 안 수상하려고 어깨를 줄일 순 없다고요.”

지호와 승찬은 평범한 대화를 나누며 교회를 나섰다. 이미 몇몇 사람들 사이로 헌터가 왔다는 소문이 퍼져 지호를 흘깃거리는 눈들이 있다. 누군가 작게 소근거렸다. 뉴스에서 본 그 사람 아니야? 이지호 헌터.

대놓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는 까닭은 다들 균열에서 헌터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어, 헌터들을 곤란하게 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그저 시끄러워지는 게 싫거나.

수리되지 않은 건물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개중에 판자며 종이 박스며 엉성한 가림막으로 창과 문을 막아 놓은 곳들은 사람이 사는 곳이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열악할 수 있을까. 멀쩡한 창문이 거의 없다는 게 지호를 의아하게 했다.

“괴물들이 돌아다니면서 유리창만 골라 부순 걸까요? 건물이 이렇게 많이 망가져 있는 건 처음 봐요. 저도 균열에 몇 번 들어갔었지만…….”

“관련된 정보는 나중에 협회 보고서를 읽어 보시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저도 괴물에 관한 건 잘 몰라서.”

“아, 맞아. 아저씨 일반인이죠. 자꾸 잊어버려.”

“언제쯤 기억할까요?”

“글쎄요. 구조대 은퇴하실 때?”

아이들이 말한 위치는 사람 사는 곳은 아니었다. 다 망가진 곳 중 하나. 누군가 의도적으로 폐자재를 쌓아 놓은 것 같은 기이한 모양새이기도 했기에 둘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처음부터 잭 팟인데요?”

“아니면, 애들이 말한 모든 위치에 이런 게 있을 수도 있고요.”

“빨리 확인하죠.”

지호는 자기들끼리 기대어 위태롭게 세워진 것들을 염동력으로 들어 올렸다. 아이들이 일부 주워 왔으나 여전히 남은 잔해가 느껴졌다. 흙먼지와 함께 신발 끝에 툭툭 걸리는 조각들까지 양이 꽤 됐다.

“이건 가정집에서 쓸 것 같은 기계는 아니네요.”

“몸통이 정수기 비슷하게 생기긴 했어요.”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었다. 그 기계는 지호가 아는 어느 것과도 닮지 않았다. 뭐라고 설명을 해 볼까 싶던 그는 입을 다물고 수색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형 에너지량은 미미하다. 그러나 여기 마정석 부산물이 남아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남촌동 건과 연관 지을 수 있는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요. 균열이 열렸던 동네에 이런 게 흔할지도 모르잖아요.”

“흔해요?”

“그걸 이제부터 알아봐야죠. 일단 다른 곳에 더 가 봐요. 애들이 말한 곳들…….”

아니기를 바랐고, 실제로 기계가 더 발견된 곳은 한 군데에 불과하다. 그러나 두 곳에서 같은 기계가 발견되었으며, 그것들이 의도적으로 숨겨지거나 부서져 있었다는 점이 지호를 불편하게 했다.

“아무도 만날 수 없어서 다행인지, 아니면 이미 여길 떠난 다음이라 늦은 건지 잘 모르겠어요.”

“일단 균열이 열린 다른 지역에서도 이런 것들이 발견되는지 확인해 봐요. 그게 우선일 것 같아요.”

가까운 위치는 당연히 남동구 균열이다. 인천 지역은 이상하게 밀집 균열이 많았고, 급성 균열 역시 많다.

그럴 수가 있나?

균열이 열리는 조건을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해 그런 원인조차 추측할 수 없었기에 지호는 이동하는 내내 인상을 펴지 못했다.

혹여 인위적으로 균열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 때문에 그런 재앙들이 발생했다면 어떻게 될까.

지호를 비롯해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들 모두가 분노할 것이다. 지호 역시 참겠다고 말할 수 없다. 엄마를 생각하면 그런 수상쩍은 집단의 존재 자체를 용인할 수 없으니. 사실상 지금 지호를 움직이는 원동력의 절반가량은 분노였다.

그러면 나머지는?

쉬는 날인데도 자신과 함께 의미 없어 보이는 수색에 동참해 주는 승찬을 바라보며 지호는 계속 생각했다. 관교동에서 만났던 목사에게 말한 것처럼,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걸까?

여기저기 돌아다녔으나 성과가 마땅치 않았다. 아이들이 가져 왔던 푸르스름한 가루들은 균열 열린 지역에 있었어도 다 날아가 버릴 만큼 하찮고 가벼웠으므로 전부 없어졌을 가능성 역시 열어 둔다.

마정석 가루를 육안으로 식별하는 것 외엔 수색할 능력이 전무한 승찬이었기에 지호와 동행하는 것 외엔 도울 수 있는 일이 없다. 그는 지호가 눈을 감고 손바닥을 앞으로 펼친 채 집중하는 모습만 한참 바라보았고, 그걸 다섯 번쯤 반복한 후에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요. 이런 세밀한 수색은 전공이 아니죠?”

“왜 그렇게 단정 지어요?”

“엄청 자신 없는 얼굴이거든요. 걱정이 가득하고 겁에 질린 것 같기도 하고요.”

지호는 멋쩍은 얼굴로 손을 거두었다. 승찬의 말대로였다. 지호는 분명 감지 능력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으나, 그 방향은 좀 다르다. 광범위한 곳을 수색할 수 있고, 공격이 어떤 방향에서 어떤 방법으로 들어오는지 기민하게 읽어 낼 수 있으며 가끔은 예지에 가까운 감각이 저릿하게 위기를 알린다. 이런 섬세하고 좁은 범위의 작업에는 영 익숙하지도 않았고, 정확하리라 자신하기도 어려웠다.

“실은, 이런 쪽에 좀 더 잘 맞을 헌터님을 이미 알고 있어요. 제가 떼를 쓰고 있는 걸까요?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면 훨씬 나을 상황을 제가 어떻게든 해 보겠다고 고집부리면서…….”

승찬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 부근에 뭔가 있다고 수색을 요청한다는 부분에서만큼은 다른 사람이 좀 더 효율적인 작업을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이상의 일들마저 깎아내리고 싶은 건가요? 지호 씨 본인이 부딪치며 겪은 일들도, 수상하게 생각하고 있는 집단도, 그들의 흔적 비슷한 것들도 다른 헌터들이 각기 봤을 때는 별로 특이한 것들이 아닐지도 몰라요. 하지만 지호 씨는 그것들을 연결해 냈고, 결과적으로 유의미한 답을 도출해 내는 과정을 밟고 있잖아요.”

“아무것도 찾지 못하면요?”

“시행착오는 있을 수 있죠. 모든 걸 단번에 해낼 수는 없어요. 다른 각성자들, 다른 헌터들이 지호 씨처럼 솔선수범해서 그런 것들을 파헤치나요? 아뇨. 제가 알기로는 다른 분들은 자신을 단련하거나 실험에 매진하시던데요. 그 수상해 보이는 단서 하나하나는 다른 사람들을 거쳐 갔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아무도 거기에서 뭔가를 찾아내진 못 했어요.”

여전히 지호의 표정이 복잡했다. 승찬은 해가 저물고 밤이 어둑히 내리 깔리는 동안 내내 그러했듯 지호의 곁에 가만히 선 채 기다렸다.

“이 작업에 누군가가 좀 더 적합하다면 그들의 도움을 구해요. 다른 작업에도 좀 더 그걸 잘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요. 도움을 청하는 건 부족한 것도, 부끄러운 것도 아녜요. 지호 씨가 하는 일을 보면 다들 도와줄 거예요.”

“저 근신 중인데.”

“그럼 몰래 도와달라고 하죠. 위험한 게 아니란 사실을 알면 흔쾌히들 와 줄걸요? 헌터가 되는 데 다른 자격이 있는 게 아니잖아요. 애당초 남들 구하고 도우려는 사람들 모인 집단인걸요.”

“자격…….”

공식 헌터증이 나와야만 헌터로 불리는 것은 아니다. 구조대원들에게, 지호가 도와준 교회 아이들에게 그는 이미 헌터였으니.

남을 돕고자 모인 사람들이라는 말이 결국 지호의 심금을 울렸다. 승찬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던 지호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주소록을 아래로 훑어 내렸다. 밤이 늦어 전화 대신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장문의 문자를 남기자 금세 전화가 왔다.

경쾌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뚫을 듯이 외쳤다.

-나를 빼고 수색이라니, 배신이에요!

“그, 아시다시피 제가 근신 상태라…….”

-위치 찍어요. 당장 갈 테니까!

차나연 헌터는 쩌렁쩌렁 외치며 위치 정보를 받아 갔다. 오래 지나지 않아 익숙한 파장이 퍼졌다. 지호는 화들짝 놀라 저도 모르게 승찬 뒤로 숨었다.

미묘한 표정의 박 팀장이 차나연 헌터와 함께 도착했다. 오전에 지호에게 근신을 준 장본인이다. 아무리 이동 능력자가 궁해도 그렇지! 지호는 어쩔 줄 모르며 눈치를 살폈다.

박 팀장은 차나연 헌터와 함께 이동해 온 다음 주변을 훑었다. 남동구 균열 중에서도 아직 복원되지 않은 곳이었다. 전철역 위주로 복구되었고, 그다음이 아파트 위주의 대규모 거주지라 이런 작은 빌라촌 같은 곳들은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상황을 대충 파악한 박 팀장의 시선이 승찬에게 잠시 머물렀다.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던 박 팀장은 한숨과 함께 차나연 헌터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요. 차라리 보고 올리고 사고 치십시오. 그 편이 수습하기 쉬우니까.”

“더 큰 사고를 막기 위한 조사라고 해 주세요, 박 팀장님.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오신 김에 셔틀 좀 해 주면 안 돼요?”

“그럼 저한테 남는 게 뭡니까?”

“만약의 사태에 우리 유망주를 지킬 기회?”

약간의 입씨름 끝에 한 시간 정도만 동행하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밤이 늦어 바람이 차가웠다. 좋지 않은 몸 상태로 체력 짱짱한 지호를 온종일 따라다닌 승찬은 몸살의 예감을 느꼈다. 며칠을 밤새며 구조 작업 할 때보다 더 피곤했다. 지호가 추측하는 지점을 세부 수색하는 나연과 그들을 옮기는 박 팀장의 긴 한숨. 이제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조용히 한쪽에 있기로 한 그에게 박 팀장이 툭 말을 걸었다.

“뭐 찾은 게 있습니까? 지호 씨는 보고를 잘 안 올려서요.”

“아뇨. 고작해야 관교동 쪽에서 불순물 많이 섞인 마정석 가루를 발견한 게 답니다. 이상한 기계들하고요.”

“기계들요? 아, 전에 그거군요. 또 혼자 위험하게 돌아다니진 않겠죠? 그놈들은 불법 무기도 갖고 있어요. 위험하단 말입니다. 지호 씨는 괴물하고 싸우는 훈련만 되어 있지, 아직 대인전도 치른 적이 없고…….”

“헌터가 사람과 싸울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인간형 괴물도 있고, 최근에는 다양한 가능성이 있어 훈련 과정을 만드는 중이거든요. 나머진 대외비라.”

박 팀장은 두 감지계 능력자의 수색을 지켜보며 선글라스를 썼다. 이 밤에 선글라스라니, 그냥 얼굴을 숨기고 싶은 것일까. 승찬은 박 팀장의 태도가 묘하게 쌀쌀맞다고 느끼며 팔짱을 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일 몸살 예약이다.

한 시간만 동행한다던 박 팀장이 함께한 지 세 시간가량 지났을까. 자정이 다 된 시각, 차나연 헌터가 찾았다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르며 지호를 껴안았다. 두 헌터가 폴짝폴짝 뛰는 동안 박 팀장은 위치 정보를 표시하고 어딘가에 보고를 올렸다.

나연과 기쁨을 나눈 지호는 승찬에게도 달려와 그의 손을 붕붕 흔들었다.

“고마워요, 아저씨. 같이 안 있어 줬으면 진작 포기했을 거예요. 이제 이것들 가지고 연수 센터 가서 성 팀장님이랑 다른 작업도 해 보려고요. 그런 것들은 다른 연구 팀 분들이 더 잘 아실 테니까요.”

“기운을 차려서 다행이네요.”

“전 원래 기운 넘쳤는데요! 아, 이렇게 늦을 줄 몰랐어요. 데려다줄게요!”

“어차피 구월동 언저리라 집 멀지도 않아요. 들어가 봐요. 다른 분들도 고생하셨고요. 나중에 또 봐요, 지호 씨.”

박 팀장은 두 번 권하지 않고 지호와 나연을 데리고 사라졌다. 홀로 남은 승찬은 입김을 후 불어 손을 덥히며 그들이 떠난 자리를 사진으로 찍었다.

위화감이 든다.

그러나 그것을 입 밖에 내지 않는 건, 지호가 아직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새싹 같아서였다. 굳건히 뿌리 내리고 나면 그 후에 이야기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몇 시간 후, 승찬마저 떠난 자리에 누군가 나타났다. 그는 선글라스를 탁탁 두드린 다음 부근에 가지고 온 것들을 빙 둘러 내려놓았다.

새벽녘 일어난 비거주구 가스 폭발 사고는 유야무야 처리됐다. 남은 흔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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